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가 얘기에 신바람 난 작은댁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6화

김담 | 기사입력 2013/10/03 [21:52]

분가 얘기에 신바람 난 작은댁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6화

김담 | 입력 : 2013/10/03 [21:52]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얼굴이 상기된 채 여간해서 발걸음하지 않는 아래채 방안으로 태섭이 들어와 앉는다.
-니는 좀 어떠노? 여태 기동도 몬하나?-
한집에 산다고는 하나 두 형제의 관심은 늘 따로따로인지라 누가 무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영 모르고 지내는 것이다.


-아입니더. 이젠 밴소도 가고 걸을 수도 있습니더. 그란데예. 아까 그냥 들리서 들었는데 형수님이 우리 분가해준다 카는기 정말입니꺼?-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뽑아들고 성냥갑을 찾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태섭이 동생이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않고
-성냥 어디 있노?-
하고 얼굴을 찌푸린다.


-형님 뒤에 재떨이하고 성냥 있습니더-
태섭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태광은 속이 여간 기쁜 게 아니다. 그동안 마누라등쌀은 고사하더라도 자신도 한도 끝도 없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지만 손에 마땅한 지전쪼가리 한 장도 없는 것이 늘 불만이었는데 만일 아까 들은 분가가 이제 사실로 이루어진다면 자기 논에 자기 손으로 농사짓고 가을이면 제법 자기 돈도 들어올 것이 그저 꿈같기만 하다.


말이 종갓집 형제지 사실 태광은 새경 주지 않는 머슴이었고 그의 마누라는 그저 부엌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런 관계가 이루어졌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저 안방차지하고 있는 형수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집안의 모든 경제권을 손아귀에 넣고 나서부터였다.


이상하리만치 형수의 말이나 눈길에 짓눌려서 자신도 마누라도 도대체 무엇 하나 의견을 내놓을 수도 없었고 그저 끌려가며 살기를 벌써 십 년하고도 한두 해 더 넘었겠다.


연신 두어 모금을 뻑뻑거리며 빨아 댕긴 태섭이 그제야 연기를 피해 눈을 내리깔며 말한다.
-그래. 너그 형수 말도 맞기는 맞다. 니 아아들도 한참이나 컸으이 이제 따로 살림을 나는기 좋기는 하겠제. 케도 내가 우찌 집의 일을 다 혼자 하겠노? 니도 알겠지만 내가 언제 농사일 보며 살았나? 갑자기 대책도 없이 카이 내도 답답따-


속이 달아있는 태광도 연기가 코끝에 닿자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형님 지도 한 대 태울랍니더-
태섭은 주머니에서 권련 한 대를 뽑아 건네고 잎담배만 피우던 태광은 얼른 받아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불을 댕긴다.


-행님. 뭘 그런 걸 걱정하십니꺼? 아, 집안일인데 지가 돌봐야 되는기 당연하고 또 만일 힘에 부치기라도 하면 까짓꺼 머슴 하나 두민 되지예. 걱정마이소 행님-
-머슴이 없어서가 아이고 내가 농사관리를 모리이 하는 소리제. 너그 행수도 농사를 뭘 아노? 그저 가마이 셀 줄이나 알제.
-아, 그기야 상머슴 하나면 다 될낀데 행님이 무신 농사관리를 한단 말입니꺼? 또 지도 옆에 있으이 맘 놓으시고-
두 형제가 피워대는 담배연기는 금방 방안을 가득 채운다.


담배는 피울지언정 연기는 또 매운 법, 태섭이 눈이 매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선다.
-너그 행수가 요량이 있는기 분명하이 다 알아서 할끼다. 그라고 좀 살만하다민서. 우째 들에도 한번 안 나가노? 둘러나 봐라. 저그가 알아서 한다 케도 니 눈이 한번 더 보민사 쌀톨 하나라도 더 생기제-


허벅지 상처 핑계 대고 방에만 있는 동생을 나무란다. 사실 소작꾼들이 농사준비를 한다고는 해도 그래도 주인이 둘러보면 하다못해 거름 한 짐이라도 더 내다 붓는 게 사실이고 못자리도 정성들여 돌보게 된다.


-안 그래도 이제 거동도 돼서 나갈라고 하고 있습니더 행님-
나가는 태섭의 뒤에 대고 태광은 문고리를 잡은 채 변명을 한다.


태섭이 어디를 가는지 대문을 나서고 분가소식을 들은 태광도 기분이 들떠서 문을 열어놓은 채 담배주머니를 찾아 잎담배 한 장을 꺼내서 손으로 비벼 종이에 말아 침을 바른다. 형은 아리랑을 피우는데 자기는 그럴 돈도 없어서 그저 궁상이나 떨고 있는 게 한심했지만 지금 기분은 마누라가 화냥질을 했다 해도 웃어줄 것같이 좋기만 하다.

한 모금 깊숙이 빨은 후 내뱉는 중에 갑자기 날카로운 말소리가 담 너머 쯤에서 들린다. 마누라 소리다.
-미친년을 거둘라민 지대루 거다야제. 밖에는 와 내놓노? 니도 핵교 끝났으민 퍼떡 집에 안 오고 그서 그 지랄하고 있노?-
두 아이를 앞세우고 작은 아지매가 씩씩거리며 험한 소리를 한입 가득히 물고 들어온다.
-니는 와카노? 시끄럽꾸로?-
태광이 문설주에 기댄 채 말하다가 아직 내뱉지 못한 담배연기가 막혀서 컥컥거린다.


-누군 누구겠는교? 창호어마이지. 빙신을 지가 밖에 내놓고 아아들이 놀린다꼬 내보고 지랄을 하노?-
말은 태광이한테 하면서 고개는 담 너머 창호네 집쪽으로 돌려서 볼을 씰룩거린다.


-시끄럽다 고만. 그건 그렇고 광수 니는 재수 델꼬 큰아부지 방에 가서 숙제해라. 마누라는 좀 들어오고. 내 좀 보자-
-니도 그렇제, 앞푸로 을쑤이 보고 절대로 그라지 말아라. 퍼떡 들어가서 공부해라-
작은아지매는 아들 광수 등을 가볍게 밀어 태섭이 방으로 보내고 머리에 쓴 수건을 내려 치마폭을 훌 털어내며 방으로 들어온다.


-광수가 우쨌는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묻는다.
-을쑤이가 저그 집 앞에 앉아있으이 동네 아아들이 짝대기로 치마를 들차싸코 했능기라. 그걸 보고 창호어마이가 내 보고 지랄을 안 하는교? 빙신을 밖에다 내놓기는 와 내놓노?-
-허허. 부랄도 영글도 안 한 자석이 치마는 와 들추노? 허허-
하면서 또다시 담배 하나를 만다.


-금방 꺼놓고 또 담배를 피울라꼬? 코가 맵다. 고마하소!-
마누라는 담배주머니를 뺏어 옆으로 밀친다.
태광은 아랑곳 안 하고 성냥을 그어 붙이고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니 분가하고 싶다 했제? 해주까?-
한마디 하고 눈을 내리깔며 담배를 빨아 당긴다.


-분가? 캤제! 내가 분가하자고 병원에서부터 당신한테 안 켔소? 근데. 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광을 쳐다보다가 무슨 감이라도 잡힌 듯 갑자기 앉은 채로 서방 코 앞으로 다가앉는다.


-무신 말이 있었제? 글채? 말해 보이소! 형님이 캅디까? 아니면 아주버님이 캅디까?-
능글맞게 삐딱하게 고개를 젖혀 담배를 피우며 피식 웃는 태광은 대답을 안 한다.
-말 좀 해보소 이 양반아!-
하면서 작은댁이 태광이 소매를 잡아 흔든다.
-아니, 무신 특별한 말은 아이고 아까 행님이 들어와서 카더라. 우리 분가시킨다꼬 행수님이 그랬단다-
-아주버님이? 보소! 내가 뭐라 켔소? 우리가 용심을 지기야 해줄끼라 안 했심니꺼? 인자 우리도 따로 사네!-
하면서 손뼉을 치는 흉내를 내는 작은댁은 잇몸이 벌겋게 드러나도록 웃는다.


-살림을 내주민사 땅 얘기도 했을끼 분명한데 그 말은 없었능교?-
금방 다른 얼굴로 변한 작은댁은 묻는다. 동서 그늘에 묻혀 살면서 천석지기땅 농사를 지어도 동네사람들한테 유세 한번 부려보지 못하고 밥상까지 차려 올리는 것이 늘 불만인 작은댁이 이제 자기도 주인행세하면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온몸에 옴이 돋듯 스멀거리고 좋은데 욕심 많은 그 맘속에 땅욕심을 챙기지 않을 리 없겠다.


-그런 말은 없었다. 알아서 하시겠지. 행수가……. 설마하니 내도 이 집에 둘째아들인데-
하면서 태광이 걷어붙인 바지 속에 아물어가는 허벅지 상처를 어루만진다.


작은댁은 아무 말 없이 그저 태광의 얼굴만 멍하니 쳐다본다. 머릿속으로 감당하기 힘든 계산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분명한데 기어이 복잡함이 힘들어진 작은댁이다.


머리를 진저리치듯 두어 번 흔들어대고
-지생각인데 광수아부지. 가마 있으소. 그저 집하고 땅하고 주는 대로 받고 따로 나섭시다. 아, 이집에 종손이 누가 될낍니꺼? 광수삑끼 더 있습니꺼? 나중에 다 우리끼 될낀데. 괜히 말 맹글지 마입시더-
마치 큰 결론이라도 찾은 양 입을 찰싹 다시며 서방을 본다.


-니 말이 맞다. 다 광수 앞으로 될낀데. 갠히 시끄럽꾸로 하지말아래이-
마누라와 똑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마치 마누라를 경고하듯 눈을 치켜뜨는 태광이다.


-아이구! 이기 몇 년만인교? 광수가 열 살이니 열두 해가 됐네-
하면서 작은댁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둘둘 말렸던 합바지를 풀어 내리던 태광이
-내는 논에 한번 나가볼란다. 인제는 걸어도 되니 못자리도 보고 논갈이도 봐야지. 니는 한번 둘러봤나?- 하곤 묻는다.
자기 대신 소작꾼들 독려라도 했느냐는 물음이다.


-소가 모지래서 가는 기 더딥디다. 남의 소 빌리는 사람들이 많으이 주야로 해도 더디고 소는 소대로 입에 거품을 물고 말이 아입니더. 소가 병이 나까봐서 빌리주도 안할라카고. 당신이 좀 나서서 말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소 없는 사람들은 모내는 날짜도 못 맞출낍니더-
끙 하면서 불편한 듯 다리를 절며 태광이 나서고 작은댁은 쪼르륵 안채마루로 간다.


-행님요 나와 보이소. 나물이나 다듬어 주이소. 지는 저녁 지을랍니더-
아까 집에 들어오면서 밭에서 뽑아온 소쿠리 가득한 배추며 시금치를 대청에 올려놓고 큰댁을 부르는 것이다. 안방 문이 열리고 그저 아무 말 없이 큰댁이 마루 끝으로 와서 나물을 다듬는다.
-나물이 좋네 동서!-
모처럼 동서를 부르며 싱싱한 나물들 뿌리를 비틀어 잘라낸다.


-그래예, 행님. 하루가 다르게 안 컵니꺼? 봄배추는 벌써 농할라 캅니더. 하도 좋아서!-
물동이를 한손에 들고 따뱅이를 머리에 올린 채 따뱅이 끈을 입에 물고 부엌을 나서며 환답한다. 그동안 퉁퉁거리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어쩐지 말끝이 상냥하다싶어 큰댁이 고개를 들어 마당을 걸어 나가는 작은댁을 본다.

휘적거리며 가는 모양새가 한동안 심통 부린 것하고는 영 딴판이다. 저것이 벌써 무슨 소릴 들었나 하고 생각하다가 어차피 알 일인데 들었으면 어쩌랴 싶어 그냥 다듬던 나물 밑둥치를 잘근잘근 자르고 떡잎을 고르고 하다가 문득 저 멀리서 들리는 소몰이 소리와 눈에 나타나는 들판 한가운데 봉긋한 태봉을 보는 둥 마는 둥 손길을 멈추고 과연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생각대로 뜻대로 될 것인지……. 그년의 당찬 모습처럼 덜렁 아들 하나 낳아주고 가버리면 종부로서 비록 자기 배로는 낳지 않았다 하더라도 함녕김씨 집안을 위하여 그것을 손수 진두지휘하였다는 거룩한 여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자기의 입장은 여전히 종부이고 지금과 전혀 다를 것이 없겠다. 신령님, 삼신님, 조상님, 제발 그리 되게 해주소서.


생각을 추스르며 남은 나물을 다듬어 마치자 작은댁이 턱밑에 떨어지는 물을 훔쳐내며 기뚱기뚱 가볍게 물을 이고 온다.
-서방님 보고 좀 져달라 하지, 무겁겠네-
그래도 동서인데 손을 아끼는 자기가 좀 미안한 감이 들어 한마디 한다.


-광수 아바이는 여자가 할 일이라 카민서 절때로 안 해줍니더!-
입에 문 끈 때문에 말이 오물거리지만 대답이 시원하다. 서방에 대한 원망도 섞이지 않게 들리니 저것이 오늘 무슨 영문인지 기분이 좋은 것이 틀림없다.


물을 부엌의 물단지에 붓고는 작은댁이 마루에 와서 걸터앉아 숨을 고르며 손으로 나물을 추스르며 말한다
-행님요-
말을 할 듯 하면서 눈은 나물 소쿠리를 보고 그냥 끊는다.


궁금해 죽겠는데 서방한테 들은 것이라고는 그저 살림 내준다는 것밖에 없겠다. 말이야 그저 주는 대로 받아서 나가자고 했지만 그게 어디 예삿일인가? 두 아들 데리고 대갓집처럼 살고 싶은 작은댁이다. 친정나들이에 비단옷으로 자랑도 하고 싶고 안방에 옷칠 잘된 문갑이며 자개장롱도 들이자면 땅마지기라도 넉넉히 받아야 할 일인데. 그것이 궁금해서 중치 끝이 스멀거리는 작은댁이다.


-왜 그래? 말을 하다가 말아?-
큰댁이 한쪽 다리를 세우고 동서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묻는다.


-아, 아니라예. 저녁에 뭘 할까 해서예. 좋은 나물이지만 매일 먹으이 잘못하민 근이 배기겠심더-
하면서 헤벌레 웃는다. 속내가 들키지 않도록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것이다.
-그래? 하긴 겨울 내내 못 먹었다고 봄나물을 많이도 해먹었지 요새. 광에 조기가 몇 마리 남았을까? 단지 속에 묻혀있어 보리를 헤쳐봐야 알겠네. 내봄세!-
하면서 허리를 일으켜 세우고 광으로 간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광은 열쇠로 잠겨있고 시어머니가 죽은 후 그 열쇠는 오직 큰댁만 지니고 있다. 광에는 늘 풍요로운 식자재가 들어있다. 잦은 제사에 쓰이는 육포부터 황태, 조기, 대구포, 문어하며 귀하다는 꿀이며 홍삼에 깨나 팥까지 그저 살림에 쓰이고 귀한 것은 항시 비축하여 두는 곳이다.


쇳대를 열고 허리를 굽혀 단지 속에 찬 겉보리를 헤집어 속에 들어있는 조기를 털어낸다.
-우리식구 한 끼 먹을 것은 충분히 되네. 댓 마리는 되니 오늘은 이걸로 하세. 두어 마리 구워서 남자들 상에 올리고 나머지는 찌개로 하지-
노랗게 말라 쪼그라진 귀한 조기가 큰댁의 손에 들여 나온다.


남들은 피죽도 마다 않고 먹어대는 춘궁기 아닌가. 쑥을 뜯어 섞어서 끼니를 불리거나 송기를 훑어 속피를 물에 우려내고 다시 양잿물로 하루를 재운 다음 빨래 방망이로 사정없이 두드려 뽀얗게 속살이 피어나면 그걸 아무 곡식가루나 밀가루에 섞어서 또 양식을 불리는 게 다반사인 때에 감히 조기구이나 찌개를 끓여서 알곡밥하고 먹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갓집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신바람 난 작은댁은 엉덩이에 풍구 달린 듯 훨훨 불 지피고 조근조근 칼질하고 척척 들이고 날리고 넣고 젓고 지글거리는 조기 타는 냄새에다 곁들여 젖국물에 생배추 절임까지 그야말로 근간에 본 적 없는 한 상을 척척 차리는 중이다.


-엄마-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 듯한 얼굴로 작은놈 재수가 정지로 들어서며 -배고푸다- 한다.
-시야는?-
얼굴도 돌아보지 않은 채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묻는다.
-아직 잔다-
-숙제하라 켔디만 잠만 디비자? 퍼떡 깨아라. 지녁 먹을 시간 됐다-
아이가 부식거리며 나가고 작은댁은 큰소리로 안을 보고 말한다.


-행님요. 우짜까요? 저녁은 다 됐는데-
걸음을 멈추고 소리를 기다린다.
-두 양반 다 없으니 좀만 기다리세. 아직 날이 밝으니. 아이들이 배 고프다 하면 먼저 먹이고-
다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음감이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비린 반찬에 군침도 돌고 배도 시장하지만 가다릴 수밖에 없겠다.


작은댁은 아이들 먹일 작은 소반을 꺼내서 주섬주섬 반찬을 올리고 잠시 멈칫하다가 노릿노릿 잘 구워진 조기 한 마리를 상위에 놓는다. 맘이 좀 불편한 이유는 저 안방에 앉아있는 여자가 알면 어른들 상에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아이들한테 먹이냐고 눈총 줄게 뻔해서다.


-광수야! 퍼떡 저녁 무라. 안 나오나?-
건넌방에서 잠이 들어버린 놈이다. 낮에 엄마한테 등줄기 얻어맞고 끌려와서 큰아부지 방에 갇혀 숙제하다가 잠이 꼬박 들었던 모양이다.


-방에 가거래. 내 상 들고 가꾸마-
아래채 자기들 방을 말하는 것이다. 보통 같으면 대청에서 먹을 것인데 조기 한 마리 때문에 눈에 띠지 않게 방안으로 가자는 것이다.


안방을 한번 힐끗 하고는 쏜살같이 작은 소반을 들고 아래채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 뒤이어 재수가 오고 광수가 들어왔다.
-야~ 엄마 고기 있다!-


재수는 털썩 상머리에 앉으며 환호성이다. 작은댁은 재수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한다. 낮에 혼이 나서인가 광수도 조기를 보고 한마디 할 뻔도 한데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든다. 작은댁은 조기살을 이리저리 발라서 이놈저놈 숟가락 위에 올려 주면서
-너그 큰엄마한테는 조기 먹었고 하민 안 된데이 알것제?-
입에 밥을 한가득 물은 작은놈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꺼떡꺼떡하고 큰놈은 그저 엄마를 바라본다. 무슨 말인지 알 만하다는 눈치다.


-쪼매만 기둘리래이. 엄마가 맛있는 거 마이마이 해 줄끼다. 그라이 너그는 그저 핵교 잘 댕기고 공부나 잘 하민 되는기라. 알것나?-
하고는 예뻐죽겠다는 표정으로 큰놈 머리도 쓰다듬고 작은놈 머리도 쓰다듬고 한다.
덩그러니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다는 자만심에 심취하는 작은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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