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소향이 국밥과 열무김치를 들고 나와 탁자에 올리고 수저도 가지런히 놓아주자 대포아지매는 선잠에서 깬 듯한 얼굴로 소향을 보며 말했다.
-야야 너그 엄마는 뭘 보고 댕기는지. 사람들이 이리 없으이 뭘 살끼 있겠나? 손님도 없으이. 니가 함 찾아봐라. 여는 내가 있으이-
소향을 내보내고 무당에게 더 들어볼 요량이다. 소향은 -그라몬 지가 퍼떡 갔다 오께예!- 하고는 꽁지머리를 달랑거리며 나간다.
-자가 정말로 그리 좋은 사주를 가지고 났심니꺼?- 하고 묻는 대포아지매를 무당은 무시하듯 대답도 없이 수저로 국밥을 입에 퍼 넣는다.
대포아지매는 대답 없는 무당의 행동이 두말할 것 없이 그렇다는 대답으로 여기며 허리를 쭉 펴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가가 내도 자는 야무지다고는 생각했지만서도- 하면서 삼십만 환의 거금을 머리에 떠 올린다.
이십년 넘게 장사를 했지만 겨우 논 두마지 사놓고 쌀 두 가마 도지 받는 것하고 장터에서 이자놀이 하는 현금 십여만 환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에 비하면 머리에 피도 덜 마른 아이가 어떻게 그런 돈을 마련하여 에미에게 점방까지 차려줄 일을 진행하는지, 정말로, 하고 탄식하며 열린 문으로 출렁이는 바다를 하염없이 보다가 자신의 때꼬장물 절은 치마를 보듬어 안고 다리를 세우며
-보살님예! 자가 지보고 저그 엄마 점방 하나 잡아달라 쿠던데. 보살님이 하나 봐주이소!-
입에 남은 고깃덩어리를 씹어대며 무당은
-그래? 음 그렇지. 이번 참에 가몬사 그기야 되지. 그라고 내가 보이께네 아지매 있는 이 터도 괜찮타. 아지매 옆에 빈 점방 있으몬 하나 말해봐라. 내 부적 하나 달아줄 터이니-
하고는 남은 국그릇을 통째로 들고 국물을 후루룩 마신다.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대포아지매가 얼굴을 풀고 무당에게
-그란데예. 아침에 조 아랫동네 사는 할바시가 와서 이걸 살끼라고 하던데. 보살님! 이왕 오싰으이 지가 국밥값 안 받을께예 지가 여서 장사를 계속할지 오데 딴 데로 갈지 좀 봐주이소!-
-아랫동네 누가?-
입속에 남아있는 찌꺼기를 혀로 이리저리 닦아내며 무당이 묻는다.
털보무당이 비록 인근에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은 아니라도 이 바닥에 발을 들이고 들락거린 이래로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뀌었고 또 그 세월동안 이 사람들 저 사람들 좋은 일 궂은 일 점사주 봐주고 액땜에 심지어는 액 붙이기도 수없이 한지라 삼천포뿐만 아니라 인근 수없는 도서 지방의 사람들 소문이나 소식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아랫동네 누가 그러냐고 묻는 것이다.
-그 있습니더. 함씨라꼬. 조 아래 덕명에 사는 인정머리 없는 영감인데- 하면서 입이 삐쭉거린다.
-응? 함씨? 조 아래 물가에 있는 집 아이가? 그 아들 둘 다 바다에 내다삐린 그 함씨 아이가?- 하고는 눈을 크게 뜨고 대포아지매에게 묻는다.
-맞심더! 그것도 아시네예. 와 아입니꺼. 그기 벌써 운제적 일입니꺼? 해방 전입니더-
-알구로! 내가 오래 됐지만 그집 아들들 진혼제 모싯다 아이가? 그기 해방 전인가? 훈가? 아무튼 그집 영감이 산다꼬?-
해방 전이니 벌써 십오륙 년 전이다. 겨울에 만든 해태를 헐값에 왜놈들한테 거의 다 공출당하다시피 뺏기고 함씨네 두 아들은 쪽배를 타고 봄멸치를 잡으러 나갔다. 거의 바람 걱정 없이 하는 것이 봄철 고기잡이인데 그해에는 액이 끼었던지 살이 붙었던지 돌풍이 불었고 작은 목선은 금쪽같던 함씨네 두 아들을 물속에 쳐 넣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함씨네 내외는 그들이 살고 있는 집 뒤의 바위절벽이 읍내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세상을 등지고 살다시피하고 가슴에 지닌 원망과 통한은 인정머리 없는 두 늙은이로 만들고 말았다.
-예. 지보고 점방세를 울매나 주냐고 묻고 합디다. 막상 그 영감이 주인이 되모 내도 밸로 좋은 건 없는데- 하면서 눈을 내리깐다.
-와? 아지매야 장사하고 세만 주모 될낀데 와 걱정하노?-
의아한 무당이다.
-그런 일이 있심더. 오늘 아침에-
하고는 대포아지매는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그렇기도 하겠제! 노인들이 운제꺼정 그 힘든 일을 하겠노? 자석들도 다 잃었으이. 돈이 있으민 세 받아묵고 살고 싶겠제-
대포아지매의 말을 다 듣고 하는 무당의 말이다.
-그래서 안 묻습니꺼! 지가 여서 장사를 할지.. 딴데로 갈지. 만일 그 할바시가 주인이 되모 지는 여 있고 싶어도 못 있지예. 하긴 뭐 장터에 빈 점방이 많긴 해도 그래도 여가 초입이라서 들고나는 사람들 때문에 국밥장사 하긴 딱인데-
하면서 무당의 눈을 본다.
-아지매. 아지매 팔자는 아지매 얼굴이다. 달고 사는 얼굴이니 아무리 못나도 내 얼굴이고 잘나도 내 얼굴이데이. 그런데 아지매가 웃으민 웃는 팔자고 울민 웃는 팔자다. 카고 또 넘이 울게 하기도 할 수 있고 웃끼기도 할 수 있데이. 그뿌이 아니고 울게 웃게 하는 넘을 아지매가 바꿀 수도 있는기라. 그러이 팔자는 내가 가지고 있으민서도 또 넘이 만들 수도 있다는 거지. 내는 그래도 장날인데 여곽에 가봐야 된다. 한번 보로 오래이- 하고는 일어선다.
작은 일도 그저 돈푼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털보무당이라 그렇게 궁금한 대포아지매한테 국밥 한 그릇으로 입담을 바꾸기는 손해라 생각하는 것이다.
돈도 안 내고 염치도 없이 으젓하게 그냥 나가는 무당의 등 뒤에 대포아지매가 말을 보탠다.
-내 한번 가께예! -
하고는 일어서서 무당이 남긴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겨우 말린 간재미 몇 마리 사들고 장이 장같지도 않다며 걱정하며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던 소향에미는 등 뒤에서 부르는 소향의 소릴 듣고
-니가 와 나왔노? 아지매는 우짜고?-
묻는 소향에미에게 소향이 어미의 손에 들린 간재미를 잡아들며 -이기 다가? 여태?- 하고 되묻는다.
-야야! 농사철이라 카나?? 우째 배도 안 들어오고. 장꾼들이 장 보로 온 사람들보다 많데이! 아무케도 오늘은 틀맀다. 우짜겠노? 살 물건이 없으이. 이건 우리나 묵자! 대포집 아지매도 좀 디리고-
하면서 새끼에 꼬여 달린 생선을 들었다 놓는다.
털레털레 힘없이 걷는 엄마를 따라 대폿집으로 오면서 소향은 삐딱하게 뒷 꼭지에 꽂힌 누렇게 색 바랜 비녀를 보면서 언젠가는 꼭 연두보다 더 진한 옥비녀를 사서 엄마머리에 쪽질러주리라고 생각한다.
점방 안에는 그래도 두어 명이 술잔을 놓고 환담하고 있고 대포아지매도 소향네처럼 신명나는 일이 없는지 손님들 옆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들어서는 소향네를 보고
-뭐 좀 샀나?-
-살끼 있어야 사지예. 날은 좋은데 사람들이 안 빕니더- 하고 소향에미도 앉는다.
소향은 무당이 안 보이자
-아지매. 보살님은 벌써 가싰어예?-
-그래도 장날이라 혹시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 가싰다. 너거도 내캉 점심이나 묵자. 때 됐으이 무거야 안 되겠나! 소향아. 니가 좀 내온나!- 하고는 그대로 앉아있다.
-아지매. 우리 이거 구워서 밥 묵읍시더. 국밥은 인제 신물이 납니더. 그래도 봄이라 간재미가 꼬들꼬들 하이 맛있을 겁니더. 지가 꿉어올께예-
하고는 소향에미가 부엌으로 가서 아궁이에 남아있는 숯을 빼내서 생선을 굽고 뜸한 손님 덕에 셋이 오붓하게 점심을 때운다.
-엄마야. 니는 고마 학교 가서 종락이 델꼬 집에 가거라. 좀 있으민 종락이 델로 노마가 학교로 올낀데. 고마 같이 가거라. 여는 내가 아지매하고 충분하데이-
소향이 엄마에게 주문한다.
-여태 아파놓고 내보고 가라꼬? 니가 가던지 안하고?-
몸살로 사나흘 아팠던 딸이 염려되는 에미가 되묻는다.
-인제 내는 됐다. 움직이는기 안 아푸고 더 안 낫나? 아 참! 쿠고. 아지매가 함씨네 돈 받아줬다-
하면서 주머니에 들었던 돈을 꺼내 엄마 앞에 놓는다.
-어이? 아지매가? 우째? 그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긴 돈을 받았단 말인교?-
소향에미가 한껏 놀라 돈을 손으로 집으며 대포아지매를 환하게 쳐다본다. 한바탕 소향의 싸움장단이 널리고 세 여자들은 웃고 손뼉 치며 생각지 않던 돈이 생긴 것에 대포아지매는 손님 없는 장날장사의 시름도 잊고 소향어미는 장사 갈 물건도 사지 못한 걱정도 잊었다.
소향의 얼굴은 한결 생기를 찾은 듯 보인다. 대포아지매도 거들어 소향어미는 학교로 종락이를 데리러 가고 점심때가 지나가고 있는 점방 안은 휑하니 소향과 대포아지매만 남았다.
-소향아! 너거 엄마가 내하고 이웃해서 조 옆에 옹기점 바로 옆에다 어물전을 하민 참 좋을낀데. 모리겠다. 아침나절에 왔던 그 함씨네가 만일 이 점방들을 사삐면 내도 딴 데로 가야할끼다. 조 안에도 빈 점방들이 있으이 가는기사 에룹은 일이 아이지만. 귀찮다 아이가?- 하면서 소향을 쳐다본다.
-그렇네예. 와 갑자기 그 사람들이 나섭니꺼?-
눈이 샐쭉해지고 입을 삐쭉거리며 생각지 못한 걸림돌을 만드는 함씨네가 미운 소향이다.
-지 돈 주고 지가 하는 지랄이니. 그기사 내 상관안하지만. 해필이몬 그래 와 여고?-
하고 또 소향을 쳐다본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것이 대포아지매의 마음이다. 소향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수중에 든 돈은 없으니 그저 말뿐이다 싶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재삼 대포아지매한테 당부한다.
-아지매요. 지는 그저 아지매만 믿습니더. 우리엄마는 장사를 잘 모른다 아입니꺼? 아지매가 옆에서 좀 마이 거들어 주이소-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소향이 말한다.
파장이 되어가는 오후가 시작되고 술 손님 두어 명이 들었을뿐 대포아지매 집은 한산하다.
털보무당이 공짜 국밥 한 그릇을 점심으로 때우고 휘적거리는 느린 걸음으로 장구경을 한바탕 돌았다. 포목점에서 눈에 띄는 연두색 비단이 맘에 들기도 하고 신발가게 선반 제일 위에 놓인 가죽으로 지어진 구두도 맘에 들기도 한다. 양장도 맘에 들고 비 올 때 쓰는 우산이 아니라 햇빛 날 때 쓰는 꽃무늬 잘 입힌 양산도 마음에 든다.
그래도 장날이니 혹시나 자기를 기다리는 손님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무당은 여곽으로 돌아왔다. 자기가 묵는 방 앞에 흰 고무신 두 켤레가 있다. 하나는 여자 것이고 하나는 남자 것이렷다. 넌지시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누가 오싰는교?- 하면서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햇빛 밝은 밖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은 보이나 얼굴을 금방 알아보지 못한 무당은
-점심공양 하느라 갔다 왔심더. 마이 기대릿심니꺼?-
하며 아래쪽 자기 자리로 걸음을 옮기다가 그제야 앞에 사람이 시야가 들어온 듯 -아니? 이기? 아지매 아입니꺼?- 라며 놀라는 표정으로 한켠에 서있던 함씨부인을 반긴다. 함씨는 그저 엉덩이만 옆으로 돌려서 자리를 잡고 부인도 앉으며 답한다.
-예, 그동안 보살님도 잘 계싯심니꺼? 오랜마입니더!-
말은 하지만 뭐 그리 반가운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아닌지라 그저 인사치례다.
죽은 자식들 혼제를 부탁하고 부탁받은 사람들끼리니 무슨 인정에 얽매인 사이는 아니다.
-아이구. 그기 벌써? 십년이 넘었네예. 우째 그리 한 번도 발걸음을 안 하십니꺼? 그래!-
무슨 반가운 사람이라고 발걸음을 하겠는가? 보면 자식생각 날 테고 혼제에 들인 돈을 생각하면 속이 쓰릴 지경인데 하면서도 함씨부인은
-사는 기 그리 맨듭니더! 그래도 보살님은 참 곱게 하고 댕기시네예. 얼굴도 좋으시고-
나이로 보면 한참 밑이지만 그래도 신통하는 보살이라 믿는 함씨네는 말을 하소하며 인사한다.
-지는 그저 부처님이 시키는 대로 삽니더. 팔잔데 우짭니꺼?-
좋다는 겸손의 대답인지 한심한 팔자라는 탄식의 대답인지 애매모호하게 대답하는 무당이지만 부처님을 팔아 신통력을 덧붙이는 것은 잊지 않는다.
-그래! 우째 이리 더문 발걸음을 하싯는교?-
하고 함씨 안사람을 보고 또 함씨를 본다.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함씨다. 뭔가 마음에 들지않는 것으로 봐서 일이 있긴 하다. 무당은 재떨이를 당겨 앞에 놓고는 담배를 찾아 함씨에게 권한다.
-양감님 한 대 태시민서 말씀해 보이소-
자기도 한 대 입에 물고는 영감 앞이라고 주저하는 기색도 하나 없이 성냥을 그어 붙인다.
-아까 장에 왔다가 집에 돌아가던 중에 아무케도 보살님한테 한분 물어보는 기 좋을 것 같아서 오기 싫다는 영감을 억지로 델꼬 왔심더-
함씨부인이 말을 시작한다. 담배연기를 훅 불어내던 무당이 말하는 부인은 보지도 않고 묵묵히 앉아있는 함씨한테 묻는다.
- 영감님! 무신 일인교?-
물으면서 아까 전에 들었던 대포집 얘기를 떠올린다.
그제서야 함씨가 엉덩이를 당겨 무당의 권련을 한 대 빼서 입에 대면서 말을 한다.
-우리가 일하는기 이제 힘에 부치사서. 장터에 어물전이라도 하나 내까 싶어 점방을 보고 왔심더. 이 할마시가 자꾸만 사도 되는 긴지. 보살님한테 물어보자 해싸서-
어설프게 말하는 것이 아주 전형적인 남정네들 태도다. 사실 함씨는 당장이라도 콱 그 점방을 사서 아침에 겪었던 분풀이로 대폿집 작부년을 후 쫓아내고 싶은 심정인데 부인은 생각이 달랐다. 생활의 터전을 옮기는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일인데 어찌 덥석 일을 벌이겠는가? 하여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영감을 붙잡고 우리 한번 물어나 보입시더 하고 사정하여 이리 온 것이다. 아하! 대포집이 들어앉아있는 그 점방건물이구나 털보무당은 싱긋이 속으로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