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루와이와 장씨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5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2/23 [12:39]

꾸루와이와 장씨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5화

김담 | 입력 : 2014/02/23 [12:39]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종필아, 누고?-

꾸루와이는 장씨에게 직접 물어보는 대신에 저만치 떨어져 앉아 있는 종필을 향해 턱으로 장씨 쪽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미 장씨에게 지고 있는 꾸루와이다. 꾸루와이 자신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댁은 뉘시오? 하고 되물은 말이 싸움판에서 기가 죽지 않는 사람 정도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이미 술이 벌겋게 오른 꾸루와이는 불구의 육신 앞에 놓인 장건한 사내의 위압에 눌리고 있었다.

 

시끄러울 것이 걱정되는 지목수가 들어선다.

- 자, 자, 이제 고만 일어섭시다. 점심 전에 밥값만치는 파야 안 합니꺼?-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지목수를 따라 모두 우루루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연장들을 챙기고 일을 시작한다.

 

혼자 멍석에 남은 꾸루와이는 심사가 사나와진다. 오른 취기가 심술을 부려야 직성이 풀릴 지경이다.

-형씨, 내는 이름을 말했는데 와 당신은 이름을 안대노?-

소리를 지르며 장씨를 노려본다. 그렇거나 말거나 장씨는 들은 척도 않고 삽질을 계속하지만 온 신경은 꾸루와이에게 향해 있다.

-자석이, 오데서 온 놈이 버릇이 없구로…- 하면서 비틀거리며 일어선 꾸루와이는 술잔을 한 손에 든 채 몇 걸음 옮겨 장씨 옆으로 온다.

-야, 니, 내 말이 말 같잖나? 좀 나와본나. 이리-

삽질을 우뚝 멈춘 장씨는 구덩이 속에서 위를 쳐다본다. 볼품이라곤 하나도 없는 초라한 형색의 절름발이가 벌겋게 취해 비틀거리며 시비를 건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서서 말리는 자도 없고 이놈은 결코 이 시비를 멈출 놈이 아니라고 느낀다.

 

삽을 든 채 장씨는 구덩이를 한걸음에 성큼 걸어 올라선다.

술 냄새 후끈한 꾸루와이의 코앞에 얼굴을 대고 장씨는 -내 이름은 장지우요. 보아하니 취하신 것 같으니 쉬었다 가시구려- 하고 잠시 그의 눈을 직시한다.

깜박이지도 않은 채 쳐다보는 장씨의 눈길은 취한 것인지 취한 척하는 것인지 모를 꾸루와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술 대여섯 잔에 취할 리 없는 꾸루와이다.

 

장씨는 도로 풀썩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려 일을 계속하고 주위 사람들도 눈길을 힐끗거리며 일을 계속한다.

꾸루와이는 장씨의 당돌한 통성명에 빌미를 잡은 듯한 태도다.

-가라 켔나? 내보고? 와~ 이 동네 사는 내보고 가라카네. 니가 가야지 와 내가 가노? 오데서 굴러먹던 자석이 내보고 가라카노? 이리 안 나오나? 니는 오늘 죽었다!-

홑적삼을 입은 꾸루와이는 그것마저 벗어 제친다. 벌겋게 드러난 육신은 술에 곯아서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지만 벗었다는 것이 곧 한판 벌린다는 그의 표시인 것이다.

 

보다 못한 지목수가 꾸루와이에게 다가선다.

-일이 바빠서 그런 것이지. 이따 조용히 얘기 나눕시다. 알만한 사람들이니- 하면서 꾸루와이를 잡아끌다시피 하여 멍석에 앉힌다.

-돈 받고 일한다꼬 헛품 파는 우리를 얕잡아보나? 지금? 너그는 맛 좀 봐야 된다. 장 머라꼬? 이리 안 나오나?-

꾸루와이는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장씨를 향해 확 던진다. 허리를 굽혀 일하던 장씨 옆으로 술잔이 피해 떨어지고 장씨는 다시 허리를 펴서 꾸루와이를 본다.

 

어찌한다? 저 골치거리를? 장씨의 눈에 꾸루와이는 난동을 부리고 지목수는 잡아 앉히고 하는 광경이 들어오고 또 하나의 술잔이 장씨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비켜 술잔을 피한 장씨는 재차 성큼 구덩이를 올라와 멍석으로 간다. 지목수 팔을 잡아 세우며

-목수님.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여기 일이나 돌보시지요-

지목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그러나 아무 말은 없다. 커진 눈이 어떻게 하려고 하나 라는 물음이다.

 

지목수의 등을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은 장씨는 몸을 돌려서 삐딱하게 서있는 꾸루와이에게 간다.

-일하시느라 다들 바쁘시니, 저하고 저쪽에 가서 조용히 얘기 합시다-

단호히 한마디 남긴 장씨는 앞서서 걸음을 옮긴다.

-머라꼬? 내보고 조용히 얘기하자꼬? 그래 니는 오늘 내기 조용히 죽는 줄 알아라!-

꾸루와이는 일꾼 하나가 잡고 있는 삽을 빼앗아 쥐고는 절룩거리며 장씨의 뒤를 따라간다.

 

일꾼들 전부 웅성거리며 일손을 멈추지만 지목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나서질 않는다. 꾸루와이 옆에서는 잘해도 못해도 그저 남는 것이 해로운 일뿐인 것이 자명한 탓이다.

-장씨, 와카노?-

걱정스런 얼굴로 지목수가 앞서가는 장씨를 부르자 장씨가 돌아서서 손짓으로 오지 말라는 시늉을 한다.

-오이야, 오늘 니 죽고 내 죽고 함 해보재이-

절룩거리며 삽을 들고 오는 꾸루와이가 샘터로부터 한 스무 걸음이나 됐을 즈음 장씨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간다.

 

눈도 깜짝 않고 동요의 빛도 보이지 않은 채 자기에게 다가오는 장씨에게 꾸루와이는 삽자루를 휘두를 기회를 잃었다.

코를 꾸루와이에게 바짝 들이댄 장씨는 마치 귓속말같이 나직하게 -내 말 잘 들어라. 너 체면 생각해서 동네사람들 앞에서 하나 남은 다리 분지르지 않았다. 내 앞에서 다시 한번 행패 부리면 그때는 너는 앉은뱅이 되는 줄 알아라. 확인해보고 싶으면 지금 대들어봐라- 하고 말을 멈추고 꾸루와이의 눈을 응시한다.

 

꾸루와이의 걸음이 한 발짝 뒷걸음친다. 몸의 중심이 빗나간 탓인지 아니면 장씨의 나직한 그러나 단호한 경고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꾸루와이는 순간 말도 행동도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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