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샘 무너졌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0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1/19 [13:45]

“엄마야, 샘 무너졌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0화

김담 | 입력 : 2014/01/19 [13:45]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아침도 뜨지 않은 채 태섭은 나가고 대청에는 두 아이와 작은아지매가 아침을 먹고 안방에는 소향, 대포아지매 그리고 큰아지매가 얼기설기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앉았다.
-여름이고… 또 샘 친다고 동네가 어수선해서 동서가 상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 잡술 것이 마땅치 않아서 미안합니다. 먼 길 떠나시는데 아침이라도 든든히 잡수셔야지요. 찬은 없지만 많이 잡수시고 가세요-
하면서 나물가지를 대포아지매 쪽으로 옮겨놓자 대포아지매가 손을 저으며 말린다.
-아이구, 무신 말씸입니꺼? 아지매가 아침부터 바쁘게 지들 땜에 수고하싯심더. 그라고 대갓집 상이 역시 무울끼 많심니더- 하면서 웃어준다.
나물 몇 가지에 그것도 어제 저녁에 남은 눈에 익은 상인데, 그저 답례로 하는 말이고 실상 대포아지매나 소향은 밥상 위에 뭐가 놓였는지 별로 관심이 없고, 내가 떠나면 저것이 혼자 남는구나 하고, 또 대포아지매가 가고 나면 나는 혼자구나 하는 생각만 가득하다.

벌써 햇살은 쳐놓은 대발 사이로 강하게 들어온다. 모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내려놓자 대포아지매는 입가를 손으로 훔치며
-아지매, 지는 길이 멀어서 일찌그이 나서야 할낍니더. 오늘 중으로 가야 되서예-


실상 먼 길이다. 걷고 화차를 두어 번 갈아타고 또 버스도 타야 삼천포에 하루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실 겁니다. 야는 걱정하지 마시고야 에미에게 말씀 잘 드려주세요. 때가 되면 갈 거라고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포아지매는 소향을 돌아보며 소향의 손을 꼭 잡는다.
-니는 그저 아지매 말씀 잘 듣고 몸 성히 있다가 오니라. 너거 집일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안 있나? 알것나?-
다짐을 받듯 손을 꼭 움켜잡아주는 대포아지매다.


소향은 눈을 내리 깐 채 아무 말이 없다.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는다. 이제 혼자 남을 것을 생각하니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이겨내고 또… 그 아들을 낳아야 한다. 내가? 어떻게? 어쨌든 간에… 이제 엄마는 보따리 이고 장사 안 다녀도 되고 동생들도 엄마 옆에서 살게 될 것이다. 빨리 대포아지매는 저 아랫방에 있는 돈을 들고 엄마한테 가야 한다.


-아지매, 지 걱정하지 마시이소. 카고 정말로 조심해서 가시야 됩니더-
돈을 탈 없이 지니고 가야 한다는 말이 소향의 눈에 서려있다.


대청에서 밥을 먹고 있던 작은 아지매는 얘기들이 대발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같이 온 여자가 아이를 남기고 간다는 전후사실을 알게 되었다.
발을 젖히고 모두 대청으로 나서자 작은 아지매는 상을 밀치며 일어서며 새삼스럽다는 듯 -가실라고예?- 하며 한쪽으로 비켜선다.
-예, 그저 아지매만 믿습니더. 야가 어리기는 해도 눈썰미가 있어서 하는 일이 손끝 맵게 합니더. 잘 돌봐주이소- 허리를 굽실거리며 진정으로 부탁하는 대포아지매다.

소향은 대포아지매의 손을 놓고 후다닥 뛰어 아래채 방으로 들어서서 한 편에 놓여있던 대포아지매 보따리를 챙기고 다시 그 옆의 제법 묵직한 돈 보따리를 아지매의 보따리 속에 우겨넣고 나와 아지매의 팔을 잡고 품속에 넣어준다.
-조심하이소 아지매-
어느새 눈에 맺히는 눈물을 기어이 흘리며 소향은 눈앞이 흐릿해진다.


-소향아, 마음 단대이 무야된데이. 그저 몸 성하고...무신 일 있으문 전보하거래이. 내는 언제든지 올끼다!-
사실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대포아지매의 마음이다.


-아주머니. 동네 사람들 눈도 있고 하니. 우린 멀리 안 나갈 겁니다. 그저 조심해서 가세요-
솟을대문 바로 앞에서 입을 여는 큰아지매의 말이 야속하게 들리지만 소향도 주춤하며 그 자리에 선다.
-예. 지도 걸음이 바쁨니더. 들어가이소. 소향아! 내 간데이. 니 알제?-
잡은 소향의 손을 놓으며 알제? 하며 묻는 대포아지매의 말 속에는 그 모든 당부하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소매 끝으로 눈을 닦으며 소향은 어금니를 물어댄다. 빨리 대포아지매가 가고 빨리 아들을 낳아야 빨리 자기도 삼천포로 갈 수 있다고. 두 아이와 두 여자는 대문 안에서 배웅을 하지만 그래도 소향의 발걸음은 이미 대문 밖에 나와 있다.


저만치 가던 대포아지매가 돌아서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 후 굽어지는 골목을 따라 눈에서 사라진다. 눈을 껌벅거리며 눈물을 말린 후 소향은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선다.


-동서. 나하고 잠깐 얘기 좀 나눔세. 소향이도 들어오고. 광수야. 너는 재수하고 놀아라. 그래도 땡빛에 놀지는 말고 더위 먹을라-


큰아지매가 안방으로 들고 작은아지매가 대청에 올라서자 소향은 고무신 두 켤레를 가지런히 댓돌 위에 정리하고 마루에 올라서는데 작은아지매가 고무신을 정리하는 소향을 보고 있었는지 싱긋 웃는다. 아마도 자기가 마구 벗어놓은 고무신이 부끄럽다는 눈치다.

 

 

-왜 장승처럼 서있나? 앉게-
윗목에 서있는 광수에미를 보고 큰아지매는 방바닥을 손으로 쓸어 머리카락을 주우며 하는 말에 소향이 먼저 문전에 앉지만 광수에미는 앉을 기색도 없이 답한다.


-내는 샘에 가봐야 안 됩니꺼? 벌써 일이 시작 됬을낀데. 광수 아바이가 참을 내오라 했심더. 마침 야도 있으이 안주 삼아 반찬이나 챙기고 술이야 도가에서 갖다 달래면 되고-
소향을 대동하고 나설 참인 작은아지매다.


-그래, 참 오늘 샘 친다고 했지. 물은 좀 길러놓았나? 오늘 다 친다고 해도 낼까지는 못 먹을 텐데?-
-아침에 몇 동이 이다 났심더. 그저 정기에서 쓸 물인데 충분합니더-
-잠시만 앉게나. 집에 사람이 들었으니 자네도 알건 알아야지-
서있는 광수에미를 올려다보면서 눈으로 채근한다.


마지못해 앉는 양 작은아지매는 치마가 펄럭거릴 정도로 털썩 주저앉는다.


소향은 두 여자를 곁눈질하며 생각한다. 어쩌면 이리도 다른가? 한 여자는 나무에 앉은 하얀 백로 같고 또 하나는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사치 여자나 진배없다. 툴툴거리며 하는 말투는 손에 막걸리 사발을 쥐어주면 딱 어울리는 자세고 또 한 여자는 온몸에서 서늘한 찬 기운이 나도는 얼음 같은 여자다.


-자네도 이제 살림이 났으니 영감이 이번 가을걷이 끝나면 전답을 내주실 걸세. 그동안은 지금처럼 부엌살림은 그대로 여기서 하면서 소향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고 알려주게. 야가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고 더더군다나 부엌살림은 말할 것도 없이 부족할 것일세. 내 생각은 올해 중에 상머슴도 들이고 어쩌면 식구 딸린 사람이면 안식구도 같이 집안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그런 사람을 물색해볼 것이네. 야보고 살림살이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너무 힘들고 중한 일은 시키지 말고 그런 일은 나하고 자네가 하면 되니까-


말을 대충 마친 양 끝을 흐리자 불쑥 광수에미가 입을 삐쭉거리며 한마디 거든다.
-하민사 지가 하지 언제 행님이 합니꺼?-


그때 밖에서 아이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야~ 엄마야-
작은아이 재수가 부르는 소리다.


내려진 대발 옆에 앉았던 소향이 발을 들추고 내다보는 사이 이미 재수가 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엄마야. 샘 무너졌다-
한마디 남기고 가쁜 숨을 들이켜고 컥컥댄다.
-모라꼬?-


눈이 왕방울만 해진 작은 아지매가 두말도 않고 후다닥 뛰어나가고 재수도 엄마를 좇아 나간다. 아침부터 태광이 주선하여 동네샘을 치고 태섭은 오늘 그 위에 씌울 정각을 지목수와 계획하는 날이다. 무슨 일이 어찌 되었길래 샘이 무너졌단 말인가?


큰아지매도 연신 고개를 좌로 우로 돌리며 생각의 가닥을 잡다가
-안 되겠다 무슨 일인지 나도 가봐야지. 광수 아버지도 그기 있고 어쩜 영감도 그기 있을 건데-
일어서서 저고리 섶을 다듬고 머리를 매만지며 대청으로 나선다.


이미 담 너머도 들릴만한 아우성이 귀에 울린다.
소향도 영문 없이 큰아지매를 따라 나서는데 대문쯤에서 큰아지매가 돌아서서 소향을 보고
-너는 올 것 없다. 집에 있거라-
한마디 남기고 휑하니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나간다. 아직 동네에 얼굴을 함부로 내놓는 것이 큰아지매에게는 거북스러운 것이다.


터벅터벅 마루로 발을 돌리던 소향도 궁금해 죽겠다. 샘이 무너졌다면 큰일은 큰일 아닌가?
혹시 사람이라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소향의 귀에도 들린다.

 

 

담박질로 샘가에 온 광수에미는 사람들 틈에서 서방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안도하며 -광수아바이요- 하고 소릴 지른다.


웅성거리는 틈에서도 부르는 소리를 들은 태섭은 뒤를 힐끔 쳐다보고는 도로 물속을 들여다 본다. 아수라장이다. 남정네들이 빼곡하게 샘을 들여다보는데 그 주위를 에워싼 아이고 여자 할 것 없이 밀치고 넘어지고 소리치고 난리법석이다.
-괘안나?-
누군가 샘 속에다 대고 소릴 지른다.

-내는 개안타. 하지만 주섭이가 어깨를 다칬다. 늘어져뿟다. 빨리 누구 좀 내리온나-


그때 사람들 뒤에서 큰소리가 들린다. 크다 못해 벼락같은 소리다.
-여러분! 내말 들으시오. 지금 당장 전부 샘가에서 물러나시오. 그렇지 않으면 또 무너질 것이고 그러면 다 죽습니다. 빨리 물러나시오-
고래 같은 소리와 함께 나서는 남정네다. 그 옆에는 지목수가 서있고 또 그 옆에는 태섭이 있다. 지목수를 따라다니는 그 일꾼 장씨다.


-축석이 빠진 모양이니 조심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우선 사람들은 샘으로부터 전부 멀리 가시오. 그리고 같이 일할 몇 사람만 빼고는 아무도 샘가에 오지 마시오-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멈칫거리며 뒷걸음쳐 물러나고 장씨는 아직 샘가에서 내려진 밧줄을 잡고 있는 남정네 옆으로 가서 샘 속을 내려다본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허리를 편 장씨는 주위를 둘러보고
-누가 사다리 튼튼한 놈으로 하나 갖다 주시오. 빨리! 그리고 지목수님! 우리 달구지에 있는 서까래 굵은 놈으로 갖다 주시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도대체 누구길래 남의 동네에 와서 저렇게 큰소리로 마치 부역반장 같은 행동을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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