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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행동’)과 공동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설장애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발바닥행동은 탈시설, 즉 장애인생활시설 안에 있는 장애인들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권단체입니다. 장애당사자들의 구술 기록과 수기, 그리고 장애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글을 통해 ‘탈시설’의 의미와 현안을 짚어봅니다. 첫 기사는 탈시설한 김남옥씨의 구술을 토대로, 발바닥행동 활동가 효정씨가 기록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사람의 생김과 능력에 우열을 가리게 되면서, 몸의 다름에 ‘장애’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가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밀려나고, 다수의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기준으로 세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지요. 세상은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듯 보이지만, 결국 반쪽 짜리 모습입니다. ‘다름’을 이유로 저만치 밀려나야 했던 사람들이 이 땅에 발붙이고 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리저리 가위질 된 세상에 설 자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밀려난 이들에게는 ‘시설’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제공됩니다. 우리는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믿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사람이 사람 위에 있어서는 안 되고, 누구도 타인을 구속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강요 받아온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 장애인들이 그러합니다. 시설 밖의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이 낯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김남옥씨의 이야기 ‘세상에서 고립되다’
한 지인의 도움으로, 혼자서 생활할만한 조그마한 방 한 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와는 같이 살 형편이 안됐습니다. 사는 게 너무 막막해서 다시 재활원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재활원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갈 곳을 잃은 남옥에게, 같이 나왔던 남자는 더 좋은 데로 보내준다며 그녀를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그곳이 경기도 화성에 있는 ‘OO의 집’이었습니다. 이렇게 들어간 화성의 시설에서 20년을 살았습니다. ‘OO의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곳의 방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장판도 깔려있지 않았지요. 조그만 방에서 서너 명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방 하나, 부엌 하나에 교회 건물이 전부였고요. 하루 종일 했던 일은 먹고, 자고,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을 살다가 건물을 새로 지어 옮기게 되었고 이름도 ‘OO시설’로 바뀌었습니다. 새 건물로 이사를 하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시설에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식사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도, 한 방에서 십수 명이 함께 생활하는 것도, 먹고 자는 일을 빼면 종일 예배만 드리는 것도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지만,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갑갑함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시설에 살면서 남옥씨에겐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녀는 시설에 살면서 세 번의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같이 살던 장애인과 둘이서 나왔지만, 늘 얼마 못 가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매번 잡혀 들어갈 때마다 하늘은 다시 캄캄해 졌습니다. 공포에 심장은 오므라들고, 꼭 지옥 문으로 끌려들어가는 기분이었지요. 그렇게 다시 시설로 들어가면, 삼일은 금식과 함께 기도만 해야 했고, 플라스틱 회초리로 온 몸을 맞았습니다. 그래도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시설은 아주 잠깐 동안 그녀에게 회유와 친절을 베풀었지요. 그 암울하고 기약 없던 시설생활은, 2010년 미신고시설조사(보건복지부와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 ‘사회복지시설생활인 인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와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등이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그동안 신고하지 않고 운영되어 온 전국의 장애인생활시설 22개소를 대상으로 한 민간합동 인권실태 조사를 진행했다)로 ‘OO시설’이 폐쇄되면서 20여 년 만에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그녀의 독백 “외출은 ‘숨구멍’이었어..”
외출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는 여전히 울컥해. 화성의 미신고시설에 살 때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거든. 내 꿈은 시설에서 나와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엔 잡혀가고. 그렇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니까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마저 없어졌어. 화성 시설이 폐쇄되고 다른 시설에 잠깐 있을 때, 20년 만에 처음 혼자서 외출이라는 것을 해봤어. 그것은 설렘이었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내가 돈을 가지고 무언가를 살 수 있다는 거, 시설이 아닌 다른 공간에 갈 수 있다는 사실. 그런데 있잖아. 나한테 외출이 소중했던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어. 아무도 나와 이야기를 나눠주지 않았거든. 미신고시설에 살 때도 봉사자들은 많이 왔지만, 그 사람들과 만날 때 나의 느낌은 기계 같았어. 그런 거 있잖아. 때 되면 기계에 기름칠 해주는 것처럼, 때 되면 내 몸을 옮겨서 씻기고, 밥 먹이고. 시설에서 너무 눈치를 많이 줘서 단 한 마디의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어. 그냥 해주는 대로 몸을 맡길 뿐이었지. 시설을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거 알아? 시설은 바뀌었지만, 시설의 직원들은 다 똑같아. 시설을 옮기면서 처음으로 핸드폰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고 직원들이 얼마나 못마땅해 했는지 몰라. 난 그걸로 너희들하고 연락하면서 버틸 수 있었는데. 마치 내가 밖에 나가면 죽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장애인은 장애인들끼리 놀아야 한다면서 나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어. 왜 내가 지난번에 시설에서 나와 서울에서 하룻밤 자고 들어갈 때 선물 사갔잖아. 그거 물리치료사에게 주려고 산 선물이었어. 무척 비쌌지만, 나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친절한 사람이었거든. 하여튼 외출은 너무도 외로운 나에게 숨구멍 같은 거였어. 그리고 시설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날 꺼내주는 유일한 위로였지.> 자립, 실감나지 않는 자유 “참 좋다”
지난 7월 1일 그녀는 평생의 시설생활을 접고 자립을 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자유를 얻게 된 것이지요. 그녀에게 자립에 대한 소감을 물었습니다. 너무 얼떨떨해서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고 말합니다. 그녀 나이 48세, 시설 안에서의 삶이 전부인 그녀에겐 해본 것보다 해보지 않은 것, 먹어본 것 보다 먹어보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그녀에게 최고의 먹을 거리는 구운 고기이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녀가 보금자리를 튼 종로의 대학로에서 저녁을 먹자는 말에 그녀는 또 “고기”를 외칩니다. 다른 먹을 거리를 조금 더 찾아보자고 꼬드겨 식당을 찾다가 산채비빔밥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나물도 몇 가지 보이지 않는 산채비빔밥이 너무 맛있다고, 처음 보는 그 맛에 연신 감탄을 합니다. 굽이굽이 투박한 길을 건너고 넘어서, (기증품을 손질해 판매하는) 한 옷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녀의 자유를 축하하며 오천 원짜리 꽃무늬 티셔츠를 선물했습니다. 그녀는 이천 원짜리 민소매 잠옷을 나에게 선물해줍니다. 그리고 밥값만큼 비싼, 분위기 좋은 커피 집으로 향했습니다. 우리의 수다는 무척 길었습니다. 시설에서의 이야기, 모자란 활동보조시간, 이루지 못한 꿈과 연애이야기….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가득한 그녀입니다. 그 설렘 앞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녀보다 걱정이 앞서는 사람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저입니다. 녹록치 않은 자립생활이기에 그녀의 자유가 늘 핑크빛은 아닐 테니까요. 그런 내게 그녀는 말합니다. “참 좋다! 내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고,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경험한 하찮은 이야기를 소중히 적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녀를 향한 기우가 고개를 꺾습니다. 그녀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삶이 팍팍한 지금, 새삼 찾아온 자유 앞에서 그녀만 오롯이 행복해 질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곧 남옥언니의 집에서 파전을 부쳐 먹기로 했습니다. 막걸리에 빨대를 꽂아서 술도 한잔 하고, 노닥노닥 빗소리 들으며 수다를 떨 겁니다. 48년을 기다린 그녀의 외출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48년을 꿈꿔온 그녀의 자유에 우리 모두 축하와 지지를 보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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