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소향은 창피하고 피곤하고 여기까지 어찌 오게 됐는지도 또렷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정도로 어지럽다.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대폿집에도 거짓말하고, 비록 살아갈 앞길이 캄캄한 엄마와 동생들 때문에 열여덟 처녀가 생각할 수 없는 일에 따라 오긴 왔지만 네 마지기니 다섯 마지기니 하는 흥정을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처참한 참이다.
고개를 밑으로 깔고 잠시 소향은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속에는 함씨네집 못된 노인들과 비정한 지서장과 여곽주인과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여러 사람들의 눈들이 보인다.
서로 어색함이 흐르고 정적이 누를 때 큰아지매는 속으로 역시 천한 것들은 어쩔 수 없구나 하고 자기가 바라는 일이 허사로 끝날 것 같은 마음에 싸인다.
-아지매요, 지는예, 아부지가 사변통에 돌아가시고 동생이 넷이나 있는데 엄마하고 지하고 아무리 일을 해도 묵고 살기가 정말로 힘듭니더. 아부지가 무신 빨갱이 했다고 일도 시키주도 안하고 한 일도 품값도 안줍니더. 논도 밭도 없고 동생들은 공부를 시키야 되고 묵고 살아야도 되는데 엄마 혼자서는 정말로 안됩니더. 캐서, 지가 보살님 말씸대로 할라꼬 오긴 왔지만예. 다섯 마지기는 있어야 하다못해 어물전에 점방이라도 하나 냅니더. 지가 챙피하고 고생하는 건 괜찬심더. 하지만 점방 하나 값은 있어야 되예-
비록 서두도 없고 오밀조밀한 논리는 아니지만 왜 논 다섯 마지기가 필요한지를 말하는 소향이다. 처녀의 입으로 자기 몸뚱아리 흥정 나누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지만 그것은 소향에게는 그저 감추는 것 없는 사실나열이었다.
얘기를 듣던 큰아지매는 무당을 향해 묻는다.
-이 아이가 여기 오는 걸 엄마가 허락했습니까?-
-아입니더! 야 엄마는 모립니더! 야가 그리 해야 된다캐서! 컥컥!-
물그릇을 들고 한 모금 더 마시면서 무당은 들숨과 물이 얽혀 체하듯 컥컥거리며 답한다.
-니가 이런 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부모님도 모르게 여길 왔냐?-
-엄마는예. 물론 난리를 칠 거라예. 케도 지금으로서 제가 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예. 그저 품 팔고 일하는 것 빼고는예-
-니가 부모님의 동의를 가져오지 않으면 내가 너한테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다-
치마폭을 감싸서 발쪽으로 당기며 큰아지매는 단호히 말한다.
피곤하고 배도 고픈 무당은 갑자기 정신이 확 든다. 여비도 들여서 천리 길을 왔는데 자기가 막살 놓기 전에 딴사람이 막살 놓고 있는 것이렷다?
-아지매! 딴은 야 어마이도 내게 듣긴 들었지예. 알고는 있슴니더. 카라고 한 건 아니지만. 어느 어마이가 다 큰 지 딸년을 여 있소 하고 씨받이로 내놓을란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알고도 모린 척하고 지낼 일이고 또 그 칸다케도 내가 다 알아서 할 일 아입니꺼?-
거래가 깨질 것이 염려가 되는지 대접 못 받아 성났던 얼굴이 확 사라졌다.
소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일을 엉성하게 만들어 놓고 천리 길을 재촉한 무당이 밉고 그 뒤를 졸졸 따라온 자신이 부끄럽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가입시더. 보살님! 이기 뭡니꺼? 여비가 얼만데-
소향이 방문을 열고 나서자 무당은 황당해 하며 소향의 치마를 잡고 당긴다.
-야, 야! 앉아봐라. 쉽게 올 길이 아이다 아이가? 그라고 아지매요! 이기 뭡니꺼? 사전에 아 어마이 하고 같이 오라고 하지도 않고 이제 와서 어마이 들먹거리다이 말이 됩니꺼?-
아예 손까지 앞으로 내밀고 삿대질에 가까운 시늉이다.
-집안에 시끄러운 소리가 생기는 것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까는 야 엄마가 모른다고 했으니 내가 한말이지요. 좋습니다. 보살님. 보살님이 그리 말하고 또 소향이 너가 철없이 내린 결정이 아니라니 그럼 다시 내가 말한다-
소향과 무당을 번갈아 보면서 입을 한번 다신 후 계속한다.
-니가 아들을 낳아주면……. 좋다! 내가 다섯 마지기 논 값을 주겠다-
무당은 속으로 후 하고 숨을 쉰다.
그러나 아까 나가려고 일어섰던 소향은 눈을 내리깔고 여전히 서있다. 그리고 조용히 앉는다.
-하늘이 하는 일에 지가 아들을 놓을지 딸을 놓을지 어떻게 압니꺼? 그럼 지가 딸을 놓으면 우짭니꺼?-
아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순리를 모를 큰아지매는 아니지만 막상 어린 것이 다그치며 사례를 말하자 생각할 여유가 필요한 참이다.
-물론 딸이라도 이집의 딸이 된다. 너하고는 상관없이-
잘라서 대답해준다.
-그라모 지는 논 몇 마지기를 받는데에?-
당돌하게 묻는다.
-어린 것이 돈에 환장을 했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또박또박 돈만 입에 올리는구나!-
미처 예상 못한 부분까지 물어오는 소향의 질문에 적이 당황스러운 큰아지매는 화가 난 듯 목소리를 올려 말한다.
소향은 아예 정면으로 큰아지매를 보며
-지가 부끄럽다면 아지매는 안 부끄럽습니꺼?-
무당은 눈만 크게 뜬 채 말을 못하고 큰아지매도 매 같은 눈을 하지만 입에는 할 말을 준비하지 못한다.
순간도 기다리기 싫은 듯 소향은 계속 말을 한다.
-지는 여 오민서 죄를 짓거나 나쁜 짓을 한다고는 생각 안하고 왔심더. 오직 우리 집 식구들 생각만 하고 왔심니더. 쿤데 아지매는 지 보고 우째 부끄럽다고 하십니꺼?-
기가 찰 노릇이다. 무당은 몇 번 소향에게 당해본 적은 있어서 놀랄 만한 소리는 아니지만 큰아지매는 그저 기가 막힌다.
한참 자기를 응시하는 소향의 눈길을 맞받아치다가
-그래, 내 말이 좀 지나친 건 사실이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흥정하는 것이 사납다는 말이다-
입을 다물며 이런 일에 익숙지 못한 큰아지매는 당황한다.
-아까 전에 아지매가 집안에 큰소리 나는 기 절대로 안 된다 켔지예. 사람 하나가 나는데 채근채근 챙기고 옳게 해야 큰소리가 안날 거 아입니꺼? 지는 아는 것도 없고 그저 우리 동생들 입히고 멕일 것밖에 모립니더. 그라고 우리 어무이 장사 댕기시는 기 힘들어서 안됩니더. 여 오느라고 여비도 이천 원이나 들었으이. 말씀해 보이소-
소향은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무당을 힐끔 보고 큰아지매도 쳐다보며 말을 맺는다.
사정을 하면서도 사정처럼 하는 말이 아니고, 주도권을 놓친 듯 들리는 말이지만 누가 우위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애매모호하고 구차한 살림을 핑계대는 듯해도 오히려 당당하게 들리는 말이다.
무당도 큰아지매도 눈만 껌벅이고 준비된 말이 없다.
특히나 큰아지매는 서른여덟 해를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자기 앞에서 자기의 말에 논리적 반박을 펼치는 사람을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죽기 전 겨우 시집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년 정도 그저 말문을 닫고 살았을 뿐 그 후로는 자신의 전후 형평에 맞는 논리에 심지어 영감도 아무 말 못하고 지금껏 살지 않았는가? 촌뜨기 시골아이가 미처 자기도 생각지 않은 부분까지 열거하며 마치 물건 흥정하듯 밧줄의 한쪽 끝을 팽팽히 당기렷다?
무당도 그저 천장만 보고 있다. 비록 색이 조금은 바랬지만 그래도 비단으로 도배를 한 천장은 안방주인의 귀태와 집안의 힘을 보여준다. 기생집이나 유곽에 처자를 팔아먹을 때, 끌고 가는 자기나 끌려가는 그들 사이에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이 몸값 흥정이다. 미리 부모들과 입을 맞추어 흥정을 끝내거나 아니면 팔린 후에 자기의 후한 구전을 제한 후에 이 핑계 저 핑계로 나머지 쥐꼬리만 한 지전을 쥐어주는 것이 자칭 자비심 대단한 무당인데 소향에게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무당의 그 음흉한 꾀나 스리슬쩍 주판알을 올리는 것이 도통 먹히질 않는다.
-보살님. 이제 보니 보살님이 보통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니군요-
자기 집 안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황스런 일에 어떻게든지 빨리 결말을 지워야 하는 큰아지매는 혼란한 마음을 다스려 보려고 옆에 장승같이 앉아있는 무당에게 한마디 더 붙인다.
-이 아이 말이 맞긴 맞고 또 내가 생각이 깊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보살님이 말씀해보시지요. 팔도를 다니면서 이런 경우를 보셨을 테고 또 사후에 말썽나지 않도록 단도리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니 보살님이 양쪽 사정을 고려하여 방도를 내 놓으시지요-
소향의 귀에는 무슨 희한한 말들이 들리지만 대충 무당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묻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천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저 귀로만 큰아지매의 말을 듣던 무당은 기침 한번으로 막힌 목구멍을 훑어내며 벌리고 있던 다리를 모은다.
-아지매요. 지가 들어보이 밸로 에로번 일도 아입니더. 아지매는 이미 다섯 마지기 주겠다 켔고 야는 이 집 손을 낳아주겠다 했으이. 반은 성사가 됐지만. 야 말맨치로 아들이 아니면 우짤까. 또 돈을 언제 어떻게 울매를 건네느냐 하는 기 문젭니더. 딸이건 아들이건 이집 씨가 분명할 테니 이집에서 거다야 하는 건 분명한데. 천지신명이 도와 아들이 되고꾸롬 지가 다 알아서 할 요량이니 아지매는 그저 지를 믿고 야 하자는 대로 하이소. 덕을 쌓아야 후손에 그 덕이 나옵니더!-
무당은 말을 마치고 입맛을 다신다. 하긴 했지만 이것 역시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말이다. 빨리 얼렁뚱땅 지전이 손에 들어오기만을 바라는 게 무당이지만 방안의 다른 두 여자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그럼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소향이 너도 잘 들어라. 너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일을 하라고는 안한다. 아이를 가지고 낳을 때까지 집안에만 있을 것이고 낳은 후 삼칠일만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가도록 해라. 돈은 너가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는 날 서 마지기 값을 주고 아들을 낳으면 나머지 두 마지기 값을 주겠다. 물론 딸을 놓으면 그 돈은 없다. 내말 알아듣느냐?-
소향은 아무 말이 없다. 발아래만 보며 생각에 잠긴다.
-아지매 말씸이 딱 들어맞심더! 야 야! 논 서 마지기만 하모 너그 엄마 보따리 장사 안하고도 묵고 산다!-
얼굴로 양쪽을 번갈아 보면서 무당은 연신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아지매요. 지가 여기 오기 전에 물어봤심더. 대폿집 아지매가 읍내에서 국밥을 파는데예. 그 아지매가 카데예. 어물전 할 만한 점방은 그래도 요새 돈 한 삼십만 원을 할 거라고예.지는 논 값이 얼맨지는 잘 모립니더. 케서 디리는 말씸인데예. 아지매가 지 어무이 점방하나 채릴 돈만 주시면 됩니데이. 아들이고 딸이고는 하늘이 하는 일이라 지는 그 다음은 모리겠심더. 그라고예 지는 바로 가야됩니더! 지 없이 어무이가 너무 힘들어서예-
잠자코 듣던 큰아지매가 묻는다.
-애기 낳고 나서 바로 가야 된다는 말이냐?-
-예-
-그야 내가 미리 말했듯이 몸 푸는 대로 삼칠일 후에는 있어서도 안 되고 가야된다. 그러면 보살님! 요새 땅 시세가 얼만지 아십니까? 내가 알기로는 쌀 대여섯 가마 값이라던데-
-상답이야 더하지예. 하지만 그 정도면 될낍니더-
군더더기로 일을 꼬이게 할 심산은 더더욱 없는 무당이다. 어떻게든 빨리 합의를 끌어내는 게 오직 털보무당의 뜻이라 그저 그렇다 옳다 좋다만 하면 될 일이다.
사실 화폐개혁 후로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뛴다고는 하나 논 한 마지기가 대충 대여섯 가마의 쌀값에 맞먹는 것이 현실이니 만오천 원 하는 쌀 한가마 값으로 셈 해보면 삼십만 원은 서마지기 땅값을 훌쩍 넘는다.
-쌀값이니 땅값이니가 하루가 다르게 들쑥거리니 그것으로 값을 매길 수는 없고 너 말대로 너가 이집에 오는 날 내가 지전 삼십만 원을 주겠다. 너가 알아보면 알겠지만 그 돈은 서마지기를 훨씬 넘기는 하지만 너가 말했듯이 사정이 그러하다니 내 그리하마. 그리고 아들을 낳으면 갈 때 십만 원을 더 주겠다-
-아이구! 역시 부잣집 마나님이라 다르시네!-
손뼉을 크게 한바탕 치며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호들갑을 떠는 무당이지만 옆에 있는 소향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다.
처마 높은 대가에 사는 아지매가 하는 말이라 믿을 수는 있겠지만 언뜻 논 다섯 마지기라는 계산이 들지 않는다. 다시 한번 셈을 시작하는 소향이다. 한 마지기 땅값이 쌀이 여섯 가마라. 한 가마가 만오천 원이라. 그러면 구만 원에 한 마지기라. 그렇구나 올 때 조금 더 받고 갈 때는 재수 없어 딸을 놓으면 아무것도 없겠지만 만일 아들이라면 두 마지기에서 조금 빠지는 돈이겠다. 그럼 됐다. 그 돈이면 우리 어무이가 대구까지 보따리장사 안 다녀도 되고 동생들도 내가 돌아갈 때까지 학교 잘 댕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