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 자는 누군교?”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3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2/09 [01:03]

“행님! 자는 누군교?”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3화

김담 | 입력 : 2014/02/09 [01:03]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마을 일이니 무슨 좋은 생각들이 있으면 내놓으시오. 태광이 니는 우째 생각하노?-
묵묵히 듣던 태광은 형이 갑자기 묻자 어색한 듯 -행님도 참! 아 샘 속에서 본 사람이 젤로 잘 알지 밖에 서 있던 내가 우찌 안다꼬- 하고는 사발에 담긴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는다.

-마을일이라 케도 우리 집안에서 나서서 할 수밖에 없으이께네. 지목수! 그라몬, 낼부터 돌을 다시 쌓도록 합시다-
장씨를 바라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지목수를 보고 태섭이 말한다. 그 뜻은 그동안 지목수를 따라 일을 다닌 탓에 장씨에게 비록 일을 시킨다 해도 두목격인 지목수에게 통해서 시킨다는 태섭의 의중인 것이다.

지목수는 장씨를 쳐다본다.
-니 하겠나?-

장씨는 말이 없이 그저 술상만 바라본다. 한참동안 말이 없자 남정네 하나가 나선다.
-아! 힘든 일이야 우리가 같이 할낀데. 형씨는 그저 기술만 부리몬 안 되겠소?-

갑자기 장씨가 기술자가 되었다. 재주로서는 제일이라는 지목수까지 장씨에게 물어보는 상황이다.

고개를 든 장씨는 태섭을 정면으로 본다.
-제가 언제 샘에 돌 쌓는 일에 이력이 났다고 했습니까만 어차피 일이란 힘과 정성만 있으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샘이 만들어진 그 옛날에도 한 일인데 아, 요즘 시대에 못 한다고는 할 수 없지요. 지목수님이 앞서고 동네사람들이 거들고 하면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지목수를 앞세워서 말하는 장씨의 의중은 마을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초점의 대상이 되기 싫어서 그런 것이다.

-그라모. 지목수하고 장씨가 들어서서 우째 할낀지 구체적으로 생각 좀 해보소. 아! 마을에 하나뿌이 없는 샘인데 일이 이래 됐으이. 퍼떡 안 하몬 큰일 아인교? 마침 농사일이 바쁜 것이 끝나서 일손은 있을끼고-
태섭이 지목수에게 건네는 말이다.

그때 부엌에서 소향이 채반에 반찬을 들고 와서 상마다 하나씩 놓고 다시 나갔다.
태광은 부엌으로 들어가는 소향의 등 뒤를 따라 시선을 반 바퀴쯤 돌리다가 건너편 상머리에 앉은 태섭에게 묻는다.
-행님! 자는 누군교? 동네아아는 아인데. 아 들랐읍니꺼?-
-너그 행수가 그랬따꼬 카더라. 그건 그렇고-

태섭은 동생의 물음에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계속해서 동네의 급선무를 해결해야 한다며 이것저것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는다.

마당에서 놀던 태섭의 두 아들도 연신 부엌을 들락거리며 먹을 것을 손에 쥐고 볼이 터지도록 입에 넣다가 문득 대문 밖에서 기웃거리며 들어오지 못하는 또래의 아이들을 보고는 달려 나간다.

정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숯불 위에 전을 부치는 소향은 이마에 땀이 송송 솟고 뒷담에는 작은아지매가 난전에 걸린 솥에 불을 지피고 저녁을 준비하지만 큰아지매는 그저 뒷짐을 지고 부엌만 왔다갔다 할뿐 일을 하지는 않고 마루에서 들리는 말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

문득 고개를 들고 대문에 시선을 둔 소향은 삼천포에 두고 온 종락이 또래의 한 무리 아이들이 광수와 재수를 에워싸고 그들이 입에 넣은 음식에 넋이 팔린 듯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마솥 뚜껑 위에 들기름으로 부치는 명태전이다. 밀가루를 발라서 부쳐내기가 무섭게 광수와 재수가 집어가는 바람에 성가심이 솟구치지만 작은아지매도 큰아지매도 아무 말 안 하는 터라 소향도 그저 부지런히 기름을 두르고 전을 뒤집으며 고소한 기름 타는 냄새에 한 점 먹어보고도 싶지만 자기 몫이 아니라며 스스로 혼내면서 묵묵히 땀을 닦는다.

대나무 채반에 한 접시는 될 성싶게 전이 쌓이고 이제 남은 것도 거의 다 끝나갈 무렵에 광수가 또 쪼르륵 달려와서 채반 속에 손을 덥석 넣는다.

그 광수의 손을 소향이 확 잡고 광수를 올려보며
-니 이제 고마 무라. 마이 무웃따 아이가. 이건 상에 올리야 된다-

그 소리를 들은 광수는 뒷담 곁에서 불을 때고 있는 엄마한테 달려간다.
-엄마야, 저 아지매가 내 못 묵거로 한다-
입이 대자로 나온 듯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다.

큰아지매는 서성거리던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보다가 아무 일도 아닌 듯 다시 마루에 귀를 기울인다.

-야, 아가 무민 울매나 묵느다꼬 그카노? 그라고 니 야가 누군지 아나? 이 집에 둘도 없는 종손이다. 니 앞으로 야한테 절대로 그카지 마래이. 광수야! 가가거라. 아나!-
하며 작은아지매는 전 몇 개를 덥석 집어서 광수에게 주자 광수놈이 소향이 보란 듯 입을 삐쭉하고는 그걸 받아서 달음질을 친다.
 
소향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남은 전 몇 개를 부친다.
 
큰아지매 역시 소향에게 나무라듯 말하는 작은아지매의 태도에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속으로만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했지만 뒷담 쪽으로 걸어가는 동서의 뒷모습에 눈길을 한참 준다.

-행님. 반찬은 우짜까예? 딘장 지지고 겉절이는 있따 케도 사람이 많습니더-
동서의 말에 문득 정신이 난 듯 큰아지매는 뒷짐 졌던 손을 앞으로 잡으며 정기를 휘 둘러본다.

-글쎄 때가 됐으니 손들에게 저녁은 내놔야 하고. 아까 낮에 서방님이 사온 수육거리 좀 남은 것 없나? 국이라도 끓이면 내놓기도 쉬울 건데?-

연신 가마솥을 열고 닫고 하던 작은아지매는 뒤로 고개를 돌려 큰아지매를 보며
-그기 있을 리가 있습니꺼? 사람이 울맨데- 하면서 다시 자기 일로 머리를 돌리자 큰아지매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정기를 벗어난다.

-서방님. 저 좀 잠깐 보시지요-
태광을 부르는 큰아지매다.

술이 거나하게 오른 태광은 좋아하는 술을 앞에 놓고 일어서기가 싫은 눈치다.
-행수님 와요?-
 
앉은 채로 고개만 치켜들고 대답하자 큰아지매는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버린다. 할 수 없다는 듯 투덜대며 태광이 정기로 들어서자
-창호네 집에 가서 닭 세 마리 달라고 해서 가져 오셔야겠네요-
-무울라꼬예?-
-아, 사람이 많으니 닭개장이라도 해야 저녁상에 올리지 한여름이라 나물 몇 가지 뿐이니. 갑자기 사람이 많이 와서 그럽니다. 빨리 갔다 오세요-
 
벌건 얼굴로 정기를 나서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선 태광은 부엌 바닥에 앉아있던 소향을 보고 -니 맺살이고? 이름이 뭐고?- 하고 묻는다.
 
소향은 자기에게 묻는다는 것은 알지만 마지막 전 한 점을 부치며 고개도 들지 않고 아무 대답이 없다. 큰아지매가 태광의 등을 밀어내며
-소향인데 이제부터 우리집에 식구입니다. 빨리 갔다 오세요, 서방님-

뒷담 곁에 있던 작은아지매는 허리를 펴며 뒤돌아보고 중얼거린다.
-미친 놈! 아 나는 와 묻노?-

그러다가 문득 정기로 들어서서는 소향을 보며 -소향아 니는 맺살이고?- 행주를 한 손에 든 채 묻는다.
-열여덜이라예. 인제 이거 치우까예? 다 했는데예?-
전을 다 부친 소향은 대답과 질문을 동시에 한다.

옆에 있던 큰아지매가
-아니다. 아무래도 호박이라도 더 부쳐야할 모양이다. 동서! 담에 애호박 달린 것 좀 따오게-

예기치 않았던 샘 치는 일 때문에 술독이 두어 개 비워지는 사이 해가 산을 넘겼다. 태광은 손에 닭 세 마리를 잡고 들어왔고, 작은아지매는 능수능란하게 목을 비틀고 끓는 솥에 푹 담갔다가 꺼내 한 마리를 소향에게 건네주며 털을 뽑으라 시킨다.

-지는 지금 호박전 부칩니더-
-한 마리 뽑고 해도 된다. 지금 이걸 퍼떡 뽑아야지 어둡기 전에 끼리재. 퍼떡 뽑아라-
재고의 여지도 없다는 작은아지매의 태도다.

소향도 아무 소리 없이 건네받은 닭을 들고 작은아지매 옆에 앉는다.

작은아지매의 손은 두 닭다리를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닭을 돌려가며 털을 송송 뽑는다. 소향은 눈여겨 본 후에 똑같은 방법으로 털을 뽑아본다. 여태까지 엄마가 했지 자신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징그럽고 어둔한 일이지만 거역치 않고 하려는 소향이다.

여전히 부엌에서 서성대던 큰아지매는 소향이 남겨놓은 솥뚜껑에 앉아서 호박 몇 개를 부치며 둘이 닭털 뽑는 것을 보다가 -소향아. 너 닭 잡아봤나?- 하고 묻는다.
-언지예. 한 번도 안 해 봤심더-

소향은 작은 아지매의 손길을 흉내 내며 열심히 털을 뽑지만 잘 뽑혀지지가 않는다. 이상하게도 작은아지매의 닭털은 쏙쏙 잘도 뽑히는데 자기 손에 잡힌 닭은 털을 뽑는 것이 아니라 뜯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지매요. 이 닭은 와 이리 잘 안 뽑힙니꺼?-
-이리 내봐라-

작은아지매는 소향의 닭을 받아들고 뽑다가 -한 번 더 넣어야겠다. 너무 일찍 꺼냈네- 하고는 가마솥에 한번 더 푹 담갔다가 얼른 꺼낸다.
-봐라. 인제 잘뽑히제?- 하며 선 채로 닭다리를 잡고 털을 뽑으니 잘도 뽑힌다. 아마도 몇 초 차이지만 너무 일찍 들어낸 탓이었다.

소향도 거들어대며 닭의 털을 뽑는다. 돌기가 그득한 뽀얀 껍데기가 드러나자 죽은 닭이 물컹거리고 징그럽지만 죽은 목숨이니 죽은 목숨 취급하자는 생각으로 과감히 뒤집고 벌려가며 깨끗이 털을 제거한다.

어둠이 내렸다.
남정네들이 남폿불을 몇 개 켜고 부엌에도 두 개 매달았다.
작은아지매의 무서운 칼날에 닭들은 조각조각 쪼개져 끓는 물속에 던져졌다.
여름배추와 대파가 들어가고 또 무언가 연신 넣고 간을 보고하던 작은 아지매는
-됐심더. 행님-
국이 다 끓고 간이 맞았다는 말이렷다.

남포 불빛에 의지하여 설거지를 해야 할 판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지도 않던 열 명이 넘는 사람들 입치레를 하다 보니 물이 동난 것이다.

소쿠리에 두어 개나 가득한 그릇들을 일단 정기에 옮겨놓고 나자 사람들이 우루루 빠져 나가고 큰아지매도 건넛방 영감방에 가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얘기를 나누는 모양이다. 작은아지매는 어둠 속에 서있는 소향에게
-낼 아침에 내캉 웃마을로 물 이로 가제이. 설거지는 내일 하몬 된다. 그런데 니 일할 줄 아나?-
-무슨 일예?-
-살림살이 말이다! 부엌살림이지- 하며 빤히 소향을 본다.
-지는 국밥집에서 일은 해봤심더. 카고 집에서 밥도 해보긴 해봤심더. 케도 이리 많은 사람들 밥은 안해 봤심더. 반찬도 모리겟고예-
 
사실 소향에게는 버거운 하루였다.
낯설다는 것을 바삐 손 놀리고 몸 움직이며 삭히고 어색하고 서툰 일은 눈치 보아가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 것인가 하며 부엌에서 하루를 꼬박 보낸 참이니 아침에 떠난 대포아지매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 바짝 차리거래이. 내는 이 집에 울매 안 있을끼다. 담 너머가 우리 집인데. 사실 동서가 아무 것도 못하는 기라. 그래서 니를 디맀으이 퍼떡 배우고 익히도록 해라. 가을걷이 끝나몬 이 정기는 니꺼다. 니가 다 알아서 밥하고 반찬하고 살림 살아야 되이 내사 모리겠다-
하며 부엌을 빠져나간다.

소향은 피곤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지만 도대체 이 집안의 움직임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고 부엌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난감함 때문에 어젯밤에 몸 뉘었던 방에 가기도 참으로 어색하다.
 
부뚜막에 걸터앉았다.
뒤편으로 난 문밖은 칠흑이다, 담도 안 보이고 장독대도 안 보인다. 고개를 드니 부엌 천장에 눈길이 갔다. 그을음에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시달렸던지 사이사이로 뻗은 서까래와 그 끝에 가로질러 얹힌 대들보는 거의 나무색갈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