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음력 사월 중순이 넘으면 농사일은 사람들을 파김치로 만든다. 그저 땅에서 일 년의 살림살이가 나는 터이니 모를 내고 밭작물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릴 때까지는 허리 한번 길게 뻗어볼 시간도 없이 일을 하는 형편이니 아무리 장날이라 해도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 소향에미는 종락이와 노마와 함께 집으로 갔고 대폿집에 남은 소향은 몸살 끝이라 힘들었을 것인데도 다행히 손님들이 들지 않아 쉽게 하루를 보낸다.
파장이 일찍 왔다. 어차피 없는 손님이니 장꾼들도 다음 장으로 일찌감치 떠나고 남은 사람들도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고 천막을 걷고 하지만 음력 사월 끝자락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있다.
막걸리 사발을 앞에 놓은 몇 사람들이 두런거릴 뿐 대포아지매는 아예 방안에서 낮잠이라도 자는 양 조용하고 소향도 할 일 없이 우두커니 방 앞에 놓인 작은 툇마루에 앉아있다. 하지만 아침에 보살이 왔다가면서도 언제 갈거냐고 묻지도 않고 갔으니 분명 저녁쯤에는 물을 것이 분명한데. 그저 머릿속은 벌통 하나가 통째로 들어앉아있는 양 벙벙하고 정리가 되지 않는다.
지난 몇 달 사이에 한꺼번에 밀어닥친 일들이 자신을 많이도 변하게 했다고 느낀다. 장사 나가는 엄마, 종락이 입학시킬 때 입힐 옷이 없었을 때, 지서장의 눈빛, 지서 앞에서 자기들 모녀를 구경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 먼 곳의 어떤 아지매의 근엄한 얼굴, 다섯 마지기 논.
소향은 문을 열지는 않고 안에다 대고 부른다.
-아지매, 아지매!-
대포아지매는 두 번을 불리고 나서야 기척을 하며 문을 연다.
-와?-
한쪽 눈이 반은 감겨있다. 선잠을 잔 모양이다.
-아지매. 지가 다음 장날 그 다음날 갔으민 하는데예-
소향의 말끝이 나약하게 나오는 것은 엄마나 대포아지매의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하겠다는 마음이다.
-그랄래? 니 엄마한테 말했나?- 하고 일어서서 나오며 묻는다.
-아니예. 케도 그라민 될낍니더-
대포아지매도 묻긴 물었지만 딱히 두 모녀가 무얼 어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것도 안다.
-알았다! 내 그리 준비하꾸마! 여야 잠궈나도 되고. 아니민 너그 엄마가 한 며칠 봐도 되고. 니 없으민사 너그 엄마 인제 장사 안 갈끼재?-
낮잠에 흩날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대포아지매가 소향에게 묻는다.
-오늘도 살끼 없어서 못 샀다 아입니꺼. 이분에 아지매가 지하고 갔다 오시고 나서 꼭 점방하나 해주이소. 엄마가 아지매 옆에 있어야 지도 맘을 놓겠네예-
손님이 술 한 주전자를 더 요구해서 소향이 갖다 주고 다시 앉는다.
-그기. 아 글쎄! 그 지랄 맞을 영감이 그런 소리만 안 했어도 내 조합장 부인한테 말만 한 마디 하민 점방 하나 얻는 기야 일도 아이제! 쿤데 정말로 그 영감이 사삐민, 내도 오데로 가야 된다 아이가!-
대포아지매는 난감한 표정으로 소향을 본다.
-우짜든지예. 아지매가 가시도 우리 엄마하고 같이 가시야지예-
-오야. 내 그리 하꾸마! 케도 내도 이 널린 것들을 들고 오데로 간단 말이고? 참말로!-
탄식하며 문밖을 보다가 자느라 흐르는 시간도 놓친 양 -지금 몇 시나 됐노?- 하고 소향에게 묻는다.
-아직 교회 종 안 쳤어예!-
저녁 여섯 시가 안됐다는 소향의 답이다.
읍네에 유일하게 있는 교회에서 매일 아침과 오후 여섯 시에 종을 울리는 것이 시계를 가지고 있는 몇몇 부자들 빼고 나머지 지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적 잣대이다.
-그래? 해는 아직 한참 남았구만서도. 오늘 장사는 배릿다! 소향아. 니도 고만 집에 가거래이! 손님을 안 치랐으이 할 일도 엄꼬- 하며 소향을 본다.
-아이라예,!-
소향이 눈을 크게 뜨고 턱없는 일이라고 사양한다.
마침 교회종이 들린다. 절에서 나는 범종처럼 굵거나 은은하지는 않고 앙앙대며 얇은 양철판을 치듯이 몇 행부 울리다가 쉬고 또 같은 간격으로 반복하기를 상당히 오래하지만 아무도 세어보지 않으니 언제 종소리기 끝나는지도 모르게 없어진다.
햇살이 그림자를 제법 길게 늘일 즈음 난데없이 무당이 대폿집으로 들어온다.
-아지매, 내 또 왔다!-
툇마루에 앉아 넋을 놓고 있던 대포아지매는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리며 -아직 때도 이른데 벌써 오싯는교?- 하면서 빈 의자를 손으로 쓰는 시늉을 하며 -앉으이소- 하고는 기운이 부치는지 자기가 먼저 앉는다.
-때가 돼서 온기 아이고. 자하고 얘기 맞출 것도 있고- 하고는 부엌에서 떨그럭거리며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는 소향을 향해 턱을 끄떡하는 무당이다.
-예. 안 그래도 아까 전에 자가 카데예. 담 장날 그 다음날 갈끼라고- 하고 무당에게 이른다. 의외라는 듯 무당은 표정을 지으며
-그래? 그런데 와 내기는 말 안 했는고?- 하고 부엌 쪽을 힐끗 본다.
-아이라예. 좀전에 캤다꼬예-
조금 큰 목소리의 대포아지매다. 그리고 다시 나직한 소리로 -이번에 지도 갈낍니더. 자캉!- 한다.
놀라는 표정이 역력한 털보무당의 눈이 커지며 -니는 와?- 하고 잠시 뜸을 내더니 이어서 -갈라쿠몬 저그 엄마가 안 가고?- 또 질문처럼 한다.
대포아지매는 손으로 나직이 말하자는 듯 시늉을 하며 상체를 당겨서
-보살님. 생각해 보이소! 시집보내는 경사도 아인데. 우째 거기를 에미가 따라가겠십니꺼? 케서 지가 대신 가서 오데 사는지라도 보고 와야지예. 저그 엄마 대신해서- 하고 당겼던 상체를 뒤로 물린다.
대포아지매 눈을 멍하니 들여다보던 무당은 알겠다는 듯
-맞다! 아지매 말이 맞다! 케사도 자식 보내는데 에미 맘이 편치야 안 하겠지-
무당은 아래를 보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떡 거린다.
나이는 둘이 마흔 중반으로 엇비슷하지만 무당은 대포아지매를 그저 니가 아니면 아지매로 막 부르고 대포아지매는 그래도 신통력 지닌 보살이라고 믿어 공대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라고 니가 점심때 내기 한 말 말이다!-
무당은 엉뚱한 서두를 내놓는다. 영문 모르는 대포아지매는 -무신 말예?- 되묻는다.
꼬인 다리를 반대로 풀어 감으며 무당은 -아! 이 점방이 팔리민 니가 오데로 가야 될끼라고 안 했나?- 하자 그제야 알아들은 대포아지매가 -아! 예. 그 말! 그래 말입니더! 내는 오데로 이사 가는기 귀찮을 낀데 말입니더- 한다.
-저 방으로 좀 들어가재! 여는 손님들이 있으이- 하면서 그냥 일어서는 무당이다.
-와예? -
뒤따라서 큰 몸을 뒤뚱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선다.
-내가 여를 그리 들락거리도 니를 한 번도 봐준 적이 없재? 니 이사운이 있나 없나 한번 보재이 오늘!-
무당이 제법 힘 있게 말하며 자리를 잡으니 대포아지매도 앉으면서 -그랄란교? 함 봐주이소! 그라몬예 이참에 아예 지 팔자도 한번 보이소!- 하며 다가앉는다.
눈을 넌지시 치켜뜨며 무당이 가당한 듯
-니 복채 놀끼가?-하며 물으니 대포아지매가 몸을 뒤로 제치며 -노라민 노치예 뭐!- 한다.
오늘이 장날이라 그래도 지전 몇 장이라도 수중에 들어올 거라 생각했던 털보무당은 기껏 오전에 하나 그리고 오후에 다녀간 함씨내외뿐이라 요 며칠간 묵은 여곽에 줄 돈도 넉넉지 못하던 참이다. 돈은 그래도 겨울에 잘 도는데 봄이 되고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라 자기를 찾는 사람들 발길이 뜸하고 그나마 목돈이 되는 굿이나 제를 모시는 것도 요즘은 흔치 않은 참이다.
-이사운이 아이고 니 팔자소관까지 보자꼬? 음 그라몬 니 초 하나 가온나!-
-초가 없는데. 하나 사오라 할까예?- 하고는 소향을 불러 내보낸다.
-니는 사발에 물이나 한 릇 정하게 떠오고-
대포아지매에게 말하는 무당이다.
소반이 차려지고 가운데는 흰 사기그릇에 물이 올려지고 그 위에 초를 댕겼다. 털보무당은 상 앞에 퍼질러 앉아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두 손바닥을 비벼대며 입을 웅얼거리지만 옆에 앉은 대포아지매나 반은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는 소향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다.
-니 뭐 하노? 복채 안 놓고?-
옆을 돌아보고 비비던 손을 멈추며 대포아지매에게 역정 비슷하게 나무란다. 마치 복채가 없어서 괘가 안 잡힌다는 듯한 태도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래이!-
하면서 대포아지매가 허리춤 전대에서 돈을 꺼내 물사발과 촛대 사이에 끼운다.
그제서야 무당은 다시 하던 중얼거림과 손 비빔을 계속한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보니 반으로 접힌 오백 환짜리 지전인데 여러 개가 접혀있어서 얼마인지 짐작이 안 간다. 대중으로는 한 오천환은 됨직해 보이지만 이사할지도 모른다고 한 걱정하는 대폿집한테 이사 안 가게 만들어주는 영험한 신령님 말씀을 저 정도로는 좀 싸다고 생각이 드는 털보무당이다. 대폿집 쪽으로 돌아앉으며 무당이 정색을 한다.
-뭐 하노? 니는? 저기 복채가? 저래 가지고는 없던 이사운도 생긴데이! 니는 이사운이 있긴한데. 내가 없구로 해줄끼다. 더 놓거래이. 신령님 편하시구로-
하며 도로 소반 앞으로 몸을 돌려 앉는다. 돈은 자기가 가지지만 말은 신령님 편하게 하시란다.
대포아지매는 입을 안 보이게 삐쭉하더니 돌아앉은 채 다시 전대 속에서 돈을 꺼내 보탠다.
한참의 중얼거림과 촛농이 제법 수북이 쌓인 후에야 무당은 제법 큰소리로 신령님 하고 합장을 한 채 앉은절을 서너 번하고 마쳤다.
그리고 대포집을 향해 돌아 앉은 후 -이사운이 있었구만. 이달이나 다음 달에. 케도 인제 됐다! 니는 여 있을끼다. 내 말 믿나? -하고는 당당하게 대포아지매를 쳐다본다.
-예? 아! 믿지예. 신령님 말씸인데-
미심쩍은 마음은 있지만 일단 그렇게 말하는 대포아지매다. 까짓 만일 이사 가게 되는 날에는 지금 저 소반 위에 놓은 돈 칠천 환을 다 받아낼 자신이 있다. 내가 누군데. 내 돈을 털도 안 뽑고 목구멍으로 삼키면 이 동네 근처에서 점 보긴 틀리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만일 신령님 도움으로 정말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장사를 하게 된다면. 덕이 되도 한참은 더 될 텐데. 정말로 그 함씨네가 사지 않을런지? 아침에 본 그 늙은이들 표정은 제법 성사가 다 된 듯한 얼굴이었는데. 생각에 잠기는 대포아지매다.
-야야! 국밥 말고 뭐 없노? 늘상 국밥만 묵다가 내 얼굴이 도야지가 될란가도 모리겠다!-
하며 무당이 늠름하게 타박한다.
-국밥집에 국밥뿐이지 뭐 또 일을끼 있습니꺼?-
하고 대포아지매가 말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아! 맞다. 그 간재미가 있습니더. 낮에 소향에미가 주고 갔는데 우리가 꾸버 먹어보이 맛이 있습디더!-
하고는 소향에게 일러서 굽게 하고 손님 없는 점방에서 셋이 저녁을 먹으며 다음 장날 그 다음 날 떠날 것과 그리고 무당은 태봉에 언제 도착한다고 전보를 칠 거라는 것과 소향어미가 할 어물전 자리를 대포아지매가 알아볼 거라는 것 등등을 주고받은 다음 무당은 넉넉한 지전을 주머니 속에 챙겨 넣은 것에 기분도 좋고 또 대폿집에다가는 자기의 영험한 괘를 알렸다고 허리를 한껏 젖히며 점방을 나서는데 소향이 -보살님! 와 저녁값은 안 주고 가십니꺼?- 하고 정색을 하며 말한다.
대포아지매가 난감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야는 보살님한테 그기 무신 말이고?- 한다.
뒤꼭대기가 서늘해진 무당이 돌아서서 상황을 얼버무리려 웃는다.
-야는 참 야무지데이! 아지매. 내가 뭐라 켔는교? 그래. 니 말이 맞다! 내가 묵었으니 내가 내야지!-
이리저리 고개를 둘러대며 대포아지매와 소향을 보고 수다스럽게 말하고는 오백 환 지전 하나를 탁자 위에 놓고 나가는 무당이다.
보통 때라면 이런 상황이 어색하고 불편했을 것이지만 소향이 한 당돌한 말은 왠지 하나도 밉지 않다고 생각하며 여곽으로 기분 좋게 가는 털보무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