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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출장, 이주노동, 어학연수, 유학, 국제결혼, 이민 등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많은 이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다>는 지구화 시대를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주’의 감수성을 들어봅니다.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과테말라의 전통음식 니시따말을 만들며
과테말라에서 보낸 마지막 해에는 식사 대접을 정말 많이 했다. 나에게 많은 것들을 베풀어준 이들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한국식 레시피의 식재료들은 셸라에서 거의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대체할 식재료를 구하는 것은 어렵다기보다 흥미로운 과제였다.
특별한 날에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추석에는 쌀을 믹서에 돌려 가루를 내어 송편을 만들고 동지에는 팥죽을 끓이고 설날에는 떡국 대신 만두국을 끓였다. 또, 믹서로 고춧가루를 만들어 양배추 김치를 담가 나를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맛보게 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내 음식을 좋아했다. 물론 비빔밥이든 불고기덮밥이든 김밥이든 빈대떡이든 무조건 또르띠아와 함께 내야 하는 경우가 많긴 했다.
여럿이 함께 사는 집이었기 때문에 열 명, 이십 명 이상의 사람들을 초대하여 함께 파티를 치르는 일도 잦았다. 여럿이 요리를 함께 준비하여 나눠 먹는 포트럭 파티도 자주 벌였다. 넓은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거나, 아니 모닥불이 없더라도 여럿이서 글로벌한 식단이나 국적 불명의 요리들을 즐기며 웃고 떠들고 주방을 뛰어다니던 것은, 내가 그리워하는 셸라의 풍광 중 하나이다.
셸라의 외국인들은 그런 식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지지해주었다. 그들 대부분은 낯선 땅에서 몇 개월이든 몇 년이든 새로운 삶을 용기 있게 시도하고자 셸라에 모여든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비축해온 보이는, 보이지 않는 자기 자산들을 가지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 터전을 일구어가는 이들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올 땐 자연스레 파도를 타듯 자신의 삶을 내맡길 줄 알았다. 이렇게 함께 모여 음식과 수다를 나눌 친구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두려움도 외로움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내 요리의 클라이맥스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니시따말(Nixtamal)이었다고 답하리라. 말린 옥수수를 직접 구입해 그것을 장작불에 끓이고 식히고 갈아 만든 반죽이 니시따말이다. 웬만한 과테말라인들도 시도하지 않는 그 전통적 노동을 보조자로서가 아니라 내 힘으로 스스로 해보는 게 오랜 소원이었는데, 뜻이 맞는 동반자를 마지막 해에 드디어 이웃으로 만난 것이다. 우리는 니시따말을 만들어 옥수수잎에 채워 다시 장작불로 쪄서 수십 개의 따말을 만들었고, 과테말라인 친구들과 외국인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이웃끼리 눈인사도 않는 한국사람들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수십 배로 늘어난 커피숍의 숫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커피숍에 앉아 마셔본 과테말라 커피의 맛에 더욱 깜짝 놀랐다. 과테말라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고급스럽고 정교한 맛의 커피는 그곳에 없다. 원주민들이 자기 손으로 재배한 최상급의 커피원두는 대부분 외국으로 수출된다.
“나는 한국에서의 네 삶을 비난하지 않아. 단지 네가 지금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런데 앙헬이 준 초콜릿과 멕시코에서 보내줬다는 또르띠아는 도대체 언제까지 보관만 할 셈이야?”
2년 전에 과테말라에서 니시따말을 함께 만들었던 동반자인 영국인 남자 벤과 여기 한국에서 함께 산 지 6개월이 넘었다. 벤은 한 건물에서 살면서도 이웃들끼리 포옹이나 악수는커녕 눈인사도 하지 않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건물 옥상을 주인이 개방만 한다면 여러 가지 함께하는 액티비티가 가능할 테고, 식사 초대를 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간단한 야채 같은 것들을 충분히 기를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그가 한국에서 오래 살기는 힘들 것 같다. 매일 홍대역에서 화정역까지 한 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출근하고 다시 한 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퇴근하는 벤은 남대문시장에 데려다놔도 지루하다고 하품을 한다. 물건을 사고 밖에서 돈 쓰는 것에 흥미가 없는 데다가, 파트너는 허구한 날 랩탑 앞에서 일만 하고 있으니 얼마나 그의 서울생활이 험난할 것인가.
내가 태어난 땅의 지혜와 빛을 배우고 싶다
사십을 타지에서 넘기고 돌아온 내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직면한 사실은, 내가 중요한 성장 과정을 놓쳤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테말라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을 이루었고 그것은 한국에서 내가 성취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 여겨왔다.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단지 내가 간과한 것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만 겪어낼 수 있는 성장의 통과의례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자라난 고유한 공간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심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마치 냉동실에서 6년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귀국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를 덮쳐 내장에서부터 올라왔다.
6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오래된 습관들이다. 개선하고 싶었던 것들, 극복하고 싶었던 것들, 여행을 통해 개선하고 극복했다고 착각했던 것들을 나는 끔찍스럽게도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다. 까닭 모를 분노와 시기, 심리적 의존, 도피욕과 우울 등. 그것은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먼 외국에서 나를 찾아온 파트너와의 동거 생활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루나, 만일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야?” “일찍 일어나기. 일어나 무엇을 하든 상관없어. 그냥 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나보고 싶어.”
그랬다. 과테말라에서 살 땐 아침에 태양과 함께 일어났다. 아무런 강요가 없었음에도 그저 눈부신 햇빛의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는 걸 이렇게도 힘들어하다니, 대체 나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 걸까.
가끔 꿈속에서 과테말라와 셸라의 그리운 얼굴들을 만난다. ‘꿈속에서 어떤 돕는 힘이 너에게 힘을 주기 위해 너를 그곳으로 데려다주는 것이리라’고 화가인 친구 루페가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말했다. 나는 그곳으로 도망치듯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숙제를 잘해내고 싶다. 앙헬은 ‘네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했다. 6년간 내팽개쳤던 삶이니 더 힘겨운 거야 당연하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과테말라의 오래된 지혜와 빛에 물들어갔듯이 내가 태어난 땅의 오래된 지혜와 빛을 배우고 싶다. 내가 과테말라를 떠나면서 품었던 바로 그 포부대로.
“루나의 여행이 계속되니까 왠지 루나는 계속 여행 중이었던 느낌이야. 내가 이곳에서 만났던 루나도 루나의 여행 중에 만난 것만 같아.” (셸라에 살 적, 한국에서 온 메시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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