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장에 가서 점방 자리 보거래이”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8화

김담 | 기사입력 2013/10/18 [19:35]

“엄마, 장에 가서 점방 자리 보거래이”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8화

김담 | 입력 : 2013/10/18 [19:35]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소향은 벌써 삼 일째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몸살을 앓고 있다. 삼 일에 걸쳐 태봉나들이를 하는 동안 잠자리며 먹는 것도 부실했고 마음 쓰이던 여러 가지를 집에 와서 왈칵 토해내듯 그저 드러누웠다. 이튿날 간다던 대포아지매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잠만 자고, 움푹 패인 눈에 축 널어진 눈꺼풀 그리고 산발에 가까운 엉킨 머리카락은 보기에 영락없는 귀신형상이다.


장날 소향에미는 무슨 물건을 잡았는지 그 이튿날 떠났고 지금쯤은 돌아올 날짜가 되었건만 아직 오지 않았다.


아직도 장사 수완이 없는 탓에 한 푼이라도 더 남기려 씨름하다가 날이 저물고 막차가 떨어지면 경비가 더 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똑같은 상황을 겪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벌써 달포 이상 대구로 김천으로 머리에 광목보따리를 이고 도매상도 기웃거리고 골목을 다니며 소리도 질러보고 하면서 체면치레 없이 집에서 기다리는 어린 것들을 생각하며 그저 잔돈푼이라도 이득을 챙기려하는 것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간다. 부산은 아예 들르지도 않는다. 바다가 접해 있으니 물론 해산물이 많은 것이 이유다.


여관에 묵을 돈을 생각하면 간이 따가워 그냥 역사 나무의자에서 보따리를 안고 이틀밤 정도는 새우잠을 잔다. 말이 잠이지 치마 속에 든 전대와 안고 있는 물건을 생각하면서 깊은 잠을 잘 리가 없다.


소향을 생각하면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지는 에미다. 한편으로는 어제같이 애같던 딸년이었는데 날벼락 같은 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후로 에미보다도 더 든든한 집안의 기둥노릇을 자청하는 것이 한없이 기특하지만 하필이면 몸땡이 팔아서 돈을 마련한다는 것에 그것이 비록 유락가는 아니더라도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낮을 들 수 없을 일인 것이다.


더 한심한 것은 자기가 미친 듯이 말리고 따귀라도 때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딸년을 씨받이로 보내고 얻는 돈을 은근히 바라고 있지나 않나 하는 스스로의 의심에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깨나기도 한다.


대포아지매의 ‘다 팔자다’ 하는 말이 자꾸 생각난다. 이것이 정말로 에미도 어찌할 수 없는 팔자란 말인가? 석탄가루가 펄펄 날리는 기차역사는 잠만 자고나면 얼굴에 검댕이가 칠을 하지만 그런 것도 아랑곳없이 그저 물건을 빨리 처분하고 돌아갈 생각뿐이다. 마지막 남은 김과 건어물 몇 쪼가리를 식당에 헐값으로 떠넘기고 지금 소향에미는 삼천포에 거의 다다랐다.

다행히도 김천의 한 도매상과 대구의 건어물전에서 곱게 봐준 탓에 물건도 제법 잘 넘겼고 다음 행차 때도 들르라는 말도 들어서 마음은 가볍다. 파김치 같은 몸이지만 집에 가기 전에는 꼭 들리는 대포아지매 점방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내일이 또 장날이다.


날이 좋아서인지 저녁 때가 되었어도 점방문이 열려있다.
-아지매. 지왔심더-
인기척을 내며 들어서니 장날 국밥거리를 미리 준비하던 대포아지매가 칼질을 멈추고 반긴다.
-어서 온나. 이번에는 오땠노? 잘 됐나?-
하면서 궁금한 듯 물어댄다.


-손해는 안 봤네예-
기운이 탈진한 소향에미는 짧은 대답과 함께 나무의자에 털썩 앉는다.


-니 묵고 댕기지도 않제? 이것아 묵고 살자꼬 하는 장산데 저 얼굴 좀 봐라. 굶고 우째 하노? 아아들 생각해서 소향이 니가 살아야 된데이. 가마 있거라.. 내도 저녁 무걸 때가 됐으이 내캉 같이 묵자. 니를 밥동무 삼아 내도 밥맛 좀 내 보재이. 혼자 무거민 도시 묵기가 싫데이-
하면서 육중한 몸을 일으킨다.


-아이라예, 내 떠나기 전에 소향이 아푸다고 했는데 우째 됐는지 빨리 가봐야지예-
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들은 둥 마는 둥 대포아지매는 부엌에서 주섬주섬 저녁을 챙겨 들고 나온다.


겨울을 지난 신 김치쪼가리와 간장종지 옆에는 보기도 좋은 수육 한사발이 어설피 담겨져 있다.
밥은 식은밥이지만 제법 쌀이 많이 섞인 밥이라 모처럼 소향어미도 눈길이 간다. 장삿길에서 연신 값싼 국수로 배를 채운 후라 곡기가 들어가니 입안에 밥맛이 확 살아나는 걸 느낀다.


-아아들은 밥이나 해묵는지-
혼자 중얼거리면서 숟가락질을 한다.
-다 큰 소향이도 있고 또 들째도 딸이재? 그 담 아가? 이름이 뭐꼬?-
하면서 대포아지매는 입 가득히 밥을 물고 묻는다.
-숙향이예. 가는 열다섯입니더-
-그래. 가도 다 컸네. 뭘 걱정하노? 우리도 밑에 아아들 거다가민서 컸는데-
지렁에 찍어먹는 돼지머리 수육이 보기보다는 감칠맛이 돈다고 생각하는 소향어미는
-고기가 연하고 맛있네예-
하고 답례로 한마디 한다.


-그래! 낼 팔 거 미리 아시 삶아논기다. 마이 무우라. 아침에 이것저것 할라쿠몬 바빠싸서 저녁에 삶아놓고 아침에 그냥 국 속에 집어넣민 되제-
그새 한 그릇 밥을 비운 대포아지매는 허리를 뒤로 제치며 두 손으로 버팀세를 한다.


-니하고 무거이 묵을만하다. 소향아-
-지도 아지매 덕분에 잘 묵네예. 안 그래도 오기 바빠서 점심도 건너뛴는데-
하면서 소향어미도 숟가락을 놓고 일어서서 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야야 그냥 그 놓고 나온나. 치우는 건 낼 해도 된다. 누가 보길 하나-
그래도 소향어미는 익숙한 부엌을 이리저리 다니며 넣을 건 넣고 챙길 건 챙겨놓고 가볍게 행주질도 하며 밥값을 하는데
-나올 때 막걸리나 한 사발 들고 온나. 니꺼도 같이-
대포아지매의 주문이다.


술을 팔기는 해도 여간해서 술을 입에 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가 싶지만 소향어미는 땅에 묻힌 옹기에서 막걸리를 주전자에 반 정도 퍼 담고 사기그릇 두 개를 포개들고 나왔다.

-오늘은 우째 술을 다 하는교?-
하면서 대포아지매 앞에 놓인 잔에 술을 찰찰하게 붓는다. 기다렸듯이 대포아지매가 소향어미 손에 있는 주전자를 건네받아 맞은편 잔을 채운다.


-니도 한 잔만 하거라. 잠도 잘 오고 피곤한 것도 풀린다-
하면서 입에 대고 꿀꺽거리며 술을 넘긴다.
-술 무본 지도 오래된네예 지는…….-
하면서 소향어미도 술잔을 입에 대고 찡그린 표정으로 한 모금 마시다가
-카~ 아지매 술이 신네예. 언제 겁니꺼?-
하고는 잔을 놓고 입을 손으로 훔친다.


-그럴끼다. 한 사나흘 됐으이. 케도 마시몬 취하고 안 죽는다!-
하면서 남은 반잔을 꿀꺽 마저 마셔버린다.


반잔 넘게 남은 쉬어빠진 막걸리를 멀거니 쳐다보는 소향어미를 대포아지매는 깨우듯 부른다.
-소향아! 니 마음이 산란한 거 내 다 안다. 케도 여 사는 사람들 한번 다 둘러보거래이. 딸아들 가진 사람들 치고 누가 맘 놓고 사는 사람 있더노? 사내들은 대처로 안 나가몬 뱃질하다가 죽기 십상이고 딸이라는 것들은 넘에 집에 팔리듯 시집이나 가서 입 하나 들거나 아이몬 돈 번다고 서울에 가지만 돈은 무신 돈. 그저 넘에 우사할 일이나 하겠제.-


주전자를 들고 남은 술을 자기 잔에 붓지만 겨우 반잔도 안 차는 양인데 마시기 전에 말을 이어가는 대포 아지매다.


-내는 소향이가 넘에 집에 가서 곱게 자석 하나 나아주고 온다케도 뭐 그리 집안 망할 일이라고는 생각 안 한데이. 여자는 어차피 생산하게 돼있고 -
하면서 다음 말을 머릿속에서 고른다. 어제 들른 보살한테서 내막을 대충 들은 대포아지매는 까짓 계집팔자에 그만한 돈을 받고 자식 하나 던져주기로서 요새 세상에 뭐 그리 대수인가 싶지만 그래도 부모 앞에서 함부로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또 소향네 집안 사정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추기고 싶지만 같은 여자로서 자식에 관계되는 일이기에 조심스럽게 마음을 달래주려고 하는 대포아지매다.


-소향이도 소향이지만 니 그 밑에 아아들을 한번 생각해 보거래이. 운제까지 장사 댕길껀데? 자석을 팔아치우라는기 아이고 보살님이 팔자소관이라 켔으이……. 고마……. 소향이 말대로 해라-
이어지다 끊기고 끊어지다 이어지는 말을 억지로 마친다.


소향어미는 아무 말이 없다. 술잔만 쳐다보고 있다. 대포아지매도 자기가 한 말이 좀 어색했나 하고 생각이 드는지 술잔을 들고 마셔버린다.


-아이구. 두 양반이 술판 벌맀네-
문이 열려있은지라 인기척도 못 느낀 사이에 난데없이 털보무당이 환한 얼굴로 들어서며 말한다.
-아이구 보살님 아인교. 어서 오이소. 저녁은 하싰는교?-
하면서 대포아지매는 자리 한 쪽을 비운다.


-아이다. 내는 지금 막 남해서 오는 길이다. 내도 막걸리 한잔 도고! 바람이 없는데도 배가 작아서 카나. 마이 흔들리네. 속이 안 좋다-
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곁눈질로 소향어미의 동태를 살핀다.


무당이 앉음과 동시에 소향어미가 벌떡 일어나서 옆에 있던 보따리를 들고 대포아지매를 향해
-낼 지가 오까예?-
하고 묻는다.
-와? 갈라꼬? 좀 있다가 안가고-
하면서 대포아지매는 두 여자들을 번갈아 보며 어색함을 느낀다.
대답도 안 기다리고 소향어미는 휙 하니 나가버리고 무당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저 아지매는 내기 무신 원수졌나? 와카노?- 하면서 삐쭉 표정을 짓는다.

장삿길 노곤함 탓인지 소향의 이마 위에 손만 얹어보고 그냥 잠에 취해 새벽까지 돌덩어리처럼 잔 소향어미는 여름 초입에 접어드는 오월 이른 날샘에 훌쩍 눈을 떴다. 작은 방안은 어린 것들이 제각기 동서남북으로 뒤엉켜 잠을 자지만 소향은 웅크리고는 있지만 매무새는 큰것답게 가지런하다. 아침의 서늘함을 느끼고 어미는 홑이불 자락을 끌어 아이들을 덮어주고 소향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훑어 올려주며 열이라도 있나 하고 이마도 짚어보는데 소향이 몸을 돌려 부신 눈을 비비며


-엄마야. 운제 일났노?-
하면서 몸을 일으키려한다.


-일날라꼬? 괘안나? 내는 인사불성으로 잤다. 어제는 우떳노?-
-인제 다 나았다. 오늘 장날 아이가? 대포아지매가 기대릴끼다. 지난 장에도 못 갔으이 오늘은 가봐야지. 엄마도 갈끼나? -
-야는 지금 시간이 몇 시라고 벌써 서둘러샀노? 그라고 니 그 몸으로 가것나?-
어미의 근심 어린 눈길이 소향의 몰골을 본다.


사나흘 똑같은 옷을 입은 채 병치레를 한 소향의 모습이 염하기 직전의 모습과 다름없이 보일 정도다. 구호물자 쪼가리를 걸쳤으니 저고리도 아니고 조끼도 아니고 마땅히 이름도 없는 서양옷이라 심지어 여자 옷인지 남자 옷인지도 구별이 안 되는 것을 소향은 당겨내려 허리를 감추고 발끝에 걸린 이물자락을 걷으며 일어나다가 옆으로 비틀 쓰러진다.


-야야. 그냥 눕었거라! 니 안 되것다!-
하며 어미가 부축하자 소향이 굽은 등을 일으키며
-괘안타 카이. 그냥 어지럽어서 칸다-
하며 일어선다.


-엄마도 집안일은 걱정 마래이. 숙향이가 제법 다 알아서 한데이. 그라고 노마는 종락이 핵교도 델고 다니고 향숙이도 잘 본다. 이분에는 우땟노?-
장사가 잘 됐는지 궁금한 소향이다. 소향에미도 덩달아 일어서서 치마끈을 매며
-큰 재미는 없었다. 케도 손해는 안 봤지만 갱비가 마이 드는기 걱정이데이-
두 모녀는 머리를 숙여 대나무 살에 얼룩으로 황칠이 된 방문을 열고 뜰로 나선다.


-우짜꼬? 밥을 안치고 갈까?-
하면서 소향에미가 소향을 돌아보고 묻는다.


-아이다. 숙향이가 다 한다. 엄마도 배 들어올 때 물건 잡아야 좋은 거 산데이. 퍼떡 가자. 대포아지매도 일이 많을끼다-


아파서 누운 며칠간 숙향이 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소향이 부엌으로 들어가서 물동이도 열어보고 찬장도 둘러보고 하는 동안 에미도 들어서서 작은 가마솥을 열어보며
-쌀은 울매나 있노?-
묻는 에미의 말에
-쌀은 무신 쌀이노? 보리쌀이제! 아직 마이 있다. 이번 장에는 안 팔아도 된다-
장사한답시고 한 행부에 삼사일씩 집을 비운 지가 벌써 한참이나 되고 보니 살림살이 돌아가는 것이 이제는 남의 집 살림살이처럼 어색하게 느껴지는 소향에미다.


-엄마도 머리 빗고 내꺼도 좀 빗기도! 아무리 그래도 손님들 상 앞에서 일할낀데. 머리는 빗어야 안 되것나?-
기운이 달리는지 봉당에 놓인 돌 위에 엉덩이를 앉히며 마치 어른처럼 말하는 소향이다.


저것이 불과 두달 전에는 반품값 하던 자식인데. 이제는 에미를 제쳐두고 집안을 건사하다니. 소향어미의 눈에 소향이 이제는 다 큰 여자로 보인다. 말없이 방안에서 이빨 송송 빠진 참빗을 찾아 나와서 소향이 뒤에서 머리를 빗겨준다.


-니는 아부지 닮아서 숱이 좋데이. 내 머리는 숱이 작아서 비녀도 겨우 찌르는데-
고무줄로 질끈 동여매주고
-내는 됐다. 고만 퍼떡가제이-
치마폭을 툭툭 털어내고 두 모녀는 길을 나선다.


날은 샜지만 아직 햇살은 없다. 연한 안개가 바다 위로 걸려 늘 보아온 창선도도 신수도도 자태만 보일뿐 오늘따라 육풍도 해풍도 없이 그저 화사한 계절의 아침이다. 코끝에 전해지는 달콤한 꽂 향이 아릿하다고 느끼는 소향이다.


-바빠서 꽃냄새가 나도 깨도 못 심것다. 올해는-
소향에미의 푸념 아닌 푸념이다. 향기가 코를 찌르면 들깨씨를 뿌릴 때라는 어미의 말이지만 소향은 그저 향에 취하며 엄마를 따라간다.

-엄마야. 오늘 장에 가민 점방 자리 좀 보거래이. 내도 대포아지매한테 물어볼끼지만-

 

소향에미는 앞만 보며 걷는다. 들었을 테지만 대답이 없다. 소향도 더 이상 보태지 않고 그냥 걸어서 읍내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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