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4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2/15 [23:55]

“우리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4화

김담 | 입력 : 2014/02/15 [23:55]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대던 집에 소향은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적막강산을 느낀다. 가는 여름을 재촉하는 개구리 소리가 밤의 기운을 타고 멀리서부터 들려온다. 파도 소리에는 익숙한 소향의 귀지만 개구리 소리가 이렇게 성가시게 들릴 줄은 몰랐다.

뒷문 밖에서 환상이라도 들이닥칠 것 같은 어둠의 두려움이 갑자기 소향을 위협한다. 대들보도 굵은 뱀이 되어 곧 내려올 자세다. 낮에 털을 뽑힌 닭이 벌거벗은 채 부리를 꼿꼿이 세우고 달려든다. 소향은 달음질을 친다. 그러나 발이 허공을 휘저을 뿐 귀신에 뱀에 그리고 털 뽑힌 닭에 에워싸여졌다.
-악!-
소리를 지르며 눈을 뜨자 앞에 큰아지매가 서있다.
-너 왜 그리 소리를 지르냐? 그저 깨우느라 불렀을 뿐인데?-
의아한 듯 큰아지매는 양미간을 좁혀서 말한다.

소향이 일어서서 엉덩이를 털어내며
-꿈을 꿨어예. 아지매한테 소릴 지른 기 아이고예-
-그나저나. 물이 없어서 설거지도 못한 모양이네.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만은…그래서 항시 물독은 채워 놓았어야 했는데-
-작은 아지매가 지하고 낼 아침에 물이로 간다꼬 했어예-
-그렇다 해도 웃말샘은 물이 딸릴 텐데. 소향아!-
나직이 부르는 큰아지매다.
-와예?-
악몽 속에서 깨어난 소향이 큰아지매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끼며 대답한다.

-내가 너를 오게 한 것은 물론 집안일 시키려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이란 조심스럽게도 해야 하고 또 너도 집안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익힐 시간도 필요할 것이고 사람들도 익혀야 할 것이니 당분간은 동서 옆에서 집안일 거들면서 차차 정도 붙이고 해라. 동서라는 사람은 좀 억세고 덜렁대지만 사실은 착하고 악한 맘이라곤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광수하고 재수는 우리집이 저희들 집이라 생각하고 큰 아이들이다. 철이 없어도 아직은 아이들이니 너가 잘 돌보아주고. 그러나 내가 한 말은 꼭 명심해서 기억해라. 아무에게도 우리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나머지는 모두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알겠지?-

소향은 다 알아듣는다. 이미 몇 차례 주고받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압니더. 지는 오히려 일하고 바쁘게 사는 기 팬합니더. 작은 아지매한테 마이 배울끼고예-
-그래. 그리고 낼부터 샘일이 끝날 때까지 우리 집이 좀 바쁘게 생겼다. 영감 말이 새참하고 점심저녁을 우리가 해주어야 할 모양이라 물이 젤로 문제구나-
-지가 이고오민 됩니더. 물은 지가 마이 이봤습니더.-
-그렇다 해도 웃말은 여기서 한참이나 되니…. 늦었구나. 너도 들어가서 자거라. 낼부터 바쁠 거다-

뒤돌아서 남폿불을 벽에서 떼어낸 큰아지매는 부엌 밖으로 나간다.
소향도 깜깜한 부엌에 있기 무서워서 얼른 큰아지매의 남포불빛을 따라 마당으로 나서자 개구리 소리가 한층 더 크게 들린다.

샘가에 큰 멍석이 펼쳐져 있고 막걸리에 전 몇 가지와 김치가 일꾼들을 위해 차려 있고 지목수가 장씨의 전달을 받아서 일꾼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떠돌이 장씨는 지난봄인가 김씨네 별채 수리하러 지목수를 따라 한 번 왔을 뿐 마을은 그저 생소하지만 그래도 인근에 대목수로 소문난 지목수는 평생을 이곳저곳 다닌 탓에 태봉마을도 그다지 낯선 곳도 아니고 또 마을 사람들도 지목수의 일에 대해서는 믿어주는 참이라 그의 말이 일꾼을 통솔하기에는 한결 쉬운 것이다.

-목수님, 무너진 곳이 위에서 한 여덟 자나 되니 그곳까지는 샘가를 다 파내야 합니다. 돌을 쌓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샘가를 대여섯 자 넓이로 파내려가야 돌도 들어내고 다시 나중에 제대로 다질 수도 있으니 힘쓸 사람들에게 삽질부터 시키시지요. 그리고 돌은 좀 알아보셨나요? 밑에는 그대로 써도 될 성싶으니 무너진 곳에서부터 위까지는 큰 각석으로 쌓아야 할 겁니다-

-자네 말이 맞다. 안 그래도 내 벌써 돌은 점촌에 있는 석수한테 시키놨다. 근처에는 돌이 없는기라, 케서 점촌까지 안 갔나? 그런데… 자네 참말로 저 밑에 있는 돌은 개안켔나?-
돌이 무너진 곳까지만 새로 쌓으면 된다는 장씨의 말이 그래도 걱정되는 지목수는 다시 한 번 묻는다.

매사 하는 일마다 나중을 생각하여 후사가 없도록 그리고 꼼꼼히 다지고 손끝 맵게 일하는 지목수로서는 그저 중간까지만 새로 쌓자는 장씨의 말이 조금은 염려가 되는 참이다.

-목수님. 샘 속을 한번 들여다 보십시오. 땅에서 예닐곱 자 정도까지 돌들이 불거져있습니다. 그 이유는 샘가에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가서 흙을 다지니 그 토압이 다시 돌을 밀어붙인 겁니다. 무너진 곳 밑에는 땅이 깊어서 물기가 들어가질 못했으니 예전 그 모양 그대로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이참에 땅도 제대로 다지면서 돌을 쌓지만 샘가에 물이 다시 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시멘으로 널찍이 발라야 합니다-

-그래! 자네는 들어가서 봤으이 알제, 듣고 보이 그래 하민 되겠다. 자! 자! 우선 땅부터 파고 봅시다. 널찍하이 둘러서서 우리 키로 하나 반은 파야 하이 힘 좀 써봅시다-

마을에 유일하게 젖줄 노릇하는 샘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 큰일은 큰일이라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은 삽이며 괭이며 가래를 들고 모였다.
 
다행히 백중 무렵의 농사일이 잠시 숨 돌릴 틈을 주는 참이고 그리고 큰 이유는 어제 태섭의 집에서 결정된 일이니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함령김씨 논밭에 입을 붙이고 사는지라 감히 거역하거나 눈 밖에 날 수 없는 것이었다.

장씨는 누가 하든 말든 대뜸 삽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하고 멍석에 우우하고 앉아있던 사람들도 엉덩이를 들고 샘 주위로 몰려들어 파기 시작한다.

-이 무신 지랄이고? 백중이몬 가을 오기 전에 개 잡아 묵고 닭 잡아 묵고 힘을 길러나야 되는데. 씰데잖케 땅 파고 안 있나? 우리가?-
-문디, 그기 말이라꼬 하나 지금? 이만하이 다행이제. 바쁠 때 이런 일이 있어봐라. 우짤끼고? 그저 신명님이 돌봐 주시가 이만하이 된기라. 주디 다물고 어서 땅이나 파라!-
-저 니리 자슥은 하루 종일 땅 파게 시키서 주디 놀릴 힘도 없구러 맹글어야지 안 그러면 짖기는 말마다 되도 안 한 말만 한데이-
-아! 행님도 어제는 마을에 변고라 해놓고 오늘은 또 딴말하네? 그카민 안 됩니더! 누가 듣고 본다꼬 말 바꾸고 안 보민 또 딴소리하고-

돌부리에 걸리는 삽날은 힘을 있는 대로 다 뺀다. 말을 주며 받으며 싫어도 해야 하고 안 하면 안 되는 마을일이다.

-우짜꼬~ 여 오이 술이 그저 남아도네-
한쪽 다리가 휘어붙여진 꾸루와이가 뒷짐을 지고 나타났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대꾸를 하거나 눈길을 주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저 못 본 체 못 들은 체하며 주고받던 농담도 뚝 끊고 파는 땅에 눈길을 줄 뿐이다.

꾸루와이는 성한 다리는 멍석에 꼬부리고 병신된 다리는 쭉 편 채로 앉아서 술을 한 사발 그득히 부어 연거푸 두세 잔을 들이킨 후 입가를 맨손으로 훔치며 그제야 정신이라도 난 듯 주위를 둘러본다.
-야, 야, 종필아, 이리 온나. 한잔하고 하거래이. 땡빛에 익는다 익어-
그중 제일 만만하게 여겨졌는지 자기보다 연하인 종필이를 불러댄다.

-행님요, 지금 일하는데 우째 지만 술을 합니꺼? 이따 점심때 하입시더-
-야, 이 자슥아, 니 내 술은 술이 아인 모양이제? 그칼래?-
다짜고짜 쌍심지를 돋우며 눈을 뱀눈처럼 찡그려대는 꾸루와이다.

태광은 어제 먹은 덜깬 술을 아직도 이기느라 숨을 씩씩거리며 느지막이 샘가에 걸어오니 일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멍석에서 혼자 술잔을 놓고 있는 꾸루와이를 보고는 태광은 고개를 모로 돌려 일을 거들고 있는 지목수에게 말을 건넨다.
-욕 보십니더. 목도 좀 축여 가민서 하시지-
그저 건네는 건성인사다.
-아, 와예, 우린 벌써 한잔 했십니더-
단 한마디로 지목수는 도로 하던 일에 집중한다.

다시 한잔 더 따른 꾸루와이는 게눈으로 태광을 힐긋거리며 술잔을 입에 데었다 내려놓고는 무슨 작심이라도 한 듯 입을 옆으로 한껏 째고 다신 후 헛기침부터 내놓는다.
-보게, 태광이. 여 좀 앉게나-

말은 태광이에게 하지만 눈은 잔에 따르는 술에 두고 있다. 사실 꾸루와이가 “~하소” 하는 사람이 마을에 몇 안 되고 특히나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하소, 라곤 하는 법이 없는 꾸루와이인데 나이로 치면 태섭이 또래이니 태광에게는 그저 막 대할 만도 하지만 그래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봄에 일어났던 삽자루사건 이후로 서로 대면한 적도 없고 또 꾸루와이가 짓던 모든 소작을 다 내놓은 상황에 태광에게 하대도 못할 것은 없지만 왠지 함부로 하기에는 껄끄럽게 느끼는 꾸루와이다.

태광도 맘이 편치 않다. 저 개 지랄 같은 놈은 왜 여기에 왔누? 하면서 눈을 애써 외면하던 차 앉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그냥 벗어나면 항차 마을에서 이고 살아야 할 뒷얘기가 체면을 구길 것이고 상대를 하지니 뒤가 걱정도 되는 태광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그저 인부들이 하는 일에 건성으로 눈을 주고 있는 사이 아무 대답이 없는 태광에게 꾸루와이가 싸늘한 말을 던진다.
-내 말은 귓꾸녕에 안 들리는갑제?-
이제는 조소를 띈 얼굴로 태광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귀찮고 사나워서 그저 슬슬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알고 있는 마을사람들이 삽질이며 괭이질을 하다가 드디어 또 시작하는구나 하며 일손을 놓고 둘을 번갈아 본다.

태광도 그 말을 물론 들었다. 저 개망나니를 어떻게 하나? 하고 태생이 순한 태광은 가슴이 쿵쿵 뛴다.
지목수가 손에 들었던 연장을 땅에 놓고 분위기를 얼버무려 보려한다.
-자, 자, 다들 목이나 축이고 합시데이. 해는 기니 쉬어기민서 해야 오래 할꺼 아인교?-
멍석에 앉아 아직도 태광을 노려보는 꾸루와이에게 지목수가 한마디 한다.
-자, 내 잔 한잔 받으시고 내기도 한잔 주시오-
인부들도 한여름 햇살에 익은 벌건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멍석 여기저기 앉는다.

꾸루와이는 눈은 여전히 태광에게 둔 채 지목수가 내민 잔을 받아 입에 들이키고 나서 지목수에게 잔을 내밀며
-목수는 돈을 마이 받겠지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 헛품 팔고 있는데?-
한마디로 빈정거리는 질문이다.

지목수도 꾸루와이를 알고 있던 참이다.
어디 태봉에서만 알려진 꾸루와이이던가? 술집 근처 어디에서나 장터 근처에서도 또 무슨 행사나 집회에서는 꼭 감초처럼 끼어있을 뿐만 아니라 막판에는 영락없이 시끄러운 일의 주인공 노릇을 하니 점촌이나 문경지역까지 알려진 절름발이 꾸루와이인 것이다.

천천히 술잔을 비우며 머릿속으로 이 골칫거리를 어떻게 내몰까? 생각하던 지목수는 비운 술잔을 옆에 앉아있던 인부에게 돌리며
-우리야 이 동네 사람들도 아이고 품 팔아 먹고사는 사람 아인교? 아, 동네 사람들이야 자기들 샘이니 당연히 해야 하고. 안 그렇소?-

잔을 받은 자는 지목수가 구하는 물음에 아무 표정도 대답도 보태주지 않고 그저 받은 술잔을 입에 가져간다.
-그래? 그라모 와 김씨집 사람들은 아무도 일 안 하노? 그 집에서는 이 물 안 묵나? 야, 종필아! 니 김가네 집에 가서 함 물어봐라. 이 샘물 묵나 안묵나-
-아따, 행님 와 캅니꺼? 참말로-
멀찍이 멍석 끝에 자리한 젊은이 종필이가 역정을 담아서 답한다.

모두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던 사이에 태광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얻을게 없는 실랑이가 될 것이고 또 실랑이를 벌일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태광은 뒤통수가 따거운 걸 느끼면서도 자리를 피해보는 게 좋겠다고 느낀 것이다.

-이 자석아, 니 목수 말 안 들었나? 마을 사람들은 샘물을 묵으이 헛품을 판다꼬! 그라모, 김가네도 삽 들고 괭이 들고 해야 안 되나? 장승같은 사내놈이 둘이나 있는 집인데-
-그라이 그 집에서 새로 정각도 짓고 목수 품도 주고 안 합니꺼? 고마 하입시더. 행님. 술이나 자시이소!-
종필이가 귀찮은 듯 입막음을 한다.

사람들 틈에 앉은 장씨는 돌아가는 눈치를 살펴서 대충 짐작을 한다. 저자는 골치 아픈 주정뱅이고 무슨 일로 불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시비걸이를 찾아서 싸움을 만드는 자구나 하고 장씨는 달아오르는 태양이 뜨거워서 그늘이라도 구해볼 요량으로 일어서는데 꾸루와이의 말이 들린다.
-어이, 형씨. 첨 보는 얼굴인데 누구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인지 확인부터 한 장씨는 그 자의 눈길이 자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나요? 그러는 댁은 뉘시오?-

비록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는 장씨는 아니지만 마을사람들이 기피하는 저런 인간에게 앞으로 몇 날 며칠 여기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대면인지라 물컹하게 보이기는 싫었다.
-어라? 그 말 한번 듣기 좋시다. 나? 나는 노병구요-
하면서 꾸루와이는 술 한 잔을 더 마시며 뜸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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