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나락 걷는 가을걷이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10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8/29 [17:31]

빈 나락 걷는 가을걷이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10화

김담 | 입력 : 2015/08/29 [17:31]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태광은 하루 종일 지붕을 고치고 담을 쌓느라 몸이 지쳤다. 뒷짐 지고 소작들이 몸놀림 하는 것을 타박이나 해보았지 자신이 모든 것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살림이 나면 그저 모든 것이 술술 실타래 풀릴 줄 알았는데 풀 한 포기도 자신의 손이 아니면 없어지지 않고 말 한마디로 되던 농사일이 이제는 자신의 육신을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광수와 재수도 태풍으로 학교도 휴교되는 바람에 아버지를 도와 집안일을 하루 종일 하였다. 지친 식구들은 광수에미가 어설픈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방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잠에 빠졌다.

 

그러나 광수에미는 잠이 오지 않는다. 분가하기 전 종갓집 며느리 행세할 때는 비록 열쇠는 없었지만 곡간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인양 옹색한 살림을 살아보지 않았는데 막상 태풍이 지나고나니 옆으로 누워버린 들판을 보며 하늘이 노랗게 느껴진다. 가을걷이만 끝나면 수중에 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믿었고 쌀말이라도 내다 팔면 자신도 옷도 한 벌 차려입을 수 있다고 여유롭게 생각했었는데 지금 두지에 먹을 양식도 없어 저녁에 감자를 넣고 국수로 밥도 죽도 아닌 어설픈 끼니를 내놓았다. 땅마지기 내준다고 했을 때 깊은 생각 없이 그저 좋아하기만 했던 자신이 경솔했다고 느껴지지만 자고 있는 서방과 아이들을 보면서 절로 한숨이 나오는 지금 막연히 옛 생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 당장 식구들 입치레뿐만 아니라 겨울을 나고 내년 가을까지 버틸 생활이 아득하기만 하다. 큰집에 손을 벌릴 수도 있지만 눈에 어른거리는 모멸 찬 안방여자의 얼굴이 생각을 접게 만든다. 어떻게 하나? 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냥 뒤로 벌렁 누워버린다. 세상을 이겨내기에는 태풍도 식구도 또 물러터진 서방도 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친정에는 아무 일이 없는지 알 길이 없다. 사람의 발로는 한나절 거리지만 바람의 속도로는 그저 깜짝할 순간의 거리에 있으니 필경 풍양에도 바람 난리를 겪었을 텐데. 마음만 탈뿐 광수에미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끈적거리는 공기 속에서 세상은 잠이 든다.

 

나룻배에 가득 실린 소금이며 보리쌀 그리고 옹기단지와 여러 생활품들로 물이 뱃전에 찰랑거리지만 물길에 이력이 난 선주는 아랑곳없이 노를 저어댄다. 이미 수차례 태우와 번갈아가면서 노를 젖고 있지만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 얼마 가지 못해 기운이 빠진다.

-어이 자네, 노 좀 받게!-

태우도 겨우 숨을 고르는 중이었는데 벌써 다시 노를 잡으라는 선주의 말에 없는 기운이 더 빠지는 태우다. 태우 역시 선달 노릇하며 평생을 손발 대신 입으로만 살아왔지만 이번 태풍으로 자신의 집뿐 아니라 아예 온 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꾸루와이의 집도 빼꼼거려보았고 여기저기 얻어먹거나 몸을 기댈 곳을 엿보고 다녔지만 바람의 참상은 어디에도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전에 알고 지내던 계집막 선착장에 들락거리던 선주의 권고를 받아들여 목구멍에 거미줄이라도 걷어낼 요량이었다. 구미에서부터 상주를 거쳐 퇴강, 그리고 멀게는 안동까지 가는 뱃길이다. 

태풍으로 길이란 길은 다 끊어지고 다리란 다리는 다 떠내려간 마당이라 오직 뱃길만이 물자를 자유롭게 실어나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선주는 노 젖는 일에 경험이 없는 태우에게 이제 겨우 이틀째 노를 가르치고 있을 뿐 실은 짐을 내리거나 싣는데 필요해서 배에 태운 것이다.

 

-지는 젖어대도 배가 안 나갑니더. 힘만 빠지고-

뱃전에 길게 몸을 뻗고 숨을 헐떡거리던 태우가 자신이 없다고 말하자 노를 자유자제로 젖는 선주는 곱지 않은 눈으로 태우를 노려본다.

-안 나가더래도 거꾸로 떠내려가지만 않아도 되지. 하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부터 하나? 자네는? 그래가 이 세상을 우째 살라꼬? 나이는 들어가?-

나이 타박까지 나오자 태우는 화가 치민다. 계집막에서 낙동강 나루터에 들락거리는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어머니도 자신도 목줄을 대고 살아오면서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양반의 씨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었지만 천성이 술잔 돌리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손에 흙 묻히는 일은 하지 않았고 입 하나로 없는 일도 꾸며 일거리를 만들고 좋은 사이도 싸움으로 만들어 화해시킨 후 공치사 받고 그러고도 모자라면 태봉 영감이 남긴 땅을 팔아먹으면서 건달 아니면 선달로 산 태우다.

나이가 사십이 가까워 오지만 계집막에서 숱하게 여자는 품었어도 아직도 마땅히 마누라감으로 들여앉힌 여자는 없다. 어느 여자가 땅마지기도 다 팔아먹고 빈 쭉정이가 된 태우에게 마누라노릇을 자청하겠는가? 그것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태우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나마 자신에게 밥해주고 지전이라도 쥐어주던 엄마가 죽고 나서는 슬슬 느낌이 오기 시작했었는데 오늘 그 나이타령을 듣는다. 그것도 뱃놈에게서 말이다. 

-뭐요? 아! 안 해본 일이라 하는 말인데 그따 왜 나이는 붙이는교?-

-사람이 태나서부터 잘하는 인간은 없는 법! 하다보민사 다 요령이 생긴다. 퍼떡 노 받게나!-

 

뱃전에 휘 둘러앉은 사람들이 둘을 번갈아보자 태우는 별 수 없이 일어나서 기우뚱거리는 뱃전을 손으로 잡아가며 뒷전으로가 노를 건네받으면서도 뱃놈으로부터 말을 들어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스럽다. 그런데 더 한스러운 것은 손에 잡힌 노가 물살을 가르기는커녕 물살에 밀려 허적대는 것이다. 노깃이 물위에서 허우적거리고 노가 놋좆에서 빠져 놋줄이 아니었으면 물에 쓸려갈 뻔 한다.

그것을 쳐다보며 담배를 뻐끔거리던 수염 덥수록한 한 남정네가 웃으면서 한마디 한다.

-좆을 구멍에 단디 꼽아야지 자꾸만 빼내모 우짠다 말인가? 일이 제대로 될 일이 없제- 하자 주위의 몇몇은 박장대소를 한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젖 먹은 힘까지 써대는 태우에게는 염장 지르는 소리지만 장사꾼들 눈에 비친 태우의 노 젓는 솜씨는 자라 등를 핥아대며 먹을 줄 모르는 고양이 같은 모양이라 우습기 그지없다.

 

배가 뒤로 밀리기 시작하자 참다못한 선주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피우던 담배를 물속에 집어던지고 노를 빼앗아 든다. 그저께 구미로 내려갈 때는 물론 배도 비어있었지만 처음으로 해보는 노질도 시키는 대로 저을만 했었다. 심지어는 한 손으로 거들먹거리기도 했었는데 오늘 알고 보니 그것은 모두 내림물살 탓이었다. 배를 몰기는커녕 겨우 허우적거리기만 했을 뿐인데도 숨이 턱에 찬 태우가 한쪽으로가 털썩 엉덩이를 소금가마 위에 떨구고 숨을 헐떡대는데 선주와 아까 웃으며 농을 내놓았던 수염쟁이와의 말소리가 들린다.

-오데서 저런 사람을 구했는교?-

-사람이야 많지만 그래도 사정을 하고 또 안면도 있고 해서리 데리고 왔디만 영…-

선주가 나머지 말은 잘라내 버린다.

-내 딱 보이께네. 농사도 한번 지본 사람이 아닌데… 뱃일을 우째 한다고-

뱃일이 농사보다 더 힘들고 험하다는 수염 달린 자의 말이다.

-그래도 양반이라고 손에 흙 안 묻히고 살아노이께네-

비록 물을 거슬러가는 중이지만 선주가 배를 젓자 배는 기우뚱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태우도 느낀다. 이미 수십 년째 낙동강을 오르내리면서 계집막을 들락거리던 선주는 태우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양반요? 요세도 그런 거 따지고 삽니꺼?- 하고 이번에는 다른 남정네가 빈정대자 선주는 -함창뜰에서 만석꾼 금령 김씨 집안 하모 모리는 사람 없지! 그래도 그집 아들 아인교!-  한다.

태우는 자기 근본을 들추어내는 것에는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선주의 “그래도” 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그러자 뱃전에 쭉 걸터 앉아있던 사람 중 하나가 -어이? 그래요?- 하면서 태우를 쳐다본다. 태우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 있던 차라 자신을 쳐다보는 남정네의 눈과 마주쳤다. 그자는 흔들거리는 배를 지탱하며 한 발짝 태우에게 다가오더니 -우리동네에 그 집하고 사돈되는 사람이 사는데- 하고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태우 앞에 앉는다. 태우는 순간 사돈? 그러면 큰 형수? 아니지! 큰형수는 한양사람이라 했으니. 그럼 곰탱이 형수? 그래! 맞다. 인근 어느 먼 지역에서 시집왔다고 했었다.

-어느 동네요? 그 사돈이라는….-

태우가 남정네에게 묻자 남자는 아주 쉬운 듯 손을 들고 멀리 가리키며 -조조… 산모퉁이 돌민 풍양 아인교? 그요- 라고 한다.

 

낙동강을 지나는 배는 아직 풍양까지는 한참이나 남았지만 배를 늘 타온 그들에게는 안동에서 구미 정도는 모두 모퉁이에 있거나 바로 저기라고 한다. 물론 태우도 들은바 있는 멀지 않은 곳임을 안다. 거리로 치면 멀지는 않지만 낙동강이 가로막고 있는 바람에 주로 그쪽 예천지역에서 배를 타고 함창이나 상주로 오기는 해도 이쪽에서 예천 쪽으로 건너가는 일은 드물어서 태우가 가본 적은 없는 곳이다.

자신을 논둑에서 밀어붙이기도 하고 시동생 취급을 한 번도 해주지 않은 곰탱이 형수다. 허리가 절구통 같고 팔뚝만 해도 태우의 허벅지같이 굵어 태우를 논바닥으로 벌렁 밀어붙일 때 느꼈던 그 힘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사돈댁은 우떤 집안이요?-

나이로 치면 태우보다 그저 한두 살이나 많을까 하여 태우는 하소를 하며 묻자 남자는 의아한 듯한 눈으로 태우를 보더니 -사돈이라 카민서 집안도 모린단 말인교?- 한다.

 

온 동네 남자들이 바지를 걷어붙이고 논으로 나섰다. 진흙 속에 묻힌 벼를 세워서 영글기를 기대할 수는 없어서 그냥 베어내어 싸래기라도 얻어 보려는 것이다. 여름 내내 먹던 감자며 옥수수 그리고 국수가 이제는 결코 낭비하거나 함부로 먹어치울 수 없는 유일한 남아있는 먹거리다. 아낙들은 신명나지 않는 광주리를 이고 그래도 논으로 들로 나선다. 참이나 점심을 먹는 남자들도 그것을 내다주는 아낙들도 숟가락질할 때마다 한숨이 배어나온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다가올 한겨울을 어떻게 나느냐가 그들 모두의 걱정이다.

 

태섭도 올해 소작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짚단마저도 썩어나가는 통에 무슨 알곡타령을 할 수 있으랴! 참의원 선거가 이제 코앞인데 소작들에게 원성 들을 일을 할 수도 없다. 그러고 신흥땅 판 돈도 다 거덜났다. 태풍 때문에 들어올 돈도 없어졌다.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지! 그동안 들인 공이 얼만데!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겠다 싶은 태섭은 목침을 치우고 일어나 헛기침을 하며 정좌를 하고 문밖 동정을 살핀다. 마누라의 동정을 살피지만 닫혀있는 안방 문 속의 마누라를 어떻게 살핀단 말인가? 무얼 하는지 정기에서 떨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 소향이만 무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태섭은 문을 열고 헛기침을 한 번 더 한 후에 -임자, 내 좀 보세- 하고 부른다.

 

그러나 아무 기척이 없자 다시 조금 큰 목소리로 부르고자 하는데 안방문이 열리더니 마누라가 나온다. 마누라 특유의 미운 짓이다. 들었어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행하는 행동이다.

-내 좀 보게나-

그래도 방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하는 태섭은 약자로서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누라는 대답도 없이 그저 태섭을 한 번 볼뿐 광으로 발길을 옮기더니 문을 연후 정기에 있는 소향을 부른다.

-여기 있는 곡식들 전부 마당에 펴 널어라-

며칠 전 장서방을 옹호하면서 큰아지매한테 대들듯한 소향에게 이후 큰아지매의 말투나 눈매가 곱지 않는 중이다.

그러나 소향도 그 일로 인해 큰아지매에게 특별히 고할 만큼의 죄도 없다고 여겨져 그냥 버티고 있는 중이다. 소향의 마음속에는 장서방을 그리도 쉽게 순경에게 내줄 수 있다는 종가사람들의 생각이 미워 큰아지매의 말에 대답도 없이 뒷단으로 멍석을 들고 내려간다. 큰아지매는 태섭의 방에 들어가 윗목에 치마를 내리고 앉아 태섭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묻는다.

-무슨 일입니까?-

땅 판 돈을 다 써버린 태섭은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더 마련해야만 선거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 구월도 다 가고. 울매 안 있으모… 신년인데. 참의원 선거가 코앞이오-

말을 하면서도 게 눈질로 마누라의 동정을 살핀다. 꼼작하지도 않은 채로 태섭의 말을 듣고 있는 마누라는 아무 말이 없다. 말을 계속하라는 것이다.

-케서… 자금이 좀 더 있어야- 하고 다음 말을 잇지 못한 채 마누라의 얼굴만 쳐다본다. 큰아지매는 아주 나직하지만 긴 한숨을 내쉰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도 나약한 서방이 어떻게 그 선거를 이길 수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태풍 때문에 올해 농사는 폐작이고 신흥땅도 다 처분했습니다. 선거에 필요한 자금이 얼마이고 또 승산은 얼마나 있는 선거입니까?-

하늘도 땅도 귀신도 모른다는 선거승산을 묻는 마누라에게 태섭은 할 말이 없지만 여기서 어물쩍댈 수는 없는 일이다.

-승산? 그기야… 인근에 내가 그동안 운동해놓은 기 많아서리. 종친뿐만 아이고… 여러 문중과도 이미 말을 맞춰놨고. 청년회나 재향군인회 그리고 농민회에다 조합원들까지 다 운동해놨다 아인교!-

그러나 자신 있다는 말은 없다.

큰아지매는 고개를 숙여 생각해본다. 여기서 그만 두랄 수도 없다. 남자가 하는 일이라 여자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일이다. 흉년이 들었고 돈을 요구하는 서방의 속내는 또 땅마지기라도 팔자는 것이다. 하긴 땅 좀 판다고 흔적이 남는 것도 아니니 귀퉁이 몇 조각 팔 수는 있다. 그러나 대책 없고 막연히 대들고 있는 서방의 선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때 문밖에서 난리라도 난듯 목청크게 지르는 광수에미의 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야야! 니 지금 뭐 하노?-

두루마리 멍석이 너무 무거워 질질 끌며 끙끙대는 소향을 본 광수에미는 배가 남산만한 소향에게 나무라는 큰소리와 함께 멍석을 빼앗아 든다.

-지금 니가 이런 무거운 거 들다가 큰 일 난데이! 우짤라고! 행임요. 안에 계십니꺼?- 하고 멍석을 마당에 내다깔면서 큰아지매를 부른다. 소향은 광수에미의 어깨를 손으로 치며 자제하라는 듯하지만 광수에미는 더 큰소리로 부른다.

-다 키운 아를 이 카다가 우찌 되모 우짤라 캅니꺼?-

기어이 큰아지매가 나온다. 마당의 광경을 본 큰아지매는 무슨 일인지 순간에 다 알아챈다.

-장서방은 어디 있나?-

오히려 소향에게 역정을 내는 듯하다. 소향인들 장서방이 일일이 고하고 나다니는 것이 아닌데 알 리가 만무해 큰 눈만 껌벅거리며 말을 못한다.

-장씨는 논에 나가 나락 비는 거 보고 있심더. 피농은 했지만 할 건 해야 안 됩니꺼?-

큰아지매도 마땅히 나무랄 일도 또 누굴 나무랄 수도 없어지자 광수에미에게 이른다.

-자네, 나랑 같이 광에 있는 거 좀 내다 널게. 멍석이 그거 하나로는 안 될 걸세. 하나 더 내오고-

결국 모든 일이 자신에게 떨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 광수에미는 어이가 없지만 일단은 말을 듣는다. 다 이유가 있어서다. 쌀말이라도 빌리자면 저 얼음장 같은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데 일단은 말을 들어주고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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