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작은 동산을 등지고 동남향으로 자리 잡은 동네이고 또 저녁 무렵이라 한여름 햇살은 이미 뒷동산 너머로 사라진 뒤지만 여전히 남은 여름 열기는 몸에 걸친 옷을 척척 감기게 한다. 솟을대문의 한쪽이 삐끔히 열려있는 사이로 무당은 치마 한 폭을 잡은 채 서슴없이 들어서지만 동행하던 소향과 대포집아지매의 발걸음은 이제 겨우 동네 어귀를 들어선 지경이다.
아지매의 고개는 이리저리 휘둘러대며 자기가 사는 갯내음 풍기는 바닷가 풍경과는 사뭇 다른 뭍지방 농사꾼들 동네를 살피고 이곳이 소향이 머물 곳인가 하고 눈치로 재며 조심스러울 것도 없는 터에 그저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땀이 젖은 손으로 소향의 한쪽 손을 꼭 잡은 채 느린 걸음으로 무당이 지나간 길로 걸어오는 중이다.
-저기라예-
소향이 손짓도 없이 그저 눈으로 가리키는 곳을 아지매가 다시 눈길을 준다.
들판처럼 낮지도 뒷동산처럼 높지도 않은 적당한 터에 언뜻 보기에도 동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풍경 좋은 기와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집이구나. 만석꾼이 아니면 천석꾼은 틀림없다더니. 보살님이 실없는 소리는 안했구나. 소향이 타고난 팔자가 있다더니 그래도 저런 집 지붕 밑에서 그런 거금을 손에 넣는구나. 정말로 다행이다. 실없이 서울로 식모를 갔거나 아니면 목돈 손에 쥔다는 꼬임에 넘어가서 대처로 보따리 장사 따라나섰다면 남을 것이라곤 쉬쉬하며 나도는 소문 외에 아무것도 없을 터인데. 그래! 이게 다 소향이 타고난 팔자라 필경 고생 없이 아들도 낳고 머지않아 덕호로 돌아오리라. 아지매는 마치 친엄마처럼 안심을 하며 다시금 소향의 손을 꼭 잡고 솟을대문 앞에 이른다.
-야들은 모하느라 여태 안 오노?-
무당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소향의 친엄마 같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심정과 또 대가의 위세에 조금은 주눅이 든 심정인 대포아지매는 마음을 다잡은 양 소향을 잡은 손을 다시 한 번 꼭 쥐어흔들며
-들어가자!-
한마디 하고 반쯤 열린 대문의 나머지를 손으로 천천히 열면서 들어선다.
마루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퍼질러 앉은 무당 앞에 큰아지매는 뽀얀 모시적삼을 두르고 다소곳이 마주하고 있다. 대포아지매의 눈이 움직임 없는 눈치로 집안의 모양새를 한눈 속에 넣는다.
-여로 올라오니라. 아지매도!-
무당은 마치 자기 집처럼 한손에 든 때 절은 합죽채로 마루를 치면서 말한다. 대답도 못하는 대포아지매는 고양이 발걸음처럼 댓돌 위로 올라서고 말도 없이 무당이 앉은 뒤편 마루에 앉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이쪽으로 편히 앉으시오-
몸을 추스르며 큰아지매가 대포아지매를 향해 정중히 한마디 하자 대포아지매는 어색한 목소리로 그저 -예- 하며 고개만 숙였다 펴는데 소향의 손은 여전히 대포아지매의 손에 꼭 잡힌 채 그저 봉당에 서있다.
-야, 야! 니도 올라서고! 아지매도 이리 앉아야 서로 인사라도 하재! 올라 앉거래이!-
답답하다는 듯 무당은 등을 돌려 대포아지매와 소향을 채근한다.
-그래, 소향아. 니도 올라 앉아래이-
그 말과 함께 대포아지매는 고무신을 벗고 엉덩이를 밀어붙여서 마루 가운데로 자릴 잡고 소향도 대포아지매 옆에 앉는다.
조무래기 아이 둘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낯선 사람이 궁금하여 큰아지매 옆으로 모인다.
부엌문 밖에 걸린 작은 가마솥에 불이 지핀 걸로 봐서 저녁이 끓고 있음이 분명하다. 연신 들락거리며 힐끔거리는 비녀 찌른 여인이 이 집의 작은아지매고 이 아이들이 저 집 아이구나. 모시를 풀 먹여 입은 큰아지매와는 다르게 궁상맞게 보이는 먹광목 한 폭을 두르고 얼굴은 울락불락 천생 모과를 연상케 하는 인물인 작은아지매를 힐끔 보면서 대포아지매는 열차 안에서 보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짐작한다. 한 집의 두 며느리가 어쩌면 이리도 다른 모습인지 대포아지매는 의아한 생각마저 든다.
-광수야, 너는 동생하고 큰아부지 방에 가서 놀아라. 어른들 말씀할 게 있단다-
큰아지매가 조용히 아이들에게 말하자 옆에서 연신 부채질을 하던 무당이 환한 얼굴로 아이들을 보고
-아나! 이걸로 까자 사 묵거라!-
하면서 고쟁이 속주머니에서 지전 하나를 꺼내준다.
중대한 애기를 나눌 판에 시끄러운 아이들을 떨쳐내고 또 목돈 들어올 생각에 신명 난 참이라 여간해서 나오지 않는 무당의 깊은 속주머니가 열리고 선뜻 선심 쓰는 무당이다.
-그러실 것 없는데 뭐 하러 그러십니까-
큰아지매의 단순한 감사의 표시 한마디다.
-마님도. 오는 길이 멀어서 빈손으로 왔디만 아아들 보이께네. 그저 내 손만 쳐다보는 것 같애서예-
치마 한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더운 공기를 불어내는 무당의 말에 마님이라는 말이 달려있다. 벌써 다섯 손가락 꼽을 만큼 이집을 들락거렸어도 한 번도 쓰지 않던 마님이라니? 무당의 속마음은 그저 닭털처럼 가볍다. 오늘로서 한 마지기 논값이 고쟁이 속에 쌓일 판인데. 그깟 마님 한마디가 대수랴? 할 수만 있다면 까짓 정경부인 아니라 중전마마라고도 불러줄 수 있는 심정이다.
마당을 보고 부엌을 들락거리는 광수에미를 보고 분위기를 눈대중하던 큰아지매가 나직이 말한다.
-아직 저녁 되자면 시간이 좀 걸릴듯하니 방으로 들지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일어서서 열린 문 대신 봉황이 그려진 대발이 걸린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랍시더-
신명 난 무당은 벌떡 일어서서 방으로 들다가 손으로 젖힌 대발을 든 채 여전히 어쩔 줄 모르고 앉아있는 소향과 대포아지매를 보고
-너거는 모하노? 안 들어오고?-
이제는 대포아지매도 싸잡아 너거라 부른다. 한쪽으로는 마님이라 칭하고 다른 한쪽에는 너거라고 하는 무당이다.
엉거주춤 방안으로 들어 한켠에 앉은 대포아지매를 보고 큰아지매가 말을 한다.
-보살님께 말씀은 들었습니다. 야 에미를 대신해서 먼 길을 오시는 걸 보니 비록 이웃지간이라 해도 친동기간보다 더 가까우신 모양이지요-
엷은 미소로 애매한 입장으로 여신이 불편한 대포아지매의 분위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말이 이웃사촌이지. 지는 야 친엄마택입니더!-
소향에게 눈길을 주며 대답하는 대포아지매다.
-맞심더! 이 아지매하고 야 에미는 행제간보다 더 가깝심더!-
맞장구를 치며 무당은 벙실거리는 입을 감추질 못한다.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을 하던 큰아지매는 소향을 향해 -니는 방문 좀 닫아라- 한다.
낮 동안 달구어진 땅의 열기가 비록 해는 졌다 해도 여전히 치솟아 올라오는 중인데 문을 닫으라는 큰아지매의 말은 방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제 중요한 말을 나눈다는 뜻으로 즉시 전달이 된다.
소향이 손으로 방바닥을 잡고 일어서려는 순간에 무당이 자청해서 등 뒤에 있는 문을 허리 굽혀 닫으며
-아나 됐다 ! 니는 일날 거 엄따!-
신명 나있는 무당은 그저 빨리 돈 얘기가 나올 것을 기대하니 뱃속에 나비 몇 마리가 훨훨 날아다니는 것처럼 그저 간질거려 죽을 지경이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무당은 전에도 한번 본적이 있는지라 알겠지만 그 뒤에 따라 들어온 아지매와 어린 딸년은 본적이 없는지라 연신 부엌을 들락거리며 귀를 쫑긋 세워 말을 들어보려고 하는 작은아지매는 대충 나름대로 짐작을 한다.
난전에 걸어놓은 솥에 뜸을 들일 량 남은 불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된장뚝배기를 숯 위에 올리며 그래! 우리가 분가하니 이제 부엌데기를 데리고 온 모양이구나. 잘 됐지. 나도 인제 이집살림 막살 놓고 눈치 안보고 내살림 살게 됐구만! 숯불을 부채로 불어제치며 하는 속짐작으로 입을 잡아 짼다.
그런데? 누가 부엌떼기고? 아지매? 아니면 딸아? 아지매 궁디이로 보아하니 안여반석같이 커서 퍼질러 앉아 맷돌은 갈지 몰라도 풀빵구리같이 설치고 일하기로는 맞을 것 같지 않고. 그라면? 딸아가? 보기에 어리디 어린아가 무신 살림을 산다꼬? 그라모? 둘 다 들어온단 말이가? 그래! 그 기 맞는기다!
달포 전에 어설피 분가라고 하긴 했지만 여전히 조석은 이집에서 끓여먹고 있는 중이다.
그저 누런 농짝 하나 하고 이불 몇 채만 끌어안고 담 넘어 별채로 옮겨 잠은 거기서 잘지언정 십몇 년을 부엌살림 하나 없이 큰집에서 살아온 작은 아지매라 생각이야 조촐한 자기만의 살림을 꿈꾸지만 어디 쌀독 하나 없고 그릇 하나 변변히 없는 처지에 또, 내 몰라라 하고 자기식구만 끓여먹는 것은 작은아지매에게는 아직 동서의 허락 없이 가당치도 않은 일이렷다. 어디 그뿐이랴? 말이 준다는 논이 몇 마지기고 밭이 얼마고 하지. 아직 주지도 않았고 모든 것은 잠자는 장소 빼고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 예전처럼 태광은 집안 농사일을 돌보고 자기는 부엌데기 일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었다.
된장이 끓어올라 불가로 떨어지자 일어서서 안방 대청으로 가서 방안의 기미를 잠시 살펴보지만 말이 새나오질 않는다.
-행임요~ 저녁은 우짤까예?-
같은 동서지간인데 매번 이렇게 부엌데기처럼 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마치 마님처럼 군림하는 동서가 눈꼴사납게 밉지만 이미 십수 년을 고수해온 방식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작은아부지는?-
문도 열지 않고 묻는 큰아지매다.
-아바이는 풀 꾸미기 한다꼬 그서 묵을 낌니더!-
칠월 백중을 전후해서 한가해진 논일을 핑계 삼아 농사꾼들이 모여서 노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막걸리에 귀한 돼지도 한 마리 잡고 풍물도 치고 동네를 돌거나 논길을 돌면서 늘어진 소리도 한마디 보태어 노는 것이다.
-영감도 샘칠 준비한다고 했으니 분명 그기서 자실 것이네. 손님이 오셨으니 안방에 우리 상 하나 내주고 자네는 아아들하고 저녁하게-
입을 씰룩거리는 작은 아지매는 성가시게 상 하나 더 차리게 하는 동서가 밉지만 이제 자기의 이집 살림살이도 끝이 보이는 것 같아 대꾸 없이 따로 상을 차린다.
큰아지매는 얇은 입술을 아주 가늘게 뜨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직이 말한다
-소향이 일은 아직 우리 집에서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때를 봐서 사납지 않게 그리고 모나지 않게 모양새를 갖추고자 하는 게 저의 생각이라 저기 동서에게나 심지어 영감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이 점 유념해주시고 조용히 말씀 나누시면 됩니다. 저녁이 된 모양이고 또 먼 길에 시장하실 것이니 우선 저녁부터 잡수시고-
말끝을 흐리며 맺는다.
갑자기 눈이 동그래진 무당은 큰아지매의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은근히 마음에 걸려
-그럼……- 하고 입을 떼는데 그 속내를 이미 짐작하듯 큰아지매가
-다 제가 알아서 합니다. 보살님은 아무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제법 단호한 말투다.
그 말은 곧 거래는 약속대로 진행된다는 말이렷다! 무당은 입이 다시 헤죽 벌어지며 어색함을 버물려보듯 -카제! 다 마님이 알아서 안 하시겠심니꺼!- 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