*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필리핀 보홀 섬
보홀 섬 바클라욘(Bohol Baclayon)에 있는 텔리(Telly A. Acampo)아줌마네 집도 내 보기엔 특별하달 것 없는 오래된 나무집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고 잠깐 눈이 휘둥그레지긴 했다. 집의 절반이 바다 위에 걸쳐 있고, 창문 너머 바다로는 맹그로브 나무숲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맹그로브 나무는 바다 속 짠물을 먹고 산다는 해안가 식물인데, 푸르게 잘 생긴 모양새도 대견하지만 나무의 뿌리가 흙을 단단하게 잡고 있어서 한여름 태풍의 방패막이가 되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집 때문에 텔리 아줌마는 지방정부와 삼년 동안이나 길고 긴 싸움을 벌여야 했다. 평생 살아온 집이자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녀온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해안도로를 넓힌다는 것이 철거의 이유였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게 된 열 한 가구의 사람들은 정부의 철거 명령과 싸우기로 작정하였고, 이 싸움은 ‘우리 옛집 지키기 운동’으로 확산되어 결국 정부의 개발계획을 중단시켰다. 그 오래된 집들 앞에는 ‘물려받은 것을 지켜라(Save Our Legacy)’ 라는 문구가 지금도 붙어있다.
볼일이 있어 보홀 섬으로 건너간다는 마마로사를 졸졸 따라 나온 길이었다. 작은 대학에서 에코투어리즘(Eco Tourism)을 가르치는 마마로사에게 나는 보홀 섬을 ‘에코 투어’하고 싶다고 졸랐다. 그렇게 마마로사의 여행 수첩이 열렸고 몇 명의 친구들에게 연락이 닿은 것이다. 시에라 블론(Sierra Bullones)에서 농사짓는 로사 친구 인다이(Inday Liwa) 네 집을 찾아가다가 소나기를 된통 만났다. 6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면서 한 번씩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데, 삼십 분쯤 그러다가는 또 금방 하늘이 멀쩡해지곤 했다. 다행이 비는 그쳤지만 물이 넘쳐 흙길이 패였다. 짐을 이고 지고 진흙탕 길을 걸으려니 여름신발은 찐득한 흙 속에 박혀 나올 줄을 모르고 어쩌다 맨발만 쏙쏙 빠져 올라온다. 막내가 “엄마, 신발이 가기 싫대.” 하고는 혼자 가버려서 내가 막내 신발까지 타일러 데리고 갔다. 사방 우뚝우뚝 서 있는 야자수들만 아니라면 우리네 시골과 다를 바 없는 정겨운 길인데, 걸음이 더디고 힘들다.
농사가 바쁜 철이면 일손을 좀 도울까 했는데 모내기 끝내고 쉬는 때라 별다른 일거리가 없었다. 덕분에 넓은 부엌에서 인다이랑 같이 요리만 실컷 하였다. 아직 나무를 때서 밥을 하는 터라 아이들은 하루 종일 불 피우는 일에 신이 났고, 나는 되는 대로 배추를 썰어 오랜만에 막김치를 담갔다. 고춧가루가 없어 결국 허여멀건 김치가 되었는데, 생각 없이 썰어 넣은 필리핀 애기 고추가 어찌나 매운지 칼칼한 김치 맛에 다들 입을 홉홉거리며 먹었다. 젖먹이 아기가 있는 인다이는 초콜릿죽을 만들었다. 보기에는 팥죽이랑 똑같은데 카카오 덩어리와 쌀을 섞어 끓인 거라 했다. 설탕을 살살 뿌려 먹으니 쌉싸롬한 맛이 별미였다. 달콤한 주전부리 초콜릿도 여기서는 호박이나 감자 취급 받으며 사는 중이다. 우리는 바나나꽃을 따서 스튜도 끓였다. 향기가 진하다 못해 독한 바나나꽃은 아이들 머리통만큼이나 크고 단단한데, 겉잎은 좀 떼어내고 봉오리 안쪽을 듬성듬성 썰어 자작하게 끓여 먹는다. 앞뜰의 라임나무 툭툭 쳐서 후두둑 떨어진 라임들로 마실 거리를 만들고, 말린 코코넛 하얀 속살을 긁어내어 아이스크림처럼 얼려 먹기도 하였다. 필리핀 유기농업이 이토록 큰 규모인지 몰랐다. 쌀, 설탕, 기름, 과일 등 품목도 다양하고 생산량이 많아 수출도 매년 늘고 있단다. 무엇보다 생산과 유통을 촘촘히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농사꾼들을 떠받들며 움직이고 있었다. 일 년에 네 번 지을 수 있는 쌀농사를 땅이 지칠까 싶어 두 번만 짓는단 얘기까지 듣고 나니, 비빌 언덕 없는 우리네 농업 현실이 더 안쓰럽다. 덥고 습한 이곳 날씨도 처음으로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마로사와 헤어져야 한다. 우리 때문에 보홀 일정이 길어져 마마로사 갈 길이 바빠졌다. 나는 소비하는 게 전부인 관광객이 아니라 삶을 낚는 여행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치며 떠나왔지만, 막막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었다. 마마로사는 내 어둔 여행길을 환히 밝혀준 고마운 등불이다. 비상금을 조금 헐어 마마로사 가방에 넣는다. 까미귄 섬 에니그마타의 지붕이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비만 오면 지붕 틈으로 물이 새는 바람에 뚜뻬는 밤새 지붕을 오르내려야 했다. 곧 태풍의 시간이 몰려올 텐데 그 전에 지붕을 고치면 좋겠다고, 나는 에니그마타가 그 자리에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런데 자존심 센 마마로사가 웃으며 나를 꼭 안아준다. 그럼 된 것이다. 집이 별거냐 했는데 집은 기억이며 역사였다. 그건 돈이나 그 어떤 논리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집도 그렇거니와 나무와 새들의 집, 물고기와 돌과 모래의 집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내 것이라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다음 이야기(인도네시아 편)는 5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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