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루와이를 본 소향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70화

김담 | 기사입력 2014/11/06 [15:28]

꾸루와이를 본 소향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70화

김담 | 입력 : 2014/11/06 [15:28]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무릎 한 쪽을 고여 턱밑에 받히고 쪼그려 앉은 창호어마이가 입은 적삼은 거의 홑적삼이고, 치마 역시 검댕이 물들인 광목쪼가리에, 얼굴은 지난여름에 들로 밭으로 온갖 바람과 먼지에 내둘려쳐진 양 시커멓다. 무당은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황송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눈길을 되받아 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차고,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바람같이 사는 내 팔자가 훨씬 낫겠다 하고 생각한다.

 

-식구라고 해야 몇 되도 안 합니더. 지하고 아 아바이하고-

창호어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당은 말끝을 잘라버리고 큰소리를 친다.

-됐다! 고마! 니는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게 알고 살아라-

눈을 힐끔거리며 입을 삐쭉대는 무당의 꼴은 무슨 못볼 꼴이라도 본 듯 얼굴을 찌푸려대는 통에 광수에미도 창호에미도 눈이 왕방울만해지고 놀라서 멍하니 무당을 쳐다볼 뿐 말을 못한다. 털보무당은 혀를 차대며 또 담배 하나를 입에 무는 동안에도 두 여인네는 그저 기다린다.

 

두어 모금 빨아 당기다가 드디어 무당이 담뱃재를 화로에 털어대며 말을 잇는다.

-내가 알아맞출 때는 신령님께 물어보기도 하고, 아니몬 사주를 보기도 하고 또 때론 관상을 보기도 하는데… 니는 내가 관상 보기가 겁이 난다-

화난 듯 창호어마이를 노려보며 질책을 하는데 영문도 모르는 여인네들은 마치 그 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오기라도 하는 듯 온몸에 좁쌀을 돋궈가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우째 그리 복도 없노! 태어나서는 친정부모 밑에서 그리 복이 없었고. 그케도 시집이라고 왔으몬 복을 받고 살던가. 시집복도 니는 쪽박 맹키도 안 된다-

창호어마이는 무당의 말을 들어가며 그래, 내는 친정복도 없고 서방복이나 시집복도 엄따! 그럼, 그것이 다 팔자였나 하고 생각을 꾸려간다.

 

-니는 서방탓 할 끼 하나도 엄따. 오히려 지금 서방 아니였으몬 니는 벌씨 황천을 갔어도 몇 번은 갔을 끼다. 서방운이 니를 묶고 달고 댕기는 탓에 그래도 니가 오늘까지 살아있지 안 그랬으몬 니는 달구지 밑에 깔리거나 홍수에 떠내려갔거나 하다못해 탱주가시에 찔리서 봉사도 됐을 끼다-

 

험하디 험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무당은 주저함이 없이 창호어마이를 짓이긴다. 저런 몰골로 이 추운 겨울을 살아가는 여자가 무슨 복을 가졌겠나? 서방이라도 제대로 서방노릇 한다면 여편네를 저 지경으로 버려둘 리 없거니와 이런 시집을 보낸 친정 역시 안 봐도 뻔한 사정이겠지 싶은 무당은 남자 등에 업혀 호강을 제일로 치는 아낙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서방 원망을 원천부터 막아내고 있다. 니가 복이 없이 타고났는데, 그리고, 못났지만 그래도 지금 서방 때문에 니 명줄이 붙어있다는데 어떤 여자가 서방 얼굴에 대고 원망을 하겠는가?

 

창호어마이는 아무 말이 없다. 왜냐하면 없는 복이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마살에 얽힌 서방이 지금껏 자기 목숨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아하다. 무당은 자신이 조금 심하게 말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케도… 니는 섧게 생각할 일이 엄따. 니기 아들이 있제?-

광수에미가 창호어마이라고 부르는 말을 벌써 몇 번 들은 무당이다. 사내놈 이름이 분명하니 자신 있게 묻고 있다.

-예?! 있습니더. 가 하나라예-

-니가 타고난 복은 윤동짓달 초하루보다도 더 에룹다. 케도… 그 놈이 사람구실을 하네. 해도 아주 큰 구실을 할 놈이네.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봐도 사람은 큰 사람 덕을 본다 켔제? 바로 니 아들이 크게 될 인물이다! 잘 키워라!-

의연한 태도로 안동소주를 한잔 더 쭉 들이킨다.

 

창호어마이 얼굴에 생기가 돈다. 맥 놓고 없는 복타령만 하는 줄 알고 들고 온 서숙보따리가 아까워지기 시작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창호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구미가 당긴다.

-가가 그리 되겠심니꺼? 공부도 별론데?- 하면서 괜히 옆에 앉아있는 광수에미를 힐끗 본다.

-내는 모린다. 그저 니 얼굴에 그리 쓰여 있다 아이가? 그기 니 관상이라 내가 그저 말해주는 기다-

 

털보무당은 능청맞게 둘러대지만 듣는 사람이 반론을 내놓을 수 없을 만큼 기가 막힌 논리로 엮어간다. 이제 서방도 탓할 수 없게 해놓았고 복 없이 태어났지만 그나마 아들이 사람노릇 할 것이라 했으니 그만하면 요새 세상에 살아갈 이유가 충분치 않겠는가 하는 것이 무당의 속셈이다. 그 놈이 사람구실하면 내가 말한 영험한 관상 탓이고 아니면 내 죽고 나서 누가 누굴 탓하겠는가? 무당은 얼굴이 소주 탓에 벌겋게 달아오른다.

 

-케도… 공부도 밸로고. 아가-

영 미덥지가 않는 창호어마이는 자꾸 옆에 있는 광수에미를 보며 중얼거린다. 이유야 광수와 창호가 같은 또래고 또 그래도 학교에서 기 펴고 사는 광수보다 창호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아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광수에미도 알 것 같다.

-아나! 공부가 다 아닌 기라. 뛰는 재주 없으몬 나는 재주라도 있는 법 아이가? 보살님 말씸 마따나 창호가 크기 될 끼라 했으이 니는 이제 걱정 엄따!-

옆에서 광수에미가 한 수 거든다. 

그래도 얼굴에는 아직 무슨 궁금증이 있는 듯 양미간이 좁혀져있는 창호어마이는 한 발치 당겨 앉으며 무당에게 묻는다.

-집에… 시누가 있는데예. 아가 부실합니더. 쿤데… 우짜다-

어떻게 말을 풀어내야 할지 모르는 창호어마이가 우물거리자 옆에 있는 광수에미가 차고 들어선다.

-빙신이 아를 뱄답니더. 누구 안지도 모리고… 떠도는 걸뱅이들한테 당했다고 하고-

 

무당은 술기운에 몸이 나른해진다. 생각 같으면 어디 드러눕고 싶은 생각뿐이다. 괜시리 엿가락처럼 길게 엮어내는 말에 휘둘리면 잡곡 몇 되에 헛입만 놀리게 될 성싶다.

 

-태풍이불몬. 니는 우짜고 사노? 바람을 막나? 아니몬 바람이 지나가도록 기다리나? 내가 니 얼굴을 보이, 니는 그런 일에 아무 상관 안 해도 된다. 그저 지나가도록 내삐리 두면 된다. 내 말은 가가 아를 뱃다 해도 그기 니 팔자하고는 아무 상관 엄따는 말이다. 알았제?-

 

뭘 알았다고 다그치는지 모르는 창호어마이는 그저 자신과 상관없다는 말에 귀가 꽂힌다. 해그름 저녁 기운이 짙게 드리우는 골목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창호어마이는 그래도 아들이 재목이라는 말에 속이 뿌듯하다.

 

*   *   *

 

큰아지매는 아침나절에 무당이 남긴 말이 온종일 귓전에 맴도는 것을 떨쳐낼 수가 없다. 창호지가 어둑해지는 것을 보고 소향을 부른다.

-소향아. 어디 있나?-

문을 열지 않고 부르는 소리이고 또 언제나 목청 높게 부르지 않으니 자칫 한 발짝이라도 멀리 있으면 듣기 힘들다. 

아무 소리가 없자 다시 부르고 그래도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문을 열고 내다본다. 마침 물동이를 이고 대문을 들어서는 소향을 보고

-물 이러 갔었구나. 저녁에 보살님이 계실건지 물어봐라. 니 방에서 주무셔도 좋고-

-예, 한두 번 더 이고 오민 됩니더. 보살님이 작은 아지매집에 있습니더. 물어볼께예-

-그래라 . 그래도 손님이신데 저녁을 뭘로 하나? 아예, 동서보고 좀 오라 해라. 같이 저녁 하자고-

아무래도 소향이보다는 광수에미가 그래도 정기살림을 더 챙길 수 있을 테니 아예 한솥밥을 먹자고 할 참이다.

 

땅속에 묻힌 장광에 물을 쏟아 부은 소향은 다시 머리에 빈 동이를 이고 대문을 나선다. 장서방이 물을 길러다주곤 했는데 오늘따라 아침에 광수아버지하고 같이 나간 다음에 영 함흥차사다.

샘으로 가는 길목 전에 광수네집이 바로 옆에 있다. 그런데 저만치에서 웬 사람이 다리를 휘저어대며 걸어오고 있다. 한 쪽 다리가 다친 것이 분명하다. 소향은 눈을 내리깔고 보지 않는 척 하지만 눈 위로 보일 것은 다 보인다.

 

꾸루와이가 걸어오는 중이지만 소향은 그를 전에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구인지 모른다. 오른쪽 다리가 걸을 때마다 한 바퀴 빙 돌아서 땅에 닿는데 무릎이 제대로 치료되지 않고 그냥 굳어진 모양이다. 보통사람은 무릎이 앞으로 구부려질 수 없고 오직 뒤로만 구부려지는데 꾸루와이의 오른쪽 무릎은 오히려 앞으로 더 잘 구부러진다. 성한 왼쪽 다리는 상대적으로 높이 걸리고 절름발인 오른쪽이 무릎이 낮게 휘젓고 접혀지니 걸음걸이마다 온 몸이 뒤로 앞으로 왔다갔다 요동을 친다. 소향은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지만 못본 채 종종걸음으로 몇 걸음 남지 않은 작은아지매 집으로 가다가 이제는 저만치 뒤에 걸어가는 그 음흉한 눈길의 장본인이 궁금하여 뒤를 슬쩍 돌아보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어쩌면 그날 그 뒤뚱거리던 모습과 그렇게 같을 수가 있나? 소향은 다시 돌아서서 저만치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꾸루와이를 응시한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 한 번 놀란다.

 

-작은아지매요. 보살님 여 계시지예?-

방문이 활짝 열리고 광수에미가 얼굴을 내밀며

-그래, 여서 한숨 주무신다. 와?-

-큰아지매가 좀 오시랍니더-

-오이야, 내 지금 가지. 니는 물 이러 가나? 내가 좀 이다주까?-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소리다.

-언지예! 인제 다 이다 났심더-

-그래, 가자. 보살님이 피곤하싰는지 금방 잠이 드신다-

문을 조심스레 닫고는 둘이 별채를 나서 소향은 샘으로 광수에미는 종가로 간다.

 

두레박을 올리면서도 온통 소향의 머릿속에는 그 휘청거리는 걸음걸이가 꽉 차있다. 물동이를 이고 오는 길에서도 그날 그 끔찍했던 을순이의 광경이 눈이 얼른거린다.

-엌!- 하는 순간 발에 돌부리가 걸리고 소향은 통나무처럼 앞으로 고꾸라지고 머리에 이고 있던 동이는 산산조각이 났다. 정신이 혼미한 소향은 허둥지둥 몸을 추스르려 하는데 소리가 들린다.

-괘안나? 안 다친나?-

목소리가 광수아부지다. 소향이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그 옆에 장서방도 같이 서있다.

-예. 괘안아예-

부끄러움이 먼저 몰려오는 걸 느끼며 소향은 치마며 저고리가 온통 젖은 채로 흙을 털어내며 일어선다.

-다음 장에 내가 양철물동이를 꼭 사오마. 안 다쳤다니 다행이다-

술이 꽤나 됐는지 장씨도 취기가 보이지만 얼굴에는 소향이 안쓰럽다는 듯 굳은 기가 보인다. 

 

-저기… 광수네집에는 지금 보살님이 주무시고 계신데예-

태광은 영문 모를 말을 하는 소향을 보고

-머라 카노? 보살이라이? 보살이 누고?-

-작은 아지매가 큰집에 있어예. 가보이소- 하고 소향이 젖은 옷을 휘감아 쥐고 집으로 달린다. 그 뒤에서 장씨는 깨진 옹기 조각들을 길가로 주섬주섬 옮겨 놓는다.

 

-광수야! 오데 있노?-

큰소리로 부르는 말을 듣고 작은아지매는 정기에서 고개를 빼내

-오데 갔다 인제 오는교? 집에 가지 말고 여 좀 계시이소. 여서 저녁 잡숫고 가시구로-

-자가 카던데. 우리 집에 무신 보살이 잔다꼬? 누고?-

술기운에 목청이 여간 크지 않다. 광수에미는 다시 고개를 내밀고 마당 한가운데 여전히 서있는 태광을 보고 -당신은 알 것 엄꼬. 그저 손님입니더- 하고는 일에 바쁘다.

장씨가 한발 늦게 들어와서 집 뒤에 쌓여있는 장작더미에서 장작을 가져다가 여기저기 군불을 넣는다. 시끌거리는 사람들 소리를 들으며 큰아지매는 기어이 또 발걸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낀다.

 

무당이 소향과 한방에 누었다. 소향이 삼천포 소식을 물어도 아편난리 통에 이리저리 피해 다니던 털보무당은 마땅히 답해줄 것이 없어서 술기운을 빌어 잠에 빠지고 장서방 방에서 들려오는 두런두런 라디오 소리에 소향은 마음이 어수선하다. 휘청거리던 발걸음, 을순이가 아를 배고, 보살님은 삼천포 소식도 속 시원히 모르고, 큰방에서 자리 잡고 있는 큰아지매 때문에 언제 자신은 아기를….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소향이 번쩍 눈을 떴다. 어젯밤에 늦게 잠든 게 분명하다. 언제 왔는지 오늘 아침에도 작은아지매가 와서 정기에서 분주하다. 소향은 속으로 다행이다 싶다. 

-아지매, 지가 늦게 일났네예-

미안한 마음에 핑계를 대며 정기로 발을 들여놓는 소향을 보고 광수에미는

-니 어제 넘어졌다매? 안 다칬나?-

물으면서도 연신 그 육중한 몸을 움직여대며 아궁이 불도 보고 반찬도 만들고 한다. 광수에미의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소향은 온몸이 몽둥이찜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파온다. 응혈이 이제야 도지는 모양이다.

-괜찮아예. 물동이만 하나 깼다 아입니꺼?-

 요새 옹기로 물이는 사람이 오데 있노? 장날 우리도 양철로 하나 사제이-

-안 그래도 장씨 아저씨가 양동이로 산다꼬 켔심더-

 

우르르 광수와 재수가 몰려오고 언제 일어났는지 장씨도 왔다갔다 한다.

-아저씨. 우리 팽이 맹글어준다꼬 안 켔심니꺼?-

장작을 한 아름 안고 오다가 광수의 청을 들은 장서방은

-그래. 내 안 잊고 있다. 오늘 너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있을 거다. 약속하지. 근데… 이 동네에 닥나무가 어디 있나?-

장서방의 약속에 광수는 신이 난 듯

-딱나무는 저 산 밑에 많심더-

손을 뻗어 가리키는 곳이 마을 뒤 고구마밭 쪽이다.

-알았다. 내 오늘은 꼭 만들어놓지. 그럼 너는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정기에서 상을 펴 놓고 주섬주섬 숟가락 젓가락을 챙기며 마당의 애기를 듣고 보던 소향은 문득 생각이 든다.

 

상을 세 개나 본다. 하나는 안방에서 큰아지매와 보살님이 겸상을 하고 또 하나는 건넌방에서 태섭이 형제와 광수형제가 받고 나머지 하나는 정기 바닥에서 장서방과 소향이 그리고 작은아지매가 한사코 안방에 가지 않고 같이 먹는다.

 

-아저씨예. 이따가 닥나무 하러 들에 갈낍니꺼?-

뜬금없는 소향의 질문에 장서방은 -응? 응! 그래. 그래야 팽이채를 만들지. 그런데 왜?-

-아저씨 갈 때 지도 좀 따라갈 일이 있어서예-

광수에미는 한 손으로 숟가락 밑을 받쳐대며 밥을 먹다가 소향의 엉뚱한 이유에 기어이 한마디 한다.

-야는, 한겨울에 볼 일도 없는 들에는 와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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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작 2014/11/07 [11:43] 수정 | 삭제
  • 흥미진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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