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정월을 며칠 남기지 않은 섣달 끝목이었지만 그날따라 날씨가 화창하였다. 늘 감고 다니는 족제비 목도리를 두르고 하나뿐인 공단 두루마기를 여미고 털보무당은 여인이 알려준 대로 길을 나섰다. 낙동강 지류라고 하지만 흐르는 물은 적어도 강폭은 영산강의 두 배도 넘을 것 같이 넓고 회색으로 변한 산천이 마치 병풍 속의 묵화처럼 온화하고 조용했다.
희끗희끗 스치는 바람은 그래도 섣달 찬바람이지만 걸음을 재촉하느라 쪽진 머리카락 속은 땀이 배어나왔다. 강줄기를 오른쪽으로 보내고 길이 왼쪽으로 굽어들자 산천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넓은 들판이 눈에 들어오고 멀찌감치 봉긋이 솟은, 마치 사발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동산이 보인다. 저것이 태봉산이고 그 옆의 마을이겠거니. 무당은 여인의 긴 설명보다 훨씬 찾기 쉽다고 생각하며 크게 우회하는 달구지길보다 짧게 질러가는 논둑길로 걸음을 옮기는데 논두렁에 남아있는 콩 밑둥이가 마치 대나무 죽창처럼 고무신을 찔러댄다.
산이랄 것도 아닌 작은 동산 밑에 한 이십여 호는 됨직한 마을이고 그중에 색 바랜 기와를 이고 있는 큰집이 하나뿐이라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열려있는 솟을대문을 들어섰다.
아이 둘이서 마당에서 팽이를 돌리다가 -엄마, 누구왔데이- 하고 그중 큰놈이 소리를 치고 세 칸짜리 아래채의 문이 열리며 황급히 젊은 아낙이 머리를 추스르며 고무신을 돌려 신는다.
-어서 오이소. 오신다고 형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데이-
마치 말을 귓전으로 들은 양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무당은 마당 한가운데 서서 집을 휙 둘러본다.
제법 높게 올라있는 대청은 돌계단을 다섯이나 올라야 하고 오른쪽으로 부엌, 가운데 안방, 그리고 왼쪽으로 건너방이 있고 그 사이에 나무로 된 문이 달린 방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내실에서 쓰는 광이라 생각 든다. 방금 아낙이 나온 아래채는 제일 아래가 마구로 보이고 그 위에 방이 두 개가 있다. 마구는 비어있는 것으로 봐서 지금은 소도 말도 키우지 않는 모양이었다.
-형님, 손님 오셨읍니데이-
이미 인기척을 아는지 안방 문이 아낙이 부르는 소리와 동시에 열린다.
-올라오세요-
별다른 인사 없이 여인은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얼굴표정으로 대청난간으로 걸어 나와 치마한쪽을 잡고 선다.
-손이 있으면 신 좀 닦아노라 하소-
흙을 잔뜩 묻힌 고무신이 초라하게 보일 것인지라 댓돌을 올라서며 무당은 한마디 한 후 여인을 앞서 여전히 열려있는 안방에 발을 들여놓으며 우선 가세를 살핀다. 콩기름 후하게 먹인 장판이며 자개장과 농, 반닫이에 머릿장까지 음각초문기 장식에 둘러싸여 화형경첩으로 마무리된 기름기 흐르는 안방의 진열이 아직은 밥술께나 먹고사는 만석이 아니면 적어도 천석지기는 될 량 싶었다.
차마 아랫목으로 궁둥이 붙이기는 지나치다 싶고 또 여인의 냉랭한 얼굴이 은근히 범접을 허락지 않는 듯 하여 편하게 윗목 반닫이 옆으로 좌정한 무당은 다짜고짜 묻는다.
-영감님은 어디 계신교?-
-사랑방에 계시는데······-
-소반에 물 한 그릇 떠오라고 하소. 그라고 내가 영감님 좀 봐야겠는데. 오시라 카지 말고 내가 사랑방으로 가면 되지. 잠시 얼굴만 좀 보면 돼. 알고 계시나? 내 온 거?-
여인이 일어서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마디 하고 나간다.
여인의 얼굴로 봐서 잉태할 나이는 훌쩍 넘은 마흔은 족히 돼 보이니 이제는 영감을 보고 짐작을 해볼 요량이다. 말도 없이 여인은 안방 문을 열고 무당이 따라나서고 대청을 가로질러 덧문 달린 사랑방 앞에 섰다.
미닫이문을 열어주는 여인을 보고 사랑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 내 혼자 잠시 영감님캉 얘기 좀 할 거니 정한수나 떠 놓으소-
그리고 문을 자기 손으로 닫으면서 앉아있는 영감을 향해 -잠시 들립니다- 하고 앉는다.
아랫목에 앉아있던 영감은 엉덩이만 덜썩 옮기며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건성으로 한마디 한다.
- 안즈이소-
아직은 갓끈이 덜 떨어진 양반집 남정네라 무당 따위에게 고개를 숙일 순 없다는 말이겠다? 무당도 꼿꼿이 고개를 들고 똑바로 보며 영감의 얼굴을 살핀다. 필시 마흔 중반은 됨직하지만 아직 흰머리 한 자락 보이질 않고 혈색이 충만할 뿐더러 눈 속 검은자가 마치 호안을 연상시킬 만큼 힘이 있어 보였고 하이칼라로 빗어 넘긴 머리와 입고 있는 마고자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바뀌어 가는 세대의 흐름을 익히 아는 듯했다.
그는 함창김씨 24대손 김태섭이다. 때론 함녕김씨라고도 불리는 고려 김요대감의 후손으로 이곳 태봉에 자리잡은 지 수백 년이 넘은 인근에서는 널리 알려진 양반집 장손으로 신문학도 익히고 대처생활도 했지만 장손이라는 이유로 꼼짝없이 고향종가를 지키는 처지이다.
-종이에 이름 석 자만 적어 주이소. 내 얼굴은 봤으니 됐고-
말끝을 흐리면서 일어서서 나와 안방으로 들어서니 옻칠이 잘 먹힌 십이각반 소반 위에 하얀 사기대접이 놓여있다.
-영감님이 이름 적은 종이를 줄거니 그거 받아 오소-
말없이 일어서 나가는 여인의 치마폭을 보면서 무당은 생각해본다. 늙은이는 아니지만 애기를 가질 만큼 여인은 젊지는 않고 남자의 눈에 어린 정기를 볼 때 배냇병신은 아닐 테고······. 가세가 넉넉하니 그동안 별의별 치성과 영효보약으로 내외간에 정성을 드렸음이 분명한데······. 아직 손이 없으렷다.
돌아온 여인이 손에 접힌 문종이 한 장을 내밀고 무당은 그것을 받아 담배낭 속에서 꺼낸 성냥으로 불을 붙여 손으로 퉁기며 공중에서 사른다. 그리고 그 재를 주워 사발 속의 물에 띄우고 물끄러미 보면서 양손을 비빈다.
-동해에 있는 고기를 서해서 우째 잡노-
-궁합을 누가 봤는지 모리지만 손이 있긴 있어. 그것도 아주 장대한 손인데······-
사발 밑에 깔린 복전이 궁금해 죽겠는 처지지만 여인의 냉랭한 얼굴이 결코 박한 인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짐작하여 그저 하루 발품 이상은 되리라 맘 놓는다.
-수생목이라 다 좋은 게 아니고 수극화라고 다 나쁜 게 아인데······. 물이 너무 많으면 나무는 살기는커녕 죽어삐지, 그라고 물이 불을 끌 수도 있지만 불이 물을 펄펄 끓일 수 있는 건 와 모리노. 누가 궁합을 봤는지. 보긴 옳게 봤지만서도 한 치 속을 덜 봤네-
털보무당이 팔도를 돌면서 사랑채를 빌어 복채를 챙길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그 입담 때문이었다. 지리산 계곡에 있는 어느 보살의 암자에서 부엌데기로 크면서 글자 한자 배우지는 못했지만 사람 홀리는 주술주문에서 혼자만 아는 중얼염불까지 심지어 칼춤도 배웠고 입으로는 음양오행을 거덜먹일 만큼 귀동냥도 했다. 그 덕에 비록 뿌리내리고 살지는 못하지만 여비 걱정이나 때거리 걱정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살수 있었다.
여인의 나이를 짐작해 볼 때 마른 땅에 씨앗 뿌리는 경우일 것이고 하지만 남정네는 개기름 흐르는 벌건 얼굴혈색이 지금이라도 열 계집 마다하지 않게 보이겠다. 하지만 그 흔하다는 작첩도 못한 남정네라······. 냉랭한 여인의 얼굴이 종손의 허리춤을 바짝 거머쥐고 사는 게 분명하리라.
-시집을 가. 가면 아들도 낳고 딸도 줄줄이 낳을 수 있어. 영감하곤 안돼. 영감도 장개를 보내. 그러면 아들도 있고 딸도 있어-
시집을 가라니? 그러면 아들도 있고 딸도 있다? 지금까지 숨 죽이고 고개 제대로 들지 못한 게 내가 못난 년이라서 그런 게 아니였단 말인가?
-아까 밖에 있던 아들은 그 새댁 아들들인가? 댁 보고 형님이라 쿠던데?-
-동서랍니다. 아직 분가를 하지 않고 있습니데이-
-다 버리고 새시집 가. 아! 아들도 보이고 딸도 있구만 뭐 할라꼬 여 있노? 그라고 영감도 그렇지 뻔히 있는 손을 못 보니 그것도 답답할 일이지. 안 그렇노?-
무당은 여인의 얼굴을 살피면서 되지도 않을 새시집 타령이다. 대갓집 여인 보고 그것도 종가의 며느리 보고 새시집을 가라? 우선은 여인의 마음을 잡아끌어 놓아야 목돈이라도 생길만한 일을 만들 수 있으랴! 돈은 원래 안에서 더 많이 나오고 또 뒷걱정도 없는 게 안돈이니라! 당신이 손이 없는 것은 당신 탓이 아니라고 자존심을 추켜세우는 중이다.
-그 실없는 소리 고만 하시고 무신 방도나 알아보이소-
-새서방을 보든지 아니면 새색시를 보라카이 내 말 못 알아듣나? 금술하고는 다르지. 둘이 금술은 좋아. 백년해로 해! 근데 손은 딴 데서 보게 돼 있어. 이거이 푸닥거리 한다고 타고난 사주팔자를 고칠 기 아이지. -
여인은 아무 말이 없이 그저 버선발만 보고 있다.
시동생이 아들을 둘씩이나 낳을 동안 그 얼마나 마음고생을 숨기고 앓았는가? 때마다 모이는 종친들의 눈길과 속담을 등 뒤로 듣고 느끼면서 점점 불안해지는 자신의 위치가 마냥 위태롭게 느껴지지 않았던가? 시집 온 지 벌써 열여섯 해를 넘기는 동안 모든 종사를 손에 쥐고 좌지우지 했어도 그놈의 자식소리만 나오면 땡볕 쬐인 호박잎마냥 축 처지는 자신이었다.
첩을 들이라는 말도 수없이 물리쳤고 시동생의 자식을 양자하라는 말에도 지금껏 버티고 있다. 하지만 지금 무당이 하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 모든 게 그 잘못된 궁합이렷다?
정적이 싫어서 또 이제는 슬슬 일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무당이 준비된 말끝을 풀어 놓는다.
-씨만 내리게 하소. 그라면 그 아는 댁이 키우고 아무 뒤탈도 없구로 내가 해줄꺼이니-
-첩을 들일 수는 없습니데이-
-그 기 아이고, 씨받이를 두라카는 말이지, 내가 봐서 영감 궁합하고 딱 들어맞는 처녀를 하나 찾을 거니, 그저 넉넉하게 전답이나 마련해주고······. 또 그것도 아들 놓은 담에 줄 수도 있는 기라.
하지만 내가 보면 틀림없지. 아, 팔자에 있는 아들이 어디 가?-
여인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 없이 그저 듣고만 있다가 조용히 입을 뗀다.
-우리는 종손 집안입니데이. 우짜다 사람들 입에 우사스럽게 오르는 말거리가 되는 건 안 됩니데이. 또 아무나 들일 수도 없는 일이라······-
종손 집안이라서가 아니라 니 년의 그 잘난 자존심 때문이겠지. 서방 옆에 딴 계집이 붙어있는 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납 못하는 그 냉랭한 얼굴이 다 말해준다 이것아!
-집안은 안 보더라도 근본을 알 수 있는 아라야 합니데이. 흠 있는 아도 안 되고 일가붙이가 멀리 있을수록 좋습니데이. 논 서 마지기는 내 놓을 터이니 보살님이 알아보이소-
여인은 마치 준비된 서책을 읽는 양 미동도 하지 않고 말을 마친다. 말하는 내용으로 봐서 그동안 이미 수많은 사례를 혼자 궁리해본양이다. 오죽했으랴! 하지만 무당에게는 그저 희소식이고 타산지석일 뿐이렷다.
궁금한 건 발품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지만 무당은 묻지 않았다. 거래는 물건을 봐야 값이 정해지는 법. 내 놓는다는 서 마지기 논도 다섯 마지기도 될 수 있고 자신의 몫도 모두 물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법. 이런 일이 일년 푸닥거리보다 더 알짜배기 목돈이라는 생각에 맘이 급하다.
사변통에 자식 잃은 사람도 많았고 부모 잃은 아이들도 많았지만 생사의 소식보다 우선 산목숨 부지하는 것이 급선무라 세상은 야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리산 일대로 숨어든 빨치산들은 연일 세상을 시끌거리게 만들고 휴전은 되었다 하나 또 화폐개혁이 되어 물가는 백 배는 연일 다르게 올라 혼란을 초래하고 사람 사는데 필요한 물자 하나 넉넉한 게 없을뿐더러 설령 있다 한들 수중에 그만한 것을 살 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니 산촌의 색시들은 대처로 식모살이를 가고 섬이나 바닷가 처녀들도 줄줄이 보따리 안고 서울행 열차를 타니 사회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였다.
경상도를 두루 돌아보고 갑오년 정월에 삼천포로 풍어제를 봉제하러 포구에 있는 여곽으로 처소를 정하고 인근 섬에 있는 몇몇 아는 사람들을 파발로 하여 무당은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여자는 있으되 소박맞고 친정으로 돌아왔거나 혹은 손이 모자라는 살림에 일손 하나라도 놓칠 수 없거나 아니면 은근히 부르는 값이 배 한척 값이라 이것저것 아무리 맞추어 보아도 구색 맞는 여자가 구해지질 않는 통에 무당은 속으로 정 안되면 지난해 여름에 광주유곽에 팔아넘긴 진주 송답골 처자라도 찾아서 어떻게 해볼 요량이었다.
삼천포 풍어제가 열리던 날 무당은 제상 앞에서 음식을 나르고 정리하고 소란스럽게 어린 처자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아낙을 보았고 그리고 용왕제 굿판이 한참 열을 더하는 통에 그 아낙이 처자를 옆에 두고 함께 치성을 비는 것을 눈여겨보았던 터라 여곽으로 돌아오자마자 주인여자에게 물어보았던 것이다.
-그 아지매는 소향이 엄마인데 저 넘어 덕호에 삽니데이. 딸아는 한 열 여덟쯤 됐을끼고 사변통에 신랑이 행방불명된 뒤로 딸하고 포구에 거의 매일 일하러 안 다닙니꺼-
귀가 번쩍 뜨이는 털보무당이었다.
집에서 사는 열여덜 딸이라. 처녀이겠다. 살림 어렵겠다. 상주까지는 천리 길이라 소리 소문도 닿지 못할 거리이고. 내친김에 여곽 주인에게 이것저것 더 알아보았지만 그저 딸린 입이 서넛은 더 된다는 것 외에는 별게 없었다.
무당은 마치 죽었다가 돌아오는 자기 딸이라도 만나는 양 설레고 벅차기까지 했다.
점잖게 옷을 바꾸어 입고 곧장 대폿집으로 발을 옮긴 무당은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털고 이제 막 집으로 가려던 소향어미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었다.
정월 중순의 아침 바다바람은 살을 에이듯 차갑다.
시간으로는 아침을 훨씬 넘긴 한 10시쯤은 되었지만 햇살은 여전히 사각으로 비추니 밤새 얼어붙은 천지가 여전히 찬 기운 속에 갇혀있고 품삯 받으러 가는 소향어미의 발걸음은 동동걸음을 친다. 대폿집 문은 닫혀있다. 아마도 어제의 풍어제 뒤끝이 길어진 모양이다.
안에서 들리는 두런거리는 소리를 확인한 소향어미는 문을 열고 얼굴만 들이밀고 안을 살피는데 부엌 입구에 위치한 방의 미닫이 문이 열리고 대폿집 아지매가 반색을 한다.
-들어와 추워. 안 그래도 보살님이 아침부터 니 기다리고 안 있나-
안으로 들어서는 소향어미는 그제서야 어젯밤에 스쳐들었던 소향이 중매 어쩌고 하던 기억이 난다. 무싯날이라 아예 장사 속뜻도 없는지 대폿집은 썰렁하고 풍어제 뒷일도 아직 정리되지 않아 여기저기 널려있는 사물들이 여간 사납지가 않다.
-아직 수협장이 안왔습니꺼?-
보살을 힐끗 보면서 자리를 잡는데 방바닥이 차가운 자기 손보다도 더 차게 느껴졌다.
-그 양반 어제 술께나 했으이 오긴 오겠지만 오데 시간은 짐작하겠나? 바쁘면 가거래이 내 받아노꾸마-
대폿집 아지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당이 한마디 한다.
-아지매 내 밥 사꾸마, 국밥 좀 뜨끈하게 해주이소. 이 아지매 꺼하고 같이. 아침을 아직 안 무띠만 속이 떨리이 못살겠구만. 방에 불도 들라야 될 꺼 아이요? 냉골이구먼-
-나는 아침 묵고 왔심데이 아아들하고. 아직 점심 때가 멀었구만, 우짜지? 발걸음을 했는데······-
받을 돈을 손에 넣고 싶은 간절한 생각인데 수협장이 안 왔으니 하염없이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난감함에 말끝을 흐리자
-아, 기댈리야지. 받을 돈은 일찌근이 받아야지 묵이면 누가 물고 가삔다. 국밥 자시고 수협장 올 때꺼정 내캉 얘기 좀 하자-
코가 매운 담배를 뻐끔거리며 무당이 나선다.
-우리아는 아직 아입니데이. 철도 없는 아를 무신 중매할랍니꺼?-
-아지매, 나 들어가는 딸아 델꼬 있어봐야 애물단지 되기 십상이거나 잘못되기 쉽지. 들어보이 열여덟이라 쿠더만 그기 무신 압니꺼. 다 컸구먼-
무당은 정색을 한다. 먹물 광목치마를 걷어붙이며 대폿집 아지매가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며 국밥 팔 요량으로 썽그런 부엌으로 나서며 한마디 거든다.
-내는 방에 불도 넣고 국밥이나 말란다. 소향아, 아 좋은 자리면 들어봐라. 요새 열여덟이면 아를 낳아도 벌써 낳았을 나이다-
-철도 없고 뭘 알아야지. 아직 솜털이 보송거리는 아안데······-
달랑 둘이 방안에 남아있자니 안면 없는 무당이 불편하고 뻐끔거리는 담배에 머리가 지끈거려서 몸을 틀어 돌리면서 혼잣말처럼 한다.
-솜털 벗고 나면 흰털 나기 시작하는 게 인생이라우, 델꼬 사니 맨날 아아지, 내노면 다 인간 값하고 살게 마련이야, 그건 그렇고 내 아지매 얼굴을 보이 말년 팔자는 남부럽지 않겠네-
사람 사로잡고 마음 흔들기를 주전자 물 흔들 듯 하는 무당이 한마디 툭 던지는 말에 소향어미가 고개를 돌리고 말을 받는다.
-뭘 보고 캅니꺼? 내 복도 복도 이리 없는지. 멀쩡한 아바이는 사변통에 행방이 묘연하고 건사할 입이 여섯인데 우째 살지. 무신 복이 있다고- 하면서 도로 고개를 모로 돌린다.
-천지도 개벽될 수 있고 물동이 이던 양귀비도 당황제 눈에 들어 팔자 폈다오. 지금 신세를 내일 신세라 할 수 없는 게 우리들 인간사인데 그 무신 소리 하는교? 화든 복이든 다 타고나고 한번 타고나면 다 거치고 가야 하는 게 중생이라. 아지매는 그저 내 말 믿고 걱정 안해도 된다카이-
무당은 닳고 닳은 혀를 아끼지 않고 소향어미의 환심을 끌려고 노력한다.
-도시 중매자리가 몬지 말이나 해보이소. 내는 아직 생각해 본 적도 없시만도-
대폿집 아지매가 불을 지피고 국밥을 끓인다. 장작 때는 연기가 스며들지만 담배연기보다 더 구수하다. 국밥 익는 냄새는 추운 날 얼어붙는 코를 녹이기에는 마치 봄빛처럼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