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피 우는 어머니 앞에서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6화

김담 | 기사입력 2013/07/23 [15:34]

슬피 우는 어머니 앞에서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6화

김담 | 입력 : 2013/07/23 [15:34]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소향은 한기가 느껴져서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뜨고 돌아보았다. 엄마는 없고 동생들은 아직 자고 있다. 밖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엄마가 일어나서 부엌에 있는 모양이다. 어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잠이 들었던 소향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동생들 이불을 다독거려 주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가을에 거두어 말린 콩떼기를 한 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일난나? 니가 불을 때든가 내가 물을 길러오던가. 숙향이가 물을 안 길어났네-
소향은 대답도 않고 신을 끌며 부엌에 들어서서 아궁이에 성냥불을 그어내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괘안나? 물은 내가 이고 오꾸마. 엄마야가 불 때라. 쿤데 오늘은 우리 오데 가노?-
소향은 불길이 붙어 오르는 아궁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니는 집에 있거라 오늘. 내가 나가봐야 알제. 노마 보고 집 보라 하고 니는 숙향이하고 땔나무나 해놓고. 보리쌀이나 삶아 놔라-


엄마는 어디서 기운이 솟았는지 움직일 때마다 치마에서 바람이 윙윙 불어댄다. 소향도 정신이 나는 듯하다. 빈 독을 머리에 올리고 샘으로 가면서 어제보다 한결 마음이 편한 걸 느낀다.

 
소향어미는 포구로 들어서자마자 대폿집문을 열고 들어선다. 무싯날이라 해는 떴지만 장터에는 흙먼지 바람만 불고 인적이 드물다. 어제 일한 소향이 품삯도 받고 또 무슨 일거리라도 찾아볼 요량이다. 해태일도 거의 마무리에 접어들고 고기잡이라고 해야 도다리나 조기가 나는 삼월이지만 조기배는 거문도 쪽에서 조업을 하고 또 출하도 거기서 하는 통에 삼천포로 오는 배가 드물고 도다리는 철이 조금 이른 탓에 잡히는 양이 적을 것이라 일이 궁할 것을 아는 소향어미다.


-아지매! 일났는교?- 하고 부엌 앞에 딸려있는 방문을 열어젖히니 아직도 이불 속에서 누워있던 대포 아지매는 몸을 뒤척이며.
-소향이네. 들어온나. 내 몸살기가 있어서 그런가. 우째 삭신이 쑤시서 안 일나고 기냥 누버 있다. 어제는 소향이가 욕 봤데이. 가가 그래 안 봤더이만 어제 일하는 거 보이 다 컸더라! 자네한테는 아들 못지않을 아더라. 그래, 니는 우떻노? 안됐지만 아아들 보고 살아야제. 세상일을 한치 앞도 모리고 사는 기 우린기라-


소향어미가 들어서자 대포아지매는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치마 속을 들추고 전대를 꺼낸다.
-아나 이거 받아라. 어제 소향이 일한 거다. 가한테도 말했지만 내 니 품값으로 쳐준데이. 손끝 야무지게 일하는 기 꼭 니 닮았다. 소향이-
아지매는 천환을 내놓는다.


소향어미는 어설피 받아 넣으며 -요새 지 찾는 사람이 없습디꺼? 며칠 누버 있다보이 큰일이라예. 다음 주에 아도 학교 입학시키야 되고- 하며 한숨과 함께 눈을 방바닥으로 내려까는데
-안 그래도 여곽주인이 어제 소향이 간 담에 늦게 왔더라. 나라 사람들이 무신 항로개발인가 뭔가 한다면서 이 근처에서 조사를 한다고 한 닷새 묵을 끼라 하더라. 여럿이 와서 삼시세때를 해대야 한다고 니 있으면 와달라 쿠던데. 지금 그 가봐라. 퍼떡-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향어미가 벌떡 일어서며 -아지매. 장날 오께예- 말을 남기고 황급히 여곽으로 향한다.

 
춘삼월 을씨년스런 날씨는 한겨울 매일 품 팔 걱정 없이 일 나가던 때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좀더 날씨가 풀리면 하다못해 갯벌이라도 후벼 파서 조개나 낙지라도 잡으련만 지금은 그것도 이르고, 종종 달려있는 입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만 급하고 아득해지는데 혹시 며칠 일거리라도 생기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여곽에 들어서니 부엌에 있던 주인여자가 -소향이네. 기별 받았구나. 아파서 못 올끼라 해서 내는 며칠간 이일을 혼자 우찌 해내나 싶었는데. 잘 왔데이- 하며 행주치마에 손을 감싸 닦으며 반겨준다.


-몇 명이나 된다꼬. 아지매 혼자 못하심니꺼?-
-방이란 방은 다 찼다. 이 방만 빼고, 여는 보살님이 계시고. 전부해서 열둘이데이-


소향어미는 부엌 옆에 딸린 방에 그 무당이 있다는 사실에 입맛이 가시는듯 입술을 꾹 다물지만 곧 부엌으로 들어서서 해야 할 일을 눈으로 찾으며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잊어버린다.


여수 쪽에서 부산 방향으로 항로개발을 하는 해양청 조사단이 삼천포 항에도 여건조사를 위해 온 것이었다. 해방 후부터 있던 얘기였지만 말만 돌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는데 사변이 끝나자 사변 동안에 해군정이 정박할 수 없었던 불편함을 알았던지 국가시책으로 조사단을 파견하여 큰 여객선이나 화물선이 정박할 수 있도록 포구를 항구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측량하고 설계하고 사진 찍고 하는 사람들 여럿과 총지휘하는 사람쯤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중년남자가 점심때에 우르르 모여들어 한차례 상을 물리고 나자 아지매가
-소향아, 우리 영감이 카던데 오늘 저녁에는 기관장들이 다 모인다고 상을 봐놔라 하더라. 뭘 하면 되것나? 봄이라 나물도 귀하고 고기도 때가 이르이 물도 안 좋고 우짜까?-


-밥도 무야 안 됩니꺼? 국하고 밥은 됐지만 보나 안보나 술자리인기 분명한데. 도다리가 들어 올라나 모리겠지만 그기 요새는 젤 아입니꺼? 조개 넣고 전도 좀 부치고. 아까 보이 뒷밭에 아직 겨울배추가 있던데예, 그걸로 절이나 해내고 하지예. 요새 뭐 할끼 있습니꺼?-


영감이라는 자는 어디서 뭘 했던 사람인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투리로 봐서 경상도 어디쯤인가에서 온 것은 분명했고 해방 전에 일본인이 쓰던 집을 적산가옥으로 불하받아서 초로에 접어든 마누라로 하여금 지금의 여곽을 하게 하고 자기는 딱히 하는 일 없이 그저 인근의 유지들과 어울려 소일하는데 불리는 이름이 참의관이다. 도는 말에 의하면 해방 전에 왜놈 밑에서 밥그릇 차고 앉아 있던 사람이라고 한다.

 
한겨울에 비해 해가 많이 길어졌다고는 하나 소향어미와 주인여자가 정신없이 포구 어전으로 밭으로 부엌으로 들락거리는 사이에 어느덧 해가 저물고 마땅히 열댓 명이 앉을 자리가 없는 탓에 안방에 교자상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상이 차려졌다.


소향어미는 벌써 시끌대며 음식을 기다리는 남정네들이 우루루 앉아있는 방에 들어가기가 편치 않아서 주로 음식을 마루에 갖다 주고 그 음식은 주인여자가 방안으로 옮겨 상에 놓곤하는 중인데 부엌 옆에 붙어있는 방 앞에 무당의 신이 하루 종일 안 보이는 것이 이상했다.


-아지매, 이 방에 보살님이 계신다 켔는데 하루 종일 안 보이시네예?-하고 묻는다.
-아! 아침 일찌그이 오데 갔다 오신다고 나가싰는데 저녁따베 오신다고 불 넣어 놓라 하싰다. 오실 끼다!-
눈에 안보여서 거의 하루 종일 잊고 있었던 무당인데 음식을 날라다주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었다.


방안에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하다. 분주했던 상차림도 다 끝나서 주인여자와 소향어미가 부엌바닥에 쪼그려 앉아 저녁을 때우고 있다. 남은 음식이지만 소향어미는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봄 도다리무침이고 낙지볶음이고 조개전이다. 얻을 수만 있다면 싸가지고 가서 자식새끼들 먹이고 싶지만 비싼 반찬거리를 돈 주고 산 것들이라 줄 리도 없고 또 넉넉지도 않아 그냥 몇 점 먹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목구멍에 넘어갈 때마다 마음은 안 편하다.


-삼천포 유지들은 다 모있다. 수협장, 지서장, 읍장……. 나라 사람들 중에 누가 높은 사람이라카던데. 우리 영감 말이 지역발전위원들이 환영하는 자리라 카더라-
입안에 든 음식을 씹어가며 주인여자가 말을 하는데 방안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여자는 손에 밥그릇을 든 채 일어서서 대청으로 갔다 와서 -소향아, 니가 술 좀 들라주고 오니라. 내 밥 좀 마저 묵자- 한다.


속으로는 방에 들어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소향어미는 소주 옹기독을 기울여 주전자 가득 채워서 쭈뼛거리며 방문을 조금 열어 방바닥에 놓고 얼른 문을 닫아버렸는데 대청을 내려오기도 전에 안에서 -아지매-하고 부른다. 주인영감이 분명하다.


할 수 없이 도로 방 앞으로 가서 문을 반쯤 열고 얼굴만 들이밀며 -뭐 갔다 디리까예?- 하며 안을 보는데 거기에 며칠 전에 보았던 지서장이 자기와 눈을 마주친 것이다.


영감이 하는 말이 앵 하고 귓가에 들리고 뭣에 들킨 사람마냥 온몸이 오싹하게 느껴져서 황급히 부엌으로 돌아왔다.


-안주거리 좀더 내오랍니더- 하고는 어금니를 꽉 다물고 지서에서 보고 들었던 그 지서장의 오만한 말과 태도를 떠올린다. 한기가 오싹거린다. 몸이 파르르 떨리는 소향어미다.


당장 집에 가고 싶고 또 이미 시간도 꽤 늦었지만 방안의 저 설거지 거리를 치우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이 품 파는 사람이다. 먹던 밥도 그냥 둔 채 멍하니 앉아있자 주인여자가 한마디 한다.
-와카노? 디나? 그래, 딜만도 하제. 그래도 우짜 것나? 저거는 치아야제. 내 더 생각해 주게. 좀 늦더라도 같이 치우고 가래이-
품값을 좀더 쳐주겠다는 말이다.

 
열리는 문을 보다가 소향어미의 얼굴을 본 지서장은 아까부터 술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맞은편에 앉은 주인영감을 보고 한마디 묻는다.
-참의관님, 저 여자 언제부터 여서 일합니꺼?-
-일하는 기 아이고 오늘 바뿌다꼬 내자가 품을 산 모양인데. 와 그랍니꺼? 아는 사람입니꺼?- 하고 되묻는다.


-저 여자는 김병만이 식군데- 하며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다시며 얘기를 계속한다.
-저 여자 여 발 들루쿠로 하지 마이소, 괜히 참의관님도 불똥 튈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데이. 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하며 입을 가로 째 다물며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예? 김병만이요? 그 사람이 누군데 그캅니꺼?-
갑자기 좌중 사람들이 다 귀를 세우고 말을 끊고 지서장을 향해 고개를 모은다. 지서장은 목을 움츠리고 낮아진 목소리로 연신 고개를 돌려 주위사람들 눈을 맞추며 늘어놓는다


-내 요새 그 자석 조사하러 다니느라 안 그래도 바쁜데 괜히 일만 잔뜩 늘었다 아입니꺼. 지금 거의 작전이 마무리 돼간다꼬는 해도 아직도 잔당 소탕에 군부대가 지리산 도처에 있고 우리 경남 전체에 경찰은 비상이 해제되지도 안했심데이. 그 빨치산 빨갱이 놈들 땜에 죽어나간 경찰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꺼? 합천, 진주, 함안서부터 전라도 일대까지 수도 없심니데이. 세상에……. 내 관내에 있는 사람이 유격대 대원으로 있다가 지난 가을 토벌 때 소탕 당했다고 며칠 전에 전통을 받았는데.. 아, 그 죽은 자석이 바로 저 여자 남편이라 캅디다. 김병만이라꼬-


사변 이후 월북하지 못한 채 남아있던 빨치산들은 지리산을 총 남한유격대 본부로 하고 남으로는 백운산에서 북으로는 덕유산에 이르기까지 세를 이어 존재는 하였지만 1954년 지금 거의 남은 잔당이 소탕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경찰국에 조서를 올리자이 그자석이 뭘 하고 다녔는지 누구하고 만났는지 몇년 전 일까지 다 조사하고 있음니데이. 여 계신 분들이야 뭐 다 알아도 상관없으이 말씀드리지만 요새 세상에 빨갱이 빨자만 지꺼리도 잽히가는 세상인데. 참의관님은 우자짜꼬 그런 집안하고 발걸음을 한단 말입니꺼?-하고는 눈을 치켜뜨고 영감을 본다.


-그래? 그런 일이 바로 옆에서 있었어도 우리는 영 모리고 살았구만. 언제 그런 사람이 이 동네에서…….내야 장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그저 동네 아지맨줄만 일았지. 으흠-


영문 없이 입장이 묘해진 주인영감이 입맛을 다시며 다리를 다시 꼬아 올리고 -아, 그기야 우리 지서장님이 다 알아서 하실끼고 드소, 어서!-하면서 주전자를 들어 좌우로 휘두른다.


참의관이라고 따라다니는 이름도 자신은 못마땅하고 감춰야 하는데 이곳에 와서 자리 잡은 후에 정신 나간 마누라가 무슨 영감 자랑질이라고 왜정시대에 일제 앞잡이 하던 벼슬이름을 떠벌리는 통에 그만 그렇게 불리게 되어 늘 뒤가 구린데 갑자기 빨갱이 식구가 집안을 설렁거리고 다니고, 또 어쩌면 자기의 뒤도 캐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영감은 불편하다.

 
방안에서 두런거리고 웃거나 기침소리가 나는 걸 들으며 부뚜막에서 깜박 졸던 소향어미는 우루루 소리가 나고 주인여자가 나누는 인사소리에 벌떡 일어나서야 시간이 꽤 오래된 걸 알았다. 안방의 어지러운 상을 부엌으로 다 내놓고서 설거지할 생각에 마음이 천근 같은 참에 안방을 걸레질하던 주인여자가
-소향아, 낼 아침에 하자. 너무 늦었데이. 니는 퍼떡 가거라- 하는 소리를 듣고 
-그랍시데이. 이기야 낼 지가 치우면 될끼고. 지는 그럼 갈랍니데.- 하고 부엌문을 닫고 뒤도 안보고 종종걸음을 친다.


이튿날 해가 오를 즈음 여곽에 온 소향어미가 열린 부엌문 안으로 들어서니 주인여자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다가 일어서며
-소향이 왔나. 우짜꼬! 여는 내 혼자 해야 것다. 사람 몇이 되도 안하는데 계산해보이 품 사서 장사하는 기 수지가 안 맞다. 미안치만 이거는 어제 꺼다. 내 담에 또 부를끼이- 하면서 미리 넣어둔듯한 돈을 윗도리에서 꺼내준다.


갑자기 듣는 소리에 잠시 멍한 소향어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처지에 그저 손을 내밀어 돈을 받고 -그래예? 그렇지예. 그라이소. 내 담에 또 들리지예- 하고는 돌아서는데 주인여자가 뒤따라서 부엌을 나오면서 -가재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적은 인원도 아니고 열은 넘고 또 하루 세끼를 해대자면 여간 힘든 게 아닐뿐더러 바로 어제 아침만 해도 와줘서 다행이라고 정색을 하던 주인이 갑자기 아침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정쩡한 태도하며 돈부터 내미는 것하며.


소향어미는 생각해본다. 자기가 뭐라도 잘못했거나 어젯밤에 방을 들락거리면서 사람들 앞에서 무슨 실수라도 했나. 하지만 생각날만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마치 문전박대라도 당하는 양 얼굴이 화끈거리고 뒷꼭대기를 감추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기분이 영 엉망이  돼버렸다.


갑자기 여곽을 나온 참이라 어디로 향할지도 모른 채 발걸음이 자기도 모르게 포구 앞으로 옮겨졌는데 들리는 인사말에 얼굴을 들고 보니 그물을 엮고 있는 치환이 부부가 있다.


-예, 봄이라 도다리 잡을라꼬예?- 하며 지나칠 수가 없어서 마음 내키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다가가니 오래전부터 남편과 친구인 치환이가 손을 멈추고 앉아서 담배를 꺼내며
-아지매, 내 한 이틀 전인가……. 지서장이 와서 캐서 알았심데이. 병만이 말입니데이. 안됐심더. 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슥이 그런 거 할 사람은 아인데. 도대체 우찌된 일인지. 사변통에 어디 있다가 올 줄만 알았디만- 말을 지지부진 하고 담배에 불을 댕기자 옆의 식구가 - 아침은 잡샀는교?- 하고 역시 어정쩡하게 서서 손에 대나무 그물바늘을 들고 아는 채를 한다.


갑자기 귀가 웅웅 거리며 어지럽기까지 한 소향어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겨우 한 파수밖에 안된 일을 그것도 자기는 누구한테 말도 해볼 시간이나 여유도 없었는데 지서장이 와서 말했다. 또, 그런 거 할 사람이 아니라? 그런 거라니? 도대체 그런 것이 뭐란 말인가?

-지도 모리겠심더. 소향아바이를 봤다는 사람을 만나서 들었고 또 지서장이 그래서 알지. 도대체 우찌된 영문인지 지도 아직 모리겠심더-


아침바람이 시원하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덮어줘서 시원하다. 몇마디 하는 동안 눈앞에 보이는 넘실대는 파도가 가슴벽을 후련하게 쳐주는듯 시원하게 보인다.


-아지매, 내 그 자슥하고 친구라 하는 말인데 조심하이소. 그라고 애로번일 있으몬 언제라도 오이소. 해디릴 일이 있을란가 모리지만-
어떻게 그 어색한 자리를 벗어난지도 모르게 소향어미는 걷는다. 집으로 가는 중이다. 복잡한 머리를 식혔으면. 하지만 식힐만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포구다. 사람 대하기가 싫어졌다.멍하고  텅 빈 느낌이다. 거북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마음은 처량하고 몸은 오그라들고. 밝은 빛이 어두웠으면 하고 온통 뒤죽박죽 마음이 일렁댄다.


서방이 죽은 건 죽은 건데…….서방 없이 이 년 가까이 혼자 아이들 건사하다보니 눈물도 안 나게 참아내지만. 지서에서 들은 빨갱이라는 말과 지서장의 그 눈빛. 조심하라는 치환의 말. 또 여곽 주인여자의 행동. 도대체 뭘 조심하라는 말인가? 빨갱이라는 말은 들어서 알고 또 그 빨갱이 때문에 사변이 난 것도 알지만 소향아바이가 어째서 빨갛단 말인가? 자기가 아는 서방은 어느 구석에도 그 빨간 것은 없었는데.


갑자기 온주위에 송충이가 기어 다니는 듯해진다.  갑자기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소향어미는 입고 있는 큰 사지바지를 펄럭이며 대폿집으로 향한다. 그 아지매는 알 것이다. 중천에 해가 솟을 때까지 그냥 허우적대고 다니는 자신이 한없이 처량하지만 알아야겠다. 다들 갑자기 왜 이러는지.

 
소향은 꽁지 묶은 머리 위로 잔득 검불을 뒤집어쓴 채 삭정 한 묶음을 이고, 동생 숙향이 역시 고만한 한 덩어리를 이고 둘이 막 동산을 내려오는데, 그것도 무게라고 머리를 마음대로 못 돌리고 눈만 내려깔아 발이 돌이나 나무뿌리에 걸리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걷는다.


-언니야, 내 서답이 없는데…….배가 아픈 기……. 아무케도 오늘 할 낌갑다. 니 꺼 좀 내 도고-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소향은 한참을 걷다가 집까지 한 모퉁이쯤 남겨놓은 장소에서 머리에 인 땔나무를 땅으로 휘딱 떨구고 주저앉는다.


-니도 좀 내리라. 고개가 와 이리 아픈지 모리겠네. 쉿다 가재이- 하고 숙향을 올려본다.
숙향이도 그제야 고개를 까딱 앞으로 쏠려 나무단를 떨구고 배를 움켜잡고 쪼그려 앉는다.
-마이 아푸나? 니는 꼭 쿠더라. 내 꺼도 마이 없데이 니가 알아서 쓰고 꼭 빨아 노래이-
소향은 하늘은 올려보며 동생의 달거리배가 아픈 걸 묻고서 얼굴에 난 땀을 식힌다.


-언니야. 쿤데……. 아부지는 안 올낀가?- 숙향이 묻는다.
한 번도 동생들이 묻지 않았던 갑작스런 질문에 소향이 하늘을 보던 눈을 고정시키고 가만히 있다. 물론 철없는 종락이나 향숙이는 뭐가 뭔지도 모른다고 치더라도 열두 살인 노마나 열여섯 숙향이는 그래도 알만한 나이인데도 한 번도 아버지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엄마 따라 일 다니며 위로는 아이 취급 받았지만 밑으로는 그래도 제법 맏이 노릇하며 살아온 소향이 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말이라 아버지 얘기를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듣는 숙향의 질문에 갑자기 저년이 뭘 아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와? 아부지 보고 싶나?- 하고는 숙향을 쳐다본다.
아프다는 배를 한손으로 누르고 다른 한손으로 땅위에 나뭇가지로 이리저리 휘젓던 숙향이 고개를 들고 소향을 보고
-니 하고 엄마하고 너무 안돼서 칸다. 아부지가 오면 안 그래도 될낀데- 하며 도로 고개를 땅으로 떨군다.


아무 대꾸도 않고 소향은 벌떡 일어선다. 엉덩이를 두어 번 툭툭 털고
-고만 가제이. 노마가 아아들 잘 보는지 모리겠다. 퍼떡 일나거래이- 하고 나무를 머리에 올린다.
모퉁이를 돌자 저만치 초가지붕 위로 잡초가 쌍그렇게 난 집이 보이고 집 앞으로 지나는 솔 길이 연장되어 멀리 보이는 바다 속으로 숨어드는데 그 길 끝에 엄마인성 싶은 여자가 올라오고 있다.

 

-지금은 해가 아직은 한참 남은 시간인데 우째 엄마가 벌써 오지?- 속으로 생각하며
-숙향아. 저기 엄마 아이가?-
-엄마다. 맞다. 벌써 오네. 보리쌀은 엄마가 삶아라 케라-
거의 같은 시간에 아래 위에서 집에 다다른 세 모녀다. 그런데 소향어미는 말 한마디 안하고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머리에 쓴 수건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직도 머리에 나무단을 이고 선 소향은 나무 내릴 생각도 않은 채 숙향이를 향해 고개를 돌려서 쳐다본다. 숙향 역시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소향을 보고 눈을 올려 뜨고 나무단을 인 채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소향은 나무단을 마당 구석에 내동댕이치고 머리에 붙은 검불조각을 떼어낼 생각도 않고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야! 무신 일 있나?- 하며 엄마 앞에 앉는데 손에 든 수건을 얼굴에 묻은 엄마는 울고있다. 참으려 하지만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다. 슬피 쏟아내는 울음에 소향도 맥이 빠진다.


집안을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에 막내딸 네 살배기 향숙이도 보채지 못한다.
방안이 어두워져서야 한참 시간이 흐른 것을 알고 소향은 부엌으로 나선다. 저 철없는 동생들은 먹이고 재워야 하지 않는가? 숙향이도 따라 나오고 아무 말 없이 둘이서 불을 때고 밥을 차리고 그렇게 소향이네 식구들은 돌덩이 같은 무게에 짓눌린 채 하루를 넘긴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던 소향은 방끝 쪽에서 역시 뒤척이던 엄마를 기억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부엌에서 떨그럭거리는 소리에 눈이 퍼떡 떠졌다.


밖이 훤한 걸로 보아 날은 이미 샜지만 이 아침에 일찍 엄마가 뭘 하는지 어제 저녁에 꺽꺽 울던 엄마가 걱정되어 후다닥 부엌으로 나갔다.
-와 안자고 나왔노? 낼 모레가 종락이 학교 가는 날이제?-
-응, 쿤데 엄마야. 어제 와 켔노?-
소향이 아궁이 앞에 앉으며 연신 부엌을 왔다 갔다 하는 엄마에게 묻는다.


-오늘 니 내 따라 포구에 가재이. 함씨네 집에서 돈 받아 종락이 입을 옷이나 신 사주꾸마 -
겨울동안 해태장하는 함씨네 집에서 푼푼이 소향이와 같이 돈푼이나 벌었는데 보름 전쯤 마지막 일한 몇 푼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와? 엄마는?-
왜 나에게 주느냐는 소향의 질문이다.


-내는 합천에 갔다 올끼다. 너거 아부지가 무신 빨갱이라고 인제 여서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살게 됐다. 도대체 우찌 됐는지. 여서는 아무 것도 모리겠다. 그래서 내가 합천 가서 알아볼란다. 너그 아부지하고 같이 나갔던 동네사람들이 있으이 그서 물어보면 뭔가 알끼다. 아아들 아침 믹이고 니는 내 따라 가재이. 쿠고, 내가 오늘 못 올지도 모른데이. 니가 아아들 거두코-
-그 간다고 알꺼 같나? 내도 가보고 싶은데…….-
소향도 물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 갑갑한 일을 알고 싶은 심정이다.


-니는 내 시키는 대로 하고. 만일이라도 내가 하루 이틀 더 늦으면 니가 종락이 입학은 꼭 시키그래이. 올해는 꼭 학교에 넣어야 된다. 벌써 이태나 미뤘는데…….-
자는 아이들을 깨우고 엄마와 소향은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서 함씨네 집으로 갔다.
사나흘 일한 두 모녀의 품삯이라야 겨우 삼사천환이지만 그 돈으로 입학할 종락이 옷가지와 신발이라도 사고 또 합천으로 갈 여비라도 할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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