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방을 언제쯤으로 하면 길일이 될지…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52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6/23 [23:22]

합방을 언제쯤으로 하면 길일이 될지…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52화

김담 | 입력 : 2014/06/23 [23:22]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자네! 창호어마이 아닌가?-

모두 대청 쪽에서 나는 큰아지매의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서 대청을 향한다.

-대문간에서 그리 큰소릴 내는 게 아닐세. 이리 들어오게.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 조용히 얘기해도 될 일을 그리 하나?-

씩씩거리던 창호어마이가 성큼 발을 대문 안으로 옮기고 대청 앞으로 걸어온다.

-무신 일이기에 그리 큰소릴 내고 하는가? 말해 보게나!-

 

돌계단을 오르지도 않은 채 창호어마이가 늘어놓는다.

-우리 아가 카는데 며칠 전에 저년이 을순이한테 샘가에서 물을 끼얹고 난리를 칬다 캅디더-

-지는 그런 적 없다고 아까 말씸 디릿지예?-

소향의 눈에도 쌍심지가 돋아있다. 또래처녀가 안된 마음에서 씻겨주고 닦아주고 했는데 이건 무슨 날벼락 같은 억울한 일이란 말인가?

 

-자네! 지금 집에 가서 창호 데리고 오게. 그 아이가 보았다니 소향이 앞에서 삼자대면을 시키게. 그리고 좀 조용하게 말하고!-

얼굴에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큰아지매의 단호한 결정에 창호어마이가 험한 말을 잇지 못한다.

-그래, 니 창호 델꼬 온나. 아무케도 창호가 잘못 봤지 싶다. 야가 넘한테 해꼬지 할 아는 아닌데-

작은아지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창호어마이는 대문 밖으로 나가고 있다.

 

-저기 요새 지정신이 아입니더!-

창호에미의 뒷꼭지를 보며 광수에미가 한마디 한다.

여전히 대청에 서있던 큰아지매는 그 말을 듣고 소향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광수에미에게로 눈길을 돌려 묻는다.

-왜? 그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 지난 추석에 창호아바이가 오도 안했다 캅디다. 그카이 속이 오죽 하겠십니꺼? 케도 그렇지. 사람이 우째… 그리도 모가 났는지… 안됐다 싶다가도 하는 행실이 여간 사나와야지-

광수에미는 말끝을 흐려버린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명절에 집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 화만 낼 일이 아닌 성 싶은데.그 집에 할머니 돌아가신 것도 모르고 있을 텐데…창호아버지는-

담 너머로 창호네 집이 있는 쪽을 보며 큰아지매는 걱정스런 말을 한다.

-처자식을 두고서… 오데 있는지도 모르고. 오도 안하이 속만 끼리는 거 아입니꺼?-

큰아지매를 쳐다보며 광수에미가 하는 말에도 걱정이 묻어있다.

 

오지 않는 창호에미를 기다리기 어설퍼서 소향이 정기로 가려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돼지 목 따는 소리마냥 꺼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몇 집 건너에서 들리는 것으로 봐서 창호네 집이 분명하다. 실상 김씨종가에서 샘터를 가자면 담을 한마당 돌아서 가지만 직선으로야 그저 세 집 건너고 창호네는 샘에서 대각선으로 두 집이니 큰소리는 들리고도 남을 거리다.

 

-또 을순이를 잡는구만-

광수에미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소향의 귀에도 들린다.

악쓰는 소리도 아니고 그저 맥없이 길게 목을 잡아 빼는 소리로 봐서 저항할 힘도 없이 매타작을 당하는 모양이다. 더 이상 그 소리를 듣기가 거북한 소향은 입을 다물고 정기로 들어가 버린다.

광수에미는 소향이 타작해 놓은 팥을 빗자루로 쓸어 모으고 큰아지매는 대발을 내리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     *     *

 

잠시 후에 아래채 소향의 방문이 열리고 무당이 문고리를 손에 잡고 문지방에 고개를 고인 채 소향을 부른다.

-소향아. 소향아!-

하지만 목소리가 나약한 탓인가 정기에 있는 소향은 듣지 못하지만 팥을 모으고 있던 광수에미가 듣고는 빗자루를 잡은 채로 문으로 다가가며 인사한다.

-오싯다는 말씸은 들었는데예. 안됐다민서예? 좀 낫심니꺼?-

그저 며칠 상간에 무당의 몰골이 마치 해골처럼 핏기가 없다.

-예. 먼 길이라 그런가, 단디 몸살이 난 모양이네. 소향이 오데 있습니꺼?-

-와예? 소향이 정기에 있는데. 소향아!- 하고 크게 부른다.

 

-아이구! 내 정신 좀 보게. 아까 행님이 보살님 죽 끼리라고 했는데 창호네가 왔다가는 통에 잊아뿌고 있었네-

정기에서 나오는 소향을 보며 혼잣말을 열심히 지껄이던 작은아지매는 대청 앞으로가서 큰아지매를 부른다.

-행님요. 아까 보살님 죽 끼릴 황태 안 주실 낍니꺼?-

대발을 손으로 걷어올리고 앉은 채로 큰아지매가 얼굴을 내민다.

-글쎄말일세. 우리 둘 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자네가 광에 들어가서 필요한 만큼 내오게나. 저녁거리로 할 만큼은 될 걸세. 보살님은 소금간만 해서 끓이고-

-그카지예-

 

광수에미가 대청으로 올라서는 동안 큰아지매는 열린 문을 사이로 두고 무어라 말을 주고받는 소향과 무당을 보고는 몸을 일으킨다.

-좀 나아 지셨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무신 코를 돌려 끼우고 아래채로 간다.

-좀 어떻습니까? 낫습니까?-

큰아지매의 질문에 소향이 돌아서서 무당 쪽을 향한 눈길을 피해주고 큰아지매에게 말한다.

-보살님이 술 있냐고 물으시는데예-

문지방에 아예 고개를 묻고 깔아져있는 무당은 말할 기력도 없는지 아무 말이 없다.

-응? 잡숫도 안했는데. 술이라니? 몸살에 술이 가당하겠나? 좀만 기다리자. 지금 동서가 미음을 준비하니-

귀로는 다 들었는지 무당이 고개를 힘겹게 들어올리며

-아지매. 내 정신 좀 차리게 밥보다 술 한 잔 뱃속에 집어넣어야 되겠십니더. 탁주라도 한 사발만 내오이소- 하고는 도로 고개를 꺾어 내린다.

-예. 소향아. 그러면 광에 정종이 한 병 있다. 한 종지기만 따라서 내온나. 막걸리보다 그것이 나을 것이다-

 

턱을 문지방에 고인 무당은 아편 기운이 떨어진 몸을 어떻게 해서든지 추슬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후회스럽다. 애간장이 녹을 만큼 후회스럽다. 하지만 그것도 내 복 아니겠는가?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제정신으로 자신을 둘러볼 만큼은 됐다. 아편 기운이 떨어질 때는 눈에 보이는 것도 없는데 그 발광마저도 멀어지고 나면 비로소 대낮에 선잠 깨듯이 얼얼한 정신이 돌아오는 것이렷다.

 

빈속에 소향이 건네준 정종 한 잔을 뱃속에 넣고 나니 싸한 아림이 몸을 울린다. 이어서 황태로 쑨 미음이 간장 한 종지와 함께 곁들여 들여보내지고 서서히 밤이 사방에 내렸다.

혼자 방안에서 흔들거리는 호롱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몸에 퍼져있는 술기운에 의지한 정신을 채찍질하며 무너지지 않게 독려하는 무당이다. 대가에서조차 허점을 보일 수는 없겠다. 지난일은 지난일로 치부하고 산 입은 건사해야 할 판, 무당은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 올리며 얼굴을 비비고 정신을 내본다.

 

-보살님-

불빛이 있는 것을 보고 큰아지매가 내려온 것이다.

-예. 마님. 들어오시지예- 하고는 문을 열어준다.

마님이라는 호칭을 입에 담는 것으로 봐서 무당이 혼수에서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

 

-죽을 좀 뜨셨나요? 입맛에 맞을지도 모르겠고. 동서가 그래도 솜씨는 있는데-

문 앞에서 들어오지는 않고 선 채로 인사처럼 말한다.

-묵긴 해도 입이 소태라 맛도 모립니더. 그저 기운 채리야 되이 무웃습니더. 들어 오이소-

낮 보다는 한결 기운을 차린 듯 한 무당이라 큰아지매도 문고리를 잡고 방으로 들어선다.

 

-한집이라 해도 방에 들어와 본 게 언젠지 생각도 안 납니다- 하고는 한 바퀴 휘 둘러보지만 볼 것이라고는 홑이불 하나와 손 보따리 두 개뿐 하나도 없다.

-아, 대궐 같은 안방을 놔두고 아래채에 드실 일이 있겠십니까? 앉으이소-

무당은 엉덩이를 끌며 윗목 쪽으로 옮겨 앉아 자리를 내준다.

 

그러나 실은 아래채는 윗목 아랫목을 따질 수 없는 구조이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로 볼 때 외양간을 제외한 두 개의 방을 한 고래로 엮어놓은 탓에 아궁이가 두 방의 중앙에 위치한 것이니 따지고 보면 아랫목은 바로 문 옆이다. 하지만 그저 느낌으로 아랫목을 정한 두 여자는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래도 보살님이 많이 나아지셨군요. 아까전에는 말씀도 하기 힘드시더구만-

엷은 미소가 호롱불빛 아래서 보일락 말락 하지만 큰아지매는 인사치레로 예를 차린다.

-예, 부처님이 뭐가 그리 미운신가 요새 영 힘들게 하시는구만요. 하긴 지가 바람같이 살다보이 천리마 이상으로 휘갈고 안 다닙니꺼? 곱뿔이 들만도 하지예-

애써가며 장신을 가다듬는 무당이 행여라도 안방마님이 자신의 과오를 눈치 챌까 더 긴장한다.

 

-그만 하시다면 불편하시더라도 날을 좀 잡아주시고 치성이나 부탁할까합니다-

제법 무게 있게 말을 늘어놓는데 무당은 감이 전혀 오지 않는다.

-예? 무신 날을?-

술기운에 버티고는 있지만 아직도 무당의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아편조각들이 몸을 떨게 만든다. 무당은 눈치 채지 않게 양손을 꼭 잡아 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으며 눈을 부엉이 눈처럼 크게 뜨고 호롱불을 보며 묻는다.

 

-예. 소향이 말입니다. 합방을 언제쯤으로 하면 길일이 될지…. 또 정성을 어떻게 보탤지….그런 것 때문에 오시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 그럼 여태? 소향이 여 온지도… 한참인데…-

말끝을 흐리며 무당은 침을 꿀꺽 삼킨다.

 

그래! 명절 나부랭이 때문에 지전 한 장 못 벌었고 그놈의 약기운에 미쳐서 고쟁이 속의 잔돈푼도 모자라 거짓말에 빌린 돈이 여기 저기 널려있는 형편이다. 바람같이 아편냄새가 코를 스친다. 아니지…. 돈 냄새가 나니 먼저 아편냄새부터 나는 것을 머리를 흔들며 떨쳐내고 무당은 다리를 바꿔 꼬며 허리를 곧추세운다.

 

-하긴 이기 오데 보통 일입니꺼? 마님의 후손을 생각하는 대사 중에 대사인데 잘 하십니더. 길일을 잡고 치성을 올리고 나라를 다스릴 장군깜이나 정승깜을 얻으시야지요. 자고로 남녀 합궁이란 기방이나 창가에서 있는 것은 합궁이랄 수도 없심더. 부처님의 가피를 얻고 보살님들이 액남을 물릴 때 일어나는 합궁이 인물을 만드는 거 아입니꺼?-

 

무당은 자신도 놀랄만한 일장연설을 하는데 무언가 허전하기 짝이 없다. 지니고 있는 담배가 동난 지 한참이다.

-음… 마님. 혹 집에 담배 있습니꺼? 오니라고 바빠서-

큰아지매의 눈을 보며 은근히 청해본다.

그렇지. 저 보살이 담배를 피웠지. 코가 매운 담배를. 안 피워서 까맣게 잊고 있던 큰아지매다.

-글쎄. 남자들이 집에 있기라도 하면… 지금 다들 안 들어왔을 텐데-

태섭이도 태광이도 담배를 태우니 권련 몇 대 빌리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지금 태섭은 집에 없고 시동생도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소향이를 잠깐 불러보세요. 마루에 있을 겁니다-

무당은 당장 문을 열어젖히고 큰소리로 소향을 부르고 대청에 광수에미와 같이 앉아있던 소향이 내려와 큰아지매의 말을 듣고 다시 마루로 돌아가자 무당은 문을 닫는다.

 

-두 사람의 사주는 이미 봤으이 볼끼 없습니더. 하지만 기운을 얻고자 하민. 그것도 아들 기운 아입니꺼? 날이 중합니더. 달이 저문 그뭄은 피해야 됩니더. 보름부터 하현달 그리고 그뭄을 다 피하시고. 상현달부터 보름까지 날을 잡으이소. 해봐야 그기 매칠 안됩니더. 한 파수 하고 그저 이틀이지예-

 

담배생각이 간절하던 차 마침 문이 덜컥 열리고 광수가 담배 한 갑을 방에 툭 던진다. 꼬부랑글씨가 요란스레 쓰여 있는 양담배다.

-아바이가 방에 감춰났던 겁니더-

대청에서 광수에미가 큰소리로 말한다.

무당은 상체를 문밖으로 빼내 고맙심더 하고 문을 닫았다.

 

허겁지겁 불을 댕기고 한 모금 깊숙이 빨아 당긴 무당은 손끝까지 전해지는 나른한 느낌에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두 눈을 감은 채 잠시 뜸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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