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는 큰아지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58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8/11 [20:17]

길 떠나는 큰아지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58화

김담 | 입력 : 2014/08/11 [20:17]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태광은 모로 누워 꿈쩍도 않는 마누라를 향해 버럭 소릴 지른다.

-불도 안 댕기고 모 하노? 방에 들어서다가 니 다리 뿔가뿌겠다-

주머니에서 성냥을 찾아 호롱불 심지에 불을 댕겨도 마누라는 요동도 않는다. 광수에미는 서방이 미워서가 아니고 이 난감한 일을 어떻게 하면 체면 깎이지 않고 풀까 목하 고민 중인 것이다. 

 

-행수가 낼 절에 간단다-

가든가 말든가? 그것은 나한데 그리 황급한 일도 아니다 하고 광수에미는 여긴다.

-한 달포 정도 있을란가 보더라-

달포? 한 달씩이나? 광수에미가 육중한 허리를 접으며 일어난다.

-당신 오늘 땅 얘기 했소?-

한심하다는 듯 마누라를 쳐다보며 태광은 대답 대신 담배를 꺼내든다.

-한 달씩이나 집을 비운다몬… 우리 땅문서라도 주고 갈끼지… 우쨌소? 말했소? 안했소?-

서방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광수에미가 다그친다.

-니가 하는 꼴 보민사… 누가 주고 싶겠노? 안 글나? 쯧쯧-

-이 양반이 지금 딴 집안 말하고 있나? 당신도 내캉 똑같은 소리 해놓고 와 내한테 난리고?-

-우짜든지 간에… 말 할라고 하는데 아아들이 우루루 들어오는 바람에 몬했다. 행님이 알아서 해주겠지-

연기를 길게 뿜으며 희망이나 하는 수밖에 없다는 표정이다.

-행님은 무신 행님! 운제 아주버님이 집안일 합디까? 안방에서 다하지!-

광수에미는 내일 아침에 떠난다는 안방주인을 어떻게 상면하여 끊은 발걸음을 잇고 또 땅문서와 고구마밭을 받아낼까 궁리를 해본다. 

 

큰집에 갔던 광수와 재수가 우루루 방으로 들어서며

-소향이 아지매가 사 무라고 돈 줬다-

-내도!-

재수도 손을 펼쳐 보인다.

 

*    *    *

 

동짓달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가 아침에 방문을 나서던 큰아지매는 싸늘한 공기가 목덜미를 때리는 것을 느끼고 도로 방안으로 들어와 덧저고리를 찾아 입고 마루로 나선다.

날이 샌 것도 얼마 되지 않지만 소향이 벌써 정기에서 소리를 내고 있고 문밖으로 흘러나오는 연기로 보아 불을 지피고 있는 모양이다.

비녀를 뽑아 입에 물고 머리를 움켜잡은 채 정기문 앞에서 소향을 보고 -날이 많이 차구나. 더운 물 좀 있나?- 하고 묻는다. 

 

소향도 실은 큰아지매의 나들이로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다시피 했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어색하고 남의 입에는 좋은 얘깃거리일 텐데, 큰아지매의 이러고저러고 하는 말과 정리정돈으로 소향의 입지도 그렇게 험하게 나뒹굴게 되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처녀 소향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여전히 수치심과 불안감이 가득하다.

-예. 안 그래도 지금 물 끼리고 있던 참입니더. 오데서 씻을 낍니꺼?-

사실 큰아지매는 거의 안방에서 놋대야를 받아들여 세면을 하는 것이 일상인데 오늘은 머리를 감을 양 비녀를 입에 물고 있어서 소향이 묻는다.

 

-뒷단에서 머리 감을란다. 물이 많나? 헹구려면 두어 번 물을 갈아야 돼서-

-물은 한 솥입니더. 목간을 해도 남을 낍니더-

소향은 서둘러 대야를 내고 김이 설설 서리는 물을 바가지로 퍼서 담은 후 뒷단으로 들어낸다.

-찬물은 옆에 났심더. 마차서 하이소-

큰아지매는 아무 말도 없이 긴 머리를 물에 적시고 또 적시고 하면서 온기를 몸으로 느낀다.

머리에서 얼굴로 그리고 목덜미로 전해져 내려오는 온기를 느끼는 큰아지매는 눈을 감은 채 막연히 지나간 세월이 얼마던가 하고 셈해본다.

 

청춘이 뭔지도 모른 채 가마 타고 타지로 온 지 벌써 십팔 년이 가깝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지금 자신은 서방의 초야를 위해 방을 비워주려 길을 떠나려 한다… 비눗물인지 눈물인지 눈이 따갑다. 그러나 이것을 그녀는 그녀의 훈장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세인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을 안다. 그래서 격을 차려 근엄하게 장식하고 사유를 최대한 공적으로 만들어 만인으로부터 무언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다.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눈을 감은 큰아지매는 소향을 불러 물을 다시 갈아달라 한다.

그리고는 또 깨끗한 물속에 자신의 종부로서의 정신과 풀어질지도 모르는 마음 속 여자로서의 가닥들을 헹구어낸다.

 

*    *    *

 

-행님. 오데 가신다민서예-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큰아지매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머리를 꼭지에 얻고 물을 짜내고 수건으로 두른 후 일어선다.

-광수아바이가 카데예. 아침에 가신다고-

어색함을 버무려대는 광수에미의 서글픈 변명이다. 소향은 정기에서 아침상을 보려 바쁘게 움직이느라 모처럼 찾아온 작은아지매와 눈길도 나누지 않았다. 

수건으로 두른 머리를 움켜잡은 큰아지매가 정기를 벗어나 대청으로 오르자 작은아지매도 따라 올라 방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큰아지매는 광수에미를 쳐다도 보지 않는다. 이참에 자신이 없는 동안 집안에 큰소리 나지 않게 하려면 아예 따끔하게 질을 들여야 한다고 여기는 큰아지매다.

 

-아침부터 무슨 일로 졸졸 따라 다니나? 자네는?-

모로 고개를 돌려 늘어뜨려진 긴 머리를 수건으로 비벼대며 말을 한마디 던지지만 눈길은 주지도 않는다.

-와 캅니꺼? 행님도… 아 오데 가신다길래 와봤심더-

마땅히 꾸며댈 거리도 없는 광수에미는 체면을 접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내가 어디를 가든 오든 갑자기 자네가 왜 그리 관심이 많나?-

싸늘한 말마디에 광수에미도 슬그머니 화가 난다.

-행님. 그카지 마이소. 지도 이집에 매누리입니더. 우째 자보다도 사람 취급을 안 합니꺼?-

소향보다 대접받지 못한다는 넋두리부터 내어 놓는다.

-집안사람? 그래 자네 말 잘했네. 집안사람이라 했지? 그러면 집안에서 일어나는 내 일을 자네는 왜 그리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저 애 머리를 휘두르고 하는가?-

모든 손동작을 멈추고 광수에미를 빤히 쳐다보면서 큰아지매는 단호히 묻는다.

 

광수에미도 열기가 얼굴에 벌겋게 올라있다.

-그기사… 지도 이 집 매누리 아입니꺼? 쿤데 아무 상의도 없이… 자를 집에 들이고-

원래부터 말을 생각보다 앞서서 하는 광수에미라 대꾸를 하다 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꼬리를 감추어버린다.

-뭐? 상의? 집에 들여?-

큰아지매는 그리고는 말이 없다. 그저 광수에미를 뚫어지라 쳐다본다. 오히려 눈길을 받는 광수에미가 따가움에 고개를 돌릴 지경이다. 

-자네. 광수나 재수 가질 때 나한테 상의하고 가졌나?-

나직하게 묻는다.

이 무슨 엉뚱한 소린가? 광수에미는 그러나 금방 알아챈다.

-그기 아이고예… 케도 이기 집안일 아입니꺼? -

눈을 위로 뜨고 항변을 하지만 먹힐 리가 없는 힘없는 말이다.

 

-집안일? 이 집안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줄 모르나? 내가 종부야! 자네가 아니고! 언제부터 내가 자네한테 집안일 상의해서 했나? 그리고 자네가 저 아이를 해하기라도 했으면 내 일이 얼마나 크게 차질이 있을 줄 아는가? 사람이 어른이 됐으면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지 욕심이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 건가? 내 두 번 다시 말 안 하겠네. 똑똑히 듣게나. 저 아이는 출산만 하면 갈 아이네. 그것이 내일이고 이 집안일이야. 부처님과 조상님이 도와서 아들이 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오늘 절에 가서 한 달 정도 공을 들이고 올참이네. 행여라도 집안에서 해가 되거나 큰소리 나는 일 없도록 자네도 출입을 삼가게- 

아니? 집안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말인가? 어이가 없는 광수에미다.

-행님? 그기 말이 됩니꺼? 출입을 삼가 하라니요?-

-이미 자네는 스스로 한 달이 넘게 출입을 삼가지 않았나? 뭐가 그리 놀랄 일인가?-

참빗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며 빗살에 묻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훑어내는 큰아지매는 온몸에서 냉기가 흐른다. 얼굴이 벌건 광수에미지만 스스로 한 달이 넘게 출입을 삼갔다는 말에 입이 딱 봉해져 버린다.

 

*    *    *

 

한참을 씩씩대는 광수에미도 생각해보면 자기가 나서서 설쳐댈 일이 아니었음을 안다. 또 걸려있는 땅 문제도 순조롭게 문서를 건네받으려면 저 문딩이한테 밉보여서 득 될 일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한숨을 몰래 크게 내쉰 후 화를 삭인다. 

-행님. 잘 댕기 오이소. 여는 지가 알아서 할 낍니더-

방향 없이 젓는 노는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저어도 탓할 사람이 없는 법. 지금 광수에미의 내놓는 말들이 그리고 지난 행동들이 딱 그 짝이다.

-집안일은 소향이가 알아서 할 것이네. 자네는 관여하지 말게-

-우짜든지 잘 댕기 오이소. 쿤데… 오데 가십니꺼?-

방바닥을 짚고 있던 손바닥을 당겨 큰 엉덩이를 한치 앞으로 옮기며 금방 화색을 띤 얼굴을 하는 광수에미다.

그러나 큰아지매는 대답도 없이 머리를 틀어 올린다. 

 

-큰아지매요. 상을 오데로 들일까예?-

마루 끝에서 묻는 소향의 소리를 들은 큰아지매는 아침 나들이를 같이 갈 내외의 상을 묻는 뜻인 줄 안다. 광수에미는 버럭 안방문을 열어젖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향에게 심지어 미소까지 지어대며 한마디 거든다.

-내도 묵자. 밥 있나?-

-영감하고 한상으로 안방에 가져 온나-

큰아지매의 예외의 말이다. 그동안 겸상을 하는 것을 거의 본적 없는 소향이지만 오늘 아침은 다르다는 것이렷다.

-그래 안방상은 안에 들룻코 니캉 내캉은 정기에서 묵자- 하고 치마를 펄럭거리며 마루로 광수에미가 나서는 꼴이 그저 푼수없는 그 모습이다.

 

*    *    *

 

미군 지프차에 양철판을 올려붙인 차를 어디서 구했는지 태섭이 불러왔다. 대승사까지는 길이 꽤 멀뿐만 아니라 험하기도 하다.

일제 시대 산에 있는 쓸 만한 나무는 모조리 공출해갔고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들마저 산감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땔감으로 잘라버려 원래 깊은 산이었던 산북골짜기가 훤한 채로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다. 

계곡에 흐르는 물길 옆에 산판에 사용했던 길이 남아있는 게 다행히도 오늘 큰아지매의 발길을 덜 피곤하게 한다. 말이 차지 소달구지나 다름없다. 돌부리에 걸려 차가 흔들릴 때마다 오장육부가 다 울렁거리고 속도가 느린지라 바퀴에서 일어나는 흙먼지도 같이 따라오며 괴롭힌다. 같이 타고 가는 태섭도 아무 말이 없고 큰아지매도 아무 말이 없다.

 

운전수라는 자가 연신 고개를 빼내어 창밖의 돌이나 길을 염탐하고 계곡 쪽을 경계하며 운전을 하지만 타고 가는 사람들 모두가 같이 마음을 졸인다. 

-회장님. 쪼매만 더 가몬 더는 몬갈 낍니더. 이카다가는 지도 차도 절단나지 싶은데예. 길이… 말이 길이지… 운제적 길입니꺼? 왜놈들이 나무 실어낸다꼬 맨들어논 지가 벌써 이십 년도 더 됐지예?-

태섭도 알만하다는 표정이다. 옆에 앉은 마누라를 쳐다본다.

-우짜지? 아즉 갈 길이 먼데… 인제 겨우 산북 면사무소 지냈구만-

한 손으로 차체의 한 귀퉁이를 꼭 잡은 채 창밖만 쳐다보던 마누라도 아무 말이 없다.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영감은 이차 타고 그만 돌아가시지요. 여기서 쯤은 혼자 걸어갈 만할 겁니다-

-뭐라 카노? 지금?-

눈을 휘둘러대며 태섭은 돌아가라는 마누라의 말을 나무란다.

-보소! 운전수 양반. 여서 대승사가 울매나 되노?-

끌끌거리던 차가 기어이 무슨 흰 연기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운전수가 당황한 듯 태섭의 말은 뒷전으로 여기고 차를 세운 후 밖으로 나가서 차를 훑어보고 태섭도 큰아지매도 같이 차에서 내렸다. 

-내 이칼 줄 알았는데-

양손을 허리춤에 대고 허공을 보며 한탄하는 운전수에게 태섭은 묻는다.

-차가 우째 됐는교?-

차체 위로 솟구쳐대는 흰 김을 손으로 휘저어대며 운전수는

-차가 열 받았심더. 길이 험해노이께네. 무리한 기지예. 아무케도 한참은 쉬야 돌아갈 수 있을 낍니더. 지는 여 있다가 가야 됩니더. 미안합니더- 

태섭도 큰아지매도 이제는 별 수 없이 발길에 의존할 수밖에.

-됐소. 고생했소. 우리는 여서 갈낀데. 울매나 됩니꺼? 대승사까지는?-

사실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절이다.

-울매 안 남았심더. 케바야 십리 길일 겁니더-

대수롭게 대답하는 운전수다.

 

*    *    *

 

비록 나무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산세는 수려한 소백산맥의 준령이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아울러 품어내는 산줄기가 이곳 문경에 이르면 위로는 조령을 만들어 새도 쉬어갈 수 있게 하늘에 맞닿게 했고 그 옆으로는 영주와 풍기로 이어지는 죽령 아흔아홉 고개를 만들어 공기도 물도 심지어 사람들의 발걸음의 흐름도 느리게 한다. 대승사는 그 한 골짜기의 공덕산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김천의 직지사를 관장하던 절이었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오히려 직지사의 관장을 받는 절로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절의 위상으로는 인근에서 손꼽히는 절이다.

 

찻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던가 마침 이정표가 나타난다. 희미하게 남은 페인트 글씨가 대승사라고 적혀있다. 거기서부터는 비탈길이다. 여전히 두 사람의 걸음은 침묵일관이다. 태섭은 신고 온 구두가 온통 흙먼지로 덥힌 걸 보고 말없이 걷는 마누라의 발을 훔쳐본다. 흰 코고무신을 신은 마누라의 발도 온통 뿌옇다. 더욱이 버선이 누런 흙으로 덥혀있다.

 

-당신 괜찮소?-

침묵이 어렵게 느껴져서인지 태섭이 말문을 연다.

-어차피 힘든 길입니다. 쉬운 길이라서 온 것이 아니니 어렵다고 할 수는 없지요-

무슨 염불 같은 소린고? 평소에 마누라하고 나누는 말이라곤 온통 살아가는 말들뿐이어서 이런 선문선답 같은 말에 태섭은 속으로 저으기 당황한다.

-글쎄… 케도… 길이 멀고 험해서리… 하는 말 아인교?-

무어라 자신도 같이 내놓을만한 염불이 없는 차라 그저 아무 말로나 떼워버린다.

 

-우리가 십팔 년을 같이 걸어왔습디다. 오늘 아침에 세보니-

머리 감으면서 셈을 해본 기억을 가지고 큰아지매는 말한다.

-저는 불공을 잘 들일 겁니다. 그래서 아들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집안도 똑바로 설 것이고. 또 영감도 종손으로서 집안의 기강을 제대로 세울 것이라 믿습니다-

돌길인데도 발길에 차이는 돌도 보지 않고 결연히 말을 하면서 앞만 응시하는 마누라를 보고 태섭은 속으로 무슨 부처를 보는 것처럼 느낀다.

-내 다 알고 있소-

뭘 안다는지는 필요 없다. 그저 안다고 안심시켜서 마누라의 입에서 천근같은 말이 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태섭이다.

 

-영감이 언젠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무슨 의원인가… 하는 선거를 한다고. 어떻게 되갑니까?-

여간해서 자신의 바깥일을 묻지 않는 마누라인데 의외의 질문이다. 하지만 태섭은 이것은 달가운 질문이라 생각하며

-아! 내 안 그래도-

오르막 걸음에 숨이 턱에 차오르는 것을 누르느라 말이 잠시 끊어지는 태섭이다.

-선거라는기… 온통 사람들하고 만나는 일인기라. 우리 지역의 모든 사대부들을 다 알아서 내기 이롭구로 해야 되고. 또 그카자이께네. 돈도 상당히 마이 드네-

 

나무도 없는 산인데도 아직 절의 꼭대기도 보이지 않는다. 태섭은 옆에서 걸어 올라가는 마누라가 숨을 쉬는지 의심스럽다. 자신은 헉헉 대는데 어쩐 일인지 마누라는 숨결도 없는지 이상할 뿐이다. 

-당신이 알아서 하시겠지만 모든 것을 집안을 생각해서 하시도록 하세요. 그러자면 하는 말마디도 걷는 발걸음 하나도 조심해서 해야 할 겁니다. 제가 지금 절에 가는 이 심정을 영감은 알고 계시겠지요?-

태섭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도 초겨울 누런 떡잎 서너 개만 덩그러니 달려있어 산을 휘감아 불어대는 바람에 사납게 흔들린다. 고지가 태봉보다도 한참은 높고 또 산중이 그런지 늦은 상달에 부는 바람이 상당히 차가울 테지만 걸음을 재촉하는 부부에게는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기에 오히려 다행이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