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 우리는 돌아왔다. 아빠에겐 우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아이들은 방콕 거리에서 일부러 산 빨간 리본 핀을 나란히 머리에 꽂았다. 남편은 돌아온 딸들을 환영한다는 문구를 피켓으로 만들어 손에 높이 들고 있었다. 눈물겹지만 상당히 민망한 귀국이었다.
열한 달 동안 아홉 나라를 돌았다. 앞서 소개한 여섯 나라에서는 좀 길게 살아보았고, 그 밖의 세 나라는 배낭여행하듯 거쳐 갔다. 싱가포르는 비싼 물가 때문에 화들짝 놀라 사흘 만에 빠져나온 나라이다. 그런데 나중에 따져보니 우리나라 물가보다 조금 싸거나 비슷한 정도였다. 우리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대단히 비싼 물가를 감수하며 산다는 걸 예전엔 절감하지 못했다.
물론 시내의 번듯한 아케이드 보다는 매우 저렴한 값에 음식이며 물건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헐값의 소비’ 또한 명백한 소비였다. 아이들이 맺는 대부분의 관계는 돈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졌고, 몇몇 그악스런 상인들은 어린 손님들을 대놓고 귀찮아했다. 다른 여행자들 또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외에는 달리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활기차다고 느껴지던 거리는 단 며칠 만에 새로울 것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고, 떠들썩한 인파도 같은 비디오를 반복해 보는 것처럼 점점 시들해졌다. 한두 달씩 지내면서도 지루한 줄 모르고 살았던 이전의 여행지들과는 아주 다른 점이었다. 태국에서 육로로 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캄보디아까지 넘보게 되었다. 앙코르와트(Angkor Wat)를 보러 가자며 아이들을 꼬드긴 건 나였다. 세계 몇 대 불가사의입네 하는 것 때문은 아니었고 그냥 사사로운 이유에서였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내가 아끼는 몇몇 영화들 중 하나인데, 그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이 앙코르와트였다. 생의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아무도 몰래 앙코르와트에 속삭여 묻고 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이 초라했든가 서글펐든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도, 마음은 줄기차게 앙코르와트를 향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앙코르와트의 맨 얼굴을 마주 하고 나니, 달콤한 감상은 온데간데없고 이걸 어쩌나 싶기만 했다. 12세기 초 크메르 제국 전성기 때 건축되었다는 힌두사원 앙코르와트는 이내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나마 복원이라고 해놓은 일은 아무렇게나 시멘트 짓이겨 틈새 메운 것이거나 훼손된 자리마다 대충 깎아 만든 돌 모형 얹어둔 것이 전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일 수백 명의 관광객들이 오래된 유적들을 밟고 오르내렸으며, 그 번잡한 걸음들에 깔려 앙코르와트는 ‘생의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길 위에서 성장하였던가. 키가 한 뼘씩 자라난 것을 제외하곤 알 수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교육의 기치 같은 건 없었으므로 이제와 미련이 남을 것도, 후회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같이 걸었던 길목들과 우리 집 삼았던 숙소들과 마음 준 새 친구들이 수두룩하니 두고두고 데워 먹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우리 것으로 남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무릎 휘청거렸던 나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의 삶을 물끄러미 보고 나니 한결 위로가 되었다. 평생 엄두나지 않던 일을 어느 순간 해치운 걸 보면 뭐든 때가 있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때를 알아채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일 것이다. 떠나라고 등 떠민 내 마음이 나를 구했듯, 누구나 제 마음 가자는 대로 가면 그게 길 아닐까 싶다. 때로는 그게 일상을 흔드는 일이라도 말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아침,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고백하자면 그 무렵 살 수 있는 제일 싼 비행기 표가 마침 그것이었을 뿐, 성탄절을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갸륵한 마음에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썩 체면이 서는 일이었다. 여러모로 줄곧 운이 좋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행의 기록이란 알게 모르게 재구성되어진 개인의 기억일 뿐 무엇이 얼마나 특별하겠는가. 찾아 읽어준 이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글 매듭 질끈 묶었으니, 시원한 물 한잔 마시러 가야겠다. [삶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성찰로 이끌어준 특별한 여행기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이 이번 기사를 마지막으로 연재 종료됩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팔 그리고 인도까지. 짧지 않은 6개월의 시간동안 소중한 글을 연재해주신 진형민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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