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복숭아 향기와 함께 내게 온 아이

딸을 만나러 가는 길 (48) 절망과 희망의 교차로

윤하 | 기사입력 2012/07/06 [11:26]

7월, 복숭아 향기와 함께 내게 온 아이

딸을 만나러 가는 길 (48) 절망과 희망의 교차로

윤하 | 입력 : 2012/07/06 [11:26]
딸의 스물 한번째 생일이 며칠 전이었다. 오랫동안 아이의 생일 날은 나에게 더 견디기 힘들었다. 생일은 다른 날 같지 않았다. 그 즈음에는 아이가 더 보고 싶고, 더 상처를 느껴야 했다.
 
딸의 생일이 다가오면 선물을 보낼 거라고 부산을 떨고, 선물과 함께 아이의 근황을 알려달라는 편지를 동봉해 전남편에게 보내곤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이었다. 그럴 때마다 상처가 더 깊어졌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났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선물도, 편지도 더는 보내지 않게 되면서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아나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다. 그걸 인정하기 힘들어도, 세월은 그렇게 아이의 생일을 좀더 평안하게 맞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정말 많이 담담해졌다. 아니, 담담하다기보다 아이의 생일이라서 즐거울 때가 많다.
 
이번 생일에도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며 “어, 우리 딸 생일이네!”라고 혼자 소리 내어 말했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아이의 생일날, 맑은 아침공기 속에서 아이를 낳았던 날을 회상하는 건 즐겁고 행복하다.
 
아이를 낳기 직전, 까무러칠 듯 고통스러운 진통 중에 코끝으로 스쳤던 ‘복숭아 향기’를 생각하는 것도 참으로 즐겁다. 아주 잘 익은 달콤한 복숭아 향기를 코 끝에서 느끼고 몇 분 뒤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 생일이면, 창을 열면서 “흐~흠!”하고 코를 실룩거려본다. 물론, 한번도 당시의 황홀한 복숭아 향기를 다시 맡은 적은 없다. 그래도 그때 그 향기는 입가에 미소를 부른다. 딸은 복숭아 향기와 함께 자박자박 내게 걸어온 아이였다.
 
아이를 낳기 바로 전날 밤 ‘너무 힘들어! 더는 못 살 것 같다…’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이슬이 비쳤다. 그리고 진통으로 괴로워할 때도 ‘딱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아이가 나왔다. 그러고 보면 아이의 출산은, 희망의 싹은 끝이라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다가온다는 걸 가르쳐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한 문은 가장 절망스럽다고 느끼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낭떠러지 끝에서 막 발을 떼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구원의 손은 늘 내 손을 잡았다.
 
게다가 딸은 내겐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었다. 내가 선택한 아이라고, 무엇보다 내가 지켜 낳은 아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아이를 볼 때마다 들었다. 그래서 이혼을 하고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낸 뒤,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워도 아이의 존재는 늘 삶의 희망이고 살아있어야 할 이유였다.
 
하지만 17년 만에 만난 딸이 ‘새엄마를 더 사랑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을 때는 아이 낳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겨우 저런 소리를 들으려고 내가 저 아이를 낳았구나!’ 하면서, 처음으로 내 판단과 행동이 어리석었다고 발을 찧으며 후회했다.
 
그러고는 혼자 주역의 괘를 뽑았다. 속상한 마음을 어디에도 풀어놓을 데가 없었다. 아이의 존재가 내게 무엇인지 주역에라도 묻고 싶었다. 뽑은 괘가 지시하는 것에 맞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와 인연이 없다는 괘가 나온다면 그것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동전을 던지는 손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정말 그런 괘가 나왔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야 했다. 아니, 마음을 끊어야 했다.
 
그때 뽑은 괘가 마흔여섯 번째, 승, 지풍승-뻗어나는 새싹이었다. “승이란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땅 밑에 싹이 돋아 어린 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괘다…” 괘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딸의 존재가 내게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난 건 바로 그때였다. 그 괘를 보고서야, 딸은 늘 내게 희망이고 미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는 걸 기억해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대면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 속에서 소중한 걸 잊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내 인생의 비극은 딸과 헤어져 안타까움으로 오랜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것도, 딸로부터 외면당한 것도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아이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 그 순간, 그녀의 존재를, 내 판단과 선택을 후회한 것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비극의 절정이었다.
 
요즘은 아이의 태도와 관계없이, 딸이 내 인생에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나니 아이에 대해서도 마음을 좀더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고, 즐겁게 그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눈부시고 경이로운, 하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고, 내 기쁨이고 자부심이다. 어쩜, 나는 이미 딸의 손을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한번도 놓은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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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두 2012/07/14 [02:46] 수정 | 삭제
  •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윤하님. 예전에는 전원일기 만화를 보러 일다에 왔었는데 요즘은 윤하님글을 읽으러 와요. 매번 잘 읽고 있어요. 오늘은 어쩐 일인지 댓글이 많네요. 아마 관심의 증거인가 봐요^^
    어차피 두 엄마를 두고 사는게 딸의 주어진 상황이라면 두 물길의 사랑이 모두 자신으로 향한다는 걸 알게 될 듯 해요.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으시구나 싶기도 해요.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숭아 향기가 묻어있는 21번째 출산기념일 지내신 것도 축하드려요. 한 여자가 엄마로 태어난 날이기도 할테니요. 그날을 윤하님이 행복하게 보내셨다니 지켜보는 이도 좋습니다. 아, 그리고 7월이 되었으니 복숭아를 사다 먹어야겠습니다. ㅋㅋㅋ 복숭아와 옥수수와 비오는 날의 부침개의 계절이죠. 7월은.
  • 보라 2012/07/12 [15:06] 수정 | 삭제
  • 성숙함이 묻어나오는 글 잘 봤습니다. 나의 경험은 아니지만 그 마음이 와닿네요. 잊혀진 출생이 아니라 축하받는 생일이란 걸 따님도 느낄 거라 생각하며 함께 축하하고 싶어요. ^^
  • 꾸씨꾸싸 2012/07/11 [19:02] 수정 | 삭제
  • 그럼, 저 글을 쓰신분의 딸이 저분에게 하는 행동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딸이 윗분이 말씀하시는 '친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사랑을 주는 것과 실제로 일상에서 부딪치며 주는 사랑은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선택과 행위가 쌓이면서 그 사람의 존재가 온전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분은 딸을 떠나보냈고 (자신의 의지로) 그리고 자신의 자유를 선택했으면서, 마음으로는 손을 놓지 않았다고 자신의 선택과 행위를 정당화 한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그것이 비겁하다고 생각되는 것이구요.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오랜시간동안 삶이라는 힘겨운 시간을 함께하며 일궈내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점에서 아이를 낳은것 보다 오랜세월 키워내는 일이 더 값지기에 글쓴분의 자기 합리화 (물론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한 사람의)가 비겁하다고 생각이 든 것 뿐입니다.
  • 물개 2012/07/11 [18:03] 수정 | 삭제
  • 작가님 이번 글이 저에겐 너무 감동적이에요. 남자 관계야 한쪽을 선택하고 뺏기고 잃고 하는 걸 수 있지만 딸이 친엄마와 새엄마의 사랑을 줄타기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는 낳아준 사람, 키워준 사람에게 다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중에 딸이 엄마의 사랑을 알게될 거라 생각해요. 글로서 보든 보지않든 사랑을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아픈 과거였지만, 구속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수 있어서 저는 딸을 만나러가는 길 볼때마다 가슴 두근거립니다.
  • 꾸씨꾸싸 2012/07/11 [16:05] 수정 | 삭제
  •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놓지 않는 것과 실제로 아이의 손을 늘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요. 당신이 자유로운 몸으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을때, 현실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어야 했던 엄마는 그 자유로움이 저당잡혀 있어야 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딸이 예전부터 지금껏 늘 손 잡고 있던 엄마를 택하는 것이 진정 당연하다는 것을... 한 생명을 온전히 키워내는 일은 그 생명을 낳는 것보다 훨씬더 위대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글이, 당신이 마음으로나마 늘 당신의 딸 손을 놓지 않았다는 걸 딸에게 알려주는 일의 일환 이겠지만, 저같은 타자는 당신의 자기 합리화로 밖에는 안 읽히네요. 남자들은 군대 얘기를 주구장창 하면서도 정작 군대와는 상관없이 살지만, 여자는 아이낳은 것을 오랜동안 기억하면서, 대부분 자기의 아이와 희노애락을 함께 하죠. 당신의 이야기는 남자들의 군대 얘기처럼 옛 이야기로써만 의미가 있을뿐 현실에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단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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