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돈 같은 거 안 만들 거야”

[까페 버스정류장] 가족 안의 전쟁

박계해 | 기사입력 2013/03/11 [01:17]

“난, 사돈 같은 거 안 만들 거야”

[까페 버스정류장] 가족 안의 전쟁

박계해 | 입력 : 2013/03/11 [01:17]
※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  겨울의 까페 버스정류장  입구   © 일다
구정 다음날, 작년처럼 고향에 온 사람들이 카페에 많이 들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혜숙언니가 종일이다시피 소파에 앉았다 누웠다 하며 ‘아, 너무 좋다. 내가 이 카페 때문에 상주로 귀농을 결심했다니까’ 하고 치사라도 해주지 않았다면 억울할 뻔했다. 주말열차를 타고 동해 바다를 보러 가리라는 생각을 접고 문을 연 것이었으니까.

 
혜숙언니의 남편은 공무원으로 올 유월에 정년퇴직을 한다. 그래서 언니가 지난 일 년 동안 여러 귀농 강좌를 섭렵하고 귀농지를 찾아다녔다. 남편은 집에 가만히 있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라 퇴직 후에 곧 할 일을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의 수료 시수를 일정량 채우면 정착할 때 제공되는 혜택도 있고, 무엇보다 그걸 핑계로 난생 처음 울타리 밖 생활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오늘 이렇게 서울의 집을 비워두고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상주시에서 운영하는 귀농인의 집 덕분이었다. 정착할 때까지 월세 10만원에 임시거주지로 빌려 쓰고 있는데 처음에는 강의가 있을 때만 쉼터로 삼다가 지금은 오히려 서울 집이 가끔 둘러보러 가는 곳이 되었다.
 
명절은 잘 보냈느냐는 인사에 언니는,
“몇 년 전부터는 명절이라 해도 조용해. 동서가 둘 있는데 죄다 이혼하고 별거하고... 정상적인 집은 우리밖에 없어. 그러니 오가는 사람도 없고, 우리 서방은 속상할지 몰라도 나는 차라리 편해. 이번엔 떡국 한 그릇 후딱 끓여먹고 왔어.”

 
하며 생긋 웃었다. 나는 눈을 찡긋하며 놀리듯 물었다.

“응? 알고 보면 언니네가 제일 비정상 아냐?”
 
흔히들 그렇듯 언니 역시 남편과의 성격 차로 늘 심장이 부글거리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언니는 눈을 몇 번 깜박거리더니,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응, 그래, 맞아, 내가 제일 비정상이야.”
 
그리곤 이어서,
“난, 울 엄마 땜에 이혼도 못해. 그런 소리하면 나보고 미쳤다고 해. 팔순이 넘은 양반을 무슨 수로 이겨먹겠어.” 했다.

 
나는 마디가 똑똑 부러지는 소리로,
“아닐걸, 엄마 때문이 아니고 안 해도 돼서 안하는 거야.” 했다.

 
언니는 한참 대답이 없더니, 그럴 거야, 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 언니네는 지극히 정상이다. 성격 차이로 힘들어 하는 것이며, 이제 가능하면 따로 지내보려고 냉장고를 잔뜩 채워놓고 내려오는 것이며, 그 와중에도 남편이 제대로 챙겨먹는지 신경 쓰는 것까지가 다-, 중년부부의 예사로운 모습인 것이다. 그래도 당사자가 힘들다면 힘든 건 맞고, 살기 싫다면 그것 역시 이해가 된다.
힘들어하면서, 살기 싫어하면서도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리란 것까지.

 
“그 양반은 혼자서 못살아, 뭐 하나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어. 넥타이매고 출근이나 할 줄 알지, 못 하나도 못 박는다니까.”
 
“아이구, 언니, 그거, 자랑이거든.”
 
“이제 싸우기도 귀찮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
 
언니는 떠오르는 어떤 풍경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틀며 싸늘하게 말했다. 전쟁의 책임이 어찌 한 쪽에만 있을까. 아내들도 남편들도 모두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 전쟁이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양쪽 다 너의 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호소하며.
 
같이 평화롭게 사는 일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서로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지나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땐 분단을 택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남자들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아들인데, 어쩌면 나의 아들도 아내를 힘들게 할 것이고, 상심한 그녀도 내 아들을 떠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꼭 비극적인 풍경이어야 할까. 그들의 만남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이별 또한 자연스럽고 따뜻하면 좋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겠지만.
 
저녁을 먹으며 딸아이에게 다짐을 했다.
 
“난, 사돈 같은 거 안 만들 거야. 당연히 며느리도 사절이야. 딸의 남자, 아들의 여자라고 부를 참이니까 그렇게 알아. 명절에 내 집에 오고 싶으면 너만 와. 네가 너의 남자 집에 가는 건 상관없지만 그런 날 내 집엔 데리고 오지 마.” (나는 물론 아들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엄마, 그 말은 내가 십대 때부터 들었거든. 그리고 엄마가 명절이 어딨어? 이제 그런 거 안하잖아.”

“아, 그러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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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정류장 2013/04/10 [17:59] 수정 | 삭제
  • 들르다, 와 들리다의 차이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편집자님이 바꿔주시길....
  • 율리 2013/03/22 [12:23] 수정 | 삭제
  • 고향떠나 사는 사람에겐 명절이란 말만 들어도 그저 그립습니다. 한국명절 분위기 내본다고 한복꺼내입습니다.그러다 혼자입고 딱히 할일도 없어 괜히 자랑도 할겸 이웃집들을 한바퀴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외국지인들에게 한복도 입혀보면서 깔깔대기도 합니다. 아직도 제게 명절이란 "...할사람 여기여기 붙어라"큰소리로 외치면서 모두 우리집에 놀러오라고 노래부르는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
  • 상화 2013/03/19 [18:25] 수정 | 삭제
  • 박계해선생님
    양산의 상화엄마입니다. 일전에 일다에 연락처를 남겼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 박미경 2013/03/14 [19:42] 수정 | 삭제
  • 맨 윗줄 구정 다음날, 작년처럼 고향에 온 사람들이 카페에 많이 들릴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들를 ....................
  • 천명 2013/03/13 [23:48] 수정 | 삭제
  • 제가 읽은 글 한귀절 소개해 드릴게요...우리모두는 자신 안에 똑 같은 사랑과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지상에서 가장 큰 낭비이다....^^
  • 미리내 2013/03/13 [06:11] 수정 | 삭제
  • 당당하게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주눅들지 않는 모습~배우고 싶습니다. 글읽으니 힘 받아요! 저도 그런 비슷한 생각 했는데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속에서 남몰래 삼키고 맙니다.
  • 박조건형 2013/03/12 [00:30] 수정 | 삭제
  • 명절은 남자는 남자집에 여자는 여자집에 가는게 좋은 것 같아요. 왜 상대방 집안의 혈통을 있는 제도적 의례에 동원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남자의 씨만 혈통인것도 웃기는 것이고.....저는 항상 명절 전에 할머니에게 인사 미리드리고, 명절엔 친구들과 보내거나 짝지하고 보냅니다. 명절의 대이동만 없다면 국내 여행도 할텐데......대이동때문에 차를 타고 가는 생각은 하지를 못하네요.^^ 멋진 엄마이십니다.^^
  • 시우 2013/03/11 [07:37] 수정 | 삭제
  • 딸 낳기는 늦었고, 입양을 하자니 너무 떠돌아 다니며 살고. 그래서 전 아들의 여자(^^)를 딸 삼을 생각입니다. 남이 다 키워놓았으니 어부지리죠. ㅋㅋ 사돈이네 며느리네 하는 관계는 정말 왜곡된 관계를 만들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지 못하게 하죠. (덧글1)어, 바깥 풍경이 낯서네요. ^^ (덧글2)드디어 오늘 봄맞으러 카페 갈 계획입니다.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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