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연재는 외면하기, 직면하기, 비교하기, 수용하기, 강점 찾기, 표현하기 등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자화된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 – 편집자 주
신나, 재밌어
은혜가 듣는 강좌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은혜 어머니인 만화가 장차현실 선생님과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문자벨이 딩동거린다. ‘장차현실 어디냐. 끝났다.’ 이 당돌한 문자에 장차현실은 웃음을 터뜨리고 서둘러 강의실로 내려간다. 사무실로 들어서는 은혜의 얼굴이 해사하다. 지난주엔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먼저 말을 건다. 오늘은 내가 화장을 한 탓인지 “이쁘다”는 말을 꺼낸다. “오늘은 엄마랑 차 타고 왔어요. ○○. 그거 타고 왔어.” 엄마랑 둘이 차 타고 와서 기분이 좋은 거구나. 그럼 엄마랑 둘이 차 타고 오면서는 뭘 했을까 궁금했다. “엄마는 운전하고 나는 약과 먹으면서 왔어요. 약과 먹고 음악 들으면서 왔어요. 일본 노래. 엄마가 좋아해요.” 은혜는 어떤 음악을 좋아할까? “사랑으로. 해바라기. 그 노래가 좋아.” 춤을 추기엔 너무 노래가 느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무조건! 그것도 좋아요.”라고 덧붙인다. 지난 가을보다 살이 몰라보게 많이 빠졌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 말하자 “다리가 문제야”라며 “엉덩이에 살이 너무 많아. 쭉쭉빵빵이 아냐.” 라고 답하며 가슴을 내밀었다. “나이트 댄스를 배웠어. 엄마 후배랑 같이 춤을 추는데 그 둘은 서로 좋아해. 나는 섹시 춤도 출 수 있어요. 춤은 신나고 기분도 좋고.” 질문을 하면 충분히 기다려야 하고 은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말해야 한다. 약간 두서가 없지만 춤 이야기를 할 때 은혜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양수리에 살 때 엄마의 여자 후배 둘과 춤을 추곤 했는데 그 둘은 연인이다. 이런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은혜에게서 편견이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무리한 감량, 시큰둥한 은혜 춤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은혜의 다이어트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들이 살 안 빼면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선생님들 기분이 안 좋아.” 은혜가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는 대안학교에서 숙식을 하며 두 달 동안 15킬로를 감량하고선 몸에 무리가 와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덧붙이는 장차현실 선생님의 말에 깜짝 놀랐다. 살이 빠져서 예뻐졌다고 말하자, 은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감행해야 했던 혹독한 다이어트에 대한 거부반응이리라. “(사진전의) 사진은 집에 있어요. 그날은 더웠어요. 피자도 먹고 (사무실의 활동가를 가리키며) 저 언니와 피자도 먹고 사진을 찍었어. 그날은 좋았지. 재밌었고.” 사진으로 찍힌 본인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엔 조금 어려워하며 그저 좋았다고만 했다. 춤이 왜 좋냐는 질문엔 “아까 말했잖아요. 신나. 재밌어. 왜 자꾸 물어.” 뭔가 답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아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은혜에게 춤은 그냥 즐겁고 신나고 재밌는 일이다. 이걸 자꾸 왜냐고 물으니 은혜는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여기까지 진행하자 “좀 힘드네요”라고 했다. 쉴새 없이 질문을 하는 이 시간이 좀 피곤한 듯해서 잠시 쉬기로 하고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갔다. 키스, 사랑, 섹스
신데렐라 언니의 등장인물을 이야기할 때 연기자의 실명과 극중 이름을 함께 말하는 은혜. 드라마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다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은혜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키스, 사랑, 섹스다. 특히 섹스를 발음할 때 ‘쓰엑~쓰’라고 강조하는 은혜. 나는 또 왜냐고 물었다. “엄마의 어른 몸. 가슴, 털을 보고 관심을 가졌어. 왜냐고? 하고 싶으니까. 남녀처럼. 여자가 하는 거에 대한 거요.” 인터뷰 시작 전 장차현실 선생님이 은혜에게 성교장면을 영상으로 알려주고 싶은데 영상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21세, 소녀와 여성의 경계에 있는 은혜에게 피임과 키스, 사랑, 섹스는 큰 화두이고 남녀가 하는 모든 것은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문득, 지적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한다는 시설장의 강의를 들었던 게 기억났다. 원생들의 사진을 넘기며 우리에게 웃음을 유도하던 그 시설장의 모습에 불편했다. 그에 반해 진지하게 성교장면 영상을 원하는 은혜 엄마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당사자’ 관점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은혜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간다. 양평에서 전철을 타고 2시간이나 걸려 장지동에 있는 교회에 간다. “아침예배, 찬양연습, 사랑부 장구, 저녁예배”라고 들뜬 목소리로 일정을 말하는 은혜. 뜨개질을 하며 2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혼자 교회에 간다고 한다. “사람들이 쳐다봐요. 기분이 안 좋아. 나는 뜨개질을 하지. 신경 안 써.” 시크하게 전철 상황을 정리하곤 좋아하는 찬송가 이야기를 한다. “참혹한 십자가에~”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내뱉었을 때 나와 장차현실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렸다. “제목도 참, 참혹한 십자가라는 노래를 좋아한다니. 그래, 장애여성이 참혹한 십자가를 졌지”라며 장차현실 선생님은 웃었다. 진지하게 참혹한 십자가를 노래하는 은혜에게 있어 춤은 참혹한 십자가인 현실 사회를 잊을 수 있는 그런 것일까? “신나. 재밌어. 왜 자꾸 물어”라는 은혜의 말은 우문현답이다. 즐겁고 재미난데 뭐 이유가 있나? 내가 좋으면 되는 거지. 은혜의 답은 언제나 간결하다. 간결한 것이 진리일 때가 많지. 푸훗! (일본 장애운동가 아사카 유호 인터뷰 두번째 칼럼은 6월 말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장애여성 몸 이야기 관련기사목록
|
소수자 시선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