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남해변의 화창한 봄빛은 그늘을 벗어나면 땀이 돋을 정도로 덥다. 이제 막 시작되는 모내기로 꼭 필요치 않으면 장 구경삼아 나오는 사람들이 적은지라 그저 논농사 적은 섬사람들이 건어물을 들고 오거나 간혹 비녀 찌른 촌부들이 겨우내 묵혀 아끼던 밭작물을 앞에 내놓고 팔리기를 고대하며 여기저기 앉아있을 뿐 장은 한산하기만하다.
소향은 대포아지매가 삶아 내놓은 돼지머리를 도마 위에 놓고 뜨거워서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썰고 있다. 소향에미는 소향의 허한 몸을 생각해서 손수 물을 몇 행부 이고 오고 겨우 숨을 돌리려 나무의자에 앉는데 보기 싫은 함씨네 영감할마이가 들어선다.
벌써 두 달도 더 됨직하다. 이른 봄이라 추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이른 아침에 종락이 학교 보낼 때 입힐 옷가지라도 살 요량으로 못 받은 품값을 받으려갔다가 오히려 무지막지한 봉변만 당하고 돌아선 것이.
칼질하던 소향이 열리는 문으로 무심코 눈길을 주다가 그것이 함씨네라는 것을 안 순간 눈에 서릿발을 세우며 칼질을 멈춘다. 소향에미는 일어서서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고 아직 손님이 들어서지 않은 점방 안은 달랑 두 노인만 서있다.
그들도 방 앞의 작은 툇마루 끝에 앉아있는 것이 소향을 보았고, 또 뒷모습을 보이며 부엌으로 들어간 것이 소향에미라는 것을 알았는지 어색함이 눈에 훤하다.
머리에 까치집을 올리고 위에 입은 한복 동정이 새까맣게 찌든 영감이 무색함을 떨치러 나무의자에 앉으며 안에 대고 부른다.
-아지매. 좀 봅시다-
하고는 마고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니는 모하노? 안 앉고?-
여전히 어색함이 줄줄 흐르는 할마시를 보고 나무라듯 영감이 말한다.
인기척에 고개를 빼내 점방을 본 대포아지매는 아궁이 불을 소향에미에게 맡기고 나온다.
-우짠 일인교? 이리 일찍? 아직 국밥 끼릴라몬 좀 있어야 쿠는데-
주인은 탁자 맞은편에 앉는다.
-아 밥은 이따가 무도 되고- 하면서 영감이 어설피 일어서며
-아지매 내 좀 봅세-
할마시도 따라 나가고 영감이 한마디 하고 문밖으로 나서버린다.
영문도 모르는 대포아지매는 큰 궁둥이를 나무의자에 붙인 채 일어날 생각도 없이 -와카지? 야야! 소향아!-하고는 소향에미를 부른다.
칼을 든 채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던 소향이 자기에게 눈길도 못 맞추고 슬그머니 나가버리는 두 노인에게
-그래도 인간이라고 부끄럽은 줄은 아는 모양이지?- 하고 중얼거린다.
소향에미도 쭈뼛 걸음으로 부르는 소릴 듣고 나오다가 두 함씨네가 나간 걸 알고는
-아지매요. 아침부터 저 인간들 보고 내 심장이 쿵쿵 띠싸서 숨이 다 가뿝니더- 하면서 대포아지매 앞에 앉는다.
그 소리를 들은 소향이 발끈하며 소릴 지른다.
-엄마야! 니는 죄진 것도 없이 와 심장이 뛰노? 못난 소리 좀 하지 말거래이. 내 저 인간들 두고 볼끼데이!-
도마에 부딪치는 칼질이 사납게 들린다.
눈이 휘둥그레 커진 대포아지매는 함씨네 집에서 있었던 사실을 모른 채
-너그 와카노? 무신 일 있었나?-
하면서 연신 둘을 번갈아 본다.
소향은 표독한 얼굴로 칼질에만 눈을 고정하고 소향에미는 딸에게서 들은 핀잔에 머쓱한 느낌을 지우려 죄 없는 뒷머리에 비녀를 뺏다 꽂는다.
-먼 일이고?-
대포아지매는 함씨네가 부른 것도 잊은 양 되묻는다.
-아입니더. 나중에 말심디리지예. 지는 불 봐야 됩니더-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참! 내 정신 좀 보래이! 저 양반들이 기대릴낀데-
그제야 함씨네가 생각난 듯 불현듯 일어나 밖으로 나서는 대포 아지매다.
장터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대폿집은 상가의 제일 끝에 있고 그저 나무판자로 어설피 지어졌지만 대여섯 개의 점방들이 붙어있는 일자형 가게자리에서는 그래도 제일로 목이 좋은 곳이다. 그 옆으로 옹기점이 있고 건너에는 뱃일에 필요한 잡동사니를 파는 점방이 있지만 나머지는 비어 있은 지 오래고 그저 장날에만 장꾼들이 그 앞을 차지하고 판을 널어놓는 정도다.
고개를 둘러 함씨네를 찾던 대포아지매는 두 노인네가 비어 있는 점방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리로 향한다.
-여 계싯네. 뭣 땜에 쿠는교? 안에서 말씸하시도 될낀데-
머리 뒤에서 나는 소리에 판자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던 함씨가 허리를 펴고 돌아서며
-아 별건 아이고 그래도 아지매가 여서 젤로 오래 안 있었는교? 케서 뭐 좀 물어볼라꼬- 하면서 한발 물러서서 길게 널어선 판자쪼가리 점방건물을 한눈에 넣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말을 계속한다.
-내도 여서 오래 살았으이 알긴 알지만 이 점방들이 와 장사가 안 되서 비아 있는지- 하면서 걸음을 옮겨 다시 그 옆의 비어 있는 또 다른 점방 안을 기웃거린다.
-아저씨예! 무신 말씀하시는교? 지는 바빠서 가야 됩니더-
대폿집 주인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늘어놓는 함씨노인에게 조금 성화 섞인 표정으로 대꾸를 한다.
그제서야 아무 말 없이 옆에 서있던 함씨부인이 거들며 대포아지매 옆으로 가까이 와서
-이 건물을 살라꼬 아지매한테 물어보는 기다. 힘에 부치사서 김도 하기 에룹고 케서 여따 어물전이나 하나 내볼라꼬-
-그래예? 카모 와 지한테 그걸 물어봅니꺼? 지도 세 주고 장사하는데 주인한테 물어보실끼지……. 아실낀데? 이건 조합장 꺼 아입니꺼?-
-아, 그기야 우리도 알제. 케도 아지매가 여서 오래 있었으이 장사 내막을 좀 들어볼라꼬 안 하나!-
함씨부인은 제법 신명나는 표정으로 말한다.
-지는 가봐야 됩니더! 말씸하실끼 있으민 안으로 오이소-
하고는 성가신 듯 발을 돌린다.
발길을 급하게 옮기던 대포아지매는 문득 생각이 난 듯 옹기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에 대고 크게 소리친다.
-아재! 뚝배기 있나? 있으민 한 열댓 개 가온나!- 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점방으로 가버린다. 그 모양새를 멍하니 쳐다보던 함씨네가 또 무언가를 수군거리며 연신 빈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어슬렁거린다.
-아 사람이 바빠 죽겠구만 무신 씰데잖은 소리 한다꼬 오라가라카노- 하면서 부엌으로 대포아지매가 들어서서 가마솥을 열어젖히고 썰어놓은 대파를 집어넣는 소향에미한테
-국은 다 됐나?- 하고 묻는다.
-인제 한번 더 끓기만 하몬 됩니더- 하고는 아궁이 열기에 익혀진 얼굴을 훔쳐낸다.
-그런데 니 아까 소향이 말 들으이 함씨네 하고 무신일 있었제? 머꼬?- 하고 묻는다.
-아무것도 아이라예!-
소향에미는 그냥 나가며
-아지매. 지는 장에 나온 물건이나 보로 갔다 올랍니더. 국 안 넘도록 불 좀 보이소! 퍼떡 오께예-
소향은 나가는 엄마를 보며 -엄마야. 뭐 살라꼬?- 탁자 위를 닦던 행주를 손에 쥐고 묻는다.
-모리겠다. 뭐가 나왔는지 봐야 알제- 하면서 장터로 간다.
소향은 하던 일을 마저 끝내고 부엌으로 가니 대포아지매가 아궁이 장작불을 꺼내놓고 눈이 매워서 제대로 뜨지도 못하며 손으로 사발에 담긴 물을 타는 장작에 뿌려댄다.
-나무를 너무 마이 넣었네. 불이 시다. 인제 다 됐으이 살살 끼리기만 하몬 된데이- 허리를 펴며 대포아지매가 소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아까 소향에미에게 물었던 걸 물어본다.
-엄마하고 함씨네하고 무슨 일이고?-
-엄마가 말 안 했어예? 그기이예- 하면서 엄마하고 같이 두 노인에게 형편없이 당했던 그날의 일을 말한다.
대포아지매는 연신 저런 인간들이 있나, 우짜꼬, 하면서 다 들은 후 -그래! 그런 인간들 하고는 인제 상종하지 말아래이. 담에 그 인간들 여 오민 내가 돈 받아주꾸마- 라며 안 됐다는 듯한 눈으로 소향을 보며 혀를 찬다.
-아지매! 그런데예. 아까 그 사람들은 여는 와 왔어예?
-어? 아! 그 인간들이 머라 카더라? 무신 이 점방건물을 산다 카던가. 사던지 말던지. 내하고는 일없다-
대포아지매 입에서 어느새 함씨네가 인간들로 이름 붙여졌다.
국밥집하며 술도 판 지 이 자리에서만도 벌써 이십 년이 넘었고 숱한 주정뱅이 떠돌이 장꾼들을 대해본 대포아지매라 화라도 한번 나는 지경에는 누구보다도 걸쭉한 욕설에 사나운 얼굴까지 곁들이니 남자들도 쉽사리 보지 못하는 게 근방에서 들리는 장꾼들 사이에서는 다 알려진 일이다. 그런 대포아지매 입에서 함씨네를 그 인간들이라 지칭하는 것은 소향네를 안타깝게 여기는 만큼 밉다는 말이다.
-이 점방을 산다꼬예? 그 사람들이예? 그래 되민……. 아지매는 우째 되는데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걱정이 되듯 묻지만 대포 아지매는 부엌의 흙바닥을 몽당빗자루로 쓸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한다.
-내? 왜? 장사 못할까바서? 걱정 말아라. 여 아이라도 장터에 빈 점방이 오데 한두 군데나?-
소향은 잠시 생각하다가
-아지매예. 실은 지가 말씀드릴라 켔는데. 말이 나왔으이 하께예-
대포아지매의 주목을 구하듯 말을 끊으니 역시 굽힌 허리를 펴며 대포아지매가 일어서서 소향에게 눈을 크고 뜨고 묻는다.
-먼데? -
-지가예. 이번에 보살님하고 가민예. 점방 하나 얻을만한 돈을 엄마한테 줄낀데예. 지 생각은 아지매 옆에서 엄마가 어물장사를 했으민 하고예-
소향은 대포아지매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대포아지매도 대충의 일은 아는지라 놀라지는 않지만 막상 점방을 얻을만한 돈이라는 소향의 말에 액수가 궁금하다.
-울맨데?-
-그기예. 삼십만 환이라예-
소향은 역시 대포아지매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입을 앙 다문다.
-으이? 삼십만 환이라켔나? 야야! 니가 우째 그리 큰 돈을 엄마한테 준단 말이고?-
그저 몇만 환 정도겠지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대포 아지매의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야야! 그만한 돈이사 점방을 얻어도 좋은 걸 얻제. 쿤데 보살님이 카더나? 그 돈 준다꼬?-
믿어지지 않는 듯 어린 소향의 입에서 나올만한 액수가 아니라는 듯 재차 묻는다.
-아이라예. 그랬어예. 지가 들었어예-
누가 그랬는지는 빼고 말한다. 비록 대포아지매도 알고는 있다 해도 막상 속속들이 내놓고 흥정한 것은 말하고 싶지 않은 소향이다.
아직도 믿기지 않은 듯 잠시 소향을 쳐다보던 대포 아지매는
-오이야. 니가 참 장하데이! 그래! 논개는 나라 구했다켔지만. 니는 집안 구한데이-
말끝을 흐리며 돌아서서 몽당빗자루를 한켠에 세우는 대포아지매는 문득 자신이 처량해짐을 느낀다. 이십 년을 넘게 장사랍시고 했지만 소향이가 말한 그만한 목돈을 만져본 적이 없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뭐하고 살았나? 부산 가서 현해탄 건너 일본 간 서방은 시부모가 다 죽도록, 해방이 되고 천지가 바뀌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고. 사실 이제는 서방을 기다리는 마음조차도 있는지 없는지 자신도 잘 모르는 대포아지매다.
-오늘 장이 영 틀맀다. 모내기철이라 카나?-
하면서 비록 점심으로는 좀 이른 시간이지만 자신의 어지러운 마음을 환기시키려 한산함을 탓한다.
-그라고예. 아지매요. 한 가지 더 부탁 디릴끼 있습니더-
한 발짝 더 대포아지매에게 다가선 소향은 이번에는 대포아지매의 반응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잇는다.
-운젠지는 모리지만 아마 곧 갈낀데예. 아지매가 지하고 같이 좀 가주이소-
-오데라 켔제?-
내막은 귀띔으로 알고 있지만 경상도 정도이지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는 대포아지매의 질문이다.
-상주라 켔으예-
-한참 가는구나. 꽤나 멀낀데. 쿤데, 와 내보고 가자쿠노?-
그제야 궁금한 대포 아지매다.
-사실은예. 이번에 지가 그 집에 가몬 그때 돈을 준다 켔거던예. 보살님하고 같이 가긴 가더라도 돈을 보살님한테 맡길 수는 없고예, 엄마는 같이 가자고 할 수도 없고예, 그라고 지는 당분간 올 수도 없으이. 지가 말씸드릴 사람이 아지매밖에 없어예-
소향의 말을 들은 대포아지매는 아무 말이 없다. 그렇다. 그럴 것이다. 어찌 그만한 돈을 바람같이 돌아다니는 보살한테 맡길 것이며 또 딸자식 팔아먹고 돈 챙겨온다는 소릴 들을 수 있는 소향에미가 어찌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소향은 더더욱 당분간 그 집에 묵을 수밖에 없으니. 그렇구나. 자신밖에 소향을 거들 사람이 없구나 하고 소향의 말이 이해가 된다.
-소향아. 니가 우리 집에서 엄마 따라 일한 지가 울매 되지는 않지만 니는 내기 딸이나 마찬가진 기라. 걱정 말아라. 내 니하고 같이 가서 그 집에 말마디라도 한마디 하고 오꾸마!-
하는데 때마침 점방에 시끌거리는 소리와 함께 너덧 명의 남정네들이 들어선다
-소향아 손님인갑다-
하면서 대포아지매가 부엌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