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어떻게 남겨드릴까요?”

[박진창아가 만난 사람]가위질 하는 제주여자, 재클린

박진창아 | 기사입력 2010/10/26 [16:37]

“머리카락, 어떻게 남겨드릴까요?”

[박진창아가 만난 사람]가위질 하는 제주여자, 재클린

박진창아 | 입력 : 2010/10/26 [16:37]
가위를 갖고 놀아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여태도 가위를 갖고 놀 수 있는지. 혹은 가위질을 할 때 기분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 있는지.
 
어렸던 어느 날, 동생을 앉혀놓고 목둘레에 보자기를 두르고 머리에 물도 발라 빗질을 해댔다. 이마 앞 머리카락을 잘라낼수록 왼쪽이 비뚤 오른쪽이 비뚤거렸다. 좌우대칭을 맞춘다고 자꾸만 자르다보니 끝내 앞머리가 눈썹과 만나려면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될 즈음이 되어야 했다. 시작은 진지했지만, 결과는 난감했다. 동생은 서럽게 울었고 나는 그날 저녁 끝내 매를 벌고야 말았다.
 
나에게 가위질은 왼손과 마음이 만드는 모험과 같다. 색종이를 비롯해 무엇이든 싹둑! 단숨에 잘라내는 그 움직임에는 여지없는, 돌이킬 수 없는 단호함이 배어있다. 그래서 때로는 섬뜩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어쩌면 그 역시 모험이 품은 속성이겠지만.
 
한 분야를 파기 시작한 서른 즈음
 
▲ 제주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재클린 씨.  우리가 ‘머리를 자른다’고 말할 때, 재클린은 ‘머리를 남긴다’고 말한다.
재클린은 남의 머리 만지는 여자다. 혼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제멋에 산다. 재클린도 그녀의 가위도 까칠한 타입이지만 결과는 깔끔하다. 이건 재클린에게 머리를 맡긴 첫날의 느낌이기도 하다. 나긋나긋한 서비스 멘트 없는 묵묵한 가위질에 반해서, 그녀가 다듬어준 헤어스타일이 좋아서 나는 알아서 ‘재클린의 팬’이 되었다.

 
서른 즈음에, 긴 생머리의 뱀띠 여자는 평생 먹고 살 일을 찾고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고만고만한 회사원으로 생활하면서, 몇 십 년 동안 한 분야를 파는 사람들이 참 멋져보였다고 한다. 한복 만드는 것을 배워볼까 요리를 배워볼까 고민하면서 ‘…너무 늦은 건 아닌지’를 걱정하던 나이였다.
 
지인의 추천으로 메이크업을 배우다가 ‘머리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모 미용실에서 미용기술을 배우면서 미국 LA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LA비달사순 아카데미를 갔는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전체프로그램을 배울 필요 없는 ‘어드밴스 코스’를 제안 받았다. ‘야마노 미용학교’에서 1600시간을 1년 이내에 채워야 하는 코스를 마치고 시험에 합격한 후 LA비달사순의 어드밴스 코스를 밟았다.
 
‘야마노 미용학교’의 과정은 아침9시부터 저녁5시까지 꽉 차 있었다. 오전에는 수업, 오후에는 직접 손님을 대응하는 실기로 구성되어있었다. 토, 일요일에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일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렸다.
 
“야마노(미용학교)는 실기를 많이 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비달)사순은 고급스러운 테크닉을 배우는 기회가 됐지. 그때는 ‘(한국은) 머리가 너무 싸. 니네는 바리깡(클리퍼)으로 10분이면 다 잘라버리니까 싼 머리잖아’ 라고 걔네들이 하는 얘기가 참 기분이 안 좋았어.”
 
“연예인 00머리로 해주세요”라는 말은 사절
 
4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지금의 위치에 가게를 연지 어느새 6년이 되어간다.

우리가 ‘머리를 자른다’고 말할 때, 재클린은 ‘머리를 남긴다’고 말한다. 형태를 남기며 디자인하는 개념이라고. 가위를 든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는 처음이어서 나는 이 말이 참 신선하게 들렸다.
 
“머리를 만지는 거… 우리는 유행을 따라가는 게 많아. 제일 속상한건 ‘연예인 머리를 잘해주는 사람’이 ‘머리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 사람마다 머릿결, 얼굴형, 피부톤, 두상의 조건이 다르고, 어울릴지 어떨지에 대한 파악하기보다 ‘이 머리로 해주세요’ 라고 했을 때 막막하지.”
 
패션의 완성은 비싼 옷 한 벌이 아니라 헤어스타일에 있다는 재클린. 그녀의 미용실은 4개의 거울과 의자, 신문과 여성지가 비치되어 있고, 커피가 내려져있으며, FM라디오가 흘러나오고, 화장실 벽에는 몸에 좋은 음식 기사가 아기자기하게 스크랩되어 있다. 언뜻 보면 다른 동네 미용실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뭐랄까 1% 다른 독특함이 있다.
 
앞서 언급한 주인장 성깔도 그렇지만, 공간이 품은 느낌이 남다르다. 1층에 위치에 사방이 탁 트여있는 통유리로 구성된 공간 분위기가 이국적이어서 살짝 비싸 보이는 점을 빼고는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원래부터 익숙한 공간이었던 듯 친근함이 묻어난다. 마치 어릴 적 미용실 놀이를 하던 장소에 있는 듯 하달까. 겉으로는 흔하디흔한 수다와 웃음이 흘러나오지만 은밀하게 계획이 세워지며 D-Day를 준비하는, 모종의 회합이 이뤄지는 듯한 상상도 가능하다.
 
“가위 하나 들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 "가위 하나 들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재클린의 가위는 모험을 감행하기 위해 단호한 선택과 용기를 채우는 중이다.
나는 제주를 다녀가는 지인들이며 주변 사람들을 꼬드겨 늘 재클린 미용실로 데려가곤 했다. 명분은 ‘제주도 재클린 미용실 투어.’ 단, 주의사항은 ‘당신의 머리를 내맡길 것.’ 낯선 공간에서 온전히 자신을 내맡겨 획득한 변신은 그야말로 모험이다. 그것은 여자들이 가슴속에 키우고 있는 어떤 설렘에 확! 불을 지피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요즘은 내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야. 제주도를 벗어나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나이가 들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가위 하나 들고 어디든’ 갈수 있으니까”
 
다년간 남의 머리를 만져온 그녀의 경험에 의하면 40대 여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단다. 헤어스타일에서 한번쯤 파격을 감행하기보다는 기존의 스타일을 유지하는데서 안정을 얻는다고.
 
동시대 40줄에 나란히 서있는 재클린은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난 달라!”라고 가위질을 해댄다. 귀 옆을 스쳐가는 가위 소리가 경쾌하다. 어쩌면 조만간 그리스나 스페인 어디쯤에서 가위질을 하며 깔깔마녀처럼 웃고 있을, 제주여자 재클린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야흐로 재클린의 가위는 모험을 감행하기 위해 단호한 선택과 떠나는 용기를 충전하는 중이다.
 
[인터뷰 작가 소개 - 박진창아 : 제주도 설문대 할망의 귀한 손녀. 서울에서 문화공연기획자로 활동하다가 제주로 귀향, 어른들을 위한 문화학교 '한라산학교' 기획자로 동네안의 복합문화공간 '달리도서관' 을 만들고 달리지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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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오 2010/11/09 [15:59] 수정 | 삭제
  • 집이 제주인데, 집에 내려가면 한 번 가보고 싶네요ㅎㅎ 검색해봤는데, 연동 한라중학교 근처에 있는 곳이 맞나요?
  • iamgreen 2010/11/06 [12:54] 수정 | 삭제
  • 제주도네요~~~ㅎㅎ 가보고 싶지만 제주도로 가 수가 없네요 ㅎㅎ...
    우리 나라에서는 흔하디 흔한 미용사라는 직업을 색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되었네요^^.
  • 오정 2010/10/29 [21:24] 수정 | 삭제
  • 짱아선배, 반가워요. 설문대 할망의 귀한 손녀라 얼굴 보기 참 힘든 양반...
    언젠가 얘기했던, 매 끼니마다 회가 나왔다던 선배네 집 밥상 한 번 받아보고 싶어요~~^^
    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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