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방 딸을 만나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90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3/30 [18:50]

장서방 딸을 만나다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90화

김담 | 입력 : 2015/03/30 [18:50]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동네 젊은이 주섭이 소달구지 위에 창호아바이를 싣고 마을로 돌아왔다. 겨우 숨만 쉴 뿐 의식이 없는 것은 의원이 말하기를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그렇다고,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으니 집에서 정신이 돌아오도록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괜히 병원에서 방 하나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의원으로서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람 두고 치료비를 말해봐야 귀에 들리지도 않고 또 듣는다 해도 고작 보리쌀 몇 되 들고 오는 게 그들의 형편이니 가망 없거나 시간을 오래 끌 환자는 그저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순경에게 악을 쓰며 문디짓이라고 말한 탓에 지서에서도 그쪽으로 조사를 아니 할 수 없다. 하지만 본 사람도 없다. 문둥이라고 할 만한 주위의 증거 또한 없는 입장에 함창지서에서 순경을 문디촌에 보내 조사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조사를 맡은 순경도 문디촌에 발을 들이는 것이 편치 않았고 왕신부를 면담할 때나 또 주위의 여러 문디 환자를 취조할 때는 거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내심 겁에 질려있었던 탓에 빈손으로 돌아왔다.

 

마을에서는 말도 많지만 그동안의 창호네가 안팎에서 했던 인정 없던 언행으로 사실 누구 하나 속 깊이 애석해 하는 사람도 없다.

 

소향은 장씨 아저씨가 떠난 후 아침상을 거의 코를 막고 치웠다.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도다리가 코끝에서 냄새를 피우는 탓에 생침만 꼴깍거릴 뿐 먹을 생각이 없고 벌써 그런 지가 한참이나 된 탓에 걸음걸이가 꼭 구름 위를 걷는 듯 허우적거릴 뿐만 아니라 손끝 마디마디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서면 앉고 앉으면 눕고 누우면 배를 깔고 엎어지고 만다.

 

-소향아, 방에 있나?- 

털보무당이 느지막이 종가를 찾아와 소향을 부른다. 태봉제를 마치고 마을 아낙들로부터 돈이 될 만한 신풀이 장사라도 해볼 요량이었지만 보릿고개가 닥친 형편에 어느 누구도 콩 한 쪼가리 들고 모이는 사람이 없어 그냥 신흥의 석수네에서 머물다 오늘 태봉제 모신 값을 받으러 왔다. 한시라도 빨리 주머니에 집어넣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돈이다 허공에 떠있는 동안은 누구의 돈도 아닌 탓에 마음이 안달이 나있는 무당이 우선은 소향을 찾는다.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른 채 기진하여 배를 깔고 엎드려있던 소향의 귀에 바로 문밖에서 부르는 무당의 목소리도 겨우 희미하게 들린다.

 

-예- 

대답은 하지만 몸을 움직이지도 않는 소향을 잠시 기다리던 무당은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무당은 고개도 가누지 않고 숨만 들썩거리는 소향을 보고 문고리를 잡은 채로 고개를 돌려 안채 댓돌 위를 본다. 검은 구두 한 켤레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집주인이 있구나 하고 소향의 방문을 닫고 대뜸 돌계단을 오르며 큰소리를 낸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에 이집 주인 계신가?- 

종가라고도 부르지 않고 영감이나 회장이라고도 부르지 않고 그저 주인이라고 부르는 무당의 마음은 그렇게 애쓰며 공들인 아이를 이 모양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 한심하고 한편 울화가 치밀어 올라서다.

 

기방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치렀는지 태봉제를 전후하여 두문불출하고 있던 태섭이 오늘도 구들을 지고 있다가 느닷없이 자기를 부르는 무당의 목소리를 듣고 윗몸을 일으켜 우선 하이칼라 머리를 쓸어 올리며 헛기침으로 들었노라 하고 무당에게 알리지만 말없이 옷을 챙긴 후에야 문을 열고 내다본다.

 

-아, 안방 아지매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을 낀데. 우째 얻은 아아라꼬, 저래 내삐둔단 말이오? 저카다 아고 뭐고 둘 다 잘못 되삐모 누구한테 원망할라꼬?-

 

미처 태섭이 인사말이라도 하려던 것을 제치고 먼저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무당은 다짜고짜 태섭의 방안으로 들어가 주저앉으며 담배부터 꺼내 불을 댕긴다. 태섭은 태섭대로 황당하게 행동하는 무당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로 성냥불을 흔들어 끈 무당 치마 앞에 재떨이를 밀어내주며 겨우 한마디 한다. 

-자초지종도 없이 무신 말인지-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니지만 무당의 당돌한 언행을 은근히 탓하는 것이다. 연기를 태섭이 면전도 피하지 않고 훅 불어낸 무당은 거의 태섭을 노려보는 듯한 눈으로

-소향이를 저래 놔둘 껍니꺼? 저카다가 삼신할매가 뺏어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짤라꼬?- 

말꼬리도 아예 잘라서 이제는 여느 아낙에게나 하는 말투다. 태섭은 무당의 태도에 기분이 좋지 않다. 한낱 무당 주제에 맘대로 행동하는 불학무식한 태도를 갈구자니 자신의 꼴이 우스워지고 또 그냥 있자니 더 우스워지고 있다. 또 헛기침만 한 후 시선을 열린 문밖으로 보낸다.

 

-그건 그렇고. 내도 바쁜 사람이라 기대릴 수만 없어서 왔소이다. 제 모신 값을 오늘 쳐주시모 해서리- 하고 담뱃불을 끄고 치마를 툭툭 털어대니 먼지가 푸석푸석 일어난다.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이고…. 아를 저리 그냥 뒀다가는 안됩니더. 내가 보이께네… 입치레도 지대로 안하는구만. 우짤라고 캅니꺼? 사나들은 내지를 줄만 알지 거둘 줄은 모른다고 하긴 합디다만 케도 그렇지 우째 얻은 알랍니꺼? 보기 안돼서 하는 말 아인교? 신경 좀 써주고 챙기주이소. 다 알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고 또 소향이 건사를 잘 해야 뱃속에 든 알라가 잘 될 끼 아입니꺼?- 

광수에미가 잘 챙겨주겠거니 하고 믿고만 있었는데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태섭은 쓴 입맛을 삼킨다.

 

-마실에 행사다 뭐다 카다 보이께네…. 그리 됐는 모양이네. 집사람도 오늘내일 내리올 끼고. 또 내 제수씨한테라도 당부하리다. 카고 그건 제관하신 태식이 행님이 알아서 하실 낀데-

그거라는 것은 돈을 말하는 것이다.

-보소, 내가 제를 모신 사람 아이요? 내보고 돈 받으러 여기저기 찾아다니라는 말인교? 그칼 수는 없는 일이지. 다 정성으로 하는 일인데 제값도 정성이지, 오데 빚 받듯이 받으러 찾아다닌다는 말인교?-

당당히 받을 테니 돈 들고 자기를 찾으라는 무당의 말이다. 태섭으로서는 따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밖에다 대고 불편한 심기를 보태 큰소리로 소향을 부른다.

 

-가는 와 부르요? 아가 죽은 듯이 늘어져있구만-

심통 맞은 무당의 소리를 들은 태섭이 아무 말 없이 일어서서 불편한 무당의 면전을 벗어나 대청으로 나와 담 너머 별채를 건너다본다. 혹시라도 태광이 있으면 무당을 그리 밀어내버릴 심산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광수에미가 별채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것뿐이다. 

-제수씨-

부르지만 습관처럼 목소리가 크지 않아 들리지가 않는다. 또 불러도 역시 광수에미는 못 듣고 하는 일만 하고 있는 모양인데 방안에 있던 무당은 갑갑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태섭이 대신 큰소리로 산천을 흔들듯이 부른다.

-제수씨!-

무당의 입에서 제수씨라니? 태섭이 돌아서서 무당을 본다. 비로소 광수에미가 담 너머로  눈길을 주자 태섭이 큰소리라고는 하지만 담 너머로는 겨우 들릴 만한 소리로 -좀 와보이소- 하고 그대로 마루에 서서 기다린다. 무당하고 한방에 있기 싫어서다. 

 

광수에미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무당이 대청으로 나서며 -아지매는 해도 너무 하지. 넘에 우에 있는 아를 우째 저래 두노?-

-아이구. 보살님 와계시네. 운제 오싰는교? 지는 날이 좋아 이불 빨래하려고 홑청 뜯어 햇빛에 널라카고 있었습니더. 쿤데? 소향이한테 무신 일이 있습니꺼?- 

무당은 대청에 걸터앉아 또 담배를 그어대며 -이 사람아, 꼭 무신 일이 있어야 있는 긴가? 있기 전에 챙기야 될 일이지. 저카다가 잘못될까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다. 무울 끼라도 옆에서 건사하고 해야지 그냥 내삐리 둘 끼 아이다-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광수에미는 대수롭게 한마디 한다.

-아이구… 보살님! 오데 아 밴 사람이 소향이 한 사람이라 캅디꺼? 다 그카고 넘어가고 합니더. 지금이 그런 때고 쪼매 지나모 다 괜찮을 낍니더. 쿤데 와예? 아주버님?-

 

태섭이 대충 설명하고 광수에미가 무당을 대동하여 별채로 간 후 비로소 태섭은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이제 장서방을 통하여 전갈을 했으니 마누라가 내려올 것이고 그러면 만사가 다 마누라의 지휘 아래에서 진행될 것이니 저런 무당쪼가리가 방안에 틀고 앉아 자신에게 마치 훈교하듯 하는 소리는 다시는 들을 일 없으리라. 다시 헛기침으로 마음을 바로잡은 후 문이 닫힌 소향의 방을 보다가 신을 신고 소향의 방을 향한다.

 

사방을 한번 돌아본 후 태섭이 조용히 이름을 부르며 방문을 열어 안을 보지만 소향이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엎어져있는 것을 보고 덜컥 걱정이 생긴다. 무심했던 자신이 기방에는 갈 줄을 알면서도 중하게 일구어놓은 자식농사는 돌보지 않았구나 하는 자책감으로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용히 문을 닫아주고 돌아서서 마누라가 오기 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하늘을 보고 생각해본다.

 

*   *   *

 

청량리에서 버스를 내린 장서방은 먼지부터 털어낸다. 봄흙이 차창을 통해 스며들어 온몸에 들러붙어 있다. 해는 이제 햇살만 겨우 남긴 채 모습은 보이지 않고 희끗희끗 불어대는 삼월바람이 허기진 육신을 제법 얼게 만든다. 한때 서울바닥을 손바닥 보듯 하며 다녔지만 요즘의 서울 모습은 그 시절과는 달리 시시가각으로 변해간다. 한결 차도 많고 집들도 많이 들어섰고 또 무엇보다도 그들의 차림새가 시골에서 올라온 자신과는 사뭇 달라져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서방은 주머니속의 주소쪽지를 생각하며 신당동이라면 남산을 둘러가야 하는데 청량리에서 지금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여 혜화동에 있는 누님집으로 간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길이지만 버스에서 쪼그려 앉아있던 것을 생각하고 다리라도 호강시킬 목적으로 터벅터벅 걸으며 지금쯤은 학교에서 돌아와 있을 홍희를 떠올린다.

 

그래, 지금 누님집에는 홍희 말고는 아무도 없으리라, 누님은 점방문을 닫은 후에나 집에 올 것이니 딸하고 얘기라도 나눌 것이라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운 납덩어리가 짓누르고 있는 듯하여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안암동을 지날 때 보성학교가 저만치 눈에 들어오자 만감이 교차한다. 아니지, 지금은 고려대학이지. 하지만 장서방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자신이 몸담고 청춘을 불살랐던 그 학교는 여전히 보성이다. 유난히도 소위 힘깨나 쓴다는 청년이 많았다. 그중 장서방도 씨름꾼 같은 장대한 몸을 가진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운명은 그에게 그렇게 쉽게 대로를 열어주지 않고 육신으로 하여금 지옥의 불구덩이를 뒹굴게 만들었고 정신적으로는 연옥의 방황을 곱씹게 했다.

 

눈을 질끈 감고 빨리 걸음을 재촉한다. 익숙한 뒷길이다. 이곳은 아직 변화의 바람이 미치지 못한 뒷전에 있는 탓일까? 해방 전에 있던 모습 그대로다. 혜화동에 들어서자 가슴이 뛴다. 사실 그동안 서울나들이를 할 때마다 그저 누님을 만나서 홍희의 근황이나 또 주변의 상황을 듣고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뿐 언젠가 숨어서 훔쳐보았던 홍희의 처녀 같은 모습만 생각날 뿐 딸의 목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누님의 돌봄이 지극하고 또 홍희도 잘 자라주어 여전에 다닐 만큼 신여성으로 변해가고 있다니 비록 자신이 도망자의 신세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온기도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누님의 집은 기와를 이은 대가다. 자신보다 대여섯 살이나 많은 누님은 서울의 제법 살림 넉넉한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자신이 보성을 다닐 때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신세를 지곤 했었지만 해방 후에 자형이 몸에 병이 들고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후 식솔들의 생계를 거의 누님이 혼자 도맡다시피 하던 중 자형이 폐병으로 죽고 나서부터는 아예 누님이 종로 근처에 음식점을 내고 조카들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서 해방 전에 장서방이 핏덩이에 가까운 두 살짜리 홍희를 맡기고 잠적해버린 후 찾아드는 형사나부랭이들을 따돌리고 온갖 협박과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누님은 홍희를 잘 키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한 번도 나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대문 앞에 선 장서방은 숨도 죽이며 어떻게 불러볼까 생각하다가 바로 대문 옆에 달린 방에 불빛이 있는 것을 보고는 대문을 두드리며 입은 그쪽 방을 향해 부른다.

 

-계시오? 계십니까?-

두어 번 대문을 주먹으로 치자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이어 되묻는 홍희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장서방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잠시 뜸을 드린 후 목청을 털고 -홍희냐?- 하고 이름을 불러준다. 이름을 부르면 경계심을 늦출 것이라는 느낌에서다.

 

아무 답 없이 서두르는 듯 큰 나무대문의 한쪽이 안으로 열린다. 그리고는 어두운 곳이지만 금방 알 수 있는 자태를 드러내며 홍희는 -아버지?- 신기하게도 놀랍게도 바로 아버지라고 묻는 홍희다. 혈육이어서일까? 두 살 때 헤어진 후 상면하는 것은 처음이다. 홍희는 가끔씩 찾아와주는 삼촌들, 바로 장서방의 학생시절 친구들 때문에 그리고 고모가 종종 들려주던 정 많다는 아버지 얘기 때문에 그저 상상만으로 아버지를 그릴 수 있을 뿐 실상 기억에는 없다.

 

장서방은 목이 메지만 애써 목청을 훑어내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를 않는다. 홍희는 또 한 번 -아버지 아니세요?- 하고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대문을 잡고 있던 손을 모아 얼굴에 댄다. 

-잘 있었냐? 그래. 못난 애비다. 홍희야-

 

움직이지도 않고 그냥 선 채로 홍희를 바라보며 겨우 첫마디를 한 장서방은 홍희의 반응을 살핀다. 사실 두렵기도 하다. 애비로서 자식에게 준 그 긴 고통의 시간 때문에 홍희가 원망을 토한다 한들 자신이 변명할 수 있는 떳떳한 입지가 아니기 때문에 두렵기도 한 것이다. 여전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홍희는 조용히 옆으로 비켜나며 장서방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내준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이렇게 내놓고 누님집을 드나들지 못하던 장서방이지만 요즘은 자신을 추적하는 순경들이 없다는 것을 귀뜸 받아서 온 것이다. 그래도 홍희는 대문 밖을 한번 힐끗 내다보고는 문을 걸어 잠근다.

 

홍희가 먼저 앞서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간에 비켜서 있자 장서방이 방안으로 들어선다. 백열등이 천장에 달려있어 훤하게 홍희가 보인다. 여전히 그때 그 모습이다. 귀밑까지 출렁거리는 머리하며 동그란 눈이 말하듯 청명한 마음을 가졌다고 누님이 그랬다.

 

전기불 아래서 비로소 보이는 홍희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흘러넘친다. 장서방은 두 손으로 홍희의 팔을 잡자 자신도 모르게 꽉 움켜잡는다. 홍희는 털썩 주저앉고 장서방도 따라 앉는다. 읍소하듯 홍희는 무언가 말하지만 울음에 뒤엉켜 장서방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기다린다. 장서방은 홍희가 울고 있는 것을 말리고 싶지 않다. 오히려 자신도 울만한 사정이건만 아까 메인 목이 전부이고 이제는 홍희의 울음을 들으며 마음이 한결 놓인다. 자신에게 철천지 원한쯤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서일까? 장서방은 마음이 차츰 편안해진다.

 

-고모님은 몇 시쯤 들어오시나?-

우는 딸 옆에서 그냥 있자니 침묵이 어설퍼서 묻는다. 그러나 홍희는 대답 없이 계속 어께만 들썩거린다.

-장근이는 군대에 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누님의 외아들을 묻는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