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쥐

낭미 | 기사입력 2011/12/10 [00:39]

[단편소설] 쥐

낭미 | 입력 : 2011/12/10 [00:39]
  ©일러스트-오승원
모든 것은 쥐 때문이다. 내 이놈의 쥐를 잡고야 말겠다. 은경은 웅크리고 앞을 쏘아보았다. 주위는 조용했고 싱크대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에 걸레를 움켜쥐고 기척이 들릴세라 조심스레 고개를 두리번거리건만 누런 형광등 아래에는 어물거리는 얼룩 하나 없었다. 그러나 은경은 의심한다. 한쪽을 쏘아보는 사이 뒤쪽에서 쥐가 자신을 비웃듯 화닥닥하고 가로질러갈 것 같아 갑자기 홱 목을 돌리는가 하면 기세등등한 눈동자를 때로 번득이는 것이었다.


처음 쥐를 보았을 때의 충격이 오싹하니 되살아났다. 어제 저녁, 설거지를 하고 흐트러진 방들을 치우고 엎드려 바닥을 닦고 나서 하루를 마무리했다는 개운함을 느끼며 식탁 의자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려 할 때 쥐는 나타났다.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난데없이 날아들었다. 뭔가 꿈틀거린다 싶은 형상이 착시인 양 눈앞에 어른대다가 쥐는 하늘에서 뛰어내린 것처럼 싱크대 위께에서 몸통을 드러낸 채 사선을 그리며 바닥에 뚝 떨어진 것이다. 난데없는 침입에 은경은 얼어붙었다. 천정의 쥐가 새어나온 건지, 집을 닦고 쓰는 집주인의 정갈한 노력을 비웃는 듯 뻔뻔하고 무례하게 쥐는 하늘에서 침입해 왔다. 천정에 구멍이 난 게지, 하고 의아한 생각을 한 것과 뛰어가 베란다 창문을 닫아버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건 베란다 바닥에 떨어졌을 쥐가 거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치였다. 문을 닫고 나서 은경은 싱크대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천정에는 아무런 틈이 나 있지 않았고 싱크대 위쪽에서 벌어진 흔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쥐는 베란다의 배수구를 타고 올라온 것일까? 설명이 필요했다. 눈에 들어온 대로 쥐가 허물을 벗듯이 꿈틀꿈틀하더니 천장을 뚫고 뛰어내려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은경은 불투명 유리창으로 가려진 베란다 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잘못 본 걸까? 베란다에는 아침에 한 빨래가 옷걸이에 걸려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빨래가 흔들리는 윤곽이 거뭇하게 보인다. 열어둔 베란다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일까. 그럴지도 몰라. 그러나 무언가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 구겨졌다 펴지는 검은 바짓단만 혼자 저렇게 흔들리는 것은 이상하다. 갑자기 회색 쥐가 바짓단에서 힘차게 뛰어내리는 실루엣이 보인다. 살아 있는 길쭉한 돌멩이처럼 쥐는 툭 하고 떨어졌다. 얼마나 잘 기어 올라가는지 빨래는 다시 불안하게 흔들리고 쥐는 또 뛰어내렸다. 그네를 타고 노는 것처럼 쥐는 거듭 올라가고 뛰어내렸다. 한 쥐가 저렇게 잽싸게 오르내릴 수 있을까? 쥐가 여러 마리가 있는 게 아닐까? 은경의 눈에는 바짓단 속에서 쥐가 줄지어 튀어나와 베란다 바닥에 쥐떼가 우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쥐는 꼬리를 치키고 빨래를 걸어둔 봉 위를 사뿐사뿐 걸어 다녔다. 쥐가 있다는 게 확실해지자 베란다 문만 열면 쥐가 안으로 튀어 들어올 것 같은 공포가 더 극심해졌다. 쥐는 이제 나갈 길을 찾는지 뿌연 유리에 얼굴을 대고 갉아대었다. 쥐의 발갛고 긴 주둥이와 하얀 입, 가느다랗고 붉은 발가락들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은경은 진저리를 쳤다.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면 수가 날 것이다.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쥐를 잡을 수 없으니 남편에게 잡아보라고 말할 참이었다.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말하리라. 쥐의 출현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얼마나 갑작스러웠는지, 쥐가 남편의 바짓단에서 얼마나 신나게 뛰어놀았는지, 젖빛 유리에 주둥이를 비벼대며 흉측한 몰골을 어떻게 드러냈는지 시시콜콜 늘어놓으리라.  시계를 쳐다보았다. 이제 곧 저 문을 열고 남편이 들어오리라. 갑작스레 나타난 공동의 적에 대해 남편도 어쩌면 자신과 의기투합해서 맹렬히 욕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것이 불과 하루 전날의 상황이었다. 은경은 지금 억울하다. 지금 그녀는 걸레를 움켜쥐고 메마른 눈동자를 번쩍이며 쥐의 자취를 좇고 있다. 문은 닫혀 있다. 마지막으로 쾅 하고 닫히던 현관문 소리가 귀에 남아 있다. 은경의 귓전에서 문은 몇 번이고 쾅쾅쾅 소리를 내며 거듭 닫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눈앞에는 깨어진 접시가 있다.
“이게 웬일이야?”
눈앞에 버젓이 펼쳐진 쑥대밭 풍경을 보고 은경은 남의 일처럼 중얼거린다. 여섯 살 난 딸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도 귓가에 남아 있다.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번갈아 귀에 울려온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소리 내어 말해보지만 사위는 조용할 뿐이다. 쾅! 소리가 정수리를 단칼에 내리치어 두 쪽 내듯 뇌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나 혼자 남았네.”
빈집에서 은경은 웅얼거린다.

달력을 본다. 오늘은 빨간 날, 토요일이다. 보통 때 남편은 이 시간에 종일 자고 있어야 정상이다. 방에 잠든 남편이 없다는 것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어젯밤, 퇴근해 돌아온 남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집게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더니 ‘쥐가 없다’고, ‘들어온 구멍으로 다시 빠져나간 것 같다’고 맥 빠진 소리를 했다. 그 성가신 표정 앞에서 은경은 그만 쥐가 얼마나 설쳤는지 따위 소리는 삼켜버렸다. 당신 바짓자락을 쥐가 잡고 늘어졌다는 소리를 하면 어쩐지 그 바지를 낚아채어 버릴 기세가 남편에게서 느껴졌다. 오래 산 부부만이 알 수 있는 전조,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 것이었다. 남편의 찌푸린 눈썹, 힘이 들어간 눈, 퉁명스런 말마디, 이런 것이 더 건드리면 안 된다는 판단을 재빨리 내리게 했다. 이럴 때 쥐가 싱크대 위에서 떨어졌다는 소리를 했다간 청소도 제대로 안하고 집에서 뭐했냐는 생트집을 잡힐지 몰랐다. 쥐의 입이 닿은 창문 얘기가 나오면 평소에도 유리가 얼마나 지저분하고 기름때 먼지가 끼었는지 잔소리가 불똥처럼 나올지 몰랐다. 은경은 수다를 떨고 싶은 욕구를 눌렀다. 만사 의욕 잃은 남편의 게슴츠레한 눈과 헤벌린 입을 보고, 매를 벌지 말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건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남편에 대한 배려이자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려고 길든 방어행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은경은 곰곰이 생각한다. 자신의 모든 행동은 최선이었다고 다시금 확인한다. 깨어진 접시 앞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했던 은경은 의문에 사로잡힌다. 설명이 필요했다. 어제 저녁 세제를 듬뿍 풀어 신나게 닦던 사기 접시였다. 김치찌개도 그랬다. 주말 상에 올리려고 어제 시장에 가서 비계 두둑이 붙은 돼지고기를 사다가 묵은 김치를 넣고 푹푹 끓인 것이었다. 하지만 입에 들어가지 못한 살점은 사방에 흩어지고 벌건 김치 속살도 씁쓸하게 벌어져 있다. 이것도 설명이 필요하다. 충격보다는 이유를 알 수 없고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없어서 은경은 난감하다. 고개를 들면 수도꼭지에 걸쳐져 있는 파전이 보인다. 접시가 깨어지면서 파전은 날아가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인 그림에 나오는 나뭇가지에 걸 쳐진 시계처럼 싱크대 수도꼭지에 맥없이 걸렸다. 다리가 부서진 상은 누런 나무 살을 보이며 두 쪽으로 깨어져 나뒹군 채다. 그러니까 요컨대 은경은 깨어진 접시와 엎어진 밥그릇, 벌겋게 퍼질러진 국물과 흩어진 김치 쪽들, 반짝이는 유리 파편들 앞에 앉아 있다.

이유는 당신 때문이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 말을 은경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 때문이야?” 되물었을 때 그 말은 분노 담긴 따짐이 아니라 백치같이 순순한 물음이었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얼 안 해야 남편이 화가 나지 않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질문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겠다는 겸손한 학생의 질문과 같았다. 오늘, 김치찌개에서 김이 오르는 질서정연한 상 앞에서 남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화가 났어?”
맨 처음 은경은 남편에게 물었다. 그 말투가 어땠는지 지금 은경은 되짚어본다. 남편에게 아무 말이나 편하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만, 약간의 비아냥거림, 그리고 궁금함이 그 안에 있었다. 그렇다고 그 말이 그렇게 기분에 거슬렸을까? 지나치듯 가볍게 한 말이었고 동티나지 않게 딴에는 비굴한 웃음과 함께 던진 말이었다. 딸애 서연은 파전이 있다고 혀를 날름거리며 좋아하고 은경은 딸에게 수저를 챙겨주던 참이었다. 자기 기분을 대놓고 묻는 소리가 남편의 비위를 거슬렀나 보다. 남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왜 가만있는 사람을 건드려!”
목에 핏대를 세워 악을 쓰는 소리였다. 평온한 식사시간, 앞뒤 없이 불거진 그 분노에 은경은 되레 어리둥절했다. 무엇이 언짢다는 소릴까? 먼저 서연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서연이 울면서 외치는 말이다.
“그만해, 큰소리치지 마!”
우는 아이를 힐끔거리며 남편에게 말하는 은경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진다.
“나는 당신이 왜 화가 났냐고 물은 것뿐이잖아.”
“지랄한다. 어디다 대고 큰소리야!”
장승같이 일어나 우뚝 선 남편. 앉아서 올려다본 남편은 키가 크다. 그 높은 곳에 있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남자한테 여자가 큰소리를 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차 없을 기세다. 목은 곧추선 큰 뱀처럼 힘이 들어가 있다. 잡아먹으려 하는 것처럼. 은경은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개구리 같았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보자 하니, 가만히 있으면 은경이 정말 뭔가 잘못한 것처럼 몰아갈 기세다. 아직 건강한 은경은 자기를 방어한다. 서연은 계속 큰소리로 그만하라며 울고 있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말다 한다.
“집에서 처먹고 노는 년이, 닥쳐!”
부인의 대꾸를 무지르는 남편의 막말에 은경은 아연해진다.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가끔 그랬듯 무슨 배알이 뒤틀려서 아내보고 돈을 못 번다고 갑자기 공격하는 소리다. 팔자 좋은 여편네라고 깎아내리는 소리다. 억울하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사이 “그만해! 그만해!” 아이가 큰소리로 엉엉 운다.


난데없이 남편이 상에 대고 발길질을 한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상이 부서지고 그릇이 깨어졌다. 서연은 자지러진다. ‘이게 뭐지?’ 은경은 주춤거리며 일어나 바닥을 내려다보지만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앞뒤 없이 어릴 때 들은 호랑이 이야기가 떠올렸다. 그러자 눈을 회피하면 곧 달려들 맹수 앞에 선 것처럼 꼿꼿해졌다. 깨어진 상도 보이지 않았고 울고 있는 아이도 보이지 않았고 남편의 눈만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은경은 엄중하게 대거리했다. 다른 건 몰라도 상을 엎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이 땀 흘리며 국 끓이고 밥 안치고 전을 부쳐 가족끼리 먹을 것이라고 애면글면 차린 상을 부숴버린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은 아내의 엄중한 질책에 더 날뛴다.
“뭐? 내가 이렇게 배운 놈이다, 어쩔래!”
남편이 연달아 상을 발길질한다. 애가 기어서 은경의 다리에 달라붙는다. 처음에는 다리에 붙은 물컹하고 뜨거운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엄마, 엄마” 소리가 다리 밑에서 언제부터인가 들리고 있다.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그래! 으흐흐, 엄마, 엄마가 잘못했으니까 빌어, 엉엉.”
아이는 부모처럼 일어서지도 못하고 눈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얼굴을 방바닥에 묻은 채 빈다. 은경은 몸이 굳는다. 그러나 아이를 안을 수도 남편의 눈길을 피할 수도 없다. 남편이 악을 쓴다.
“왜 나보고 화가 났냐고 물어! 니가 나를 도발한 거야! 너 때문이야!”
그것이 남편이 남기고 간 말이었다.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부산하게 쓸고 닦고 단속하던 자기 집에서 손 하나 꼼짝할 수 없게 된 것은. 마음 같아선 깨어진 조각을 치우고 바닥을 훔치고 흩어진 음식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되지 않는다. 남편이 해놓고 간 꼴을 일 초도 더 보고 싶지 않지만 손이 가지도 않는다. 음식물이 저질러진 꼴을 보면 쥐가 좋다꾸나 덤벼들 텐데. 그 생각이 언뜻 스친다.

어째서 남편은 화가 난 것일까? 은경은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내가 무얼 잘못했다는 것일까? 설명하지 않고 화를 내는 것은 언제나 남편의 특권이었다. 하지만 은경은 용케 남편이 화를 낸 이유를 찾아내었다. 찾고 나면 어이없도록 단순한 것이었다.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았다거나, 욕실이 지저분했다거나, 애 옷이 볼품없었다거나, 아내가 남한테 말실수를 했다거나, 피곤한데 애를 보게 했다거나, 반찬이 시원찮았다거나. 은경은 줄줄이 주워 삼킬 수 있는 가벼운 이유들을 모두 섭렵했다. 이제 은경은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빨래를 해놓고 방 닦는 걸 잊는다거나 철이 바뀔 때 서랍정리를 까먹는다거나 목욕하고 수챗구멍의 머리카락을 빼지 않는다거나 아이에게 제때 새 옷을 사주지 않는다거나 남한테 자기 가족 얘기를 우스갯소리로 풀어놓는 일 따위를 하지 않는다. 칠 년 세월을 남편과 살면서 작성한 철저한 목록에 은경은 자신이 있다. 무엇이 남편을 화나게 하지 않을까 늘 예의주시하면서 완성한 목록이었다. 모든 살림살이와 은경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었다. 두더지잡기를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뛰고 쓸고 닦으며 은경은 남편의 분노의 씨앗을 제거하려 사투했다. 종일 회사에서 지치도록 일하고 돌아온 남편이 집 안에 들어서서 울화를 터뜨릴 백 가지 이유가 있다면 자신은 그 백 가지 원인제공을 없애면 되는 거였다. “딴 거 없어. 집이 얼음알처럼 반들반들해봐, 여자가 남자한테 큰소리 땅땅 치지.” 은경은 이제 다른 주부들한테 자신의 노하우를 전하며 짐짓 잘난 체할 수도 있다.

은경이 기꺼이 그 몫을 감당하는 데는 남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남편은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다. 어릴 때 술 취한 아버지한테 맞고 자란 불우한 이야기를 그는 가끔 했다. 술 취한 아비는 자식을 야구방망이로 죽일 듯이 팼다. 그 어미는 무서워서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달아났다. 막아주는 이 없는 집에서 남편은 까무러치도록 멍이 들고 피를 흘려야 했다. 은경은 화목하게 자란 자신의 밝음이 그의 어두운 그늘을 충분히 가려주기를 원했다. 허벅지를 베어 선지피를 다투어 먹여 남정네를 살려내었다는 옛 여자들처럼, 은경은 그럴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남편보다 강한 것은 자신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자기도 모르게 한 번씩 울화를 터뜨리는 것은 남편의 깊은 상처 때문이었다. 자신은 돈 잘 벌고 성실하고 가족을 챙길 줄 아는 남편을 얻었다. 대신 남편은 속 깊고 화내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아내를 얻었다. 둘은 보이지 않는 계약 속에서, 공범으로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남편은 분노를 폭발했다가 이내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폭언할지언정 한 번도 은경을 때린 적은 없다. “미안해” 남편은 멋쩍은 웃음을 슬쩍 띠며 사과할 줄도 안다. “앞으로 그러지 마.” 은경은 그 사과를 언제나 받아들인다. 때로 그 ‘미안해’라는 말 속에는 으름장이 있었다.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시 폭발할지 모를 불씨 같은 것이 그 안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괜찮아”를 말할 때 은경은 두려워서 입가를 올려 웃었고, 남편의 성난 마음을 달래려 목소리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는 것이었다.

은경은 지금 남편이 말한 원인, 자신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은경의 뇌는 냉철하다. 이해할 수 있다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 자신의 목록에 빠진 것이 있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반찬이 맘에 들지 않았나? 나는 왜 갑자기 이렇게 버림받은 걸까?

쥐 때문이다!
깨달음이 벽력처럼 스쳐갔다. 쭈뼛해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몰랐을까. 집에 쥐가 나왔다는 말을 한 순간, 들어선 남편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걷힌 것을. 그때부터 무뚝뚝하게 말문을 닫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은 것을. 전에 없이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의 등에 역정이 어린 것을 왜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자신의 미욱함에 한탄이 나오고 피가 가쁘게 맴돌았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쥐가 있는 집에 있는 게 싫어서, 아예 뛰쳐나갔을 수 있다. 쥐 한 마리 못 잡는 여편네가 맹하니 ‘화났어?’ 하고 푼수 떠는 모습이 염장을 질렀을 수 있다. 유난히 개미나 바퀴벌레 따위를 싫어하는 강박적인 남편에게 집에 쥐가 나왔다는 것처럼 정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거다.

은경은 긴 대걸레를 들고 일어났다. 아하, 그거였어? 요놈의 쥐, 잡으면 되지. 은경의 눈에 싱둥싱둥한 활기가 돈다. 대걸레를 거꾸로 잡아 쥐고 구석구석을 쑤신다. 싱크대 아래도 휘저어보고 냉장고 뒤도 쑤석거린다. 여전사처럼 창을 콱 내지르는 기세에 쥐가 꼬챙이에 꿰이듯 잡힐 것 같다. 너 오늘 죽었다, 괘씸한 것. 천정도 힘껏 두들겨대고 장롱 뒤도 훑는다. 집을 맴돌고 있으려니 땀이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잠깐 사이 쥐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뛰어다닐까 우려되어 한눈을 팔지 않는다.

아직 집에 쥐가 있었구나! 즐겁게 주말을 보낼 수 있는데 쥐 때문에 망쳐버렸다. 쥐 때문에 밥상이 부서지고 애는 울고,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더니 쥐가 그랬다. 쥐는 더러운 거 맞지? 어릴 적, 쥐 고기를 뜯어먹고 살았다는 어떤 작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페스트도 쥐가 옮겼지, 옳아, 그랬던 것 같다. 이 생뚱맞은 쥐가 전염병을 퍼뜨리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진드기나 쥐는 첫 번째로 해롭다고 했다. 아이에게 혹시라도 피부병을 옮기기 전에, 지저분하고 병균 있는 쓰레기에 처박은 주둥이를 이 집에 닦아대면서 유유자적 활보하고 다니기 전에 없애버리는 게 수였다.

은경의 걸음은 활기차다. 통통하고 꼬리까지 치키고 봉 위를 거닐던 건강한 쥐다. 틀림없이 살아 있다. 새끼를 배었는지도 모르지. 뱃속에 우글거리는 새끼를 어디서 낳고 있진 않을까? 은경은 열 마리, 스무 마리의 쥐라도 대적할 기운이 있다. 책상 뒤에서 옷장 뒤에서 냉장고 뒤에서 쥐 가족이 무더기로 나오더라도 하나도 두렵지 않다.

일단 한 방씩 뒤져보기로 한다. 작은방에 가서 책이며 가구를 죄다 꺼낸다. 이 모든 설명이 아귀가 맞으려면 쥐는 있어야 했다. 한나절 내 맥없이 쥐고 있던 걸레를 깃발처럼 흔들며 방을 닦으면서 쥐의 흔적을 찾는다. 남편은 쥐가 왔던 길로 나갔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나가는 걸 보지 않은 이상 이 집 안에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쥐는 지극히 불리하다. 쥐에게 이 집은 미로이고, 은경에게 살림은 손금처럼 훤하기 때문이다. 은경은 책꽂이 사이를 닦고 바닥을 훔치고 창틀을 닦고 휘 둘러본다.

일단 깨끗하게 된 작은방의 문을 닫고 거실로 간다. 여전히 깨어진 것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쥐를 잡으면 깨어진 접시가 저절로 붙어 깨끔하니 되돌아올 것처럼 쥐잡기에 정신이 팔렸다. 시간이 흘렀다. 어떻게 이렇게 기척이 없을 수 있을까?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크게 들린다. 쥐가 없나?

의혹이 들자마자 머릿속에 딴 생각이 들어선다. 입을 벌리고 울던 아이의 얼굴이다. “오늘 토요일이라서 행복했는데, 유치원도 안 가고, 오늘 행복할 줄 알았는데” 울부짖던 아이. “배고팠는데 이제 밥도 못 먹고, 배고픈데.” 하고 엎어진 상을 보며 목을 놓아 울던 아이. “엄마, 빌어, 아빠한테 잘못했다고 해. 빌어, 빌어.” 엉겨 붙던 살덩이가 다시 발밑에서 느껴진다. 뒤늦게 후회스럽다. 내가 참을걸. 남편이 소리를 지르더라도 나는 지르지 말걸. 차라리 애를 데리고 자리를 피할걸. 그냥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할걸.

눈앞에 뭐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작은, 아주 작은 벌레다. 깨알보다 작은 검은 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보고 은경은 화들짝하며 손톱으로 짓뭉갠다. 그런데 그 뒤에 똑같은 벌레가 기어가고 있다. 쥐벼룩이구나! 쥐의 몸에 붙어살던 깨 같은 벌레들이 숙주를 잃고 바닥을 기어간다. 쥐는 있는 것이다. 은경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를 잡은 것이 통쾌하기까지 하다. 손바닥을 내리쳐 벌레를 잡는다.

엄마가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를 곁에서 들었다면 서연은 놀라서 고개를 휙 돌렸을 것이다. “엄마, 화났어?” 아이는 물었다. “아니, 엄마 화 안 났어.”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설거지하다 그릇이 떨어지는 조금 큰 소리만 들려도 방에서 고개를 비죽 내밀고 묻는다. 그렇게 묻는 아이의 눈에는 불안과 공포가 스며 있다. 커다란 것을 보아버린 아이가 극단의 일이 일어날까 예감하고 불안에 떨듯, 서연은 작은 소리나 기척에도 놀라 물었다. “화났어?” 그 눈빛이 은경에게 익숙했다. 그건 자신의 눈빛이었다. 남편이 조금만 언짢은 기색을 보이면 큰소리를 낼까, 화를 낼까 두려워서 “화났어?” 되묻던 자신의 질문이었다. 잘못한 일을 가지고 나무라면 아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두려운 눈빛을 한 채 입술을 비죽이며 눈물을 흘린다.
“오늘 하루는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망쳤어.”
은경은 그 말이 낯익다. 그것은 날마다 자신이 외우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시도 때도 없어서 예측할 수 없는 남편의 분노 앞에서 조마조마하게 느끼던 것이었다. 서연은 아빠가 저녁에 집에 오는 기척이 들리면 얼른 활기를 되찾는다.
“엄마가 화냈다는 거 말하지 마, 알았지? 알면 아빠가 또 화낼 테니까.”
그리고 아이는 들어선 아빠를 엄마보다 더 환하게 맞이한다. 명랑하게 짐짓 꾸민 몸짓과 말을 한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유치원에서 무얼 배웠고 하는 이야기를 아빠의 눈치를 보며 아주 명랑하게 종알거리는 것이었다. 은경은 딸이 꾸며내는 활기가 서늘했다. 그건 자신이 남편에게 하는 짓거리였기 때문이다. 외면한 채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해온 모든 것, 웃기, 떠들기, 즐거운 척하기, 비위 맞추기, 무조건 용서하기, 그 모든 것을 여섯 살 난 딸애가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울던 눈을 비벼 닦은 채 말이다. 그때 은경은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어린 딸 뒤에 있었다.


밖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은경의 집은 낡은 빌라 삼 층에 있었다. 부엌에 난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전깃줄에 처음 보는 미끈한 갈색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가 화드득 날아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청랑하던 새소리였는데 이제는 쥐가 찍찍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왜 새는 아름답고 쥐는 흉측하다는 거지? 새나 쥐나 매한가지 아닐까? 쥐벼룩을 손으로 잡아서 그런지 몸이 근질거리는데 쥐가 숨어 있을 살림들도 굼틀거리는 것 같다.

안 보려고 했는데 결국 눈길이 깨어진 상으로 갔다. 둥근 상이었다. 누구 하나 상석을 따로 차지하지 말자고, 둘러앉아 다 같이 즐겁게 식사하자고 결혼 전 장만한 상이었다. 혼자  나가 문득 저 상을 산 건, 어느 도로변의 좌판에서였다. 어떤 늙은이가 심드렁한 얼굴로 좋은 상이라고 해서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니 무조건 좋은 상이라고, 오래오래 쓸 거라고 건성으로 말해 싼값에 그냥 웃으며 산 상이었다. 아직 더 오래 쓸 수 있는데 상은 나무토막으로 변했다. 은경은 상을 사면서 접시를 마련하면서 꾼 신혼 때 꿈이 이렇게 깨어진 게 아쉽다. 다리 두 개가 부러지고 반으로 금이 난 상을 쳐다보는 게 어렵다. 조촐한 살림을 하나씩 장만하면서 꾼 꿈을 남편은 알까? 어떤 마음으로 날마다 행주로 상을 닦고 음식을 차렸는지 알까? 발이 따끔하다. 보이지 않는 유리 조각이 발바닥에 박혔다. 바늘까지 동원해 파내보지만 찾아낼 수가 없다.

©일러스트-오승원
쥐가 있다면, 이때까지 나오지 않고 바깥 기척을 살피는 쥐는 영리한 것이다. 쥐에게도 뇌가 있나? 은경은 자신과 단 둘인 쥐에 대해, 있을지 없을지 모를 쥐에 대해 상상한다. 쥐는 필사적으로 출구를 찾고 있을 것이다. 나온 곳으로 되돌아가지 못해 쥐야말로 애가 타들어갈 것이다. 은경이 쥐가 나오는 길목을 막고 노려보듯 쥐는 은경이 떠나기를 부르르 떨며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쥐는 은경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살아남는 것. 먹고 싸고 새끼 치는 것. 은경이 지금 그것을 잃어버렸듯 쥐는 그것에 위협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은경이 다시 이 집에서 살려면 미안하지만 쥐는 죽어버려야 한다.


은경은 다시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큰방 구석에 둔 이불 귀퉁이에서 나왔다. 검고 마르고 긴 쥐똥이었다. 은경은 옷장 서랍을 꺼내고 옷장을 밀쳐 뒤쪽을 살펴본다. 쥐똥이 듬성듬성 벽을 따라 있다. 쥐와 밤을 보냈다는 놀라움에 비질을 해댄다. 뭘 먹고 똥을 이렇게 싸댄 거야? 쥐도 먹고 싼다는 사실이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갑자기 손에 물큰 뭐가 적셔진다. 뭐야? 엎드려 냄새를 맡아본다. 지독한 지린내였다. 손 한 뼘만 한 크기로 갈긴 그것은 쥐 오줌이었다. 한번 맡기 시작하자 오줌 냄새는 골이 지끈거리도록 풍겼다. 은경은  비누칠로 손을 씻고 또 씻는다. 집을 나가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그때 찌익, 찌익, 소리가 들린다. 주위를 둘러본다. 어디야?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가늘고 긴 울음소리. 손톱이 쇳조각에 긁혀 나는 소리같이 처량하기조차 한 소리.

은경은 한숨을 쉰다. 있는 곳을 알 수 없는 소리,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리, 자신을 위협하는 소리다. 나 있는 곳 알아내보라고, 찾아내보라고, 어디 한번 시험해보자고 하는 소리다.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기준을 향해 자신이 꼴사납게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 급기야 쥐가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냉정한 심판관처럼 자신을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기를 쓰며 수직의 절벽을 올라가면서 이를 악문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냐, 이놈아, 만나기만 하면…… 처음 느끼는 강력한 살의. 은경은 그 살의 속에서 자신이 변모하는 것을 느낀다. 헐떡거리며 방을 맴도는 자신은 영락없이 한 마리 쥐였다. 덩치만 크고 꼬리만 없을 뿐 헐떡이는 몸통은 쥐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지린내 나는 오줌도 싸고 검은 똥도 누던 놈이란 말이지. 이 집에는 쥐 두 마리가 있다. 큰 쥐, 그리고 작은 쥐.

그런 자학적인 상상에 시달리며 은경은 전화벨 소리를 기다린다. 남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자리를 박차고 딸을 데리고 나가버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뭐해?” 하고 그는 안부를 물어올 것이다. 그 듣기 좋은 목소리, 따뜻한 살, 포근한 포옹. 은경은 남편의 말과 행동보다 몸뚱이를 더 좋아한다. 눈썹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꺼풀이 어떻게 생겼는지 입꼬리가 어떻게 올라가 있는지 당사자보다 생김새를 더 잘 알고 있다. 남편이 화를 낼 때 그의 눈썹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눈썹은 착해 보였다. 표정도 말도 없지만 어쩐지 쓸쓸한 털, 그것은 남편도 잊은 남편의 몸이었고, 남편이 무슨 폭언을 하든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절대 남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무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은경은 그의 몸을 좋아했다. 남편의 영혼과 분리된 몸은 의식 속에서 오롯이 그녀의 소유였다.

지금 전화를 한다는 건 비참하지만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놀란 딸아이가 아직 울고 있을 것 같다. 은경은 수화기를 든다. 번호를 꾹꾹 누른다. 무엇보다 이 집에서 자신이 기다린다는 것,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해야 한다.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은경은 목소리를 기다리다가 실망한다. 내가 쥐를 잡을게.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하고, 모든 아빠들은 조금씩 가족들을 다치게 하니까. 집집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된장독 열면 냄새나는 건 다 똑같고 혼자 있는 것보다 가족이 살 비비며 사는 게 따신 일이니까. 고생이야 나이 들면 다 추억거리고, 세상일이야 죽을 때 되면 다 묻히는 거니까, 남들처럼 주먹질하거나 식칼을 가지고 덤빈 것도 아니고 싸구려 상 하나 부서졌다고 호들갑 떠는 것도 남부끄러운 일이려니. 내가 쥐를 잡을게. 나 하나 참으면 온 가족이 행복한데 쥐 하나 못 잡아서 가족이 불행해서야 쓰겠냐고,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뚜뚜거리며 끊긴 전화 앞에서 은경은 쥐에게 말한다. 됐으니까 이제 나와달라고, 이 집에서 나가달라고, 사람을 궁지에 몰지 말라고, 너 하나 없으면 온 세상이 평화로울 테니, 나 굳이 너를 해칠 마음이 없으니 그 사뿐하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친절하게 열어놓은 현관문 밖으로 나가달라고. 쥐는 대답 없이 은경을 지켜보고 있다. 눈앞에 가득 널브러진 음식을 보고도 사람이 두려워 썩 나서지 못하는 쥐다. 유리 조각과 섞인 김치찌개와 전이 말라서 굳어지고 있다. 이상한 쥐덫. 은경은 바닥에 잔치 벌인 이 상을 쥐가 와서 포식하기를 기다린다. 차라리 굳은 채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쥐가 사람이 아니라 먹이로 생각하고 덤벼들기를 기다리는 게 낫겠다. 커다란 쥐가 와서 고부라진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 사람은 쥐보다 더 배가 고프고 쥐는 사람보다 기운이 더 세다. 은경은 눈앞에 흩어진 음식 찌꺼기의 문양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어둑어둑한 얼룩 속에 음영 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하나같이 눈을 일그러뜨리거나 입을 벌리고 있다. 눈에 닿는 얼룩마다 그런 사람들의 얼굴이 숨어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상을 쳐다보니 금이 간 나뭇결 사이에도 소리를 지르는 여자의 얼굴이 켜켜이 보인다. “이상하네,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중얼거리면서 은경은 눈을 떼지 못한다.

이때까지 남편은 걸핏하면 화내는 우울한 환자였고 자신은 멀쩡했다. 그런데 지금 빈집에서 은경은 환자고 남편은 이상하게 멀쩡하다. ‘집에서 처먹고 노는 년’, ‘이때까지 한 일이라곤 먹고 싼 것밖에 없는 년’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건 쥐 같은 년이라는 무시무시한 모욕이었다. 은경은 입증하고자 한다. 자신이 쥐가 아님을, 쥐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아님을, 지금은 없는 남편 앞에 무조건 입증하고자 한다.
 
아침이 되었을 때 은경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밤새 냄새나는 찌꺼기와 깨어진 접시 옆에서 엎어진 사발같이 고푸리고 있었다. 은경은 쉬어가는 음식물의 냄새를 맡고 머리카락에 배인 끈끈한 김칫국물 냄새를 맡는다. 그 발광을 할 기운이 있으면서 걸레를 들어 치울 기운은 도무지 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혹시나 싶어 둘러보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는 여직 혼자다. 간밤에 모든 의욕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어 끈끈이 몇 개를 싱크대와 식탁 주위에 놓아두었다. 푸르스름한 찐득한 액이 차 있고 건드리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것이었다. 위에는 쌀알들을 한 줌 흩어놓았다. 덫에 쥐가 걸렸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그 영특한 놈은 피해 갔겠지. 그렇게 호락호락 잡힐 리가 없지. 은경은 쥐의 편이라도 된 양 자신이 놓은 덫을 깔보면서 둘러보았다.

싱크대 위에 거무스름한 덩어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잡혔다! 끈끈이에 잡힌 쥐는 온몸이 축축해진 채 아직도 빠져나가려고 꿈틀거린다. 홀쭉해진 배를 할딱거리며 기진맥진해 있다. 밤새 몸부림을 쳤는지 머리를 밖으로 내놓고 달라붙은 몸뚱이 전체를 뒤틀며 감전당한 듯 이따금 펄떡인다. 그 비참한 꼴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칠수록 몸은 더욱 엉겨 붙고 시꺼멓게 젖은 몸은 익사하는 듯하다. 쥐는 전혀 의기양양하지도 배부르지도 않아 보였다. 단지 목숨을 타고난 것의 관성으로서 마지막까지 맹목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은경은 쥐를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쥐가 가쁘게 숨을 쉬어 갈비뼈가 윤곽을 드러낸 채 오르내렸다. 잡았네, 쥐를. 은경은 속으로 일부러 웃어도 보지만 쥐의 꼴이 자기 꼴과 진배없어 진저리를 쳤다. 은경은 쥐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안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 밤을 함께 지새운 자기만이 쥐의 애타는 마음을 알고 있다. 은경은 덜덜 떨며 집게를 찾는다. 그러다 떨어뜨릴 것이 염려되어 이번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찾아 부스럭댄다. 살고 싶은 것이다. 아무 희망도 없고 죽을 일만 남았지만, 뻔히 바닥이 보이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이다. 은경은 종이 상자 조각을 뜯어내 쥐를 덮었다. 그걸 손으로 잡고 비닐에 넣는다. 굼틀굼틀하는 징그러운 움직임이 손으로 전해진다. 자기가 발 디딘 자리가 덫이라 해도, 헤어나려 할수록 빠져드는 늪이라 해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은경은 비닐봉지 입구를 묶는다. 검은 비닐봉지는 움직거린다. 쥐의 비명이 갇혔다. 은경은 쓰레기봉투를 찾는다. 이제 이 쥐를 집 밖에 내놓으면 끝난다. 살았다. 쥐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은경은 다시 용감해진다.

갑자기 의욕이 전류처럼 솟구쳤다. 은경은 반쯤 차 있던 쓰레기봉투 안에 비닐봉지를 집어넣는다. 흰 쓰레기봉투는 검은 비닐봉지를 품고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다. 은경은 재빨리 깨어진 그릇을 치우기 시작한다. 파편이 박히고 찢긴 전 조각이며 김치 조각 따위도 모두 쓰레기였다. 음식이었던 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하나의 사금파리에 지나지 않았다. 쥐가 그토록 열망했을 찌꺼기를 그러모아 쓰레기봉투 속에 넣어버린다. 비닐봉지 안에서 쥐는 비통에 젖어 숨 막힌다. 은경은 유리 조각을 그 위에 넣는다. 네댓 조각으로 날카롭게 깨어진 조각을 꾹꾹 눌러 넣는다. 집은 말끔해지고 손은 남의 집을 뒤지는 도둑같이 민첩하다. 은경은 기쁨에 차서 두툼한 쓰레기봉투를 들고 한달음에 빌라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집 앞에는 아무도 없고 전봇대 아래는 말끔하다. 은경은 쓰레기봉투를 전봇대에 기대어놓는다. 아무도 이 안에 쥐가 들어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쓰레기봉투에 손을 떼고 뒤돌아서다 끌린 듯 다시 눈길을 보낸다. 이것이, 원인이었다. 은경은 발을 들어 쥐를 짓밟는다. 너 같은 건 죽어야 돼. 다시는 얼씬대지 마, 더러운 새끼. 짓밟는 발길에 유리 조각이 비닐을 뚫는다. 쥐는 사방에서 난입하는 거대한 파편에 관통당한다. 피를 흘린다. 쓰레기봉투에 쿨렁하고 피가 비친다. 쥐가 자신과 똑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신과 다를 바 없이 붉은 피를 지녔다는 것이 은경을 흥분하게 한다. 쥐의 피는 주르륵주르륵 흐르며 쓰레기봉투를 적신다. 자기도 무언가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자기 발길질에 짓밟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이상한 활기를 지핀다. 야, 다 너 때문이야. 니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더럽고 재수 없어. 쥐가 죽으면서 흩뿌리는 더러운 얼룩, 집은 다시 깨끗해지고 더러운 것은 쥐가 다 가지고 가버렸다. 은경은 그제야 안심한다. 이겼기 때문에. 자신은 마지막 남은 원인을 제거해 결국 집을 지켜냈기 때문에. 이제 화근이 사라진 집으로 다시 불러들일 식구를 생각한다. 팔을 활짝 벌리고 딸애를 맞이할 것이다. 멋쩍은 듯 말을 붙일 부드러워진 남편을 끌어안을 것이다. 거 봐, 당신들은 이 집을 떠날 수 없어, 이 집은 완벽하니까. 내가 어떤 일을 해치웠는지 봐, 자, 선물이야, 받아요. 은경은 쓰레기봉투를 뿌듯하게 안고 내미는 상상에 키득거린다. 내가 쥐를 잡을 거라고 전화로 말했잖아. 좋아서, 이 일이 끝난 게 너무 좋아서 망상을 한다.

이제 계단을 올라갈 일만 남았다. 이상하다, 다 끝났는데, 깨끗한 집에서 언제나처럼 요리를 하고 돌아올 식구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쥐가 정말 사라진 그 집에 들어갈 수 없다. 한 마리 쥐가 되어 꼬리를 나부끼며 겅중겅중 네 발로 풀쩍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계단을 오르기란 영영 불가능할 것 같다. 은경은 차갑게 식은 봉투 옆에 못 박혀 있다. 해가 이글거리며 세상은 더 눈부셔오는데, 자꾸 어두워지는 그녀의 눈에 모퉁이를 돌아 다가오는 사람의 그림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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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자 2022/12/11 [12:05] 수정 | 삭제
  • 정말 재밌어요 진짜 출판된 책을 보는것 같았어요
  • an7hn888 2016/11/30 [18:25] 수정 | 삭제
  • 와 짜증나 뭔 단편 소설이 이렇게 길어 사람 참 답답하게
  • 쥐잡기운동 2011/12/10 [22:00]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서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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