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콩밥을 잡사봤심니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78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1/05 [11:34]

“아저씨는 콩밥을 잡사봤심니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78화

김담 | 입력 : 2015/01/05 [11:34]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그래, 역시 그랬구나. 그 놈의 후레자식이 일을 시작한 것인데 소향이 혼자 덤탱이를 쓰고 있구나 하고 장서방은 쓴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낫으로 사람을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해코지했으니 소향의 입장에서도 죄를 다 벗을 수는 없는 일이라.

 

하지만 만일 꾸루와이 놈의 죄도 입증만 된다면 저울의 추는 중앙에 설 것이고 벗으면 같이 벗고 죄를 쓰면 또한 같이 쓸 수도 있을 것이지만 과연 이 상황에 누가 소향에게 이로운 정황을 내놓을 수 있겠나? 창호네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다 그렇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니… 정의? 그 빌어먹을 정의란 이미 약에 쓰려고 찾아도 없는 세상이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면 혹은 한 줄기 햇빛으로 온기를 얻기 위해서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다 버릴 수 있는 세상 아니던가? 더구나 김씨 종가가 그다지 좋은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장서방도 이리저리 눈치 채고 있으니 소향에게 도움 될 일이 없어 보인다.

 

-소향아. 우선 기운부터 내라! 이 정도로 죽을 일도 아니다. 또 너희 식구들 다 잘 살고 있다. 그깟 콩밥 먹어봐야 얼마 되지도 않을 것이고 또 콩밥도 먹어보면 맛있다- 하고 씩 웃어 보인다.

뭔가 장씨 아저씨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도 소향이 없지는 않았는데 막상 콩밥 먹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으니 맥이 풀린다. 고개를 숙이고 담요로 몸을 감싸며 소향이 묻는다.

-아저씨가 콩밥을 잡사봤심니꺼?-

그 소리를 들으니 장서방의 눈이 반짝하고 빛이 돈다. -콩밥? 음… 먹어봤지- 하고 소향을 물끄러미 보지만 초점이 흐린 눈길로 눈꺼풀이 서서히 내려온다.

-예? 아저씨가예? 참말로예? 와예?-

소향에게는 의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콩밥은 죄지은 사람이 먹는 것인데 아저씨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콩밥을 먹었단 말인가? 장씨 아저씨는 도무지 죄지을 사람 같지가 않은데?

 

소향의 질문이 귀에 들리지도 않은 장씨는 실눈으로 한참을 넋 놓고 소향의 눈을 보고 있다. 소향은 대답을 기다리느라 장씨의 감은 듯한 눈을 보고 있다.

 

장서방이 벌떡 일어선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는 옷깃을 세우며

-소향아, 고생이 되더라도 조금만 참아라. 분명히 니가 다 잘못했다고 할 일은 아니다. 곧 바로 잡아질 거다. 그리고, 내 요 앞에 밥집에다 말해놓을 테니 끼니 챙겨서 먹도록 하고. 내 또 올 거다. 알았지?-

뭔가 마음이 갑자기 급해진 듯 장서방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철창문을 고개 숙여 피해 나온다.

 

다 저물어가는 섣달의 오후 공기가 매섭다. 흙먼지 바람이 휘휘 몰아치는 길 한가운데서 장서방이 발을 멈추고 어디로 가야 전화를 걸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렇지! 우체국!

아직 공무가 끝날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해 때문에 벌써 어둑어둑한 거리를 보며 장서방의 마음이 급해진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우체국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입김을 허옇게 뿜어대며 전화요청을 해댄다.

 

-서울요-

-번호는… 모르는데요. 경무부 감찰실로요-

우체국 직원은 의아한 눈치지만 조금은 경계의 눈치다. 말씨도 경상도가 아니고 서슴없이 감찰실이라고 하는 말로 봐서 뭔가 아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몰골은 영 아니다. 보통이라면 번호를 모른다고 타박이라도 놓을 텐데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붙들고 손잡이를 돌려대고는 수화기를 귀에 대더니 -서울! 경무부! 감찰실! 경무부라고 했잖아!-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수화기를 놓는다. 아마도 교환이 재차 묻는 것을 탓한 모양이다.

-기다리시오-

장씨는 우체국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네 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럼 아직은 퇴근시간은 아닐 테고. 마땅히 앉을 자리도 없지만 있다 한들 앉을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는 장씨는 시린 손을 비벼대며 서성인다.

 

벌써 두 번이나 전화가 울렸지만 장서방이 기다리는 전화는 아니었다. 시계를 다시 본다. 벌써 삼십 분이나 흘렀다. 퇴근 전에는 통화가 돼야 할 텐데. 애써 여유를 찾으러하는데 또 전화가 울리더니 직원이 장씨를 보고 받으라고 한다.

-여보시오, 그기 경무부 감찰실 맞습니까?-

-감찰실장님 좀 부탁드립니다-

-저는 성은 장씨고 지자 우자 쓰는 장지우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그저 제 이름만 전해주시면 아실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언제쯤? 끝나시는지?-

-그럼 상주에 있는 우체국에서 기다린다고 끝나시면 전화를 꼭 좀 부탁 올린다고 전해주십시오-

-예, 아주 중요한 일이라서 그럽니다. 장지우라는 이름입니다-

이미 말했지만 다짐을 해두려는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이름을 각인시킨 장씨는 수화기를 우체국 직원에게 건네준다.

-전화가 올 거니까 여서 기다리겠습니다-

 

아까 순경의 말로는 소향이 내일이면 검찰로 이송이 된다 하였으니 시간이 없겠다. 검찰로 간 후에는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경찰서에 있을 때 어떻게든 손을 써야 된다.

입안이 타들어간다. 이름 석 자가 제대로 전달이 될까? 혹시라도 시골에서 온 전화라고 무시라도 하는 날에는 헛수고만 하게 될 텐데. 장서방은 권련을 찾아 주머니를 뒤적거리지만 하필이면 담배도 없다.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운 얼굴들이 지나간다. 모두들 혈기 하나에 의존하고선 물불 가리지 않고 투쟁했었다. 민족이라는 이름을 걸고 해방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학교에서 공부하는 날보다 모여서 의기를 투합하고 전달되는 지령이나 계획을 수행하는데 그 얼마나 많은 날들을 함께 했던가? 벌써 십오 년이 흘렀구나. 젖 먹던 외동딸이 여전을 다니니 그럴 수밖에. 상념에 젖어 시간도 잊고 추위도 잊고 있던 차 우체국 직원이 귀에 익은 이름을 부른다.

 

-장태근씨. 장태근씨 전화요-

장서방은 속으로 빌어먹을 놈 지우라고 부를 일이지 굳이 태근이라 부르나? 하고 잊지 않고 불러주는 우정이 마음속에 뭉클하게 솟는다.

-예, 그게 접니다- 하고 손을 뻗으니 직원이 의아하게 쳐다보며 수화기를 느릿느릿 건네준다. 아까는 지우라고 분명히 들었는데 갑자기 태근이라고 바뀌었으니 그럴 수밖에.

 

-여보세요? 제가… 지우 아니 태근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켜가며 오랜만의 친구의 목소리를 기대해보는 장씨의 귀에 벼락같은 소리가 들린다.

-야! 이 망할 놈아! 니가 정말로 태근이 맞지? 장태근이? 아니 장지우?-

-그래. 너는 조박사 똥 닦아준 덕에 실장 해처먹는 채송철이 아니냐?-

-야! 이게 얼마만이냐?

-수화기 저쪽에도 숨만 쉬고 있는 것이 들린다.

-어디냐? 너 지금? 아! 상주라고 했지? 내가 낼이라도 내려가마!-

-이놈아, 지금 이박사 똥 닦아야 차기 경무부장이라도 할 놈이 시골에는 왜 내려오냐?-

 

전화기 옆에서 눈이 동그래진 직원이 전화소리를 들으면서 능청스레 농담을 주고받는 장서방을 연신 힐끔거린다.

-그래. 어떻게 지내냐? 아니지, 어떻게 지내는지는 니 놈 귀여운 고명딸한테서 가끔 들어서 알긴 안다만. 어찌 그리 소식도 없이 지내냐? 홍희도 니 놈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만 하니-

장서방의 딸 이름이 홍희다.

-그 아이가 거짓말 하는 게 아니고 정말로 모르니 그리 말할 수밖에. 알고도 모른다고 하면 부담이 될 터이니 아예 모르게 하고 있었지. 그나저나… 내 자네한테 긴히 할 말이 있네-

-아 할 말이 어디 한두 마딘가? 내가 가던가 아님 자네가 와서 우리 둘뿐이 아니고 다 모여서 한마당 벌리면서 하면 되지-

-그게 아니고. 내 거두절미하고 말하네. 지금 꼭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만 여기 다 듣고 보는 우체국에서는 할 수 없고, 시각을 다투는 일일지도 모르니 자네가 정리 좀 해보게나-

-응? 뭐가 그리? 하긴 십수 년 연락 없던 자네가 전화를 다 했으니 뭔가 일이 있구만! 그럼 잠시 기다리고 우선 우체국 직원 좀 바꿔 주게나-

 

장서방은 옆에서 전화소리에 여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직원에게 수화기를 주며 -끊지 말고 좀 받아보시지요- 하자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귀에 대고 -여보시오?- 하고 상대의 말을 기다린다.

-나 경무부 감찰실장 채송철이요. 우체국장 바꿔주시오-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듣자 직원은 황급한 표정으로 두 손으로 수화기를 움켜잡고 허리를 굽실거리며 -예. 예. 잠시만 기댈려 주시이소- 하고는 국장실로 달려간다.

 

우체국장으로 보이는 사람을 대동한 직원이 앞장서서 돌아와서 뒤따라오던 국장에게 수화기를 건네자 국장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공손한 태도로 수화기를 귀에 댄다.

-상주 우체국장입니다- 하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상대의 말을 듣는다.

-예, 예, 아! 그렇습니까? 그럼요! 예, 알겠습니다- 하더니 수화기를 직원에게 주며 -교환에게 이 전화 국장실로 돌리라고 해. 지금 당장!- 하고는 장서방을 보고 허리를 굽히며 정중하게 말한다.

-실례지만 전화를 국장실에서 받으셔야 하겠습니다. 들어오시지요-

국장실에서 전화를 받는데 무슨 실례란 말인가? 입에 달고 살다보니 아무데서나 나오고 특히나 당황하다 보면 그냥 줄줄 새나오는 게 관료들의 상투적인 말씨다.

 

장씨는 허리를 더 굽혀 거의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의 자세로 황감함을 표시하며

-아휴… 미안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서 어쩝니까? 국장님?-

이미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안 직원과 국장은 장서방에게 직원만 들락거리는 허리높이의 작은 문을 손수 열어준다.

 

국장실로 들어선 우체국장은 전화기가 한번 울리자 즉시 받고는 장서방에게 건네주며 -저는 밖에 나가 있겠습니다. 편히 말씀 나누시지요- 하고 문을 닫고 나간다.

-이놈아, 힘이 좋기는 좋구나. 특실에서 혼자 전화도 할 수 있고-

-태근아, 농담하려고 전화한 게 아닐 테니…. 무슨 일인지 말해봐라-

-송철이, 자네 앞으로 나를 지우라고 부르게. 태근이라는 사람은 지금은 없는 존재라네-

-그래. 그건 그렇다 하고. 뭔가? 장지우!-

농담조로 장서방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국장실 문이 굳게 닫혀진 것을 연신 힐끔거리며 우체국 직원들이 난롯가에 우르르 모여 무언가 쑥덕댄다.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난로의 화기도 거의 없다.

한참 후 국장실 문이 열리고 황송한 표정으로 양손을 비벼대며 장서방은 국장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한다. 우체국장도 장서방만큼이나 낮게 허리를 굽혀 답하고 장서방은 머리를 굽실거리며 우체국을 나선다.

 

우선 담배 한 대를 깊게 들이 마시고 싶다. 장서방은 점방을 찾아 담배 하나를 산 후 성냥불을 그어댄다. 후하고 내뿜는 맛이 시원하다. 서둘 것도 없이 천천히 걸어가는 장서방의 발걸음이 이미 어두워진 거리에 서서히 묻혀버린다.

 

-예 서장입니다-

경무부 감찰실장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서장이다.

-서장이 누구야?-

벼락같은 고함이다. 이름을 대지 않고 받은데 대한 문책이다.

-예, 박상민입니다-

잔뜩 기합이 든 서장은 얼굴이 경색되어있다.

-서장은 지금 유치장에 있는 젊은 여자의 살인미수사건에 대해 아는 것 있나?-

-그건… 보고는 받았습니다만… 아직 조서가 작성되지 않아서…-

-누가 살인미수라고 죄명을 붙였나? 니놈들은 국가공무원으로서 또 경찰공무원으로서 사건을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아무나 붙잡아 넣고 아무 죄명이나 씌우는 게 하는 짓이냐?-

-그건…. 이미 함창지서에서 넘어온 서류를 토대로…-

-그 지서가 누구 관할이나? 서장 관할 아니야?-

-그건 그렇습니다-

-서장 똑바로 들어! 열여덟 먹은 순하디 순한 처녀가 아무 원한도 없는 두 사람한테 갑자기 낫을 휘둘렀다고? 처녀가 정신병자나? 서장은 모가지가 몇 개야? 그 따위로 하고도 경찰서장 할 줄 아나? 내가 보고받기로는 사건의 전말이 백팔십도로 달라! 지금 즉시 그 여자 방면하고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하고 모든 보고는 하나도 빼놓지 말고 나 감찰실장한테 즉시 보고해. 내가 알기로는 그 사건의 주범은 그 남자놈이라는데 서장은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지금 당장 그 처녀 풀어! 그리고 이 사건은 내가 개인적으로 관여한다. 모든 보고는 매일 하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서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직립자세로 외쳐댄다. 감찰실장이 모가지가 몇 개냐고 묻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열 개라도 따자면 못 딸 모가지가 없는 게 감찰실의 힘이니 경찰서장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를 놓은 서장은 화풀이를 부하에게 할 수밖에 없다.

-야! 밖에 누구 있나? 당장 들어와!-

순경 하나가 문을 빼꼼 열고 고개만 들이민다.

-와예?-

-김형사 당장 들어오라 해! 그리고 함창지서에 전통 넣어. 지서장 새끼 지금 당장 서로 들어오라고! 알았어!-

벌건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서장을 보고 나서야 순경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하고 자세가 바로 선다.

-예, 알겠습니다-

어떻게 오른 경찰서장 자리인데 감찰실에서 전화까지 와서 모가지 타령을 하게 됐단 말인가? 겁이 잔뜩 든 서장은 방에서 기다리기도 시간이 아깝다. 모자를 찾아 눌러쓴 후 서장실을 나가려는 순간 김형사가 들어온다.

-찾으셨습니까? 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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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작 2015/01/06 [13:22] 수정 | 삭제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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