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일에 초상까지 계속되는 마을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7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3/10 [09:04]

샘 일에 초상까지 계속되는 마을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7화

김담 | 입력 : 2014/03/10 [09:04]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단지 속에 물이 가라 앉아야 무울낀데…. 퍼 쓰기 바뿌이 무울 물이 없다! 우짜꼬?-

광수에미는 물단지 속을 들여다보다가 뒤집어놓은 솥뚜껑 앞에 앉아있는 소향을 보며 물타령을 한다.

연기가 코를 맵게 하는지 소향은 고개를 한쪽으로 젖히고 전을 뒤집다가

-웃마을 샘은 샘도 아입디더. 그저 작은 웅딩이던데예. 그걸 바가지로 퍼대니 꾸정물이 나올 수 밖에예. 지도 우짤 수가 없었으예-

무너진 샘 때문에 일꾼들 참이며 때를 대느라 정기에 쓰이는 물이 많아서 오전 내내 소향이 이고 왔지만 물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꾸정물이라케도 그래도 그것밖에 없으이 우짜겠노? 그거 대충 해놓고 가서 물 좀 더 이고 온나!-

사실 소향은 낯선 동네에서 물을 이고 오며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아지매, 이기 다 입니더. 지는 물 이러 갈랍니더. 아지매가 치우이소-

마지막 몇 조각을 올려놓고는 소향이 물동이를 들고 따뱅이를 머리에 올리며 광수에미에게 건네는 말이다.

 

무너진 샘터에서는 장정 대여섯이 역사를 벌리고 있다.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니 오후 열기는 더욱 성할 수밖에 없지만 백중 무렵의 짧은 틈을 이용하여 샘을 완성해야만 하는 나름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지라 시끌벅적하게 무리의 힘을 빌려서 더위를 이겨가고 있다.

그 앞을 소향이 지나면서 벗어 제치고 벌건 윗몸을 드러낸 남정네들이 사나워서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서 걸어간다. 그리고 또 다시 흙담 모퉁이를 돌때 아침에 본 처자가 여전히 삽작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다. 내 또래나 되려나? 소향은 생각한다.

머리는 거의 산발에 가깝고 입은 옷이라고 해야 겨우 알몸만 가릴 정도로 헤진 치마 한 조각과 허리가 빼꼼히 드러나는 저고리 하나만 걸치고 맨땅에 앉아서 나무작대기로 땅만 휘젓고 있다. 사람이 지나쳐도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소향의 눈에도 성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측은한 생각이 든다.

 

마을을 거의 벗어날 만큼의 거리에 샘이 있어서 발걸음이 바쁜 소향이다. 한낮이라 그런지 다행히 사람들이 없어서 물바가지를 조심스레 물에 대고 흙찌꺼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떠올려서 한 동이를 채우고 머리에 올리니 무게가 천근이지만 소향은 능란하게 걸음을 옮긴다. 눈을 내리깔아 발밑에 지나는 돌부리를 피해가며 머리에 인 무게를 일깡일깡 박자에 맞게 팔을 휘저어대며 다시 지나온 길을 되돌아오는데 아까 지나온 그 처자의 집 앞에 사람들  몇이 웅성거리고 서있다.

 

-야야, 니는 너거 어마이가 죽어도 모리제? 쯧쯧-

어느 아지매의 한탄스런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인제 을순이는 우째 살꼬? 고마 엄마 따라 갈 끼지-

또 다른 아낙의 말도 들린다.

그저 귀로만 들을 뿐 소향은 멈추지 않고 지나쳐 그냥 지나간다.

-누고?-

누군가의 말이다.

-첨 보는 안데?-

다른 사내의 말이다.

-아가 아이고 다 커 보이는데-

또 누군가의 말이다. 자기를 두고 주고받는 말이 분명하다. 하지만 머리 위에 천근을 이고 있으니 소향은 시선을 달리 딴 곳에 둘 수 없는 상황이라 그냥 모르는 척 지나쳐 집에 와서 독에 물을 들어부었다.

 

-내캉 샘에 가재이. 니는 저 소쿠리에 든 거 들고 온나-

오자마자 작은아지매는 이미 오후 참으로 준비한 것들을 담아서 샘터로 갈 채비가 끝난 것이다.

-아지매요. 지는 여서 설거지 할랍니더. 아지매들이 많쿠만요. 저도 꼭 가야 합니꺼?-

-그칼래? 그래, 니는 여 있어도 되겠다. 자, 퍼떡 가입시더-

가기 싫은 소향의 의중을 대수롭게 여긴 작은 아지매는 주위의 아낙들에게 재촉하여 이고 들고 정기를 벗어난다.

 

샘터의 일은 장씨와 지목수의 지휘 하에 제법 일이 많이 진행되었다.

한편에서는 석수가 각석을 다듬느라 징을 쳐대고 파낸 흙구덩이 속에서 장씨와 장정 두서넛이 무너지거나 혹은 아직 지탱하고 있는 돌들을 들어내고 다시 쌓아가며 중간 중간에 석수가 다듬어 놓은 각석을 끼워 넣어 흔들림이 없이 다져가고 그 뒤에 흙을 메워 넣는다.

 

-자, 참 잡숫고 하이소-

거칠 것 없는 광수에미의 말에 남정네들이 우루루 손에 든 연장들을 놓고 멍석 위로 몰려든다.

-아지매, 아까 보이 창호네 집에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던데. 혹시 창호할매 돌아가신 거 아입니꺼?-

종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광수에미는 고개를 돌려서 을순이집 쪽으로 보니 곡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그런 모양이제. 우는 소리 아이가? 할매가 우째 눈을 감았을꼬? 을순이를 놔두고-

그런 말을 하면서도 광수에미는 놀란 기색이 없다. 이미 알고 있었고 예고된 사실이니 그저 그런 사실일 뿐 바쁜 철에 또 염천지절에 죽었다는 것이 조금은 성가신 정도다.

-잡수소. 내는 가봐야지. 그래도 그 할매는 참 좋은 할매였는데…. 아지매들도 같이 가보입시더. 창호 어마이를 봐서는 가기도 싫지만-

아낙들이 우루루 샘터를 벗어나서 모퉁이를 돌아간다.

-돌아가실 때가 한참이나 지났지? 벌써 누워계신 지가 운젠데?-

사내의 말에 다른 사내가

-창호 아바이는 요새 오데 있노?-

-모리제. 그 자석이 운제 오데 간다카고 가더나? 한동네에 살민서도 가면 가는부다 오민 오는부다 하제. 아 자슥이 인정머리 없기로는 꼭 지 마누라하고 천생연분 아이가?-

자슥이라고 함부로 부르는 것으로 봐서는 창호아바이도 말하고 있는 사내 또래임이 분명하다. 장씨와 지목수도 술잔을 주고받으며 오후에 쏟아낸 땀을 식히면서 주고받는 말을 듣는다.

 

좀 전에 들리던 곡소리가 완연히 크게 들린다.

-돌아가시도 우째 지금 돌아가시노? 바빠 죽겠구만 샘 일도 한 이틀 쉬야 되겠네-

그 말에 비로소 장씨가 사내를 향해 한마디 묻는다.

-가장이 집에 없는 모양이지요?-

-그 자슥이 농사일 안 한다꼬 객지로 돌아댕기민서 묵고 삽니더. 노모가 계시니 식구는 여따 두고-

-오데 안 한다꼬 했나? 못한 거지. 한마을에 살민서 우째 그리 모나게 사는지 누가 그 자슥한테 농사일 주겠노? 안 주이 묵고 살라꼬 밖으로 나도는 거지-

다른 사내의 말로 미루어 보아 그 집의 남자는 객지살이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허나 저나 인제 을순이는 우짜꼬? 할무이가 살아있었어도 찬밥 신세였는데. 창호어마이가 시누 대접을 우째 할지가 훤하다-

-오래 사싰제? 올해로 할매가 우째 되지?-

-글쎄. 우리 할마시보다도 위라 했으이 한 칠십을 넘었겠다-

-벌써 돌아가싰을 낀데 을순이 땜에 눈을 몬 감었을 끼다. 갸는 왜 그리 늦게 태나서 고생이고?-

-쉰둥이라꼬 오죽 좋아 했노? 저리 될 줄 누가 알고-

장씨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자, 해가 아직도 중천에 있으니 밥값도 할 겸 일어섭시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장씨는 주위에 대고 재촉한다. 

 

사실 장씨나 지목수는 재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저 세월아 내월아 하면 꼬박꼬박 하루 품삯이 생기는 판이지만 둘의 심성은 일을 앞에 놓아두고 꾀를 부리거나 셈을 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지목수는 장씨를 데리고 다니고 또 장씨도 지목수의 그런 마음에 끌려 같이 일을 하는 참이다.

-동네에 상이 났다면 일이 한 이틀 멈추겠지요?-

장씨는 지목수를 보고 묻는다.

-상이 나간 다음에 일을 하면했지 우째 초상을 두고 마을사람들이 일을 하겠나? 우리도 그리 알고 있음세-

을순이네 집으로 갔던 광수에미가 마을 아낙들을 대동하고 샘터로 몰려 돌아왔다.

-점심때 돌아가싰다 하데. 창호어마이가 혼자 곡을 하민서 있는데 눈에는 눈물 한 방울도 안 나더라. 그나저나 창호아바이도 오데 있는지도 모리고. 초상은 치라야 되고. 을순이는 암 것도 모리고 웃더라. 종필이 아재야. 니가 나서서 오늘부터 그 집에 일 좀 거들도록 해라. 우리도 거들어야제 우짜겠노? 돌아가신 할매를 봐서라도 우리가 해야지-

 

늦게 얻은 딸이 집안에 경사라고 하던 것도 잠시였던 것이다. 을순이가 돌을 지나고부터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자랄수록 몸만 컸지 도대체 하는 행동은 간난아기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을순이가 다섯 살도 채 되기 전에 영감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이 장가를 들어서 며느리를 맞이했지만 그 며느리라는 것이 독하기 짝이 없는지라 병신 시누이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심지어 시어머니 앞에서조차 대놓고 박대를 하곤 했던 것이라 을순이 어마이는 풍으로 자리 보존하기 전까지 그저 을순이를 가슴에 끼고 살았던 것이다.

소작을 부치며 살던 아들도 못된 성격 때문에 마을에서 늘 따돌림을 당하고 또 그 며느리조차도 패악한 성격과 용심으로 겉돌고 하던 차 을순이 오라버니가 그나마 부치던 소작을 빼앗기자 그냥 식솔들을 남겨둔 채 돈 벌어오겠다고 객지로 나서고 그저 명절 무렵이나 되면 집에 오곤 했던 것이니 어마이가 죽은들 그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길이 없는 상황이다.

집으로 돌아온 광수에미는 따라온 아낙들에게 남은 음식을 이것저것 나누어 주면서

-광수아바이한테 말해서 초상 치루라 할끼니 자네들도 낼부터 창호네 집에서 일 좀 거들도록 해. 철없는 창호가 상주 노릇하게 됐구만-

 

이튿날부터 샘터일은 멈춰지고 동네사람들이 창호네 집에 모여 초상을 준비한다.

광수아바이 태광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동네일이고 동네의 종가일이니 상주가 있으나 없으나 종가에서 거들 수밖에 없는 일. 하지만 태섭은 나서질 않고 동생을 시켜서 상을 치루게 한다.

객지에 있는 아들이 상주가 되지 못하고 철없는 손자가 상주가 되어 삼베옷을 입고 대지팡이를 짚고 문간에 서있지만 원래부터 엄마를 따르던 아이라 죽은 할매한테도 정이 없던 차 그저 건성으로 서있을 뿐 눈은 음식에 두고 있다.

소향도 광수에미의 당부에 따라 죽으라고 윗마을 샘터에서 물을 이고 나른다. 초상 준비를 하는 판이니 물 쓰임새도 많은지라 소향은 쉴 틈 없이 샘을 왔다 갔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것이 편하다 하고 있다.

장씨와 지목수도 비록 얼굴도 한번 본적 없는 어느 할머니의 상이지만 발을 들여놓은 마을의 일이라 어차피 샘 일을 못할 판에야 초상집 일이라도 돕자는 마음으로 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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