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강간에 대한 기억

<꽃을 던지고 싶다> 5. 선택이 있었을까

너울 | 기사입력 2012/05/17 [22:00]

첫 번째 강간에 대한 기억

<꽃을 던지고 싶다> 5. 선택이 있었을까

너울 | 입력 : 2012/05/17 [22:00]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서울로 올라온 초등학교 2학년, 방한 칸 마련하지 못한 우리 가족은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의 의자에서 밤에 잠을 청해야 하는 생활을 하였다.
 
공업사의 식당에 의자를 붙이고 잠자리를 청해야 하는 가난함 속에서, 학교가 파하면 나는 저녁 때까지 자동차 공업사 내의 수리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숙제도 하고 잠도 자고 놀기도 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 식당 앞의 유원지에 가서 강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식당을 자주 찾는 손님 중 한 사람이었던 그 남자가 유원지를 데려다 달라는 말에, 나는 4월의 싱그러운 강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앞장서게 되었다. 낮이어서 인지 뚝섬유원지는 유독 그날따라 한가로워 보였다.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9살의 나에게 그 남자는 다가와 앉았다. 그 남자는 나에게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놀이라고 했다.
 
그 남자는 나를 끌어당기더니 가슴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가슴을 혀로 빨기 시작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별로라고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다시 나에게 입에다 혀를 집어넣고 핥기 시작했다.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불쾌함이 밀려 왔다. 그 남자를 밀어내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어디가 더 기분이 좋아, 가슴이야 혀야?”
 
생생한 기억. 어디가 더 좋을 수가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을 수가 있었을까?
 
“둘 다 별로예요.”
 
그 남자는 나에게 선택을 하라고 했다. 어디가 더 좋은지를, 어른이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주어진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그 외의 선택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가슴 쪽이 낫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어른들의 말의 순종하라고 배우긴 했어도 싫다는 말을, 안 된다는 말을 해도 된다는 사실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때는 성폭력 예방교육도 없었고, ‘no’라고 말하는 법을 알지도 못했다.
 
설령 내가 ‘no’라고 말을 했다면 그 상황이 달라졌을까? 겨우 9살이었던 내가 ‘no’라고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동을 멈추고 사과를 했을까? 아이들에게 ‘no’라고 말을 하라는 것이 더 큰 위험을 만들지는 않는 것일까?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에 나는 그때 ‘no’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지금은 알 수 없다.

 
나의 기분이나 대답과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난 눕혀졌고 치마 속으로 그 남자의 손이 들어왔다. 커다란 통증이 일어났고, 난 비명이 났으나 곧 그 사람의 혀가 그마저도 차단시켰다. 구역질이 났으며 구역질을 하는 입 속으로 그 남자의 커다란 성기가 들어왔다.
 
눈물이 나는 고통이 한동안 가해졌고 난 죽을 것처럼 아팠다. 조금 후에 눈을 뜨니 아무도 없었고, 난 무서운 꿈을 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도 선명한 통증과 토사물만이 악몽이 아님을 알게 해줬다.
 
한참을 아파서 걷을 수가 없었으며, 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벤치로 기어가 한참을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알기엔 난 너무 어린 나이였고, 그냥 그 남자가 나를 아프게 했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저녁이 다 되어 가게로 갔으나 아직도 멍자국이 남아 있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지만, 분명하게 느꼈던 것은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 일이 들키기라도 하면 나는 비난 받거나 더러운 사람으로 낙인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나를 보호해줄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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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2013/01/09 [08:46] 수정 | 삭제
  • 그 때의 아이에게, 지금의 너울님에게 조그만 위안이라도 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네요. 기도할게요.
  • 지인 2012/09/19 [08:59] 수정 | 삭제
  • 저도 한사람의 피해자로서..어렸을적의 가정 환경과 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아프게 와닿네요..여기서 너울님의 글을 접하고, 너울님을 알게되어 저에게 큰 위안이 되네요..그동안 가슴 깊이 묻어둔 아픔..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너울님. 응원할께요..
  • 여우 2012/08/09 [17:05] 수정 | 삭제
  • 어린애일때..여서 힘그셨겠지만 아픔이 우릴 강하게 합니다.. 화이팅!!
  • 나랑 2012/05/25 [09:35] 수정 | 삭제
  • 길지 않은 글인데도 너무 긴장을 하고 읽었더니 몸살이 날 것만 같아요. 글을 쓰시면서 어떤 감정이셨을지, 무너지지는 않으셨을지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이렇게 토해내셨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기뻐요. 살아있어주셔서, 이런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2/05/19 [11:30] 수정 | 삭제
  • 어릴 적의 성폭력 경험을 이렇게 상세히 떠올리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며, 너울님이 오랜 시간에 거쳐 과거를 직면하고 어린 자아와 만나는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 보여서 가슴 뭉클하네요.
  • 지브롤터 2012/05/19 [10:49] 수정 | 삭제
  • 범죄행위의 피해자 혹은 생존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책이 아닐까 함. 피해자가 완전무결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행태를 철저히 분석해야 문제가 바르게 해결될 수 있을 터. 범죄자는 범죄자의 심리가 있을 터.

    '완전한 인간'에 대한 상이 제대로 잡혀야 피해자 입장에서도 자신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 여자 아이에 대한 성교육도 그런 측면일 터.

    신문 기사를 통해 많은 범죄 행위를 접하는데, 피해자가 요렇게 했으면 피해자가 저렇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드는데,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는 하나 피해자를 탓할 일이 설사 있어도 그건 아주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터. 피해자 탓은 비겁한 행위일 뿐.

    차를 운전하며 도로를 달리다보면 나는 교통법규를 잘 지키며 달려도 마주오는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내 차를 박으면 내가 다치는 건 필연.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 그걸 자책하기 시작하면 미로 속으로 빠져버림. 심리적 블랙홀이 그 지점. 가해자들이 노리는 것도 그것.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으나 희석될 수는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 중에 성폭력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 그리 많지 않을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문제의 핵은 성평등.
  • 지선 2012/05/19 [09:22] 수정 | 삭제
  • 너울님. 지지하고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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