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여성, 목소리들>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그런 애들’이 있다. ‘그런 애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집에서 자지도 않는다. 또래끼리 몰려다니며 쑥덕거리고 일을 저지른다. 조건만남을 하고 성매매를 해서 돈을 번다. ‘여자애’라고 말할 때 관습적으로 떠오르는 울타리가 그 애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 애들이 사실대로 말할까요?” 도와주겠다는 어른들은 그런 의구심부터 품는다. “그런 애들 말을 어떻게 믿어요?” 경찰도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 ‘그런 애들’이라고 일단 찍히면 인권 같은 것 누릴 자격이 없게 여겨진다. 불쌍하기 그지없는 애들이 되거나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가출을 해 길에서 생존해야 하는 청소녀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들여다볼 생각보다는 어떤 틀로 판단할지부터 정한다. 동정이나 두려움이라는 프레임으로 청소녀들을 보게 되면 실제 일어난 일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처한 삶의 현실이 자신들의 삶과 닿아 있다는 생각은 더더군다나 들지 않는다.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김고연주, 이후, 2011). 이 책의 장점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드러내는 데 있다. 오염된 언어에 기대지 않고, 일어난 사실과 맥락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런 애들’이라는 말에 의지하지 않고 ‘조금 다른 아이들’이 겪는 경험을 냉철하게 드러낸다.
그것이 이유 있는 행동이며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기에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전한다. 그 말은 누구든, 그 현실 상황 속에서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맞닥뜨릴 궁지라는 것이며 조금 다른 아이들이 엇비슷하게 살아야 하는 거리의 삶은, 현실의 조건을 사람들이 바꾸어내지 않는 한, 누구든 그러한 경로로 생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떤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서 성매매를 하게 되는지를 살피지 않고 이들이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것을 ‘선택’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성적 자기 결정권의 행사로 의미화하는 것은 지나친 왜곡이다. 다양한 상황적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 선택이 있을 수 없고, 한 가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상황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공유되고 있는 오늘날, 그러한 맥락들을 삭제해 버리는 것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폐해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다.
또한 상황적 맥락들을 차치한 채 성매매 현장에만 천착한다 하더라도 성매매 여성이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강요받게 된다는 점에서 성매매는 자기 결정권의 행사가 될 수 없다. 성매매가 성적 자기 결정권의 행사, 또는 자신의 선택이라는 주장은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맥락을 삭제한 채 자율적인 개인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와 성매매 선택론은 매우 닮아 있다. (…)
청소년 성매매는 젠더(성)와 연령(십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다층적인 사회적 모순을 끌어안고 있다. 젠더 권력과 나이 권력의 문제, 그리고 여기에 더해 계급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청소년 성매매 문제를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들어가는 글, ‘무서운 아이와 불쌍한 아이에서’
저자는 집을 나온 아이들이 거리의 생존 법칙에 어떻게 적응하게 되는지, 십대의 섹슈얼리티를 사회가 어떻게 대하고 그녀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지 드러낸다. 그것은 ‘일탈’이 ‘일상’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1990년대 말 ‘원조교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청소년 성매매는 현재 ‘조건만남’의 성매매로 변했고, ‘원조교제’의 유사 연애적 성격이 지워지며 ‘조건만남’을 할 때 청소년들은 더 큰 위험을 무릅쓰게 되었다. 이들은 안전을 위해 ‘포주’에게 돈을 갈취당하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청소년 일자리가 제대로 없고 학력이라는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는 것은 ‘감수해야 하지만 너무 가혹한’ 일이 된다. 십대라는 이유로 이들은 성매매에 대해 사회적 낙인을 받고 이는 경찰 조사나 가족과의 만남에서, 학업 복귀에서 또다시 받게 되는 공격의 원인이 된다. 보호가 아니라 처벌을, 성 구매 남성보다 더 과중한 벌을 받으며, 법이 보호하지 않는 인권의 자리에 놓인다.
평범한 십대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크다.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들에게 가족은 유일한 자원이 되며, 이마저 없을 때 부족한 쉼터를 찾아다니며, 생계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어떻게든 학력이라는 자격을 성취하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결혼을 통해 아이를 낳고 안정된 삶을 꾸리는 것, 원하는 대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는 것, 공부하고 버텨내고 졸업장을 따고, 모욕을 참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
가시화되지 않는 모습까지 이 책은 추적한다. 한 사람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가 그려놓은 지도, 분배되지 않은 자원들 속에서 사람들은 길을 가는 것이다. 그 지도를 보라고, 그것이 얼마나 협소하고 치우쳐 있고 비인간적인 것인지 보라고 이들은 한껏 외치고 있는 것이다.
“진짜 제가 뭘 해서라도 그 일이 기억에서 없어지면요, 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걸 생각하기도 싫고요, 그 일이 있었다는 자체가 진짜 싫어요. 괴로워요, 막. 그런 생각할 때마다. 일하는 애들을. 병 걸린 애들이 많더라고요. 그건 일이 아니고 진짜 막말로 해서 개돼지처럼 부려 먹는 거지. 그게 어떻게 사람이 할 일인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애들도 돈을 받지만, 그 일을 시키는 그 사람한테도 돈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도 돈을 목적으로 하는 거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 대우를 잘 못 받죠. 돈에 안 미친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세상에. 돈 좋아하잖아요. 돈을 위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그 일은 정말 할 짓이 안 돼요, 할 짓이.(…)
제가요, 사실 작년에 우울증이 있었거든요. 혼자 살고 그런 일을 하다 보니까 자책감 그런 거에 너무 시달려서요. 그 때 한 10킬로 15킬로 빠졌던 것 같아요. 요즘은 집에서도 가끔 되게 슬퍼요. 이유 없이 눈물도 나고요. 가슴이 막 되게 답답해요. 진짜 이렇게 막혀 있는 느낌 있잖아요.” -128p, 새롬(17세)이와 나눈 대화에서
돈이 되면 사람으로서 아니라 ‘개돼지처럼 부려먹어도’ 당연히 여겨지는 세상에서, 돈에 미치는 것이 상식이 되는 세상에서, 돈으로 바꿔줄 것은 네 몸밖에 없다고 거들먹거리는 세상의 안팎에서 그들은 살아내야 한다. 비틀거리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살펴야 하고, 우울 속에서도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 또한 한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석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조차 사람들은 얼마나 용감하게 살아내려고 애쓰는지 모른다.
거리에서 성매매를 한 것은 아이들의 삶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든 ‘현재’가 중요하고 ‘지금’이 자신의 유일한 시간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금’을 보라고, 잘 살 수 있도록 부디 함께 응원해달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거듭하며 연결되어 있고 서로 환경을 바꾸어내며 그 애쓴 시간을 물려줄 수 있어서 다른 삶들이 가능해진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러나 과거를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프고 우리의 무력함과 비겁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결국 해석은 학문적인 분석과 지식의 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사랑과 믿음에서 나온다. 열 명의 인터뷰를 해석하면서 저자가 보이는 날카로운 직관과 성찰은 깊은 애정을 품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은 흩어진 사실 속의 숨겨진 의미들,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 속의 맥락들을,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 듯 악착같이 드러내고 이어내는 저자의 노력 때문이다.
그 노력 속에, ‘조금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는 평등한 목소리로서, 특별할 것이 없이 분투하는, 삶의 이야기가 사회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응원을 다급하게 촉구하는 전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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