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블럭의 한 곡 들여다보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블럭(bluc)님은 음악평론가이자 음악웹진 “웨이브”(weiv)의 운영진입니다. [편집자 주]
평소에는 무심히 듣던 곡이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때릴 때가 있다. 그 뜻을 예전엔 잘 몰랐던 걸까, 늘 듣던 음악인데 갑자기 가사가 들리고 눈물이 난다. 음악을 듣다 울게 된 것도 참 오랜만이다. 익숙함이 낯설게 다가오는 그 순간을 경험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그리고 이 곡은 잊고 있던 예민함을 상기시켰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을 설명할 때 ‘익숙함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어쩌면 오늘 이야기할 ‘죽음’이라는 것 역시, 익숙함과 낯선 느낌의 경계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를 울린 그 곡은 한승석, 정재일의 앨범 [바리abandoned]에 수록된 “아마, 아마, 메로 아마 II”이다.
소리꾼 한승석과 음악가 정재일이 만나
[바리abandoned]라는 앨범은 올해 6월에 한승석, 정재일 두 사람이 발표한 앨범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사람을 아는 건 아니지만, 소리꾼 한승석과 음악가 정재일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는 뛰어난 기량으로 크게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로 있는 한승석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사물놀이에서 상쇠를 맡았다. 이후 안숙선 명창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 수궁가, 심청가, 홍보가, 적벽가)을 완창하였다. 그는 사물놀이로 시작하여 판소리까지 접하는 과정에서, 민요와 같은 다른 가락이나 악기도 익혔다고 한다.
정재일은 음악계에서 천재로 통한다. 어릴 때부터 밴드 ‘긱스’의 멤버로 활동하며 음악을 시작한 그는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은 물론, 국악을 포함한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이해하고 만들어낸다. 영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도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작법이나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별로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은 ‘푸리’라는 퓨전밴드에서 인연을 맺고 의기투합하였다. 그래서 등장한 앨범이 [바리abandoned]다.
앨범은 제목에서도 암시되어있듯이 바리공주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왕이 딸만 일곱 번째 낳게 되자 막내딸을 버린다. 이를 어느 노부부가 구하여 기른다. 이후 왕이 병에 걸려 서천꽃밭(저승)에 피는 꽃만이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바리공주가 그 꽃을 찾으러 힘겨운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에는 검은 빨래를 흰 빨래로 만들어야 하는 등 많은 과제와 고난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까지가 이야기 전부는 아니지만, 앨범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 정도만 알아도 도움이 된다. 앨범은 바리공주의 정서를 담고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심정, 그럼에도 부모를 구하러 가는 넓은 마음, 이승과 저승 사이의 거리감을 모티브 삼아 몇몇 이야기를 풀어낸다.
“빨래 I”, “빨래 II”, “빨래 III”에서는 바리의 고된 시련 속에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바리아라리”에서는 한의 정서를 절절히 풀어낸다. 그 중에는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아마, 아마, 메로 아마 I”, “아마, 아마, 메로 아마 II”가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 난민에 관한 “건너가는 아이들” 같은 내용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1992년에 나는 죽었다…“아마, 아마, 메로 아마”
이제 본격적으로 “아마, 아마, 메로 아마 II”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그 전에, “아마, 아마, 메로 아마 I”은 짧은 나레이션이 담겨 있는 곡이다. 여기 그 전문을 써본다.
“나는 노동자다 / 네팔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다 / 아니, 나는 노동자였다 / 1992년에 나는 죽었다 / 나는 지금 두 달 넘게 냉동고 안에 누워있다 / 몸이 차갑다 / 엄마가 보고 싶다 /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립다 / 내 시신이나마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을까?”
이미 짐작했겠지만, “아마, 아마, 메로 아마 II”는 1992년에 있었던 일을 담아냈다. 그 해 네팔에서 마덥 쿠워라는 젊은이가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 당시에는 이주노동자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였다. 대학생이던 그는 한국으로 이주노동을 왔지만, 5개월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두 달 넘게 냉동고에 있었고, 결국 가족 없이 장례가 치러진 뒤 뼛가루만이 네팔로 갔다. 불법체류 상태였던 그의 시신은 바로 네팔에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곡은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아들과, 찾아가고 싶지만 찾아갈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담았다. ‘아마, 아마, 메로 아마’라는 말은 ‘엄마, 엄마, 나의 엄마’라는 뜻이다. 네팔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모자의 마음이나 상황은 우리 판소리에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차분하고 구슬프게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휘모리장단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더욱 곡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잘 드러난다.
이듬해인 1993년, 또 한 명의 네팔 이주노동자에게 믿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찬드라 쿠마리 구룽은 1992년 단기 비자를 받고 합법적으로 입국해 일하고 있었다. 1993년 11월, 찬드라는 어느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려 했는데 지갑을 깜박하고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어가 서툰 탓에 그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했고, 분식집 주인은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은 찬드라를 정신이 이상한 한국인으로 오인하고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이송해버렸다. 심지어 찬드라는 정신병원을 옮기기까지 했다. 서툰 한국말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손이 묶이고 약물이 투여되는 등 그는 6년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이후 진료 도중에 찬드라가 어떤 사람인지 밝혀졌고, 2000년에야 감금 상태에서 풀려났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는 이란주의 책 <말해요, 찬드라>(2003, 삶이보이는창)와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2003) 중 박찬욱 감독의 단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한국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서도 자성할 부분이 많지만, 오히려 좋은 한국사람도 많다며 찬드라가 한국을 미워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생각할 지점은 더욱 많아진다.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이름을 부르는 ‘슬픔’
“아마, 아마, 메로 아마 I, II”가 크고 복잡한, 때로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두 음악가와 함께 가사를 쓴 배삼식 작가의 덕이 크다.
배삼식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장인이며, 두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마당놀이부터 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극작가다. 그는 꾸준히 인문학적 사유가 깊이 녹아있는 작품을 선보이며 신뢰를 다졌다. 특히 뛰어난 각색 능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두 음악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했고, 가사를 통해 전달의 힘을 키웠다.
물론 두 음악가가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 없다면,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앨범은 소리꾼의 소리를 중심으로 피아노는 물론 다양한 동서양 악기들이 맴돈다. 소리 간의 연결이 성긴 모양새를 가지지 않고, 훌륭한 장관을 선보인다.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의 조력자라고 표현하기에는 양쪽의 존재감이 뛰어나다. 특정한 장르로 부르거나 넓은 의미의 단어로 둘러댈 수 없다. 동양과 서양의 크로스오버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앨범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 음악인이 가지고 있는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있었다고 본다.
“아마, 아마, 메로 아마”는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한국의 것이라고 하는 소리를 통해 풀어냈다. 그 안에 담긴 한의 정서가 우리만의 것이라고 할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 어느 사건이든, 어느 상황이든 비슷한 처지에 놓이면 동질감을 느끼기 마련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애틋하게 부를 때 거기서 오는 슬픔은 국경을 넘어 공유된 감정이다.
앨범에서, 소리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악기들은 다양하다. 타국에서 들어온 것도 있고, 한국의 악기도 있다. 이처럼 앨범 [바리abandoned]에서는 복잡한 갈래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갈래가 하나를 이루는 것은 비단 악기뿐만 아니다. “건너가는 아이들”이라는 곡에서는 아프리카 난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리공주 설화에 대입하여도 어색하지 않다. 또한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노래이기도, 어쩌면 나의 노래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포함하여 여러 사회적 문제 의식을 이야기할 때, 간혹 나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 상황인지, 먼 곳의 일인지를 기준으로 문제의 층위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들은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굳이 층위를 따지더라도, 이건 이주노동자가 겪은 일이지만 ‘한국에서’ 겪은 일이다.
모든 사람의 공감대 폭을 억지로 넓히기는 힘들다. 강요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모든 문제 의식이 결국 나로 귀결됨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가지고 가야 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는 예민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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