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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채, 산골에서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도은님이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연재를 시작합니다. 도은님은 두 딸과 함께 쓴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좌충우돌 성장기”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새잎 첫 책으로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골랐다. 다음 글부터는 두어 권의 책을 함께 이야기해보려 하는데, 이번에는 서문이 길었으니 이 책 한 권만 보도록 하자. 제목부터 좀 부담스러운가? 그래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알기 위한 첫 디딤돌로는 묵직하고 강력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외면하고 싶으나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 여기에 있다. 21세기를 사는 인간인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는 아주 불편한 진실!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관한 이야기이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스리마일” 같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들은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 그중 최고의 지능을 가졌다는 현생 인류를 심한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뜨리는 사고들이다. 나한테는 전쟁만큼이나 당혹스럽고 분노가 치미는 사고들이다. 인간은 정말 무엇 때문에, 그리고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까? 나는 진정 이런 세상을 원하지 않았다.
책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사고 후 해체작업자들, 그들의 아내와 가족들, 마을 주민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소방대원들과 군인들, 교사, 환경보호 감독, 기자, 사진작가, 카메라 감독, 의회 의원, 화학 엔지니어, 당 지역 위원회 서기관, 핵에너지 연구소 소장, 핵물리학자, 사고 후 태어난 아이들 등 체르노빌을 직간접으로 겪은 이들의 너무나 어리둥절하고 아프고 통렬한 이야기들이다. 삶과 죽음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자신을 체르노빌의 증인이라고 여기는 저자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증언하는 것이 과거인지, 미래인지, 나는 아직도 스스로 묻고 있다. 이 사건은 너무나도 쉽게 진부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시시한 공포물이 되어 버렸다. (중략) 그런데 체르노빌은 그 자체가 시간의 재앙이었다. 땅에 흩어진 방사성 핵종은 5만년, 10만년, 20만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인간 삶의 관점으로 보면 영원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여전히 낯설기만 한 그 악몽의 의미를 이해하고 연구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가?” 지금 30여 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라고 한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시아 31기, 그리고 남한에만 21개가 있고 계속 건설해서 2030년에는 40기가 될 예정이란다. 중국은 13기가 있지만 지금 남쪽 바닷가에 많은 발전소를 짓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종말을 앞당기는데 충분한 수가 아닌가? 26년 전 체르노빌 사건이 났을 때(1986년) 나는 대학생이었다. 기숙사 식당에서 틀어주는 TV로 체르노빌 뉴스를 들었지만 그냥 흘려 들었다. 그때 나는 정말로 무지했고 뭐가 뭔지 전혀 몰랐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조금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청년이었으나 한국 교육 체제의 수혜자인 걸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며 장학금 받기에나 관심을 쏟던 청춘이었다. 또 아르바이트하기, 연애하기, 시위하다 잡혀간 친구들 걱정하며 술자리에서 군사 독재 욕하기 등에나 관심이 있었을 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캄캄했다. 어떤 기술로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지고 사고가 나는지, 그것이 이 지구상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별 관심도 없었다. 나와 무관한 저 멀리 있는 그들의 일이겠거니 싶었나 보다. 냉전시대라서 미국과 소련 간에 핵전쟁이 터지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기억은 난다. 하지만 이 책에도 나왔듯이 원자력 발전소 같은 “평화적 핵은 집집마다 있는 전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원자력 발전소에 관한 정보도 아주 빈약했고, 파멸로 치닫는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도 많지 않았다. 지금은? 두렵고 슬프지만 관심이 많다. 삶과 죽음의 비밀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만큼, 인간 존재가 왜 생겨났는지 의문이 드는 만큼 관심이 있다. 이 지구에 존재하는 온갖 생명체들에게 관심이 가는 만큼 그들이 멸종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떠올리고 싶은 만큼,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부모가 된 만큼 관심이 크다. 이 기술 문명이 어디까지 지구를 파괴할까 근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인류란 종이 계속 이어질지, 이어진다면 어떻게 변화해갈까 궁금해 한다. 변화하는 지구 환경에서 미래 세대들은 어떤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방사능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출현할까? 이 책에 실린 수십여 개의 독백 이야기들은 각각 나름의 빛깔과 색조로 ‘불가사의한 것을 만나버린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 가만히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아주 낯선 이야기들이므로. 그런데 금지 구역에서 혼자 7년을 살아온 할머니 이야기가 이상하게 나는 낯설지 않았다. “이젠 다 익숙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것은 죽음이야. 그것 말고는 이 세상에 정의란 없어.... 나는 평생토록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했어. 하지만 정의는 나를 찾아오지 않더라.” 강도가 찾아오면 어쩌실 거냐고 순찰 경찰이 묻자 “우리 집에 뭐가 있다고? 내 영혼이라면 모를까. 나한테는 영혼밖에 없어. (중략) 심심해지면 조금 울지.” 또 다른 마을 주민들 이야기 “체르노빌.... 전쟁 위의 전쟁이었어. 어디에도 구원은 없었어. 땅에도, 물에도, 하늘에도....” “무슨 말을 더 하나? 살아야 했어. 그것밖엔....” “여기 왜 왔느냐고요? 여기서는 우리를 내쫓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이 땅은 이제 누구의 땅도 아니죠. 하느님이 가져가셨죠. 사람들이 버렸어요.” 만약 하느님이 있다면, 왜 그 땅을 가져가셨을까? 사고 이전 벨라루스의 풍요로웠던 자연들, 온갖 생명들이 깃들어 살던 무성한 숲과 들판들, 시골 마을의 공동체적인 삶들은 이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과거인가? 구 소련이 이 재앙을 전쟁처럼 전체주의적으로 해결하던 방식과 영웅적인 미덕으로 포장하려는 선전술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히는가. “우리는 믿는 데 익숙한 민족이다. 정부의 조치와 거짓말을 믿었다. 나는 당원이었고 침묵하면서 절대적으로 상부의 명령에 복종했다.” 책 곳곳에서 국가가 국민을 속이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체제 유지를 위한 무시무시한 속임수들. “공황이 조성되는 걸 막기 위해 기밀 사항으로...” “방사선량 측정 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습니다.” 올 봄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남한 정치인들의 발언 몇 개만 들어보자. “북한 핵 폐기를 위해 우리도 핵 주권을 가져야 한다. 대치 국가 간 핵 협상은 오직 핵으로만 가능하다”(새누리당 송영선) “요새 우리가 돈 벌 수 있는 부분이 원전하고 철도밖에 없어요. 지금 풍력, 태양력 그거 언제 해서 기술개발하고 언제해서 돈 벌 거예요?”(새누리당 강길부) “새로운 녹색성장 사업 중에서 핵심이 원전 기술 아니겠어요? 원전 비중을 계속해서 늘리는 것이 불가피한 방향이죠.”(새누리당 최경환) 이 정치인들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새로운 무엇,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을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것이다. 자기 자식들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 살고 있었더라도 그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까? 핵을 찬성하는 남한 정치인들을 체르노빌 근처에 보내는 건 어떨까? 아이들이 암으로 죽어가고 행복한 임산부와 행복한 엄마를 만나기 어려운 그곳에 이들을 보내서 몇 달만이라도 살게 하자. 이걸 이번 대선 캠프에 정책 제안으로 내보고 싶을 지경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체르노빌은 결코 과거가 아니고 미래의 연대기처럼 느껴졌다. 이미 난파해버린 기술 문명의 잔해들.... 인간은 그렇게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만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간절히 이야기하고 싶다.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살아가고픈 그대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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