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동티모르 딜리① 걸어서 국경을 넘다 동티모르 가는 비행기를 타러 잠시 들른 발리 섬은 아체와는 전혀 다른 인도네시아였다. 오래 전 휴양지로 개발된 섬은 갖가지 편의와 쾌적함을 비싼 물가와 맞바꾼 채 나른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거리에는 호기만발한 외국관광객들이 넘쳐 났지만 지갑 헐거운 여행자의 어깨는 자꾸만 움츠러든다.
비행기 표를 구하다가 또 한 번 놀랐다. 티모르 섬의 서쪽 절반은 인도네시아령이고 나머지 동쪽 땅이 동티모르(東 Timor)인데, 같은 티모르 섬에 도착하는 두 비행기의 표 값이 크게 차이가 났다.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Dili) 행 비행기는 350불이나 하는데, 서티모르 인도네시아 쿠팡(Kupang)으로 가는 비행기는 50불에 불과하다. 쿠팡에서 출발해 육로로 동티모르 국경을 넘는 여행자버스 값 20불을 감안한다고 해도 자그마치 다섯 배나 더 싼 것이다. 부족한 것은 예산, 남아도는 것은 시간뿐인 우리로서는 더 생각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었다. 12인승 버스에 구겨져 탄 채로 비포장 도로를 열세 시간 내처 달린 것은 뭐 그렇다 치더라도, 그 긴 시간 동안 화장실 볼일을 제대로 못 보았다. 점심을 사먹은 식당을 제외하고는 따로 공중화장실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떻게 하나 지켜보니 급할 때마다 운전수에게 세워줘요, 하고는 내려서 적당히 주변에서 해결하고 마는 것이다. 온통 낯선 남자들뿐이라 차마 그렇게도 못하고 꾹꾹 참으며 오느라 아이들도 나도 얼굴이 노래졌다. 국경의 풍경 또한 스산하기 짝이 없다. 옆구리에 총을 찬 인도네시아 군인들에게 여권을 확인 받은 뒤 짐 검사를 하러 가니, 투시장비 없이 일일이 사람 손으로 짐을 열어 보고 있다. 그런데 밀수품을 꼼꼼히 가려내려는 충정에서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권위를 떨치려는 수작인지, 근무자들은 하나같이 고압적인 자세로 가방을 속속들이 들쑤셔 놓고는 등 돌려 나 몰라라 한다. 동티모르 쪽 비자 창구도 만만치 않다.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아우성인 것은 창구에 여권을 먼저 들이미는 사람이 우선인 탓이다.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든 도장을 받지 않으면 자꾸자꾸 뒤로 밀려나고 만다. 비자 값 30불이 비싸네 싸네 할 틈도 없이 같이 악다구니를 써서 그곳을 빠져 나오고 나니 비로소 줄 하나 굵게 그어놓은 국경 앞이다. 생각해보니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것이 처음이다. 독립문화관 한쪽 벽을 꽉 채운 글자
티모르 레스떼(Timor Leste), 21세기 첫 신생국가로 이름을 올린 동티모르의 진짜 이름이다.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국가로 거듭나 제각각 나라살림을 꾸려간 반면, 동티모르는 1970년대까지 포르투갈의 통치 아래 있었다. 자그마치 사백 년 동안의 식민 역사이다. 1975년 가까스로 독립을 얻어내려는 찰나 또 다시 이웃나라 인도네시아의 침략을 받아 강제 합병되었고, 점령군들의 가혹한 지배가 24년 간 더 이어졌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살인과 고문, 폭행, 실종과 불법감금이 난무하였던 그 시절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개척자들’ 사무실 한쪽에 잠자리를 얻어 밤늦게야 눈을 붙였는데, 이른 새벽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뭔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온 동네 사람들이 물을 긷는다고 부산스럽다. 매일 새벽 한 시간 동안만 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 때 물을 받아두어야 하루를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개척자들’ 식구들도 수도꼭지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을 그릇그릇 받아 뒤꼍 드럼통으로 나르느라 바삐 오가는 중이다. 뒤꼍에는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하는 야외 아궁이와 간이 화장실이 있다. 드럼통 세 개가 거지반 찰 때쯤 물이 뚝 끊겼다. 군식구들까지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이 물로 밥 해먹고 치우고 몸 씻고 빨래하며 하루를 버텨야 하는 것이다. 하루 이틀 살아보니 물을 쓰는 데에 요령이 생겼다. 쌀이나 야채 씻은 물 모아두었다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한 물로는 허드레 빨래를 하고, 빨래한 물은 먼지 자우룩한 마당에 내다 뿌린다. 건기가 한창이라 어디나 흙먼지가 풀풀하였다. 목욕을 할 때는 딱 한 양동이 물만 가지고 들어가서 비누칠 먼저 살살한 뒤 머리 꼭대기로 물 몇 번 끼얹으면 그만이다. 서너 차례 그리 해보더니만, 목욕 실컷 했는데도 양동이에 물이 남았다고 딸아이들이 서로 해죽거렸다. 물 요만큼을 가지고 어찌 사나 했는데 주어진 것에 꼭 맞춤한 삶이 저절로 살아진다. 신통한 일이다. 동티모르 ‘개척자들’에는 인도네시아 청년들도 여럿 있었다. 일 년 동안 이곳에서 자원활동을 하려고 스스로 찾아온 대학생들인데, 서티모르 쿠팡 출신도 있고 멀리 자와 섬에서 건너온 친구도 있다. 그런데 말 때문에 한바탕 웃고 말았다. 아침저녁으로 줄기차게 마시는 ‘차’가 인도네시아 말로 ‘떼’(teh)인데, 동티모르 떼뚬(tetum)어로는 그 ‘떼’(te)가 하필 ‘똥’이란 뜻이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국수 ‘미’(mi)는 어찌 된 일인지 여기 말로 ‘오줌’이라는 것이다. 매일같이 떼와 미를 먹고 마시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참 떨떠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착하고 어수룩한 인도네시아 청년 에디는 아침마다 “떼 줄까?”하며 장난치는 사람들에게 멋모르고 예스 했다가 금방 노노노 하며 펄쩍 뛰곤 했다.
감옥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자꾸 서늘한 기분이 든다.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감방과 물고문 성고문이 자행되던 차가운 바닥들이 힘없는 내 나라 역사처럼 낯익은 탓이다. 아시아 후발 제국주의자들은 마치 쌍둥이 형제들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군국주의의 칼을 휘둘러 수많은 이들의 삶을 동강내었다. 어둡고 습한 복도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오자 하얗게 마른 햇볕이 눈가에 달라붙는다. 부신 눈을 가늘게 뜨는데 한쪽 벽을 꽉 채운 거대한 글자들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WHAT WILL YOU DO FOR HUMAN RIGHT NOW?(자, 이제 너는 인권을 위해 뭘 할 테냐?) 물음이 떼뚬어와 영어로 나란히 쓰여 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머뭇대다가 천천히 돌아서 나오는데, 갑자기 역사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쑥 들어왔다. 만지작만지작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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