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달걸이가 언제 끝났노?”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85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2/23 [13:40]

“니 달걸이가 언제 끝났노?”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85화

김담 | 입력 : 2015/02/23 [13:40]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안 그래도 동네에서 올해는 태봉제를 누가 모실란고? 하고 말이 있던 참입니더. 행님이 미리 그리 하싰구만요. 아! 소향이는 아프다고 방에 누벘심더-

 

털보무당은 뒷짐을 지고 햇볕이 환하게 든 마당을 휘 둘러보며 모처럼 어깨를 쭉 펴본다. 광수에미의 말을 귓전에 흘린 채, 소향이 아프다는 말도 들은 둥 마는 둥 지그시 눈을 감고 봄기운을 맛본다.

 

양력 삼월의 바람 없는 햇볕이 온몸을 녹이는 듯하다. 시멘트 바닥에서 몸을 오그리고 있기를 거의 석 달이나 되었나? 철창을 나온 게 겨우 한 달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벌써 기억이 가물거린다. 짐승도 다니는 길만 다닌다던데 털보무당도 아는 것이 삼천포고 또 그저 인근 섬인지라 지전이라도 모으려 여기저기 헛간방이나 머슴방에서 사주관상 보다가 기어이 수소문하고 뒤쫓던 순경한테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가면 얼마나 가고 숨으면 또 얼마나 오래 숨을 것인가? 그놈의 아편 때문에 이번에는 아주 단단히 곤욕을 치렀다. 그나마 삼천포 읍장부인이 아니었으면 형을 살아도 한참을 더 살았을 것인데 다행히도 자신이 늘 그 집 운을 봐주고 오던 터라 부인이 여기저기 힘을 써준 탓에 그 지긋지긋한 감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감옥을 나오자마자 우선 삼천포를 떠났다. 감옥에서 나온 아편쟁이를 찾을 사람들이 없을 것 같기도 하였고 또 우선을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삼천포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그다지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들리는 말에는 “신을 모시는 사람은 그럴 수도 있다”느니 또는 “우리하고는 다른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느니 “아픈 사람들 대하다 보니 약에 손을 댈 수도 있다”하는 말도 한 다리 건너 들리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수중에 지닌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입장에 삼천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이 싫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이 핑계 저 핑계로 겨우 여비 몇 푼을 빌리자마자 그저 기차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그놈의 사기꾼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절간을 지키며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인데 하며 그 놈의 알싸한 냄새 나는 아편도 원망하고, 어둔해서 사기당한 자신도 원망하며 태봉까지 왔다.

 

-보살님. 서 계시지만 말고 우선 마루라도 올라 앉으이소-

무당이 정신없이 눈을 감고 서 있는 것이 이상했던 광수에미는 손님치레를 한다.

그제야 취했던 봄기운에서 깨어난 무당이 다시 한 번 휘 집안을 둘러보는데 마당 한쪽에서 지게를 만지작거리던 장서방과 눈이 마주치자 광수에미 쪽으로 고개를 돌려 피하고 -소향이가 우쨌다고?- 헛들은 말을 다시 묻는다.

-아파서 방에 누벘다고 안 했심니꺼? 먹은 기 잘못된 모양입니더-

무당은 대답 없이 소향이 방으로 가서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소향은 잠이 들었는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돌아누워 있다. 무당은 소향이 아무 인기척이 없자 그냥 문을 닫고 마루로 올라가며 -이집 아지매는 운제 오시는데?- 하고 무당의 고무신을 댓돌에 돌려놓는 광수에미에게 묻는다. 광수에미는 고개를 힐끗 돌려 마당의 장서방을 한 번 보고는 무당에게 나직이 말한다.

-이분 참에는 운제 오실지 모립니더. 소향이 아 설 때꺼정 안 오실 낍니더 아마도- 하고는 또 장서방을 본다.

 

털보무당은 지그시 고개를 들고 눈앞에 보이는 태봉의 아른거리는 양기를 한껏 호흡한다.

-삼짓날이모. 울매 안 남았제. 안방 아지매가 없으모… 누가 제를 준비하노? 내가 미리 이를 것이 한두 가지가 아인데?-

-행님이 없으이… 아무 케도 지가 해야 안 됩니꺼? 동네에서도 제물을 모우고 있을 낍니더. 해마다 재식이 아재가 들어서 다 합니더. 물론 종가에서 내는 돈이 젤로 많기는 해도- 

태봉제가 겨우 보름 정도 남았다. 삼월 삼짓날에 동네 들판 위에 솟아있는 태봉산에서 지내는 마을 호위신제다.

인근의 다른 마을들은 주로 정월이나 또는 이월에 별신제를 지내지만 이 마을은 삼국시대 후부터 별도로 삼짓날 태봉제를 지낸다. 있든 없든 마을사람들 모두가 태봉제에는 성심껏 보리쌀 한 됫박이든 좁쌀 한 홉이든 뭐든지 내놓는것 이다. 그리고 모든 각출과 진행은 마을의 종친 중에서 제일 연장자인 김재식이 주관하고 나머지 경비는 종가에서 부담하는지라 안방 큰아지매의 입김이 태봉제에는 절대적이다.

 

-광수 어머니. 해도 많이 남았고 지게도 고쳤으니 저녁 먹기 전에 힘이나 쓰고 올까 합니다-

장서방이 지게 한 쪽 멜빵을 어깨에 올리고 마당을 나서며 대청에 있는 두 여인에게 말하자

-오데 가는데예? 뭐할 끼 있습니꺼?-

머슴이라지만 광수에미는 장서방에게는 곱게만 말한다.

-노병구 집에 남자가 없으니 논에 거름 져낼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 집 아지매가 안됐지요. 해서 논에 거름이라도 져내줄 요량입니다. 다 이집 땅이니 이집 머슴이 해도 손해는 아니지요-

얼굴에 웃음기를 띄우고 하는 말과 함께 장서방이 대문 밖으로 나가자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털보무당은 속으로 참 잘생긴 머슴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집 머슴이제? 힘깨나 쓰겠네-

얼굴을 여전히 미동도 없이 태봉산을 보며 입만 움직이며 말하는 무당을 광수에미가 힐끗 보며

-머슴이긴 해도…. 이상한 머슴입니더. 아는 것도 많고… 암튼 이상합니더-

감옥에 들어앉아 있는 꾸루와이 때문에 집집마다 논에 거름을 져내고 농사 준비를 해도 노병구집은 이도 저도 못하는 처지를 알고 있던 장서방이 자처하고 간 것이다.

 

-그 뭐꼬? 전번에 같이 있던…. 그 뭐꼬? 요 샘 옆에 산다던? 그 집 여편네 말이다-

기억이 확실치 않은 무당은 지난번에 광수네 집에서 동네사람들 모아왔던 창호어마이의 이름이 선뜩 떠오르질 않아 어설피 묻는다.

-누구요? 창호어마이 말입니꺼?-

-그래! 그 댁! 집에 있나?-

어차피 행차를 했으니 춘삼월 운이라도 팔아볼 참인 무당이다.

-그 에팬네는 와 찾심니꺼?-

입이 금방 삐쭉해지는 광수에미다. 짧은 말 한마디에 철심이 꽂혀있는 것을 무당의 빠른 눈치가 모를 리 없다. 광수에미 쪽으로 얼굴을 돌려

-와? 무신 일이고?-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려대며 입을 씰룩거리는 꼴이 우습게 보이는 광수에미지만 자신은 모르고 있다.

-그 에팬네라모. 아예 지한데 말도 마이소. 아주 찢어죽일 년놈들이라예. 보살님은 모립니더. 소향이한테도 못할 짓 한 기 그년이고 또- 하고 나머지 말은 없이 끊는다. 창호아바이가 자기 오라버니를 작살냈다는 말은 할 수가 없는 탓이다.

-와? 무신 일인데 그케 샀노?-

궁금증이 무당의 몸을 광수에미 쪽으로 돌려놓는데 아래채 문이 열리며 소향이 부스스한 몰골로 나온다. 잠결에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보살님 오싰어예? 지는 모리고 자고 있었네예-

한쪽 눈을 아직 뜨지도 않은 채 고무신을 끌며 마루로 걸어오는 소향을 보던 무당은 눈이 갑자기 커진다. 겉저고리가 팽팽하게 밀려 올라간 모습, 얼굴이 부스스하게 부어있는 모습 그리고 엉덩이도 더 커져 보인다. 한동안 보지 못한 소향의 모습이 완연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니 마이 안됐나? 운제부터고?-

동그란 눈으로 묻는 무당의 질문에 예사롭게 소향은 대답한다.

-아침 묵고 체했심더. 누벘디만 인제 괘안네예-

두 눈을 비벼대며 소향은 무당의 모습을 보고 삼천포 편지가 떠오른다.

 

광수에미는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일어서서 -아이구, 보살님이 오싰는데 지가 말만 하니라 예태 그냥 있었네예. 시장하시지예?- 한다.

점심은 지난 지 한참이나 됐지만 사실 무당은 배가 고프지는 않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편기운도 다 가신 뒤라 이제는 홀가분한 기분이지만 여전히 맥은 없다.

-묵기도 싫다. 봄이 되놓이… 입맛도 없고. 술 있으모… 한 잔 도오-

무당은 광수에미를 떼어놓고 소향에게 할 말이 있다.

소향이 일어서며 -지가 가 오께예. 아지매는 앉아있으이소예- 한다.

-아이다. 내가 일났으이 니는 고마 앉아있거레이- 하고 광수에미가 정기로 가자 무당은 금방 자세를 소향이 가까이로 옮겨 작은 소리로 묻는다.

-니… 돈 가진 거 좀 있나? 내가 삼천포서 두 달이나 앓아누워 있다가 여 오니라고 여비만 챙기고 왔다. 내기 좀 채해도. 금방 돌리 줄끼다-

 

정기 쪽을 힐끗 보며 말하는 무당을 소향이 살펴본다. 정말로 자신이 알던 예전의 그 보살이 아니다. 동정에 새까맣게 묻은 때 꼬장물하며 어떻게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늘 입고 다니던 그 양단두루마기도 없다. 얼굴은 기름기라고는 전혀 없고 안 보이던 골도 이마 위에 그리고 입가에 패여 있다. 돈 꾸어주지 말라던 편지가 생각나지만 소향은 불쌍해 보이는 무당을 눈앞에 놓고 거짓말을 못한다.

 

-그랬어예? 우짜까예? 지는 가진 돈이라고는… 겨우 천원밖에 없는데예-

정말로 그게 소향이 가진 전부다. 꼬깃꼬깃 접어서 바느질통 밑에 감추어둔 것인데 태봉에 올 때부터 가지고 있던 돈이다.

-글나? 그거라도 도오. 내 금방 돌리 줄 끼다. 제도 올릴 끼고. 또 봄도 됐으이. 사람들도 모일 끼다. 인제 몸이 성하이- 하고 또 태봉산을 지긋이 바라본다. 소향이에게조차 구차한 변명을 해대는 자신이 한심한 것이다.

-맑은 술이 있어서 다행입니더. 보살님 드시기엔 딱입니더- 하고 호로병과 잔 그리고 김치사발이 올려져있는 소반을 들고 광수에미가 정기에서 나온다.

-케도 안주는 없심더. 이따 저녁도 잡숫고 가이소. 이리 오싰는데- 하며 술을 한 잔 따라 무당에게 건넨다. 무당은 없는 맥을 술기운이라도 빌려 차려볼 마음이다.

-됐다 고마. 술 한잔 하자는 기지 오데 안주 묵자꼬 하나?-

 

그사이 소향은 방으로 가서 돈을 꺼내왔다. 무당은 상을 밀쳐내며 광수에미에게 치우라는 듯

-잘 무웃다. 금방 기운이 솟네- 하고 입가를 손바닥으로 훔쳐대자 광수에미가 상을 들고 일어서며 -한 잔 더 하시지예- 하고 정기로 가자 무당은 광수에미의 등 뒤에 말을 하며 손은 소향이에게 내밀자 소향이도 손바닥에 잡고 있던 돈을 무당의 손에 쥐여준다.

-낮술 아이가. 그저 한 잔이모 됐제-

허리춤에 돈을 집어넣고는 댓돌에 놓인 신발을 신고 돌계단을 내려서는데 소향도 따라 내려오다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으며 얼굴을 감싼다.

-와? 와카노? 여태 속이 안 내려간 모양이제?-

입가에 침을 흘러내리며 고개를 든 소향이 -앵꼽네예- 하고는 욱하는 소리와 함께 도로 고개를 푹 숙인다.

 

한 발짝 대문 쪽으로 발을 옮기던 털보무당이 휘 돌아서서 아직 쪼그려있는 소향의 팔을 잡아채고 -이리 와본나- 하고는 다짜고짜 소향의 방으로 끌다시피 하며 들어가고 그 모양을 본 광수에미도 뒤따라가며 -니 여태 그 카나?- 하고 방에 같이 들어선다. 무당은 뒤따라오는 광수에미는 안중에도 없는 듯 소향을 앉혀놓고 마치 다그치듯 묻는다.

 

-니 달걸이가 운제 끝났노?-

 

소향이도 광수에미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비로소 뭔가 감이 잡힌다. 광수에미가 치마를 펄럭하고 쪼그려 앉으며 -그래! 경도가 비친 기 운제고? 우째 내는 그 생각을 못했제? 참!- 하고 쪼그려 앉은 다리를 퍼질러 앉으며 탄식조로 말한다.

 

-운제고?-

 

다시 묻는 무당의 말을 듣고서야 소향도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다. 평소에도 배가 아프면 오는가보다 할뿐 그저 오면 오고 안 오면 잊고 사는 게 처녀들 아닌가? 갑자기 자신을 앞에 앉혀놓고 물어대는 두 여자에 대해 부끄러워지는 소향이다. 몸을 모로 꼬며 억지로 생각해보지만 정말로 언제가 마지막 서답을 찬 날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잘 모리겠습니더- 하고 여전히 생각해 보지만 그동안 유치장 사건하며 설하며 정신없이 자나던 통에 달걸이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기억에 안 난다. 무당은 한 발짝 당겨 앉으며 - 니 배 아프나?- 하고 묻자 소향도 이상하게 배가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을 그제야 느낀다.

-언지예-

-카모… 뒷간 갈 맴도 없나?- 하고 또 묻는다.

소향도 이상하게도 배가 아프면 제일 먼저 가는 데가 뒷간인데 그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없어예- 하고 답하자 광수에미가 손뼉을 딱 치며 -맞네 맞아! 똥싯간 갈 생각도 없고 배도 안 아픈데 앵꼽으몬… 아 섰네 아 섰어!- 하고 고개를 좌우로 건들거린다.

 

무당은 조용히 고개 숙인 채 치맛자락만 만지작거리는 소향을 보다가 광수에미를 돌아보고 -케도 아직은 혹시라도 모르이… 며칠 더 기대리 보는 기… 쳇기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으이 말이다. 안 글나?- 하고 동의를 구하듯 말하자 이번에는 광수에미가 소향을 잠시 쳐다보다가 -그케 말입니더. 그럴 수도 있으이- 하고 말을 흐린다.

 

참으로 이상한 마음이 드는 광수에미다. 만일 정말로 아이가 들어섰다면 소향을 보면 반갑기도 하지만 또 한편 그동안 광수나 재수 중 누군가 종손이 되리란 기대도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 기대가 사라진다는 마음도 드는 것이 사실이라 입맛이 씁쓸하다

 

-우짜든지 몸조심하고…. 일도 함부로 하지 말아라-

무당은 마치 당부하듯 말하고는 소향의 손을 끌어 손등을 쓰다듬어주며 -내 가꾸마. 니는 나오지 말거래이. 카고- 고개를 돌려 광수에미를 보며

-니는 그 제 모신다는 양반하고 내하고 자리 하구로 전달하고. 한 삼일 후에 내가 올끼다. 제를 모시기 전에 내가 주문해야 할 기 많으이 말이다. 또 내기 물어볼 사람들 있으모… 그때 오라 카고- 사람들 모아놓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한다.

 

소향은 메스꺼움에 그대로 방에 누워버렸고 광수에미만 배웅하러 나갔다. 털보무당은 아까 광수에미가 입을 씰룩거리며 욕을 했던 창호어마이가 생각난다. 그 아낙도 지난번에 사람들을 제법 모아 오기도 했었다. 샘 옆이라 신덕의 석수네 집에 가기 전에 들러서 넌지시 사람들이라도 모아 놓으라고 당부할 참이다. 천천히 샘을 돌아 바로 옆에 붙은 대문도 없는 초라한 초가집을 들어서는데 머리가 산발된 배불뚝이가 햇볕을 쪼이느라 흙담 옆에 앉아있다.

 

아! 저 아이가 애비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했다는 그 못난 아이구나 하고 발을 멈추고 한참을 보지만 정작 을순이는 누가 자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배를 앞으로 내밀고 햇볕만 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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