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이 애정표현인가?

조선일보 ‘성희롱 집에 가서 하세요’

정안나 | 기사입력 2003/09/29 [02:22]

성희롱이 애정표현인가?

조선일보 ‘성희롱 집에 가서 하세요’

정안나 | 입력 : 2003/09/29 [02:22]
조선일보가 9월 27일 ‘화제의 동영상 뉴스’에서 다룬 성희롱 예방 관련 기사 "성희롱 집에 가서 하세요"는 성희롱에 대한 시각 정립이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든다.

기사의 내용은 지난 23일 성희롱교육연구소 김미경 미래여성연구원 원장이 조선일보사 사원들을 대상으로 연 ‘밝고 건강한 직장을 만드는 성희롱 예방과 성예절’ 강연의 요약이다. 그리고 전체 강의 내용을 볼 수 있도록 동영상 파일을 함께 올렸다. 기사와 강연의 내용은 성희롱을 예방하자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이를 주욱 살펴보다 보면 불편한 심경이 된다.

성희롱은 언어표현 방식이 다르거나 기호가 다른 여성과 남성간 인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성희롱은 사회적 힘 혹은 물리적 힘을 가진 자가 상대에게 성적인 굴욕감을 주는 행위다. 그런데 강연과 조선일보 기사는, 여성과 남성의 TV 프로에 대한 기호의 차이, 쇼핑 방식과 언어의 사용 방식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성희롱이 마치 이런 차이에서 오는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성희롱이 왜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녀의 차이점부터 알아야 합니다. TV를 볼 때 남자들은 뉴스나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중략) 반면 여자들은 드라마를 많이 봅니다. 복잡하게 얽히는 것을 좋아하죠. (중략) 이는 남녀의 두뇌구조의 차이에서 온다고 합니다. 남녀의 사고 차이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마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9월 27일자 ‘화제의 동영상 뉴스’ "성희롱 집에 가서 하세요">

성희롱이 ‘뉴스를 좋아하는 사람의 악의 없는 행동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종류의 문제인가?

남녀의 차이를 열거해나가는 것도 도를 넘어선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보지 못하는 감성적인 것을 봅니다. 남자들이 별 생각없이 툭 던진 말이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남자사원은 ‘괜찮습니다’하면 정말 괜찮은 것이지만, 여자가 ‘괜찮습니다’하면 안 괜찮은 것이거든요”라는 위험한 얘기도 서슴지 않는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이 기사의 제목에 있다. 강의 마지막에 강사는 "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세요"라는 발언을 했고, 심지어 조선일보는 이것을 기사의 제목으로 끌어왔다. 끔찍한 얘기다. 성희롱을 집에 가서 하라니, 성희롱이 애정표현인가? 너무 당연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민망하지만, 성희롱은 누구에게도 해선 안 된다.

성희롱을 예방하고자 하는 강사의 노력은 인정하고 싶지만, 성희롱은 결코 재미있게만 풀어서는 안 될 주제다. 아내에 대한 애정표현을 성희롱으로 표현하는 것은 성희롱이란 범죄의 폭력성을 덮어버리는 일이다. 기사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제목을 "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세요"라고 끌어낸 조선일보의 의도도 참으로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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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 2003/10/12 [23:08] 수정 | 삭제
  • 성희롱 없어져야 합니다.. 허나 처다만 봐도 성희롱으로 규정하는.. 그 기준또한 애매한 상황에서 더우기 그것을 악이용하는 여성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 저는.. 2003/10/09 [15:58] 수정 | 삭제
  • 성희롱은 범죄라는 것. 그런 진지한 접근 아래 다가갔다면...
    저런 조선일보 기사가 나오지 않았을 거에요. 만약 진짜 성희롱의 피해자들이
    저 기사를 읽었다면...그 분들에게는 저 기사 자체가 언어 희롱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씁쓸하네요..


    몇일 전 볼일이 있어서 근처 대학에 잠깐 들렀다가...(지금 외국이에요...)
    여기저기 교내 팜플렛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어서 한번 가져와봤었거든요.(내 취미는 뭐든 주워들고 읽어보기. -_-; 쿨럭)
    마침 가져온 것 중에 가장 크게 & 많이 있던 것이, 학교와 주와 경찰측이 공동
    제작한, 교내 성희롱 교육에 관한 거라 먼저 집어들고 읽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꽤 인상깊더라구요.

    For Women과 For Men부분으로
    나누어져서 적혀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Men을 대상으로 적어놓은 파트에
    < (여성의)"No" is "No."> 라고 대문짝만하게 적여있는 부분이 확 눈에 띄었죠.. (한국 남자들이 "여자가 싫다는 건 좋다는 뜻이야."라고 흔히 하던 말이 떠올랐다던).....끙.

    그리고 조사 내용이 나와있었는데, 90%의 성희롱과 성폭력은 여성이 피해자인 케이스고..나머지 10퍼센트는 남성이 피해자인 케이스인데...이러한 두 경우 모두가 -거의 100퍼센트 가깝게- 가.해.자.는 남성이라고 나와있더군요.(경찰측 자료였지요..) (가끔 보니까, 남자들도 성희롱과 성폭력 당한다, 그럼 여자가 성희롱한 거 아니냐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이 예전에 계셨던 것 같아 덧붙여본다는. -_-;)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게.... For women부분에서 "당신의 직감을 믿으세요. 당신의 직감이 '이건 성희롱-성폭력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 성희롱-성폭력일 것입니다."되어 있던 부분이었지요...그리고 남자친구한테도 특.히. 성희롱-데이트강간을 주의하라고도 덧붙였더군요...(여기 몇몇 리플들이 부부간에는 성희롱이 없다길래-_-;) 부부간에 강간, 성폭력에 대한 언급도 아주 진지했구요..


    여튼....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이 기사처럼.....
    성희롱이 얼마나 진지한 부분인지조차도 납득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 이 현실에서....(한국에선 지금처럼 몇몇분이 힘들게 주장,언급,지적하셔야만
    하는) 그런 부분들이 또 다른 나라 외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고 잘 체계
    화되어 항상 진지하게 교육되고 있다는 것에...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성에 관한 부분만큼은..한국이 굴절된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죠.. 정말 많이 바뀌었음 좋겠어요..

    외국이 무조건 좋다가아니라... 성에 대한 교육이나 프로그램은
    참 잘 되어 있는 선진국이 많다는 것, 그런 교육과 인식은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은 그 누가봐도 사실이지요.
    한국도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네요..
  • DM 2003/09/30 [19:07] 수정 | 삭제
  • 성희롱은 집에 가서 하라니,

    '마누라는 성희롱해도 된다' 는 뭐 그런 의미인지요...

    남자와 여자의 취향 차이를 말하는 건
    "의도되지 않은 성희롱" 을 막아보고자 하는 취지로 했던 것 같은데,

    강연을 보지 않아서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있겠죠.

    뭐든지 재미있게 가르치는 건 좋지만 너무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건
    기자님 시각대로 문제가 있습니다.
  • leaf 2003/09/30 [17:07] 수정 | 삭제
  • 성희롱 방지 교육이라는 것이 결국은
    잘못된 의사소통을 막기위한 것이지 않습니까?
    정확한 의사소통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기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성희롱과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 그것도 교육을 목적으로 한 경우는
    반드시 신중하게 예를 들고,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자고 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 나를아니 2003/09/29 [21:20] 수정 | 삭제
  • 유시민의 '조개론'과 마친가지로...

    언어라는 것은 물리적인 장소와 시간 혹은 화자의 위치에 따라
    소위 뉘앙스라는 것이 엄청 다르게 느껴집니다.

    성희롱은 집에 가서 한다니...-_-;;
    화자의 시각이 무섭습니다. 기사따라 애정표현도 아니고...

    ㅡㅠㅡ 조선일보 시롯!!!
  • 일다 독자 2003/09/29 [17:01] 수정 | 삭제
  • 여성부에서 주관하는 교육현장에서 김미경원장님의 강의를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례들을 들면서 재미있는 입담으로 강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의를 참 재미있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내내 '저 내용이 저렇게 전달되면 안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여러번 반복되었습니다.
    강의의 전문가인지는 몰라도 양성평등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적합한 인물인지에 회의가 들더군요. 그런데 여성부 관련 행사를 가면 이 분이 항상 참석하셔서 강의를 도맡아 하시고 계셔서 더욱 뜻밖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양성평등 관련 전문가들이 일반 사람들에게 보다 쉽고 재미있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중요한 내용을 잘못 전달하거나 빠뜨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이럴수가 2003/09/29 [10:28] 수정 | 삭제
  • 성희롱 집에 가서 하라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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