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현실에 질문을 던지다

현대미술작가 윤주경 개인전, "I'll keep your smile"

이충열 | 기사입력 2010/11/04 [08:53]

대한민국의 현실에 질문을 던지다

현대미술작가 윤주경 개인전, "I'll keep your smile"

이충열 | 입력 : 2010/11/04 [08:53]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한 길을 능숙하게 달리는 버스에 흔들흔들 몸을 맡기다 보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색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버스를 내려 꼬불꼬불 골목길을 지나다보면   복잡한 인사동 거리의 ‘대안공간 풀’이 아니라, 아트 스페이스로 변신한 ‘풀Pool’을 만날 수 있다.
 
도시 한복판의 거대하고 화려한 상업 갤러리들과 차별성을 가지고자 했던 ‘대안공간 풀’이 아늑한 공간을 차리고 들어온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새 공간에는 물질적이고 상업적인 미술상품들과 차별화된 작업이 여전히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미술작가 윤주경의 개인전이다. 자유로 한복판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서 있던 작가가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다. 목적지는 보이지 않지만 방향성만은 분명한 이동. 그 이동에 관객을 초대하고 있었다.
 
소박한 화분들이 모여 있는 건물 입구의 느낌과 다르게 전시 공간은 매우 어둡고 차갑다. 시각이 어둠에 익숙해지기 전, 청각적 자극이 들어온다. 낮고 묵직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들. 그것이 이끄는 데로 고개를 돌리면 커다란 화면 안의 기이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 경례, 2010, 싱글채널비디오     © 윤주경;아트스페이스 풀
“받들어, 총!”을 한 빨간 제복의 군인들이 꽃잎이 날리는 도시 한복판의 거리를 행진해오고, 검정 썬글라스를 쓰고 커다란 파이프를 입에 문 이의 위세 당당한 얼굴이 비춰진다. 가슴에 반짝이는 별을 단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푸른 하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것들이 떠다닌다.(경례, 2010, 싱글채널 비디오)

 
영상은 명확한 하나의 형태나 안정적인 자세, 사실적인 색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탱크 위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군인의 모습은 분열되고 교란되고 빛이 바래어 있고, 행진하는 군인들은 흔들리며, 올려다본 장군들의 박수는 박자를 맞추듯 느릿하다. 평범한 서울 시민들이 빠르게 지나쳐 갈 그 거리의 시간은 늘어져있고, 모든 소리는 뭉개져있으며, 빛은 나뉘고 흔들린다.  일상적 공간에 침투한 전쟁의 기호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환호하던 ‘언론’의 카메라와 다르게, 윤주경은 그 기이함을 보여준다.
 
사라져갔던 ‘시가행진’이 되살아 와 시민들의 일상을 막고는 서울 중심가를 장갑차와 전차, 군화발로 점령했던 지난 ‘국군의 날’을 작가는 지켜보았다. 그리고 작가의 눈으로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상 후반부의 구겨지고 찢긴 태극기와 쓰레기로 가득 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이상한 몸짓으로 행진을 이끄는 지휘자에 반응하여 제자리걸음하는 군대의 모습과 2010년의 대한민국이 오버랩 된다면 나의 지나친 해석일까.

▲ 붉은 부처, 2010, 싱글채널 비디오     © 윤주경;아트스페이스 풀
웅성임과 나지막한 소음을 따라 뒤를 돌면 또 다른 행진을 만날 수 있다. (붉은 부처, 2010, 싱글채널 비디오) 앞의 시선이 행진을 탐색하고 관찰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카메라는 행진을 따라 행진해나간다. 역시 도시의 한복판. 붉은 옷을 입은 부처 형상의 연등을 따르는 카메라는 조금 더 흔들린다. ‘부처님 오신 날’ 제등행렬에 ‘촛불소녀’ 연등의 앞뒤에서 ‘부처’연등이 호위한다. 사람들에 의해 떠받들어진 붉은 부처를 중심에 둔 화면에는 어두운 하늘 아래 높은 빌딩들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고, 대기업의 광고판이 별처럼 반짝인다. 간혹 보이는 시민들의 손에 든 촛불은 그에 비해 너무나 작고 약하다. 하지만 작가는 끝까지 행렬을 따라 걷는다.


▲ 검은 산, 2010, 2채널 비디오     © 윤주경;아트스페이스 풀
커다란 화면에 많은 사람을 등장시킨 두 작업과는 달리, 홀로 걷는 위태함을 보여주는 작업도 있다. (검은 산, 2009-2010, 2채널 비디오) 두 개의 모니터를 나란히 붙여 검은 산을 우뚝 세웠다. 솟아오른 검은 산의 주위에는 푸른 나무와 숲이 펼쳐져있다. 가파른 검은 산 위를 걷는 시선은 흔들리고, 돌덩어리와 부딪치는 발소리는 거칠다. 자연이 내려다보이는 검은 산 위를 카메라는 이동하고 이동한다. 저 멀리 간혹 보이는 개발의 흔적을 제외하고는 검은 산과 푸른 자연 외에 별다른 시각정보는 없다. 더 많은 정보를 생략하며 더 많은 해석과 질문을 낳으려는 듯 작가는 걷고 또 걷기만 한다.

 
I'll keep your smile.
 
이 전시의 제목이다. 누구의 약속이나 다짐인지 알 수 없다. 누구의 미소를 지켜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2010년의 대한민국에서 누군가는 미소 짓고 있고 누군가는 그 미소를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기도 한다. 그 미소에 동참할 수 없는 혹은 동참하고 싶지 않은 나는 작업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답을 원하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저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무엇을 느낄 수 있느냐고. 내가 보고 있는 이 현실의 모습들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발언할 것이냐는 질문. 스스로 질문하기 어렵다면 혹은 두렵다면 그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시기를. 질문이 항상 정답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작업을 직접 만나면 좋을 것 같다.
 
*전시 정보*
-기간 : 2010년 11월 21일까지
-장소 : 아트스페이스 풀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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