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교육, 교사들의 피눈물로 커온 자본

1600일째 농성중인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외침

윤정은 | 기사입력 2012/05/11 [20:26]

재능교육, 교사들의 피눈물로 커온 자본

1600일째 농성중인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외침

윤정은 | 입력 : 2012/05/11 [20:26]
지난 5월 7일이 1,600일째였다. 4년 4개월이 넘는 참 긴 시간이다. 2007년 12월에 재능교육 노동조합(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이 회사 앞에 텐트를 치고, 사측에 해고자 복직과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세월, 1600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끝도 없는 농성이 장기화되고,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시민사회도 속이 타고 있다.
▲  재능교육 노동조합이 회사 앞에 텐트를 치고, 사측에 '해고자 복직'과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지 4년 4개월이 넘은 1600일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 윤정은

지금 현장에서는 ‘재능교육 사태해결을 위한 기독교대책위원회’(이하 기독교대책위)는 릴레이 1인 시위와 집중기도회를 열어 재능노조의 활동을 알리며, 사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5월 2일부터 11까지 진행된 릴레이 집중기도회의 제목이 눈에 띈다. “불을 지르러 왔다!”
 
재능교육 노조의 투쟁은 학습지 교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특수고용노동자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한국 사회에 “불을 지르는” 심정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면,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유령회원’ 만들어 실적 맞추는 불합리한 구조
 
“(회사가) 회원 모집 실적을 (학습지교사에게) 하달하면, 선생님들은 그 실적 맞추기 위해 유령회원 만들어 회비를 대납하는 등 (회사의) 부정영업 관행이 계속됐어요. 만약 내가 가짜 회원을 만들지 않으면, 옆에 있는 교사도 불이익을 받는 구조죠. 1999년 노동조합을 만들 때 우리가 했던 말은 ‘가짜 회원 더 이상 안 만들고 정당하게 일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오수영 재능교육 노조 사무국장은 왜 재능 학습지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했다.
 
유령(가짜)회원을 만드는 방법까지 동원해 영업실적을 늘리는 방식에 대해, 오 국장은 “회사는 계속 성장하고 교사들은 계속 짓눌리는” 불합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사용자만 배부르고 노동자는 죽어나가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1999년 12월 재능교육 노조가 설립된 이듬해인 2000년에는 전체 교사 7천500여명 중에 노조에 가입한 이가 3천800여명에 달했다. 그만큼 학습지 교사들이 노동조합의 활동에 거는 기대가 컸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후 “회사는 노동조합을 부수겠다”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다. 오수영 국장은 그때를 회고하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노조 간부들을 해고하고, 조합원들을 탈퇴시키기 위한 온갖 공작들이 동원됐다.
 
“교사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하고, 노조에서 탈퇴하도록 설득시키고, 집 앞에 찾아와서 협박, 회유하고. 어떤 교사들의 경우는 책상을 따로 놓아 ‘왕따’ 책상으로 배치하고, 별의별 일이 다 있었어요. 노동조합에서 조합원 교육한다고 하면, 본사 노무관리팀 사람들이 와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회사는 무슨 근거로 노동조합 활동을 이렇게 탄압할 수 있는 걸까. 재능교육 노동조합은 1999년 12월, 법적으로 노동부로부터 노조 필증을 교부 받아 설립된 합법 노조이지 않은가. 여기서 회사는 ‘학습지 교사들은 노동자가 아니다’ 라는 법적 논리를 들고 나온다.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다 vs 노동자 아니다
 
2005년 11월, 또 다른 학습지인 웅진씽크빅 노조원들의 해고 사건에서,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바로 이 판결이 지금까지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환경과 단결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과 관련한 법적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며, 이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학습지 교사들의 경우 노동부로부터 노동조합 설립을 인정받았지만,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노동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측에서는 학습지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해도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해버리거나 협약을 이행하지 않고, 노조 간부들을 간단히 해고해버리는 방식으로 노조 탄압을 일삼아왔다.
▲  재능교육 노조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이 보장되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 윤정은

그러나 최근 레미콘 운송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기사 등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끈질긴 투쟁과 요구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판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때문에 노동법 관련 전문가들이나 법학자들 내부에서도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8대 국회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몇 개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ILO 권고,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3권 누려야
 
재능교육 노조를 비롯하여 ‘전국 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는 “입법 방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보호 법안이 아니라 “노동자성을 인정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관련법 개정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전국 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는 3월말 국제노동기구(ILO) 집행이사회가 한국 정부에 <특수고용 관련 ILO 권고>를 한 것을 근거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이 보장되도록 법 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특수고용과 관련한 이번 ILO 권고 요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른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등 노동3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내용이다.
 
시민사회와 노동권 관련 전문가들은, 재능교육 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법 2조에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조항을 신설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재능교육 노조 또한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본은 축적만 할 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가?
 
지난 5월 7일,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촉구 1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5월 7일 재능교육 본사 앞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촉구 1만인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   © 윤정은

현재 한국 사회 노동권 문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내용이 기자회견 발언의 주를 이루었다.
 
자본이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면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이용해놓고서는, 쉽게 해고하고 산재가 발생하더라도 방치하며 손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구조. 기업은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며 성장하는데, 근간이 되어준 노동자들은 버려지고 죽어나가는 현실.
 
“자본이 전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특수고용노동자, 영업실적 강요에 죽어가는 학습지 교사들이 있는데 회사는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그날까지 계속 (농성)할 것입니다.”
 
4년이 넘는 시간을 길바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는 유명자 재능교육 지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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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2/05/13 [19:04] 수정 | 삭제
  • 4년 넘는 투쟁 지지합니다. 꼭 보다 나은 결실을 얻게 되리라 믿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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