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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불거져 나온 돌더미며 움푹 패인 땅 때문에 제무시 트럭은 사정없이 널뛰면서 달리지만 속도라고 해야 그저 사람 걸음걸이보다 조금 빠른 정도다. 지난번에 타고 간 차가 중간에서 흰 연기를 풀풀 뿜어대는 바람에 한 마장은 더 걸어야 했던 것을 생각해서 이번에는 그래도 조금 더 나은 차를 수소문한 태섭이다. 물론 지프차라도 빌릴 수 있겠지만 험하디 험한 산길은 그래도 산판에도 다닐 수 있는 제무시가 더 제격이라 생각한 것이다.
-인제는 한겨울이라 한낮에도 따신 기운이라고는 없구만- 태섭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운전수는 운전에 정신이 팔려서 아무 말도 없지만 태섭이나 마누라는 내외지간이고 또 한 달이나 떨어져 있었어도 나누는 말없이 서로 다른 방향의 차창만 보고 있다. 운전수가 남자라 태섭은 마누라를 차창에 앉히고 자신이 둘의 중간에 앉아서 가는지라 차가 흔들릴 때마다 잡을만한 손잡이가 없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태섭은 침묵으로 일관되는 내외지간이 운전수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다.
-자는 데는 안 추벗소?- 차창 밖만 내다보는 마누라를 향해 무언가 말을 해야겠기에 태섭은 나오는 대로 한마디 던진다. 마누라는 빠르지도 않게 고개를 돌려 태섭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창 쪽으로 향한 후 한 뜸을 더 들인 후 입을 연다. -지내는 데는 아무 불편도 없었답니다- 방이 춥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예 이것저것 다 합쳐서 불편하지 않았다는 마누라의 말에 태섭도 더 묻지 말라는 의도를 알아차린다. 서마지기 논문서를 주지에게 건네려했을 때 마누라가 자신이 대웅전에 불공을 드릴 때 올리라고 한 것이 마누라가 한 오늘의 첫 번째 말이고, 이번이 두 번째다. 본시 말수가 적은 것은 안다고 쳐도 정말 지나친다고 태섭은 느끼며 쓴 입맛을 다신다.
산북면사무소 앞을 지나자 제무시는 그래도 속도를 내고 또 점촌을 거의 다 왔을 쯤에는 제법 긴 흙먼지꼬리를 달고 달리는 바람에 태봉까지 도착을 했어도 아직 짧은 겨울해가 한참은 남아있다. -운전수 양반, 욕봤소. 김주사한테 고맙다고 말이나 꼭 전해주시구려- 태섭이 운전수에게 인사말을 남기고 돌아섰을 때 마누라는 벌써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큰아지매의 눈에는 이십년을 넘게 산 집이 낯설게 보였다. 늘 대청에서서 밖을 내다보는 시선에 익숙한 큰아지매의 눈에 대문간에서 바라보는 집의 광경은 비로소 자신이 한참을 떠나있던 사람이란 것을 인식시킨다. 그리고 정기문 앞에 서있는 소향이 눈에 띄고 마당을 걸어 나오는 광수에미가 눈에 보인다.
-오시니라 고생하싯지예- 집에 발걸음도 하지 말라고 남긴 말은 광수에미의 기억에는 아예 없다. 큰아지매는 마당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추고 돌계단을 그리고 대청을 다음은 기와지붕으로 시선을 옮기며 천천히 내 집에 온 것을 확인하는 사이에 광수에미가 큰아지매의 손에 들린 보자기를 슬며시 뺏어든다. 소향은 몇 걸음 봉당을 걸어 돌계단 위에 서서 그저 양손을 치마폭에 감싼 채 고개만 수그리고 말이 없다. 계단을 오르면서 비로소 큰아지매가 입을 연다. -소향아 물 한 그릇 다오- 소향은 아무 말도 없이 화들짝 정기로 들어가고 광수에미는 보따리를 마루에 놓고 걸터앉으며 -행님요, 을쑤이가 아아를 가짔답니더- 묻지도 않은 말로 인사치레를 한다. 대청에 막 오른 큰아지매가 방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광수에미를 돌아보고 -누구?- 하고 묻는다. -아! 와 가 안있습니꺼! 창호네 모지란 아 말입니더- 을순이라는 말을 못 들은 큰아지매가 아니지만 되물어본 것인데 역시 그 을순이다.
소향이 흰 사발에 찰랑거릴 정도로 물을 받쳐 들고 마루 끝에 왔다. -그애가 어떻게?- 양 눈가가 가늘게 늘어나는 모습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뜻이다. -누가 압니꺼? 동네에 말이 많십니더 지금!- 한쪽 다리를 아예 마루에 올리고 무슨 말판이라도 펴볼 기세다. 그 모양을 본 큰아지매가 말을 섞기 싫다는 듯 소향의 물사발을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방안은 그대로다. 아니 전보다도 더 정결하게 보인다. 자기가 온다고 걸레질을 말끔히 해놓은 것이다. 아랫목에 깔려있는 이불속으로 손을 넣으며 온기를 확인하고 앉는다. -소향아 불 좀 빼고 미지근하게 지파라. 아직 한참은 더 고아야 될끼다- 광수에미의 목소리가 여전히 대청에서 들리는 것으로 봐서 아직 거기에 앉아있는 모양이다. 절로 떠나기 전에 모멸 차게 남긴 말 때문에 선뜻 호들갑을 떨며 방문을 열어젖히지 못하는 광수에미의 입장을 큰아지매는 알만하다.
-자네 좀 들어오게나- 어차피 외면하고 살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쯤이면 알만큼 알았을 터이고 또 방금 전에 소향에게 하는 말투로 보아서 그동안 자신이 없는 동안 필시 관계가 용이해진 것이 분명하다. 큰아지매가 들어오라는 말에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육중한 엉덩이가 문 서리에 부딪힌다. -아야! 아파라- 치마 위를 슬슬 문지르며 주저앉아 또 묻지도 않는 말을 시작한다. -거지떼라 합디더. 가둬놔도 언간히 댕기야지예. 지 맘대로 나도는 아라서 오데서 무신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압니꺼?- 을순이 얘기가 계속되고 있다. -배가 수훌찮게 부른 기 벌써 서너 달은 됐을끼라 합니더- 큰아지매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주절거리며 눈치 없이 입만 놀리는 광수에미에게 -그동안 별 일 없었나?- 하고 집안 안부를 묻는다. -예, 뭐… 가을걷이 다 했으이. 밸일 있을 끼 있습니꺼?- 눈을 치켜뜨고 하는 말투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하다. 그리고 또다시 계속되는 광수에미의 말이다. -맺달 전에… 와 요 앞산 모퉁이 안있습니꺼? 그서 을쑤이하고 거지들하고 같이 있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다 캅디더- 보았다거니 있었다느니 하는 말의 일색이다. -울 마을사람은 아인기 확실합니더. 누가 가한테 그카겠심니꺼? 지 정신도 아인 아를- 한참을 주절거려도 큰아지매가 아무 반응도 질문이 없자 비로소 광수에미가 눈치를 챈 듯이 말을 끊는다.
-내 없는 사이 누구 손님이라도 오시지 않았나?- -손님예? 언지예. 아무도 안 오싰는데… 울매 전에 종가분들이 술 한잔 한다꼬 오싰는 거뿐입니더.- -종가분들이? 누구? 그리고 왜?- -누구긴 누굽니꺼? 신흥에 필수아재하고 재 넘어 그… 맨날 갓 쓰고 댕기는 나 많은 조카 안있습니꺼? 그리고 동네사람들하고… 마이 왔지예. 농사 끝났다꼬- 늘 해마다 농사가 끝나고 나면 있는 자리이다. 비록 종친들이라고는 해도 그래도 누구라도 땅 한 마지기라도 더 얻어 농사짓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런 자리를 빌어 태섭의 눈에 들려고 하고 또 태섭으로서도 하고자 하는 말을 나누는 자리이다. 하지만 실상 누가 얼마만큼의 농사를 짓고 또 어느 땅을 부치는지는 태섭은 모른다. 안방마님의 관장 하에 있는 사실이다.
-부엌에는 뭐가 끓고 있나? 아까 소향이보고 불 조절하라고 시키던데?- 큰아지매의 코끝에 닿는 냄새가 분명 누린내가 분명한 육고기다. -예, 아주버님이 어제 양지하고 소다리를 사왔심더. 행님이 절에서 육고기를 못 잡샀을 끼라고 오늘 고우라고 해서예- 자신을 데리려 태섭이 절간에 나타났을 때 얼굴을 보자마자 불끈 이유 없이 미운마음부터 들었었다. 그렇게 불상 앞에서 마음을 다듬고 대의를 위한 정성을 바쳤음에도 태섭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큰아지매의 속내는 순간 여느 아낙의 질투심이 표출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순간이 지나고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집으로 오는 내내 얼굴을 보기 싫었다. 그런 영감이 자신을 위해 양지고기를 사서 보신을 생각했다는 것이 우습다. 아마도 딴계집을 품었다는 미안한 마음이겠지…. -잘됐네. 마침 겨울도 됐겠다. 온 집안 식구들 나눠먹게 돼서- 이런저런 광수에미의 눈치를 모로 살펴대지만 큰아지매가 기대하는 수다는 나오지 않는다. 실망감이 큰아지매의 기운을 뺀다. 하긴… 광수도 동서가 시집온 지 이태나 지나서 태어나지 않았는가? 겨우 자신이 집을 비운 것이 달포쯤 됐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 을순이라는 아이는 원하지도 않는 아이를 가졌단 말인가?
-근데, 아까 자네가 한 말 말일세- 주위를 환기시키는 듯 광수에미에게 말꼬리를 넘긴다. -뭐예?- -을순이 말일세- 벽을 사이에 둔 정기칸에서는 가끔씩 무거운 가마솥뚜껑이 미끄러져 여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예! 뭐예?- 을순이라는 큰아지매의 말에 광수에미는 신이라도 난 듯 엉덩이를 한 발짝 끌어당겨 앉으며 이불속으로 손바닥을 들인다. -아이를 가진 게 틀림없다던가?- -카모예! 창호어마이가 벗기가 봤다 캅디더. 첨에는 샘에 있는 아아를 동네여자들이 이상하다 싶어서 창호어마이한테 말했디만 창호어마이가 첨에는 펄펄 뜄지예. 그라고 나서 지도 이상하다 싶어서 아아를 옷을 벗기가 보이께네 그렇다 캅디더. 첨에는 못 먹어서 부른 헛밴가 싶었지만… 생각해보이 가가 달것이 안보인 기 벌써 몇 달째 됐다 캅디더- 입가에 침이 허옇게 묻어날 정도로 신명나게 늘어놓는 광수에미를 물끄러미 보면서 큰아지매는 참, 세상은 공평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지도 모르고… 동네에 별일이네 그려- 탄식조의 큰아지매 말이다. -아, 거지떼 말고는 그칼 인간이 오데 있습니꺼? 그나저나 창호아바이 오민 난리 날낍니더. 누가 죽던지 살던지- -그 사람은 요새도 객지에 있나?- -지난 추석 후에 잠깐 왔다가 또 안갔습니꺼?- -그랬나? 내가 영감한테 그 사람 일거리라도 주라고 했었는데- -행님도 참! 아! 농사거리도 봄이 되야 하지예. 엄동에 묵고 살라민사 객지에서라도 돈을 벌어야지 별수 있습니꺼?- 문득 두서없이 한 말이 광수에미의 귀에 같잖게 들린 것이 우스운 큰아지매는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그렇네. 자네 말이 맞네- 하고는 광수에미를 치켜 준다.
-작은아지매요. 나와 보이소. 됐지 싶은데예- 소향의 목소리다. -오이야, 내 나간다!- 방바닥을 두 손으로 짚어대며 함지박만한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는 광수에미를 보며 큰아지매는 한결 마음을 놓는다. 둘이 주고받는 말투가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으로 들려서이다.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는 덜컥 아이가 들어서고 온갖 정성을 들이고 천지신명에게 조아리는 사람에게는 야박한 하늘의 조화가 밉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큰아지매는 다음 걱정이 앞선다. 자신이 안방에 있는 한 소향이 건넌방 출입을 자유롭게 할리도 없고 또 한다 한들 그 사이에 놓인 자신의 꼴이 뭐란 말인가? 비록 집안을 위해 벌리는 일이라 해도 아까 영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떠오른 미운 감정처럼 또 그런 마음이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은 부족한 정성으로 나타날 것이고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한다?
자신을 내려준 영감은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어디론가 간 것이 분명하다. 인기척도 없고 기침소리도 없는 것이 소향이와 마누라의 틈새에서 한 공간에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일 테지… 먼지 한 톨 없이 닦아놓은 문갑이며 장롱을 보며 큰아지매는 분명 소향이 자신을 위해 꼼꼼히 한 것이라 생각 든다. 아까 정기 문간에 서있던 소향이 무슨 죄지은 사람마냥 두 손을 치마로 감싼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지만 실상 소향을 본 자신의 눈은 영감을 본 그 마음과는 영 딴판이었다. 왜 달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향에게는 전혀 밉거나 해로운 감정이 없었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행님예, 우짜까예? 저녁때는 됐는데 아주버님이 안계신데. 우리꺼정 무울까예?- 영감 말이 광수에미 입에서 나오자 큰아지매의 입가가 우그려지며 밉상으로 나타난다. -없는 사람 기다릴 거 뭐있나? 우리라도 먹지. 그런데 광수하고 재수는 안보이네?- -집에 있습니더- -그럼 아이들하고 겸상으로 해주게. 오랜만에 보는데 같이 저녁이라도 먹게- 그렇게 말한 큰아지매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을 고친다. -동서! 그러지 말고 전부 안방에서 먹도록 상을 보게 소향이도 같이- -예, 그카지예.-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 광수에미는 한참 후에 큰 상을 거침없이 들고 소향이 열어준 방문으로 들어선다. 상위에는 김이 설설 서리는 국그릇이 여러 개 놓여있고 김장김치가 뽀얀 사기접시에 보기 좋게 올려져있다. -소향아, 니 우리 아아들 좀 불러온나. 집에 갈 거 없이 그냥 담 너머로 부리몬 된데이- 연이어 우루루 아이들이 들어서서 오랜만에 만나는 큰아지매한테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사발 속을 휘저어대며 고깃점을 찾아댄다.
-소향아! 너는 왜 안 들어오냐?- 숟가락을 들고 국을 뜨려다가 문득 한 자리가 빈 것을 보고 정기를 향해 큰아지매가 큰소리로 말한다. -지는 여서 무민 됩니더- 안방에서 큰아지매하고 같이 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소향으로서는 밥알이 곤두설 불편을 겪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러지 말고 들어온나. 한식구라 생각하고 살아야지 그렇게 하면 다 불편해진다. 빨리 들어와라- 광수에미는 아이들 밥숟가락 위에 올려줄 김치를 양손으로 째다가 큰아지매의 한식구라는 말에 손동작을 멈추고 큰아지매를 쳐다본다. 큰아지매도 그 눈길을 눈치 챘지만 못 본 채 그냥 숟가락을 입으로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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