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수영이에요. 갑자기 생각나 문자 보냅니다.”
수영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영이는 몇 해 전, 다른 도시로 이사 가는 바람에 2년 넘게 해오던 공부를 중단한 아이였다. 요즘 잘 지내고 있는지, 부모님은 안녕하신지, 중학교생활은 즐거운지 등을 묻고 연락을 줘서 정말 좋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기억하면서 안부를 묻는 아이의 마음이 고마워, 공연히 흥분되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공부를 그만 두거나 이사 간 이후에, 학부모도 아니고 학생이 안부를 전해온 건 수영이가 처음이다. 공부를 시작할 당시 수영이는 3학년이었는데, ‘모범생 콤플렉스’가 또래에 비해 심한 아이였다.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공부 잘하고 부모님이나 어른들 말씀도 잘 듣는다. 그러나 창의성이 부족하고 상투적인 생각을 자기 의견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 수영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가진 성격의 단점을 완전히 고치기란 불가능한 일인것 같다. 다만 자기의 성격 특성을 스스로 이해하고, 그 중에서 단점을 조금이라도 고치려고 애쓰는 정도가 최선이라는 걸 여러 아이들의 사례를 통해 경험했다. 그런데 나는 수영이보다 그녀의 어머니를 더욱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수영이 어머니를 통해 소신 있게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시험받은 최초의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수영이가 나와 공부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막 지나고 있을 때, 수영이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 집으로 오라고 했다. 보통 할 말이 있으면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좀 의아했지만, 친해지자는 제스처쯤으로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이웃집 마실을 가는 기분으로 방문했다. 차를 한잔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는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너무 비판적인 것들을 가르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날카로운 것 말고 좀 부드러운 걸 가르칠 수는 없나요?”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어조와 표정으로 내게 요구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에 기가 죽을 내가 아니다. “어머님께서는 자녀들에게 그런 부드러운 것들을 가르치시죠?” “예!” “그럼, 학교선생님들은 어떠신가요? 그분들도 그런 부드러운 것들을 가르치시나요?” “그렇죠!” “어머니도, 학교선생님도 부드러운 것들을 가르치는데, 왜 저까지 그런 공부를 가르쳐야 하죠? 이 공부는 의무도 아니잖아요. 제 공부가 마음에 안 드신다면 공부를 그만 두세요.” “아... 그건, 아니에요!” 나의 강한 반응에, 수영이 어머니는 도리질을 했다. “전 누가 가르치라 하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르칩니다.” 다행히도 수영이 어머니는 이런 내 말을 곡해하지 않고 잘 받아주었다. 오히려 그 후론 수영이가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부족한 점을 많이 보충하는 것 같다며 흡족한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또 다른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거나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공부도 좀 가르쳐 주세요” 하고 요청하기도 했다. 나는 그 요구에 대해서도 “전 그런 건 안 가르칩니다” 라고 대답했다.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숱하게 듣는 얘기인데 왜 저까지 그런 것을 가르쳐야 하지요? 부모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다면, 직접 가르치시면 좋겠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가르치고 싶은 것을 소신 있게 가르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돈벌이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교육활동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실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잘해온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지금처럼 당당하게 “저는 제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칩니다!”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이 글을 끝으로 일년 넘게 써온 <교육일기>를 마치려고 한다. <교육일기>를 쓰는 시간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8년 째 해오고 있는 ‘가르치는 일’이 내 인생에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기에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부족하지만 이 글이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2009년 1월부터 매주 연재된 정인진의 교육일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주 후에는 정인진님의 새로운 칼럼 연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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