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엄마, 기른 엄마 ②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6)

윤하 | 기사입력 2011/07/13 [00:45]

낳은 엄마, 기른 엄마 ②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6)

윤하 | 입력 : 2011/07/13 [00:45]
[연재 칼럼 소개]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열흘에 한 번씩 연재되는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낳은 엄마, 기른 엄마 ②
 
내가 딸의 새엄마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우리 부부의 이혼 판결이 나기 무섭게 그녀는 전남편과 아이, 그리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방을 싸가지고 왔더란 이야기를 시어머니로부터 들었을 때도 난 시큰둥해 했다. 더욱이 우리가 이혼할 거란 소문이 나자, 자기 때문에 이혼하는 거라며, 자기가 죽어야 한다고 울고불고 했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을 때도 난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항상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은 당사자들에게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동거를 시작한 그들은 몇 달 후 결혼식을 올렸다. 사람들은 이따금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난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쓰러진 시어머니를 10년 넘게 보살폈다는 것도,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그녀가 시어머니 때문에 피아노도 못치고, 노래도 부르지 못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남편과 밤늦도록 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전해 듣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답답한 소식들뿐이다.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난 ‘그녀가 내 불행한 삶을 가져갔구나!’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면서는 더더욱 그녀를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겪어야 했을 불행이라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이혼하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 그녀가 몇 년 전 나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옆에 있는 딸을 가리키며 “얘는 제 딸이에요! 전 이 집에 이 아이를 키우러 들어왔어요. 시어머님 때문에 몇 번이고 살기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이 아이 때문에 살았어요!”라고 말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한 번은 시어머니 때문에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시어머니도 전남편도 그녀에게 나가라고 소리치는데, 그녀는 딸을 꼭 껴안고 집을 나섰단다. 그녀는 ‘애는 놓고 가라’고 막아 세우는 전남편을 뿌리치면서 면도칼로 자기 손등을 그으며 “얘는 내 딸이다!”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어머니에게, 자기가 낳은 아이들보다 딸을 얼마나 더 배려하고 위하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아직 어린 딸은 새엄마의 이런 행동을 깊은 사랑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딸이 중 2때 출생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 새엄마를 친엄마로 알고 살았다니, 그녀가 딸을 얼마나 사랑으로 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새엄마와 이복형제들 속에서 자칫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딸이 사랑을 받으며 티없이 자란 건 아이의 복이자 내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딸에 대한 애정이 이상한 집착 같아 섬뜩하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딸에게 이토록 매달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가 아이와 떼어놓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딸이 다니는 대학을 속이면서까지 아이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니, 내가 그 감정을 알 턱이 없다. 그저 아이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모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쩜 ‘모성’이라는 건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집착인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새엄마의 입장이 어떤 건지 생각해보려 애쓰다 보니, 딸이 내게 만나고 싶지 않다는 편지를 보낸 것도, 특히 아빠보다도 새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강조하면서 새엄마를 배신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결국, 그녀는 내 인생의 불행만 가져가지 않았다. 그녀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도 가져갔다. 그래!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불행만 가져갔다면, 얼마나 불공평한가? 불행을 가져갔다면, 행복도 가져가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가?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딸이 나보다 그녀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끼는 것이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딸을 키우지 않은 사람으로서 아이와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딸과 내가 만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딸 앞에서 어줍지 않은 엄마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의 새엄마가 걱정하는 것처럼, 그녀가 다 키워놓은 아이를 데려갈 생각은 더더욱 없다.
 
어머니는 손녀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낳은 엄마도, 기른 엄마도 모두 엄마야! 넌 엄마가 둘이라고 생각해라.” 이 말처럼, 나는 다만 그녀도 나도 딸과 어떤 식으로든 애정을 나누며 살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아이를 기르지도 않은 엄마의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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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1/07/22 [22:56] 수정 | 삭제
  • 그분(글쓴님 따님의 새어머니겠지요) 글쓴님 전남편과 시모한테 나가란 소리 듣고 따님과 함께 나가려고 했을 때 손목 그어가면서 따님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던 것, 글쓴님은 왜 그렇게 자기 딸에 집착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보고 생각이 떠올랐어요.
    뭐랄까요, 그분이 그 상황에서 집을 나가면, 단순히 아내, 며느리 자리에서
  • 천상의소리 2011/07/19 [02:40] 수정 | 삭제
  • 딸을 만나러 가는 길 연재 글 모두 다 읽었네요. 진솔하게 쓰신 글이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네요.. 특히 딸아이와 관련된 부분은 마음이 좀 아프네요..
  • 독자 2011/07/18 [15:34] 수정 | 삭제
  • 마음아파하며 공감하며 잘 읽고 있습니다. 님의 글과 삶이 저의 일상에도 스며들어 힘을 줍니다. 아픔을 이겨내고 쓰는 글들... 고마워요.
  • 2011/07/14 [12:20] 수정 | 삭제
  •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모든 텍스트 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한국의 '엄마' 또는 '모성'에 대한, 당사자의 경험을 나누는 분석 글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만들거나 가슴 아프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모녀 관계에 대해서 각자의 경험에 기반하면서도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해볼 수 있게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글은 특히 많이 다가왔습니다. 엄마라는 특별한 위치가 아니더라도, 부부 관계를 포함한 가족 관계는 혈연으로 신비화되었을 뿐이지 가장 현실적인 이해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비를 걷고 보았을 때 개인이 숨 쉴 수 있고 자연스럽게 관계할 수도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경험 상으로는 가족 관계도 친구 같은 관계일 수 있을 때 행복한 것 같아요.
  • 엄마 2011/07/14 [11:17] 수정 | 삭제
  • 솔직히.. 연재되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도 자식이 없었다면 아마 쉽게 이혼을 결정했을테니까요.. 내 딸이 평생 짊어져야 할 상처를 생각하며 이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무던히 노력중입니다.. 제가 가보지 않은 길을 미리 본것 같아 오늘도 더욱더 굳건이 엄마로써.. 강해지리라 다짐합니다..
  • 백작 2011/07/14 [10:07] 수정 | 삭제
  • 위의 두 분, 그 입장이 되어 한번 더 생각하지 못했다면 그냥 입 다물고 계시죠.
    대한민국 남자는 너무 쿨해서 내 자식이냐 남의 자식이냐 따지고 자기 부모만 위하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만.
    키우지 않았더라도 자기 몸 속에 열 달이나 품어 낳았다면 충분히 엄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공간에 글을 쓰신다면 상처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한번 더 생각해 주십시오.
  • p 2011/07/13 [23:27] 수정 | 삭제
  • 딸에 대한 집착은 윤하님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낳아놓고 키우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습네요.
    가장 절실하게 필요할때 떠났으면 버린 셈치고 자신의 삶에서 지우시는게 더 나을듯 싶습니다.
    글의 행간행간을 읽어보면 딸이 새엄마의 집착때문에 원하지 않지만 수동적으로 길러준 정에 이끌려 따라가는듯이 표현하시네요.
    집착이든 고착이든 딸은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돌봐준다는 것과 지켜준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본능적으로 알죠.
    자의식 강하면서 냉정을 잃지 않고 이성적이며 많이 배운 친엄마와 감정적이면서 집착강하고 사랑밖에 모르는 새엄마의 차이는 얼기설기 짜놓은 철사줄보다 양털조각을 찾는 아기 원숭이의 실험과 같은 이치겠죠.
  • 방지웅 2011/07/13 [14:14] 수정 | 삭제
  • 여자는 남의 자식 못 키운다 !!! 왜냐면 여자는 자기 뱃속으로 열달 애를 키워 자기 배아파 애를 낳는 존재이다
    남자는 여자가 이쁘고 사랑스러우면 그 상대가 미혼모건 이혼녀간 상관없이 그 여자의 아이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아이니까 모두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감싸안아주지만, 여자는 근본적으로 자기 배아파 아이를 낳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와 남의 아이에 데한 보는 눈과 감정은 다를수밖에 없다
    그래서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말이 나온거고. 아무튼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남자는 쿨하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면 그 여자가 미혼모건 이혼녀건 상관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니까 모두 넓은 가슴으로 감싸안고 보듬어주지만 여자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직접 낳은 아이에 대한 본능적 애정과 집착이 존재하기 때문에 천성적으로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와 남의 아이를 대하는 감정과 눈이 다를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다
    어쩌랴 신이 이미 여성이란 존재의 천성과 성품과 본질과 인격을 그렇게 태초부터 창조한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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