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이라 불리는 여자들에 대하여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둘째 이야기②

자야 | 기사입력 2011/08/10 [08:47]

‘댁’이라 불리는 여자들에 대하여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둘째 이야기②

자야 | 입력 : 2011/08/10 [08:47]
도배를 하다 말고 새댁이 되고 신랑이 된 나와 K는 대충 짐이 정리되는 대로 마을 분들을 모시고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잔금을 치르기 위해 들른 부동산에서 “시골에 이사 오면 당연히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기도 했고, 아무래도 시골에서는 그러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였다.
 
부동산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신고식 치르는 절차까지 일러주었다. 이장을 찾아가 상의를 하면 알아서 날짜며 시간이며 다 정해줄 거라는 얘기였다. 우리 동네 이장님은 그에 덧붙여 몇 차례에 걸친 마을방송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까지 해주셨다. 시골에서는 마을방송 전후로 그토록 요란한 뽕짝을 튼다는 것을, 나도 K도 그때 처음 알았다.
 
신고식 치르던 날의 한숨
 
마침내 신고식 치르는 날이 되어 나와 K는 예정된 시각보다 20여 분 정도 일찍 회관에 나갔다. 뜨끈하게 김 오르는 떡을 접시에 담고 맥주와 막걸리를 꺼내 상을 차리고 있자니 낯선 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개는 할머니 할아버지였고, 드문드문 60대로 보이는 ‘젊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도시에서 그렇게 자주 이사를 다녔어도 주인집 아주머니 외에는 얼굴 트고 지내는 사람 하나 없이 지냈던 나로서는, 30여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떡 접시와 막걸리 잔을 돌리며 음전한 새댁 노릇을 해야 하는 자리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성격상 반죽이 좋은 편이 못 되고 아무에게나 다가가 쉽게 말을 붙이지도 못하는 타입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신고식이 불편함을 넘어서 탐탁지 않게 느껴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음식을 담아서 나르는 일은 나와 몇몇 여자 분들이 하고 있고, K는 잘 차려진 안쪽 테이블에 앉아 남자 어르신들과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어찌하나 보려고 내가 몇 번인가 K를 부르며 접시 좀 나르라는 둥 설거지 좀 하라는 둥 ‘오더’를 내렸으나, 그때마다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려는 K를 다시 주저앉히는 건 동네 분들이었다. 심지어 그분들은 한 목소리로 “신랑 좀 먹게 놔두라”며 나를 타박하기까지 했다.
 
또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마을 분들이 K에게 묻는 질문과 내게 묻는 질문이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K에게는 무슨 일을 하는지, 왜 시골에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물어보는 분들이 왜 내게 궁금해 하는 것은 언제 아기를 낳을 것인가, 고향은 어디고 시댁은 어디인가 따위뿐인지? 더군다나 그분들은 K에겐 이름이 뭐냐, 본관이 어디냐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내게는 이름 석 자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이사 전부터 내가 새댁이 될 운명임을 예감했듯이 이런 상황에 직면하리라는 것 또한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지만, 서운하고 분한 마음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그분들도 신고식 내내 뿌루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는 나를 참 이상하고 되바라진 새댁이라 여겼을 게 분명하다.
 
댁들에겐 특별한 무엇이 있다
 
▲ 마을 여자들은 특별히 마음 써준다는 기색도 없이 그저 우리 집 대문 앞에 배추나 무 모종을 몇 포기 놓고 가거나, 담장 너머로 갓 삶은 옥수수와 직접 쑨 묵을 건네기 일쑤다. ©자야
훗날 나는 마을의 다른 행사나 반상회 같은 모임에 참가하면서 내가 신고식 치르던 날 겪은 경험이 특별한 것이 아님을, 그건 이름 대신 **댁이라 불리는 마을의 모든 여자에게 적용되는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시골집이 흔히 그렇듯 우리 동네 마을회관도 출입문과 통해 있는 가운데 거실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주방이, 왼쪽에는 방이 있는 일자형 구조다. 그런데 마을 어른들이 모일 때면 남자들은(부엌일을 하기 힘든 고참 할머니들 포함) 전부 부엌과 거리가 먼 안쪽 방에 앉는 반면, 여자들은 거실에 앉아 수시로 부엌을 들락거리며 잡다한 일을 한다. 음식을 차릴 때도 안쪽 방에는 정식으로 상을 펴지만 거실에는 대충 바닥에 그릇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상을 펴려 하면 오히려 아주머니들이 한 말씀 하신다. “쓰잘머리 읍시 상은 무에 쓰게? 바닥에서 먹으면 되지.”
 
그냥 넘어가자니 뭔가 찝찝하고, 그렇다고 따박따박 따져 물을 수도 없고. 또 따진다고 한들 한평생 그리 살아오신 게 바뀔 것도 아니고. 결국 나는 ‘속 편하려면 안 보는 게 제일’이라는 지극히 소심하고도 비겁한 생각에 근거하여 방침을 세웠다. 대부분의 마을 모임이라는 게 가구마다 한 사람씩만 참여하면 되므로, 우리 집에서는 K가 나가는 것으로 하고, 그의 사정이 안 될 때만 내가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일단 참여했으면 그 자리에서는 불평 없이 즐겁게, 내 할 일만 하다 오자고.
 
올 봄 초, 마을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농천제에 참가하는 내 마음이 꼭 그랬다. K가 아침에 일을 나가야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농천제는 나름 중요하고 큰 행사인 데다가 흥미로운 면이 있었기에 나는 기꺼이 아침 일찍부터 마을회관에 나가 팔 걷어 부치고 일을 했다. 그래 봤자 고기 삶고 나물 무치고 전 부치는 등의 중요한 일은 이장님 부인을 비롯한 아주머니 몇 분이 전날 다 해놓은 상태여서, 내가 할 일이라곤 상 차리고 수저 놓고 설거지 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날도 ‘불평 없이 즐겁게 하자’는 내 다짐에는 흠이 갔다. 핑계를 대자면 여자는 제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마을의 규율 때문이었다. 그 황당한 규율로 인해 젊거나 늙은 여남은 명의 ‘댁’들은 온갖 음식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좁은 부엌에서 십 몇 분간 서 있어야 했고, 제사가 끝난 후 문이 열리고 나서도 한참을 분주하게 움직인 후에야 겨우 미끈거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식어가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에겐 물론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으나, 아주머니들은 마치 잔치라도 벌이듯 시종일관 신나고 흥겨운 분위기였다. 그이들은 양손을 부지런히 놀리는 가운데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고, 또 왕성한 식욕을 드러내며 바닥에 놓인 접시를 차례로 비워갔다. 열심히 일했으니 부녀자들에게 술 한 잔 돌리라고 이장님에게 큰소리를 치기도 하고 말이다.
 
한쪽 구석에 앉아 뚱한 표정으로 기름 묻은 손가락만 빨고 있던 내게, 그런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턴가 무척 당당하고 거침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모순된 현실의 동조자이자 피해자라고 여겼던 아주머니들보다, 오히려 그에 불만을 갖고 투덜대는 나 자신이 현실에 더 위축되고 짓눌린 것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이런 느낌은, 논리적으로 혹은 이성의 힘을 빌려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현실 인식과 관점의 옳고 그름으로 치환되지 않는, 그보다 더 크고 깊은 삶에 관한 어떤 것이라고만 표현할 수 있을 뿐.
 
이름 없는 그녀들의 연대감
 
▲동네 ‘댁’들이 갖는 존재감이 내게는 엄청나게 크고 깊다 .   © 자야
먼 옛날 새댁이었다가 지금은 하동댁이나 진주댁으로, 혹은 부산댁이나 마산댁으로 불리는 사람들. 그이들은 특별히 마음 써준다는 기색도 없이 그저 우리 집 대문 앞에 배추나 무 모종을 몇 포기 놓고 가거나, 담장 너머로 갓 삶은 옥수수와 직접 쑨 묵을 건네기 일쑤다. 오래된 방구들이 폭삭 무너져 내려 나와 K가 어찌할 바 모르고 동동거리기라도 하면, 당신들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 손을 보게끔 힘도 써준다. 어디 그뿐인가. 잔소리 하는 능력도 못지않아 틈만 나면 싸게 풀을 매 줘라, 마늘은 좀 배게 심어라, 밭에 비닐을 씌워라 어째라 해가며 이 무지한 새댁을 볶아대지 않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그분들에게서 애잔하게 전해져 오는 어떤 기운을 느끼곤 이렇게 묻게 된다. 서로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그렇다고 무슨 이념이나 주의로 소통하는 것도 아닌, 하지만 생활 속에서 드러나고 확인되는 이 끈적한 연대감과 일체감은 대체 무어냐고.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이들이야말로 생판 ‘도시것’인 내가 귀촌해서 살아갈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이라는 것, 그런 면에서 우리 동네 ‘댁’들이 갖는 존재감이란 비록 우리 사회에서는, 아니 이 작은 마을에서조차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내게는 엄청나게 크고 깊다는 것이다.
 
참고로 전하면, 언젠가 나는 몇몇 아주머니에게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무척 수줍어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똑똑하게 발음하던 그분들의 표정이, 깊이 팬 주름살 사이로 설핏 웃음이 번져가던 홍조 띤 그 얼굴이 잊히지 않아, 나는 가끔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 드린다. 조** 아주머니, 김** 아주머니, 라고.
 
물론 그분들은 여전히 내 이름을 모르고 묻지도 않지만, 이제는 서운함도 분함도 흐릿해진 지 오래다. 그건 아마도, 이름 없이 건재할 수 있는 댁들의 존재감과 연대감에 내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취해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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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라 2011/08/22 [11:49] 수정 | 삭제
  • 지나치게 여성주의적인 관점으로만 보려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모든 것이 지나치게 남성중심으로 되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네요.
    교만보다 더 나쁜 것이 독선이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느낌과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인정할 수 없다니 안타깝군요.
  • 간다 2011/08/19 [01:10] 수정 | 삭제
  • 유이님 글...
    이름으로 불려진 바 없는 시골아낙의 처지...?
    남자들도 누구누구씨 라고 불리지 않는것은 마찬가지 아닌가요?
    겸상도 하지 않는...요즘도 그런곳이 있나요? 옛날 얘기겠죠.
    아니면 아주 특수한 부류거나..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일 뿐이겠죠.
    명절증후군...명절음식을 여성들이 만드는 관습...이건 정말 잘못됐다고 봐요.
    명절때는 명절음식을 전문으로 만드는 업체가 있어서 이들에게 간단히 구매하는걸로 끝내고 명절에 모인 가족은 노동없이 그냥 가족파티만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야 하겠죠.
    그래야 진짜 즐거운 명절..즐거운 가족모임이 되겠죠.
  • 유이 2011/08/18 [19:48] 수정 | 삭제
  • 윗 글을 보니, 이름으로 불려진 바 없는 시골아낙의 처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군요. 자신이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심각하지 않고 별일도 아닌데 왜 그냥 못 넘어가냐고 하는 것이지요.
    겸상도 하지 않는 시골의 남존여비의 문화에 대해, 아쉽지 않은 쪽에서야 별 문제도 아닌 듯 보이겠지요. 어쩌면 그래서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여성이 겪는 문제가 오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겪는 일이 되었을 때는 다르답니다.
    명절 때만 봐도 그렇죠. 그것이 뭐 대수냐고 어떤 사람들은 말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명절증후군까지 집단적으로 앓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큰 문제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
  • 간다 2011/08/18 [19:35] 수정 | 삭제
  • 남자에게는 본관도 꼬치꼬치 물으며 관심을 보였지만 여자인 나에겐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
    남자에겐 앉아서 먹게 했지만 나에겐 일을 하게했다.
    무슨때가 되면 남자들은 당연한듯 앉아서 상을 받았지만 여자들은 온갖 치닥거리를 다하고 상도 없이 바닥에다 음식을 놓고 먹었다.
    그러면서도 이해 할순 없지만 여성들 끼리의 어떤 연대감을 느낄수 있었다.
    여성들은 이름도 없이 그저 댁으로 불리워지고 있었고 이름을 불러주면 기뻐하는 모습을 볼수있었다.
    이정도가 대충 윗글의 주된 내용이리라.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관점을 여럿일수 있지만 지나치게 여성학적 관점에서만 본다든지
    남녀평등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윗글의 작가처럼 엉뚱하고 황당한 판단을 하게된다.
    뭔 소리냐….
    기와가 깨져서 비가 줄줄샌다 치자.
    이경우에 남녀평등 개념을 끌고와 누가 지붕에 올라가 고칠것인지 가위바위보로 공평하게 결정할까? 아니면 한시간은 남자가 올라가서 고치고 나머지 한시간은 여자가 올라가서 고칠까?
    장작을 패는 일을 남녀가 공평하게 나누어서 할까?
    곡괭이질을 나누어서 할까?
    트랙터 모는 일을 나누어서 할까?
    기계장비를 관리 보수하는 일을 나누어서 할까?
    이런경우에 남자는 평등개념을 아예 생각조차 않코 당연히 남자의 일로 알고 불만없이 행한다.
    남자들은 왜 그럴까?
    평등개념이 없어서? 마초기질 때문에 힘자랑 하려고? 그도저도 아니면 여성보다 걍 미련해서?
    아니다.
    남자들은 일의 효율성을 알고 그 효율성을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더많은 지식,더많은 요령, 더많은 힘,더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당면한 일을 하는것이 훨씬
    쉽고,빠르며, 안전하게 까지 일을 한다는걸 잘 알기 때문에 그일을 맡는것이다.
    이건 남녀간에만 나타는 현상이 아니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거의 항상 모든일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그일을 맡는것을 당연시 한다.
    트랙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트랙터 일을 맡고
    기와일을 가장 잘아는 사람이 위험한 지붕에 올라간다.
    남자들은 위험을 몰라서? 미련해서? 아니다 그가 해야 가장 간단히 ,쉽게, 깔끔하게 할수있다는걸 자타가 알고있기 때문이다. 효율성 때문이란 말이다.
    음식에 관한 일에 보다 많은 지식을 축척하고 있는 여성이 그 일을 맡는걸 남성들은 당연시 한다. 왜? 여성이 훨씬 더 잘하고 깔끔하게 할줄 알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부장적 권위주의 때문이 아니라 효율성 때문이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비춰지는것은 전문성을 가진자가 비전문가에게, 일을 아주 잘하는 자가 그렇지 못한자에게 보이는 약간 과장된 객기어린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본관을 꼬치꼬치 묻는 문제…
    아마도 반대로 여성에세 이름과 본관을 꼬치꼬치 물었다면 … 왜 여성에게만 그러냐고 항변하겠지? ㅋㅋ
    꼬치꼬치 물음을 당하는 남성이 훨씬 더 괴롭다. 이건 여성에게 이렇게 물으면 실례가 되기 때문이지 성평등과는 무관하다.
    실제로 남자들은 남성 대신에 여성을 앉혀놓고 꼬치꼬치 물어댈수 있다면 그걸 훨씬 선호하고 즐거워 할것이다.
    바닥에 음식을 놓고 먹는것?
    그건 대우 받지않는,못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피크닉가서 잔디밭에서 상펴놓고 먹는것이 좋을까? 그냥 잔디 놓고 먹는것이 좋을까?
    바닥에 놓고 먹자했던 여성분은 자기집에서도 그럴까? 천만에 아닐꺼다.
    그럼뭐냐?
    그런날은 그런 분위기에서 먹는것도 나쁘지않고 상차리고 치우는 번거로움을 줄이는 효율성 때문 인 것이지 결코 천대 받는것이 몸에 배서가 아니다.
    댁으로 불리우는 문제?
    이름을 따박따박 부르는것이 예의 없어 보일수 있기 때문이지 인권무시가 아니다.
    남녀 공히 …누구 아부지,누구 엄마로 부르지 누구 누구씨로 부르지 않는다.
    댁이라 불린다고 남성에 종속된 것 처럼 느껴지나?
    오버다.
    피크닉가서 잔디밭에서 상펴놓고 먹는것이 좋을까? 그냥 잔디 놓고 먹는것이 좋을까?
    바닥에 놓고 먹자했던 여성분은 자기집에서도 그럴까? 천만에 아닐꺼다.
    그럼뭐냐?
    그런날은 그런 분위기에서 먹는것도 나쁘지않고 상차리고 치우는 번거로움을 줄이는 효율성 때문 인 것이지 결코 천대 받는것이 몸에 배서가 아니다.
    댁으로 불리우는 문제?
    이름을 따박따박 부르는것이 예의 없어 보일수 있기 때문이지 인권무시가 아니다.
    남녀 공히 …누구 아부지,누구 엄마로 부르지 누구 누구씨로 부르지 않는다.
    댁이라 불린다고 남성에 종속된 것 처럼 느껴지나?
    오버다.
  • 435456 2011/08/18 [02:03] 수정 | 삭제
  • 시골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연대감이란
    표면적으론 농사라는 일의 동업자로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나오는것으로 보이지만
    내면적으론 아마도 시골이라는 인구밀도가 희박한곳에서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외로움을 덜어주는것에 대한 본능적 감지능력 때문에 연대감이 나오는것이 아닐까?
    본인들도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 참꽃 2011/08/14 [14:27] 수정 | 삭제
  • 완전 재밌습니다.. 귀촌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 자강 2011/08/11 [21:36]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동네댁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그 분들과의 연대감도
    아릅답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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