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음~~~- 죽어나듯 가는 신음소리가 문종이 밖으로 들리고 도랑골산파와 아지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무겁게 사방을 누른 지 벌써 한식경이 훨씬 넘었다.
무서리 되게 내린 동짓달 새벽은 뜨겁게 군불 지핀 아래채를 빼고는 만지면 어스러질 듯 얼어붙었고, 밤새 뜬눈으로 샌 안방의 큰아지매도 식어 들어가는 구들장 위에서 한기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곧추세운 한쪽 무릎만 연신 쥐어짠다.
-장서방, 대야에 물들여-
아래채 방문이 열리고 쇠죽간 가마솥 앞에서 반은 졸고 있던 장서방을 향해 아지매는 황급히 한마디 던지고는 도로 문을 닫았다.
놋대야에 김이 설렁거리는 물을 담아 들이고 찬물 한바가지 떠오라는 산파의 매몰찬 소리를 들은 후에나 장서방은 정신이 나는듯했다.
-곰탱이, 누굴 삶아죽일려나! -
-야야~ 애썼다 소향아~-
-아는 튼실하데이~-
-장서방! 큰아지매한테 아들이라 해!-
산파와 아지매의 뒤섞인 소리를 찬물 한 바가지와 바꾼 장서방은 안채 봉당 위로 성큼 올라서며 호칭 없이 그저 -아들이랍니다-하고 대답을 기다린다.
-안방에 불 넣고 광수 집에 가서 영감님 오시라 해-
대답도 하지 않고 오들거리는 합바지 속의 육신부터 녹일 양 아궁이에 장작불을 먼저 지핀 장서방은 삽짝으로 나선 후에야 비로소 날이 샌 걸 알았다.
절인배추마냥 땀에 젖은 몸을 옆으로 가누고 소향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새 생명의 입에 젖꼭지를 물리고 힘없이 뜬 실눈으로 빨간 핏덩이를 보고 있다.
산통을 겪는 동안 한 번도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마치 사선을 넘나드는 양 아득했던 기억이 또 아득하게 잊혀져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들 때 즈음 영감님의 기침소리와 안채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아지매의 발소리, 그리고 헛간 옆에서 장작을 패는 장서방의 도끼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그리고 뚝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흰 수건으로 말려있는 베갯잇을 적신다.
덕호리가 그립다. 민둥산도 그립고 갯내음도 그립고 보채는 아이마냥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는 더더욱 그립다.
창선도가 오른쪽에 신수도는 왼쪽에 자리 잡고 그 사이로 보이는 남해섬이 삼천포 포구를 마치 새끼 안은 둥지 같이 포근히 감싸있는 정경이 소향이 살던 덕호리에서 훤히 한눈에 보이지 않던가.
사변 통에 두어 달 합천으로 피난을 떠났던 걸 빼고는, 아는 곳이라곤 오직 덕호밖에 없던 소향이 코끝에 매달려있는 비린내를 달고서 이곳 태봉에서 지금은 핏덩이를 안고 누워있다.
본채 지붕이 가렸던 햇살이 아래채 소향의 창호지 문을 비스듬히 비추는 늦은 아침이다. 문이 열리고 소반 위의 단출한 사기그릇에 미역국과 하얀 쌀밥을 든 작은아지매가 들어선다.
-야야, 일나거라 소향아_
-그저 묵기 싫어도 부지런히 무야한데이, 니가 무야 아 무길 젖이 나는기라-
입에서는 단내만 풍기고 삭신이 이완된 소향이 거무 같은 눈만 치켜뜨고 꼼짝도 못한다.
아지매는 꼬물거리는 애기를 누비포대로 싸 옆으로 밀치고 소향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식기 전에 묵거라, 형님이 아 좀 안고 오란다. 영감님도 안방에서 기다린다-
아지매는 포대기에 말린 애기를 다독거려 안고 일어서는데 소향의 시선은 아지매 동작의 선을 따라 똑같이 움직인다.
-앵---- 하는 애기울음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고 닫으면서 무언가 중얼거리는 아지매의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텅 빈 방안에서 소향은 갑자기 세상이 온통 빈 공간으로 느껴졌다. 뱃속에서 빠져나간 아이, 그리고 방안에서 사라진 아이, 힘없이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안방 문이 닫히면서 희미하게 사라진 즈음에 소향은 방바닥을 짚고 있던 팔을 굽히고 도로 웅크려 눕는다.
뱃속에 아이를 지니고 있을 때에는 무언가 든든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리 허전하고 불안하고 난간에 서 있는 느낌이란 말인가. 마치 이곳 태봉에 처음 오던 이태 전의 그 막연함이 다시 기억나는 듯.
무당은 소향에게 험한 세상에 너도 팔자 고치고 집안 살림도 피게 해 준다는 말을 무수히 했다. 골골거리는 버스를 타고 또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는 화통열차를 타고 마지막으로 삼십 리 길을 걸어 상주에서 태봉에 오는 동안 한손을 휘젓고 걸어가는 무당은 팔자라는 말을 골백번도 더했다.
아버지는 합천 피난살이 중에 눈치 보이는 먼 일갓집 살림이 보기 힘들어 무언가 해보겠다고 나간 후 덕호리에 돌아올 때까지 소식이 없었다.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살림을 엄마는 너무 힘겨워하셨고 맏이로 태어난 애성 많은 소향은 엄마와 함께 식구들 입 건사하기에 바빴다.
서울이 수복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또 눈치 보이는 먼 일갓집 더부살이가 힘들어 모르는 아버지 소식도 남겨둔 채 덕호로 돌아왔지만 포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고 조개를 캐고 미역을 따는 것으로는 식구들의 호구지책이 되지 않았다. 작은 해군정들이 들락거리는 포구는 몇 척 남은 목선들의 어부들이 북적거리는 군인들 눈치 봐가며 겨우 근해 고기잡이 하는 정도이니 해방 후에 왁작거리던 삼천포가 마치 괴질 도는 동네마냥 숨소리도 죽은 처지였다.
그래도 아침마다 소향은 엄마를 따라 키 작은 소나무가 늘어선 사금밭 길을 거치고 포구가 시작되는 거북바위를 지나 삼천포 시내로 갔다. 열여덟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려보이는 소향은 질끈 묶은 머리꼬리를 달랑거리며 말도 없이 종종걸음 치는 엄마를 열심히 따라잡았다. 한시라도 빨리 가야 그나마 몇 척 들어오는 고깃배의 생선 배 따는 일이라도 얻어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거나, 아니면 아는 남정네의 고깃배거나 혹은 넉넉히 고기가 잡힌 날에는 아쉬운 소리 내지 않고도 일을 얻어 엄마는 배를 따고 소금을 흩이고 송판상자에 담아낸다. 소향은 서툰 탓에 허드레심부름이나 하고 배꾼들 막걸리에 담배심부름까지 그저 엄마 눈치 보며 하루 종일 엄마주위를 맴돌면 선주는 몆 푼을 주곤 하는 게 현금이 귀한 포구에서의 유일한 벌이였고 엄마는 정해놓은 시간 없이 그저 생선이 다하면 일이 끝나는데 들쑥날쑥 하는 일의 양으로 보아 품값이 몇 환인지는 모르지만 눈치로 보아 하루에 한 1000환은 받을 양이렸다.
쌀은 귀해서 값도 모르지만 그나마 보리 한말 사는데도 장날마다 미곡금이 오른다고 푸념하는 엄마는 며칠마다 광목자루에 담긴 보리쌀을 머리에 이고 얻은 생선이 달린 나뭇가지를 들고 아침 길을 되감고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전어가 많이 나는 가을이나 쥐치나 멸치 그리고 비싼 농어 등이 풍요한 계절이지 그나마 찬바람 불고 서릿발 날리면 날품마저 뚝 끊어지기 일쑤인데 정월 보름 무렵에는 포구의 풍어제 준비로 소향과 엄마는 근 열흘 정도 품을 팔고 족히 쌀 한가마는 살 수 있는 만환은 만질 수 있으니 입들이 옹기종기 들끓는 형편에 겨울나는 목돈으로 그만한 것이 없기도 했다.
휴전은 되었다지만 아버지는 감감무소식이고 엄마는 하루하루를 사느라 어디 기별을 넣어볼 여유도 없어보였다. 1954년 정월에 전쟁 통에 몇 년 건너뛴 풍어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소향에미는 겨울을 날 수 있는 목돈마련의 희망에 때 절은 광목치마를 질끈 묶고 포구난전의 대폿집으로 소향을 대동하고 나섰다.
대폿집은 풍어제의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제수를 마련하느라 서너 명의 아지매들이 분주하고, 제주노릇 하는 수협장과 인근의 사천, 고성, 남해에서 제일 부자라는 사람이 매일 드나들며 상전대접 받아가며 간섭을 멈추지 않고 몇몇 남정네들은 인근 섬으로 돌아다니며 기부금도 걷고 제품도 챙겨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해 정월보름 다음날에 풍어제가 열렸다.
선창 한가운데에 차려진 제상은 마치 신파 연극무대만큼이나 크고 화려했다. 제대를 마련한 단상 주위에는 오색 깃발이 나부끼고 선주들의 이름이 적힌 문종이가 제상을 에워싸고 앞 열에 놓인 유기제기 위의 떡과 과자들은 화려하기가 그지없었다. 뒤에 놓인 열두 폭 병풍과 제일 앞에 놓인 방짜향로는 여느 제사상과는 다르게 한마디로 웅장하고 조금은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문을 외는 수협장이 초헌관이 되어 첫잔을 올리고, 이어서 만석부자라는 자가 아헌관이 되어 갑산을 향해 두 번째 잔을 올리고, 또 누군지 모를 자는 종헌관이 되어 향로 앞에서 연신 절하고 굽신거렸다.
모인사람들이 그저 빨리 끝나고 음복하기만을 고대하기는 소향도 마찬가지였지만 용왕제까지 이어지는 무당의 요령소리가 끝나기까지는 사람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는 늦은 오후나 되어서였다.
소향어머니는 남아있는 음식을 삼베조각으로 기운 대소쿠리에 쏟아 부으면서 연신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 제가 끝났으니 그릇을 부시고 누구네 그릇인지 대폿집 아지매의 지시대로 나누어 담고, 아직도 술을 찾는 남정네들을 간간히 달래어 술 한사발로 비위를 맞추며 등을 떠밀어내고, 그러면서도 먹을 것이 남아 들어오면 여지없이 소쿠리에 들어부었다.
샘이 멀어 하루에도 물을 수십 동이나 이고 오는 소향은 이제는 목이 나무둥치같이 뻣뻣해서 더 이상 감각도 없을 지경이라 물동이를 내리기도 전에 턱 밑에 맺힌 물을 훔쳐내면서
-엄마야! 내는 더 못하겠다 인제-
-오야, 인제 다 됐다, 니는 저 소쿠리 이고 퍼떡 집에 가래이-
-우짤라꼬, 내도 돈받아야재-
-이년아, 돈은 낼 준다 쿠더라 수협장이-
소향은 줄행랑치듯 소쿠리를 머리에 올리고 집으로 가는데 하루 종일 물동이를 인 탓에 머리가 흠뻑 젖어있어서 소쿠리 속에서 무슨 음식물이 흘러내리는 줄을 모르다가 입속에 간간한 소금물이 배고 눈이 따가워서야 알았다. 거북바위에 앉아서 일렁거리는 대소쿠리를 내려놓고 머리짱배기를 만져보니 끈끈하고 미끈하고 물컹거리는 축축한 국물에 머리는 온통 범벅이 되어있었다.
남폿불이 켜질 때쯤 일을 얼추 끝낸 여자들은 머리의 수건을 벗어 털고 대포집주인여자에게
-우린 갈랍니데이- 하고 대답을 기다리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
소향에미는 마음이 급했다. 어린것들을 두고 온종일 집을 비웠으니, 어둡고 추운 음력섣달 날씨 탓일까? 마음이 대나무 마른 잎처럼 설렁거렸다. 그때 족제비 목도리에 회색 공단두루마기를 걸친 여인이 들어서며 소향에미에게 한마디 한다.
-아지매, 낮에 아지매 옆에 있던 아가 딸인교?-
밑도 끝도 없이 묻는 질문에 소향에미는 -누군교?- 하고 되묻는다.
-아! 지는 낮에 제사모신 보살입니데이-
그때서야 여인이 무당임을 알아차린 소향에미는 - 예, 근데 그건 와 묻는교?-
- 아까 보이 나도 다찾더만 내가 중매설라캅니데이-
-예? - 엉뚱한 말에 다음 말을 잇지 못한 소향에미는 시큰둥하게 돌아서면서 한마디 한다.
-가는 아직 압니데이-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무당은 이틀간 묵은 포구 여곽에서 이미 소향에미와 소향의 얘기를 듣고 온 것이었다. 낮에 굿을 하는 동안 소향에미는 소식 없는 서방을 보살펴주고 기별이라도 알게 해달라고 빌고 소향은 엄마 옆에서 옷섶에 시린 손을 넣고 넋을 놓은 채 구경을 하는 동안 무당은 두 모녀를 보았고 여곽에 돌아오자마자 물어보았던 것이다.
-아지매~ 낼 지캉 얘기 좀 나눕시데이-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답도 않고 소향에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그녀를 털보무당이라 불렀다. 어디서 사는지도 어디서 왔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나타나고 여곽에 한 보름씩 묵으면서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여인네들을 상대로 부적내림도하고 고백도 들으며 점사를 봐주고 때론 옷 보따리 속에 묻어놓은 작은 혁낭 속에서 경명주사나 영사를 꺼내 팔기도 했다.
털보무당이란 이름은 해방 전 언제쯤인가 그녀가 첨으로 인근 섬을 돌면서 신당도 없이 떠돌이 보살을 할 때 같이 동행하던 얼굴에 수북이 털이 난 남정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비록 지금은 혼자 다녀도 그 이름은 여전히 그녀를 대신하여 불린다.
사람들은 그녀를 칭하여 혼을 잘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유계를 떠도는 영들을 위로하거나 대소명사에 청배되어 굿판을 관장하거나 때론 망자의 혼례도 주관하는 것이 털보무당의 대다수의 일거리이지만 전국명산대찰을 다닌다는 핑계 아래 전라도부터 경상도까지 심지어 멀리는 강원도 영양까지도 곳곳마다 사랑방 하나쯤 마련해놓고 바람처럼 사는 무당이다.
발 넓은 무당이 함께 지니고 다니는 것이 소리 소문이다. 그 정보는 무당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에, 또 밖의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시골 촌부들이기에 그저 믿고 놀라고 애석해 하고 욕하고 때론 웃으면서 무당의 말마디는 환영받는다. 소문을 전하며 또 소문을 듣고 다시 그 소문을 밑천삼아 신령을 팔지 못할 때는, 때론 사람을 팔기도 하는 것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그녀의 은밀한 돈벌이였다.
그녀가 가는 어느 곳이건 보름만 머물면 인근의 온갖 여인네들의 잡다한 소식들이 모아지고 심지어는 누구네의 이불속사정까지도 꿰뚫게 되니 목포과부는 김천의 감골영감 재취로 넘겼고 진주 송답골 처자를 광주유곽에 팔기도 했을 뿐더러 유모를 연결해주거나 씨받이를 소개해주고 받는 돈이 큰 목돈 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털보무당이 삼천포에 나타난 지난 동짓달에 수협장으로부터 풍어제에 청배되었고 그 후 두어 달을 포항으로 영주로 문경으로 다니다가 상주에 들러 낙동강 지류에 있는 신덕에서 점괘를 보러 온 곱게 늙어가는 여인네를 만났던 것이다. 옥비녀를 꽂은 자태며 흐트러짐 하나 없이 정열하게 빗어 넘긴 머릿결, 입고 온 비단두루마기를 훔쳐보며 무당은 연신 담배를 뻐끔거린다.
시골 초당을 빌어 사람들 속에서 며칠씩 입놀림을 하자면 그나마 담배가 제일로 피로를 풀어주는 지라 입에 올리다 보니, 이제는 인이 박힐 대로 박혀 여인네 앞에서는 물론 남정네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피우는 지경이다.
여인의 얼굴이 햇빛을 보지 않은 양 희고 고운 것은 들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손에 낀 가락지가 양손의 중지, 약지에 주렁주렁 달린 것으로 보아 심지어 집안일도 거들지 않는 대갓집여인이라....... 무당은 담배를 하나 더 말아 올리며 입을 연다.
- 뭐 땜에 왔노?-
기 꺾는 첫마디다. 어차피 어두운 곳, 험한 곳 뒷전에서 살며 온갖 인간들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인 무당은, 그깟 양반댁이나 대감댁 정도는 이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시대적 변화도 익히 알고 있고, 또 첫마디에 마치 인간을 내려다보는 신령의 위엄처럼 대수롭게 기를 죽이는 것이다.
미간을 희미하게 찌푸린 여인은 입을 연다.
-태봉에서 왔습니다. 문경에 사는 우산정씨 종부가 저의 질녀인데 얘기 듣고 왔답니다-
-아! 그 아지매 한 이틀 됐나? 왔다갔지. 그런데 , 태봉이 오데고?-
물론 무당이 한참은 위인 것이 분명하지만 하대에 익숙지 못한 여인은 박하게 달린 귓불을 발갛게 익히며 대답한다.
- 함창이랍니다. 시오리는 되지요-
담배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넣은 무당은 여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그런 당돌한 눈길에 여인은 그저 몸 둘 바를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담뱃재가 떨어질 때쯤 무당은 재떨이를 당기며 때꼬장물이 밴 버선을 치마로 덮어 감춘다.
-와? -
-우리 집에 손이 없답니다. 한번 봐주시면 해서-
무당은 사주를 묻지 않는다. 역학이라곤 배워 본적도 없고 그나마 언문도 모르는 주제니 내림신 봉양하고 요령 잘 흔들고 온갖 신을 입에 올리며 풀쩍 펄쩍 잘 뛰는 게 그럴싸한 무당노릇이고 점이나 사주를 찾는 사람에게는 그저 다섯 손가락의 마디를 이용하거나 쌀 한주먹을 소반 위에 쏟아 붓고 알아듣지 못할 중얼 염불을 하면서 한눈으로는 그들의 표정을 살피는 게 무당이 잘하는 눈치역학이었다.
-천신 지신 전부 복도 화도 내리시지만 조상신이나 삼신할매도 신수화복을 돌보시니 내가 댁을 한번 봐야겠네. 낼 점심 전에 내가 갈 테니 정한수 한그릇 떠놓고 밑에 복전이나 넣어놔.-
-물 한 그릇만입니까?-
-영감도 같이 있으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