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님예, 우리 어무이 점방 냈심니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46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5/13 [10:30]

“보살님예, 우리 어무이 점방 냈심니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46화

김담 | 입력 : 2014/05/13 [10:30]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계십니꺼?-

마을 입구에서 사람들에게 물어서 석수가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돌 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고, 집이 어디인지도 알았지만 소향은 조심스럽게 불렀다.

 

싸리나무로 삽작문이라고는 있지만 아예 활짝 뒤로 젖혀져 있다. 눈으로 보아도 닫힌 흔적도 없고 또 닫을 이유도 없어 보일만큼 담도 허술하고 뒷단에는 아예 경계도 없는 초가다.

그래도 아래채가 있고 그 옆에는 소죽 쑤는 가마도 걸려있다. 소리가 들렸는지 아래채 방문이 열리고 누가 고개를 내미는데 보니 보살님이다.

 

-보살님예!-

소향은 무당에게로 뛰어가는데 이미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소향이가 우짠 일이고?-

문설주에 상체를 기댄 채로 무당이 눈을 애써서 크게 뜨며 말한다.

-오싯다는 얘기 듣고 바로 왔심더-

광수는 아직도 삽작에 서있지만 소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손에 장죽을 잡고 있는 무당의 눈이 벌겋다. 눈이 꼭 상한 생선 눈처럼 핏발이 서려있다. 방안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도 이상했다. 대폿집이나 남정네들 옆에서 나는 그 댓진 냄새가 아니고 무슨 이상한 냄새다. 분명히 담배장죽인데….

 

-보살님예, 지는 바로 가야 됩니더. 우리 어무이 점방 냈심니꺼?-

장죽을 입에 대고 길게 빨아 당기던 무당이 소향의 소리를 못 들었는지 지그시 눈을 감고 숨도 쉬지 않고 있다.

-보살님예!-

답답한 소향이 채근해 부른다.

그제야 눈동자조차 희미한 벌건 눈을 뜨며 무당이 소향을 본다.

-응? 머라꼬?-

-우리 어무이 점방 냈는교?-

목소리를 한층 높여서 되묻는 소향의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보살을 본적이 없는데…. 오늘의 모습은 영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인다.

-이… 그래! 장사하고 있다!-

그리고는 다시 장죽을 입에 대고 불어 삼킨다. 아예 소향이 옆에 있다는 것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털보무당이다.

 

-대포아지매도 잘 계시지예? 우리 어무이 보고 왔심니꺼? 오데따 점방 얻었심니꺼?-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털보무당이라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지만 질문을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소향이다.

-으? 응. 그래. 내 나중에 너그 집에 갈끼다. 다 괜찮다- 하고는 뒤로 벌렁 드러누워 버리는 무당이다.

 

술이 취했나? 평소에 보살님이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술 냄새도 나지 않는데…. 옷매무새도 헝클어진 채 큰 대자로 팔을 벌리고 눈을 감고 숨만 색색 쉬고 있다.

고개를 돌려 그제야 같이 온 광수를 찾아보니 삽작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으로 와본 동네에 낯선 집이라 발도 들여놓지 않고 있다.

 

소향이 널브러진 무당을 보고, 그래, 점방을 냈다고는 했으니…. 그 다음은 보살님이 술 깬 다음에 물어보자, 어차피 빨리 되돌아가야 한다, 생각하고 덜걱거리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집을 벗어나지만 속으로는 분명 술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하고는 광수를 잡아끌고 간다.

 

-아지매, 내 업어도. 몬 걷겠다. 아푸다-

광수는 또 땅에 주저앉아 버린다.

 

이제는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비록 해는 졌지만 아직 여름이라 남은 햇살이 밝다. 조금의 여유를 찾은 소향이 아프다는 광수발을 들고 밑바닥을 보니 아플 만도 하겠다 싶다. 마치 무마냥 퉁퉁 불어 있었다. 벌겋게 부어오른 발 밑바닥이 탱자가시에 찔린 곳은 아예 시퍼렇게, 아니 검은 색으로 덧나 있었다.

-아푸겠다. 이래 가지고도 그리 놀로 댕깄나? 야야-

 

물을 건널 때 업었던 광수의 무게는 바쁜 마음에 느낄 수 없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등 뒤에 업힌 광수는 천근같이 무겁다. 하지만 아까 본 광수 발바닥을 생각하면 도저히 걸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무겁지만 추슬러 가며 걷는다.

 

* * *

 

대청에는 남정네 넷이서 술상을 가운데 놓고 모여 앉아있다.

-욕봤소. 더운데…. 더더군더나, 안 해도 될 일꺼정 생기는 통에…-

계획에 없던 무너진 샘 일을 두고 하는 태섭의 말이다.

-행님, 차라리 정각 짓기 전에 무너져뿐기 울매나 다행입니꺼? 안 그랬으민사 두 번 일 할삔 했지요-

-그래, 그건 니 말이 맞다. 우연지사라 케도 그저 좋은 쪽으로 생각해서 다행으로 치자-

동생 태광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태섭이지만 사실 맞는 말이었다.

정각을 지은 후에 샘이 무너져버리기라도 했었더라면 일이 몇 곱절 더 힘들고 복잡했으리라.

 

-무너진 기 사단이 아이고. 우짜면 도움이 됐지예. 길게 봐서는예-

아직도 어제 태섭이 기우뚱한 고개와 삐딱한 눈길로 자기에게 탓한 “넘에 처자는 와 묻노?” 하는 말이 어색해서 몸이 한껏 조여드는 지목수가 어색함을 풀고자 딴에는 도움이라 한다.

 

옆에 앉은 장씨는 일언반구도 없이 물끄러미 소반만 쳐다본다. 무슨 할 말도 딱히 없다. 그저 품값이나 받으러 왔을 뿐. 사실 품값 받으러 지목수와 같이 오기도 싫었다. 지목수보고 대신 받아오라고 했지만 지목수가 들어서 같이 가야 된다고 우겨대는 통에 왔을 뿐이다.

지목수의 마음은 언제인가부터 장씨가 자기를 따라다니는 일꾼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가 들러리서는 일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우겼던 것이다. 태섭이 지목수와 장씨의 품값도 따져주고 또 태광이로부터 일이 마무리 됐는지도 확인할 겸 한자리에 모여서 술을 앞에 놓고 있는 것이다.

 

-니가 보이 우떻더노? 일은 잘 됐나? 내는 모리겠다. 그저 보기에는 근사하더구만-

-행님, 그래도 지목수가 했다 아입니꺼? 아, 우리 집도 한번 보이소. 울매나 잘했는지-

별채 얘기다. 다 허물어져가던 집을 장씨하고 단 둘이서 그래도 살만한 집으로 변신하게 해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 니가 그렇다민사 내는 믿는다. 자, 자, 한잔하고. 그래. 품값을 쳐봅시다-

 

태광이 먼저 사발을 들어 목으로 퍼붓는다. 울컥거리는 소리가 목에 걸린 울대가 오르내릴 때마다 박자를 맞춰 마치 돼지 울음소리 같다.

 

-영감, 차라리 저녁을 잡숫든지 하지. 때가 됐는데… 술을 합니까?-

정기에서 안주를 담아내온 큰아지매가 상위에 놓으며 탓 아닌 탓을 한다.

-아이, 아입니더. 우린 가봐야 돼서예-

지목수가 엉덩이를 들어서 예를 갖추며 도로 앉는다.

-그래도 때가 됐는데 그냥 가시면 어쩝니까? 영감, 상을 볼까요?- 하고 태섭을 본다.

-아이다. 됐다고마. 바쁜 모양인데- 하고는 술을 한잔 마신다.

-그럼. 서방님 잠깐 저 좀 보시지요-

큰아지매가 정기로 들어서고 태광이 따라 들어선다.

-와요? 행수님?-

광수에미가 저녁상을 보느라 상위에 담아놓은 반찬거리를 손으로 덥석 집어 입에 넣으며 태광이 묻는다.

 

-서방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장씨라는 사람?-

손가락을 입으로 쭉쭉 빨던 태광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장씨요? 머가요?-

-동서네가 살림도 났고. 두 집 살림 돌보는 게 서방님도 힘들 테니 집에 머슴 하나 두는 게 좋을 듯 싶어서요. 지난번에 별채 일할 때나 이번에 샘일할 때 보니 사람이 무던해 보이고 일머리도 아는 사람 같이 보여서 혹시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 아니라면 서방님이 영감하고 같이 운을 떼보라고요- 하고는 태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큰아지매의 말을 들은 태광과 옆에 있던 광수에미는 동시에 눈을 맞추고 의중이 들어맞는 것을 안다.

-그래예. 행님 말이 맞지. 아 아바이가 혼자 돌보기에는 딥니더-

광수에미가 대신 대답을 한다.

 

태광이도 그렇다. 지난봄에 꾸루와이 사건 후로는 소작하는 사람들에게 야박한 말도 하기 어려운 것을 느끼고 있다. 때론 듣기 싫은 소리도 해야 되고 소출을 위해서는 잔소리 큰소리 가리지 않고 질러대야 되는 게 지주인데 심기가 여린 태광으로서는 그런 일이 영 어려울 뿐이다.

 

- 예, 행수님. 그거 좋은 생각입니더-

손가락이 여전히 입에 물린 채 태광은 자기가 집안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싶다.

-그래예. 행님한테 내 말하지예. 그거 좋은 생각이네예. 그라고 그 장씨… 일도 잘 합디더. 농사일은 우짤란가 모리지만… 아, 모리몬 배워가민서 하민 되지-

 

성큼 정기를 벗어나는 태광의 발걸음이 거칠 것 없이 동의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큰아지매는 알았다. 비록 머슴일지라도 남정네를 집으로 들이는 것을 자기 입으로 내놓기보다 태광이 거론하는 것이 한결 낫다고 생각했다.

 

* * *

 

한번 물에서 미끄러진 후 소향은 길은 멀더라고 다리를 건너서 가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그 늪이 싫었다. 혹시 징그러운 뱀이라도 밟는 경우에는? 생각만 해도 몸이 오싹거린다. 하지만 보살을 통해 들을 삼천포 소식이 급했을 때는 그런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제 점방은 열었다는 소식은 들었으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안심은 된다.

 

갈수록 광수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광수야. 좀 내리자. 쉬었다 가재이. 무거버 죽겠다- 하고는 쉴만한 곳을 찾아보는데 저만치 고목나무 한 그루가 길가에 크게 서있다.

맨땅이나 풀숲에 앉을 수는 없으니 나무 밑에라도 좀 쉬어가자고 마음을 정하고 다가가니 이미 사람 몇이 나무 뒤에 앉아 있는 것이다.

 

초저녁에 처음으로 온 동네에서 아무와 함께 앉는 것도 어색한 소향은 그냥 발길을 계속하려는 순간 등 뒤에 있던 광수가 소향의 어깨를 꽉 움켜잡으며 바짝 매달린다.

고목나무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으로 얼굴을 돌려 보는 순간에 광수가 그 사람들이 문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마을에서 놀려대던 문둥이들이었다.

 

소향도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중 한 사람의 얼굴은 이미 낯이 익었다는 것도 알았다.

광수는 바짝 매달려서 목을 조른다. 소향도 겁이 난다.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초저녁 아닌가?

 

-색시, 내 좀 잠깐 보입시다-

머리가 쭈뼛할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그냥 가자니 겁이 나고 돌아서서 문둥이와 마주한다는 것도 겁이 난다.

-빨리 가재이 아지매-

광수는 양발로 소향의 허리춤을 차며 잔뜩 겁에 질려있다.

 

-가마 있거라, 야야. 힘들어 죽겠다- 하고는 소향은 광수를 땅에 내린다. 차라리 정면대응을 하는 것이 덜 위험하리라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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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윌 2014/05/16 [15:09] 수정 | 삭제
  • 드라마처럼 궁금하게 하네요~ 다음회를 기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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