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증명서에 입양아 출생기록 없애나

입양인의 알 권리 vs 비혼모의 사생활 보호 논쟁

나랑 | 기사입력 2014/08/25 [14:29]

가족관계증명서에 입양아 출생기록 없애나

입양인의 알 권리 vs 비혼모의 사생활 보호 논쟁

나랑 | 입력 : 2014/08/25 [14:29]

입양 보낸 아이 이름이 내 가족관계증명서에?

 

<스무 살 비혼모 선미씨는 아이를 낳기 전 입양을 결정했다. 결혼 안 한 딸이 아이 낳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입양을 보내지 않으면 인연을 끊겠다는 부모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아이의 출생신고 서류를 가정법원에 내고 입양 허가를 받은 후, 입양을 보냈다.

 

몇 년 후, 선미씨는 새로 사귄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직장에 보육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은 선미씨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증명서에는 입양 보낸 아이 정보가 적혀있었다. 선미씨는 입양기관에 바로 전화를 했고 입양기관에서는 아이가 얼마 전 파양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이가 파양되면 다시 친생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아이의 존재가 기록된다는 것이다.

 

선미씨는 항의를 하러 동사무소에 갔다가, 가족관계증명서에서 본인이 필요로 하는 사항만 표기되는 ‘일부사항증명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 후 낳은 아이와의 관계만이 표기된 일부사항증명서를 발급받아 직장에 제출했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뭔가 꺼림칙하다며 전부를 증명할 수 있게 다시 떼어오라고 했다. 입양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던 선미씨는 남편이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직장에도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위 사례는 입양특례법이 제정된 이후, 아이를 입양 보낸 생모가 처할 수 있는 상황을 가상으로 구성해본 것이다.

 

불필요한 정보까지 드러나는 ‘가족관계등록법’이 문제

 

작년 8월부터 시행된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 보내기를 원하는 비혼모는 가정법원에 아이의 출생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입양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전에는 입양 후 양부모의 친자녀인 것처럼 허위로 출생신고를 하거나, 마치 부모를 알 수 없는 아이처럼 ‘기아’(棄兒.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로 위장하여 입양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입양 아동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 권리’를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입양특례법이 제정되었다.

 

일각에서는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입양특례법에서 의무화한 출생신고를 하면 비혼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혼인 외 자녀의 출생 기록이 남게 된다. 이 때문에 비혼모의 인권이 침해되고, 정식 입양을 부담스러워하는 비혼모들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몰래 ‘베이비박스’에 유기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양특례법이 아닌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혼모가 출생신고를 하면 아이가 입양될 때까지 비혼모의 신분증명서에 아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입양이 되면 이 기록은 사라지지만, 만약 입양이 계속 안 되거나 입양되었다가 파양되는 경우, 이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기록 자체가 아니라,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본인이 원치 않아도 이 사실이 전부 노출된다는 것이다. 선미씨처럼 보육수당을 신청하는 경우, 현재 낳은 아이와의 관계만 입증하면 될 증명서에 불필요하게 입양 보낸 아이의 이름까지 기재되는 것이다.

 

또한 입양인이 성인이 되면 발급받을 수 있는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에는 친생부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다. 입양인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만, 친생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입양 보낸 아이가 언제 자신을 찾아올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원하는 경우, 아이 출생기록 차단할 수 있게

 

2008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가족관계등록법으로 인해 원치 않는 정보가 노출되는 경우는 비혼모 만이 아니다. 본인이 입양 되었거나 입양되었다가 파양된 경우에도 그 사실이 기재된다. 본인의 이혼 사실은 물론이고, 부모가 이혼한 경우나 혼인 외 자녀로 태어난 경우에도 신분증명서에 그 사실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과도한 정보 노출로 인한 인권 침해에 대해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2009년부터 필요한 사항만 드러나도록 하는 ‘일부사항 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부사항 증명서’를 불완전한 것으로 여기며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관행 때문에 정착될 수 없었다.

 

▲  8월 18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주최한 ‘미혼모 인식개선을 위한 포럼’.  법무부의 가족관계등록법 개정 의견이 발표된 이 자리에는 입양인 당사자들도 참석하였다.   © 일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작년 11월, 국회에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 8월 18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주최한 ‘미혼모 인식개선을 위한 포럼’에서는 9월 국회 논의를 앞두고 법률 개정안을 준비 중인 법무부 측의 개정 방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법무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위원회 김상용(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위원장은 “증명서에는 증명을 필요로 하는 사항만 드러나면 되는데 불필요한 것,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드러나는 것이 문제”라며 크게 두 가지의 법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신분증명서를 ‘일반 증명서’와 ‘상세 증명서’로 구분하는 것이다. ‘일반 증명서’는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하여 증명을 필요로 하는 사항만 나타나도록 하는 증명서이며, ‘상세 증명서’는 모든 사항이 다 나타나는 증명서이다. ‘일반’이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상세 증명서를 예외적인 경우로 규정하도록 하며, 특정한 목적이 없는 한 상세 증명서 제출을 요구할 수 없다는 별도의 규정을 만들었다. 또한 상세증명서를 임의로 발급하거나 요청하는 경우 처벌을 받도록 하는 벌칙 조항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입양을 원하는 친생부모의 신청이 있는 경우, 아이 출생에 관한 기록을 차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아이가 입양되지 않거나 파양된다고 하더라도 친생부모의 신분증명서에 아이에 관한 기록이 남지 않는다. 또한 입양인의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에도 친생부모의 정보가 표시되지 않는다.

 

입양인의 ‘출생에 대해 알 권리’는 훼손될 것

 

그러나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해외입양인(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입양인)들 사이에서는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에 친생부모의 정보를 남기지 않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개정 의견대로 법이 개정되면 친생모가 출생기록을 차단하는 경우, 입양인이 친생부모의 정보를 알거나 친생부모를 만날 수 있는 경로 또한 차단된다. 비혼모의 인권은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입양인으로서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 권리’가 훼손되는 것이다.

 

한 입양인은 법무부가 이 개정 의견을 만들어오는 과정에서 주로 어떤 사람들과 의견을 교류했는지 물으며, 개정위원회에서 “입양인들이나 미혼모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자리를 갖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친생모가 차단을 한번 신청하면 그 효력이 영구히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갱신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서, 친생모가 입양인을 만나는 것을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입양인은 “이대로 하면 미혼모의 익명성을 보호하는 시스템은 강력해지겠지만 입양인의 알 권리는 보장되지 못한다. 입양인과 친모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안이 아닌가.” 라고 물었다.

 

이에 김상용 위원장은 “양자의 요구를 다 만족시킬 수는 있는 법안은 없다. 미혼모의 입장에서 자신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드러나면 출생신고 자체를 안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기록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면서 이 개정의견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나 차악은 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비혼모의 권리와 입양인의 권리 모두 충족되려면

 

개인의 정보를 과도하게 노출시키는 현재의 가족관계등록법은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무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위원회 측은 이 개정 의견대로 법이 개정된다면, 비혼모가 자신의 출산 사실이 평생 자신에게 낙인이 될까봐 불안해하거나, 입양 절차를 피하기 위해 아이를 유기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웃고 있지만 사실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한 입양인의 말은 이 개정 의견처럼 단지 ‘입양이 잘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넘어서 미혼모와 아이가 분리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를 혼자 낳아 기를 때 처하게 되는 경제적인 문제, 양육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 비혼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선택을 하기 힘든 사회적 조건을 돌아보아야 한다.

 

“출산하고 입양절차를 밟고 있었던 당시에요. 어떻게 하다가 상담을 받게 된 거에요. 이런 저런 게 있고 아이를 키울 길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셔서 생각을 바꾸게 된 거죠. 키우고 싶었는데 안 돼서 포기를 했다가 다시 하게 된 거예요.” (언니네크워크+가족구성권연구모임, <비정상가족들의 비범한 미래기획>)

 

상담사에게 ‘아이를 키울 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입양 계획을 철회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는 한 비혼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입양을 둘러싼 문제는 비혼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지 않고 결혼제도 속에서의 출산만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사라져야만 엄마와 아기가 이산(離散)의 고통을 겪는 일이 줄어들 것이고, 입양인이 친생부모를 알 수 있는 권리 또한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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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 2014/09/01 [15:15] 수정 | 삭제
  • 양쪽 입장이 다 이해가 가서 참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 thus 2014/08/25 [22:21] 수정 | 삭제
  • 개인정보 알아내서 사생활침해가 다반사니까 감춰야만 되는 것도 많아지고..
  • thus 2014/08/25 [21:55] 수정 | 삭제
  • 남의 사생활 정보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갖는 한국사회라서 더 힘든 문제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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