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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대포아지매의 눈치를 보아하니 오는 손님이라 내칠 수는 없지만 귀찮아서 죽을상이다. 장씨는 미소를 띠고 양손을 비비며 여유롭게 답한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저 뜨끈한 걸로 한 그릇만 말아주시오. 아! 기다리는 동안 마시게 술도 한 잔 주시고- 아직도 구들에 엉덩이를 붙이고 퍼질러 앉아있는 대포아지매는 장씨의 말을 다 듣고야 할 수 없다는 듯 두 다리 두 팔로 육중한 몸을 떠받치며 끙 소리와 함께 일어서서 문지방을 잡고 나온다.
고무신을 돌려 신으면서 장씨 쪽을 보지도 않은 채 아지매가 묻는다. -말하는 기… 여 사람은 아인데. 오데서 오싯는교?- 국밥집 내부를 휘둘러보던 장씨는 천장에 붙어있는 거미줄이며 검정자국이며 심지어 언제 붙였는지 모르지만 대들보 위에 붙어있는 희미한 부적까지 아마도 십수 년은 이 자리에 있음직하다고 느낀다. -예, 지나는 길입니다. 서울에서 오늘 새벽에 떠났는데, 화차 때문에 목도 컬컬하고 노리까지 하느라고 먹지도 못하고 왔더니 뱃속이 아우성이랍니다-
거의 뒤뚱거리며 대포아지매가 주전자와 사발을 들어다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비로소 장씨를 훑어본다. -삼천포가 막다른 포구인데 지나다니. 오데로 가신다는 말씀인교? 이 밤중에. 섬으로 가시는 모양이구만- 아! 내가 아까 지나던 길이라고 했었지. 장씨는 탁주를 목으로 울컥울컥 넘기며 대수로운 헛말을 한 자신과 또 흘려듣지 않은 아지매의 꼼꼼함을 싸잡아 웃어버린다.
입가를 훔치며 트림을 해댄다. 속이 싸르르하게 전율이 전해지자 온몸의 피부가 화끈거리며 반응을 한다. 장씨의 대답 따위는 기다릴 필요도 없는 듯 아지매는 다시 정기로 들어가더니 아궁이 앞에 구부리고 속에서 무엇인가 긁어내고 있다. 치켜든 엉덩이가 무거운지 고개를 세우고는 숨을 크게 내쉬며 아지매는 장씨 쪽을 돌아보고 -한 그릇 뎁힐라고 불을 지필 수는 엄꼬. 안에 숯불이라도 남았으몬 끄집어낼라카이 숨이 가파서리- 하고는 헉헉댄다.
배불뚝이 아지매가 꽁지를 쳐들고 고개를 숙이니 숨이 가빠올 수밖에. 장씨는 변명을 늘어놓는 아지매를 향해 정기로 걸어 들어간다. -아지매. 다 늦은 밤에 저 때문에 수고하시니 제가 남은 불을 꺼내 드리지요. 이리 나오시오-
하지만 아지매는 가쁜 숨을 쉬느라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냥 엉덩이를 미적대며 피해준다. 장씨가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니 재 속에 묻힌 숯 몇 개는 아직 불씨를 품고 있어서 부지깽이로 휘적거리며 몇 개를 골라내어 앞으로 모았다. -아이고. 그만 하몬 됐심더. 금방 될낍니더. 쪼매만 기대리이소- 또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서더니 뚝배기에 고기 몇 점과 국을 넣고는 아궁이 앞에 소복이 쌓여있는 숯 위에 올리고는 부채질을 해대며 앉는다.
장씨도 아예 탁주를 부은 사발을 들고 작으나마 그래도 불기운이 있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는다. 중년의 두 사람은 낯설어 하는 것도, 내외도 없이 하나는 부채질을 하고 또 하나는 부채바람에 불기운을 세우는 숯을 보며 희미하나마 나도는 온기를 잡으려 한다.
그때 점방 문이 조심스레 열리더니 누가 부른다. -아지매. 안 주무시예?- 대포아지매는 앉은 채로 부채질을 계속 해대며 내다보지도 않고 금방 소리의 주인공을 아는 듯 -소향이 아이가? 니가 우예? 저녁은 무웃나?-
정기로 들어오던 소향이 에미가 남정네가 같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흠칫 발걸음을 멈춘다. 소향이? 장씨는 벌떡 일어서서 손에 든 사발의 남은 술을 입에 붓고는 소향에미를 피해 점방으로 나간다.
-국 남았으면…. 한 그릇 가져갈까 해서예. 아아가 몸살기가 있는가. 통 묵질 안하네예- 아궁이 옆에 나란히 앉은 소향에미가 점방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대포아지매에게 말한다. -누가?- -종락이지 누굽니꺼- -갖다 믹이라. 솥 안에 있다. 니가 퍼가거래이. 고기도 넉넉하이 넣고. 아이몬… 여서 덥혀가든가? 이것만 끼리면 된다. 문을 닫았디만 손님이 와서… 그래도 숯이 몇 개 남아서 다행이다-
그러면 저 여인이 소향이 엄마라는 말인가? 대개 아이의 이름을 빗대어 부르는 것이 예사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또한 흔하디흔한 계집아이들의 이름이 이쁜이 점순이 끝순이 소향이 매자 아니면 정자나 순자이니 아닐 수도 있겠지. 장씨는 탁자에 앉아 남은 술을 사발에 붓는데 그사이 대포아지매가 국밥을 들고 나온다. -고기도 마이 넣심더 잡수이소-
고기냄새가 구수하다. 곁들여 나온 깍두기가 잘 익은 듯 냄새가 구미를 동한다. 장씨는 입을 아예 뚝배기에 들이대고 숟가락질을 해댄다. 고깃점이 입으로 들어갈 때면 뜨거움에 고개를 뒤로 젖혀서 입을 벌리고 후후 불어대고 국물은 아예 들이 마시다시피 하며 한 그릇을 금방 비운다.
탁주 한 사발을 마셨을 때는 한기가 온몸을 떨게 했지만 이번에는 국밥의 온기가 속부터 시원스레 풀어내고 있다. 장씨는 비로소 가슴을 넓게 펴고 숨을 크게 내쉬며 아까 마신 술기운이 이제야 올라오는 것도 함께 느끼며 여유를 찾는다.
-아지매! 술 한 잔 더 주시오- 빈 주전자를 들고 정기를 향해 장씨는 호기 있게 청한다. 빈속을 채운 덕에 소리도 기운이 있다. 소향에미가 숯불에 국을 덥히는 동안 둘이 나란히 정기바닥에 앉아 있다가 장씨의 소리를 듣고는 일어서려는 육중한 대포아지매를 손으로 누르고 소향에미가 나와서 빈 주전자를 들고 들어가서 술단지 속에서 술을 담아 내온다.
장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인을 눈치 채지 않게 훑어본다. 제법 단정한 모습이다. 아까 나눈 둘의 얘기로 봐서나 지금 여인의 얼굴로 봐서나 나이는 국밥집 아지매보다 아래로 보이고 꾸미지는 않았지만 험하거나 사나운 여인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기로 들어가더니 국이 다 끓었는지 양손으로 받쳐 들고 나오는 여인의 뒤를 대폿집 주인도 따라 나와 문을 열어준다. -가재이- -예, 아지매. 고맙심더-
밥을 다 비웠으면 갈 일이지 앉아서 술을 따르는 손님이 반갑지 않다. 늦은 시간에 국밥 말아달라고 한 것도 일이었는데 앉아서 시간 끄는 것이 성가신 대포아지매는 빨리 구들에 허리를 대고 싶다. -다 잡샀는교?- 다 먹은 것을 묻는 것이 아니고 다 먹었으니 가라는 소리다. 장씨도 눈치를 알만하다. 술은 아직도 한 잔 더 남았지만 까짓 아까울 것 없다고 생각하고 주머니에서 돈을 뒤적거린다.
-아까 전에 그 아지매 보고 소향이라고 하시던데… 얼맙니까?- 주머니에서 나온 손에는 기차표며 버스표며 종잇조각들이 돈과 함께 같이 나오는 것을 탁자위에 놓고 가린다. -오백 원입니더. 술하고- 오백 원짜리 돈이 안보이자 이번에는 양말 속을 뒤집어 지전 하나를 뽑아든다. 쓰리꾼들이 들끓는 탓에 푼돈은 주머니에 넣지만 중한 돈은 양말에 말아 넣고 다닌 것이다.
-그 아지매가 어물전 합니까?- 돈을 건네자 대포아지매는 받아들고 장씨의 질문에 눈만 꾸뻑인다. -아지매라 카이. 누구 말입니꺼?- 장씨가 지나가며 물은 소향이라는 이름이나 어물전이라는 말에나 대포아지매는 영 생각이 없는 듯하다. -좀전에 왔던 그 아지매를 소향이라고 부르시던데… 그 아지매가 어물전 하는 사람이냐고 물은 겁니다-
이제야 전후를 알아차린 양 대포아지매는 그릇을 주섬주섬 챙기며 -그 집 딸래미가 소향입니더. 카고 어물전을 하긴 하는데- 하고는 주전자를 챙겨들던 손을 멈추고 장씨를 쳐다보는데 눈이 동그래진다. -압니꺼? 그 집을?- -아는 게 아니고. 그럼. 그 소향이라는 딸이 혹시… 경상도에 있습니까?- -우야꼬! 와 아입니꺼! 아시네! 우째 압니꺼?- 하고는 장씨 맞은편 탁자에 털썩 앉는다. -그럼 맞군요. 참! 희한하게도 찾았네. 장터에 있다 해서 들어오다가 국밥집이 눈에 띠여서 허기진 배부터 채우려고 왔더니 찾을 것도 없이 바로 왔구만요!-
장씨는 대포아지매 앞에 있는 주전자를 들고 잔에 한 잔 더 따르며 여유를 찾는데 대포아지매는 궁금증이 더해간다. -그 집을 압니꺼? 소향이를 압니꺼?- 앞으로 바싹 당겨 앉으며 물어대는 대포아지매를 장씨는 술잔을 놓자마자 입가를 훔쳐내고 쳐다보며 -제가 소향이 편지를 전해주려 온 사람입니다- 대포아지매 눈이 더 커진다. -예? 소향이? 카모… 상주서 오싰단 말입니꺼?- -예. 그렇습니다-
대포아지매가 탁자를 양손으로 의지해 일어선다. -내가 이럴게 아이고 퍼떡 소향이를 불러와야지. 잠깐만 기대리이소- 뒤도 안 보고 문을 열고 나서는데 문을 닫지도 않고 가버린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온다고 생각한 장씨는 일어서서 문을 닫고 다시 탁자로 돌아와서 술을 따르는데 술이 반 잔도 차지 않고 멈춘다.
반 잔의 술을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소향이 에미가 먼저 들어선다. -우리 소향이한테서 오싰다고예?- 숨이 가쁜 소리와 함께 물어대는데 그 뒤에 대포아지매가 따라 들어온다. 천리만리에 딸을 떨어뜨리고 사는 에미 마음을 알 것 같은 장씨는 의자에서 일어서는 시늉으로 예를 갖추며 -앉으시지요. 천천히 말씀 드리게- 대포아지매와 소향에미가 나란히 의자에 앉자 비로소 장씨도 의자에 앉는다.
-저는 소향이가 있는 집에서 일하는 일꾼입니다. 뭐… 머슴이라고 해도 됩니다. 소향이가 편지를 써서 부쳐달라고 하는데 주소도 모르고 해서 지나가던 길에 들러서 전해주려던 것입니다- 하고는 속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려 뒤적거리며 찾는다. -내가 갔을 때는- 대포아지매가 양미간을 좁혀대며 기억을 되새기는 듯한 것을 보고 장씨는 -예. 저는 그 집에 초겨울에 들어갔으니 언제 들리셨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제가 없었지요. 여기… 편집니다- 하고 접힌 종이를 탁자 위에 내놓는다. 소향에미는 그 편지를 덥석 손으로 잡아 가슴팍에 댄다. 그리고는 장씨를 쳐다본다. 대포아지매도 장씨를 아래위로 훑어댄다. -그럼 그렇지! 내가 갔을 때는 안 계싯지. 그 집에- 대포아지매는 다리 하나를 의자 위에 올린다.
-우리 소향이 잘 있습니꺼? 우째 있습니꺼?- 소향에미는 물어대지만 그 말 외에는 물을 게 없다. 시집보낸 것도 아니니 아이 가졌냐고 물을 수도 없고 하지만 아이 낳아주려고 갔으니 궁금하지만 입에 올릴 수도 없고 빨리 볼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아득한 심정으로 장씨의 눈만 쳐다보고 있다. 딸 팔아 차린 어물전 덕에 다섯 식구가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걱정하지 않고 살지만 하루도 잊고 지내지 않는 소향에미다. 가슴팍에 품은 편지를 읽을 생각도 없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눈만 쳐다보는 소향에미의 속마음을 장씨는 헤아린다.
-주인 내외도 소향이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저도 소향이만한 딸이 하나 있는지라… 같이 밥 얻어먹고 사는 입장에서 잘 지내고 있답니다. 몸도 건강하고. 좋은 날이 곧 오겠지요. 걱정하실 것 하나도 없답니다. 맘 놓으시오- 소향에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더니 뚝뚝 떨어지고 만다. 대포아지매는 궁금증을 참을수 없었는지 장씨의 양손을 덥석 잡는다. 그리고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묻는다.
-소향이가?- 묻지만 머리만 남기고 꼬리가 없는 질문이다. 장씨의 눈치가 모를 리 없지만 대놓고 소향에미 앞에서 시집 안 보낸 딸이 애를 뱄느니 안 뱄느니 말하는 것이 수치스러울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둘러댄다. -삼신할매가 아직 점해주시지 않았지만 곧 좋은 일이 생기겠지요. 뭐! 그나저나… 편지도 읽어보시지? 아! 아지매. 말이 길어지니 목도 마르네. 술 한 잔 더 주시구려- 빈 주전자를 들어 대포아지매 앞으로 밀어주자 소향에미가 재빠르게 집어 들고 정기로 갔다 온다.
-가가… 아는 그만한 아가 없재- 대포아지매가 장씨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중얼거린다. 소향에미는 눈물을 훔쳐내며 편지를 손에 들고 조몰락거린다. 대포아지매가 그 모습을 보고는 편지를 뺏어들고 장씨에게 내밀며 -우린 까막눈이라 못 읽심더. 아재가 읽어보이소. 내도 들어보게- 술기운이 제법 오른 장씨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그럼 제가 읽어드리지요. 소향이가 읽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하고 웃음 띤 얼굴로 두 여자를 보고 편지를 펼쳐든다.
-어무이요. 지는 잘 있심더. 보살님이… 우리집 가따오싯따꼬 해써예- 장씨는 흐린 불에 편지를 기울여대며 애써 말을 맞추어댄다. -종락이는 공부 잘하지예. 어무이 보고 시퍼예. 향수기 노마 수향이 보고시퍼예. 대포아지매도예. 빨리 가께예. 건강해예- 글을 듣는 동안 소향에미는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아예 소리 내서 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포아지매는 말릴 생각도 않는다. 얼마나 참았던 눈물인가? 울도록 두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내 안부도 물었네 가가? 참! 쿤데! 가가 운제 글을 배았노?- 하고 소향에미를 보고 놀란 듯 묻는다. 그제서야 소향에미도 정신이 난 듯 눈물 글썽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씨와 대포아지매를 번갈아 보며 -그케 말입니더. 이거 정말로 가가 쓴 팬지 맞심니꺼?- 하고 장씨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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