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도쿄에 ‘임신SOS도쿄’라는 상담 창구가 생겼다. 생각지도 못한 임신을 해서 고민에 빠진 여성들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전화와 메일로 상담을 지원한다.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위해
나카지마 가오리 씨(1971년 가나가와현 출생)는 조산사로 일하고 있다. 산모의 출산을 돕는 일을 하면서 ‘임신SOS도쿄’에서 상담을 받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매일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일곱 명의 동료와 함께 임신에 관한 상담을 한다.
일본에는 임신 상담 창구가 전국에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나카지마 가오리씨는 도쿄에 사는 여성들 중에서 구마모토나 오사카까지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쿄에도 의지할 만한 상담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임신 상담은 계속 늘어서 올해 2월까지 상담 건수가 2백 건을 넘어섰다. 상담자의 연령은 다양하다. 10대, 20대를 비롯해 30대 여성들도 있다. 상담 내용도 다양하다. 임신이 된 것 같다는 고민,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는 있었지만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호소, 친구에게도 부모에게도 절대 상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소녀도 있다. 한 번은 여자친구가 임신한 것 같아 걱정이라며 연락해 온 남성에게 실수 없이 콘돔을 빼는 법을 알려준 적도 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힌 여성들의 사례가 많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임신 검진 비용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무서워서 병원에 가지 못한다는 얘기,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얘기 등. 가오리 씨가 직접 내담자와 함께 구청에 가서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단계부터 도와준 적도 있다. 임신 상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들으면 들을수록 내담자의 상황에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임신SOS도쿄’는 누구보다도 임신을 한 당사자,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는 것도, 여러 고민을 해본 결과 낳지 않기로, 혹은 낳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린 사람의 선택도 존중한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신체적, 경제적 이유로 인공임신중절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때론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지만 본인이 키울 수는 없다고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방임과 학대로 인해 아기가 죽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죠.”
가오리 씨는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생모, 생부에 의해 아기가 방치되거나 학대를 당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을 위한 상담 창구 중에는 ‘아기우체통’을 개설한 구마모토시의 자혜병원이 가장 유명하다. 이곳 외에도 전국에 31곳이 있다. 지자체가 직영하는 곳, 민간이 운영하는 곳 등 형태는 다양하다.
너무도 다른 두 번의 출산 경험…조산사가 된 이유
나카지마 가오리 씨가 조산사가 된 것은 아이를 둘 낳은 다음의 일이었다. 의료기관에서 암 면역요법 연구원으로 일할 때,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그땐 아이 생각보다는 얼른 복직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출산의 과정도 고통스러웠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는데, 아이가 있는 친구들 중에서 출산의 경험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고는 자신의 경험과 너무 달라 충격을 받았다.
4년 후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처음과 너무도 다른 출산 경험이었다. 수중분만으로 남편도 물속에 들어왔고, 태어나는 아기도 자신이 직접 거두었다. 생명체로서의 힘을,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출산 경험이었다.
출산 나흘 후 가오리 씨는 조산사에게 “조산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네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지금부터도 하실 수 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후에 ‘임신SOS도쿄’의 발기인이 된 조산원 원장도, 출산 후에 조산사가 된 사람이다.
가오리 씨가 사회인을 위한 입학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다시 들어가 열여덟 살 학생들과 함께 조산사 공부를 시작한 것은 서른세 살 때의 일이다. 병원의 조산사가 되어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여성들과 만났다. 그중엔 빈곤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산모도 있었고, 지적장애를 가진 산모도 있었다.
일하는 곳을 병원에서 조산원으로 옮긴 후부터는, 아기 방문이나 보육소의 유아 건강 진단을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아동학대를 발견하는 일도 맡고 있다.
나카지마 가오리 씨는 어머니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들을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소아과 의사로부터 “아동학대를 발견한 후는 이미 늦다. 예방할 수 있는 곳에 있는 사람은 바로 조산사다. 태아 때부터 지켜보니까, 아이 엄마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렇게 조산사로 일해온 다양한 경험이 집약되어, 동료 조산사와 함께 ‘임신SOS도쿄’를 설립한 것이다. 운영 자금은 클라우드 펀딩(온라인 모금)으로 모았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책
‘임신SOS도쿄’ 상담을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자, 임신한 여성들을 위해 필요한 정책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진이 무료라면 좋을 것이다. 임신일지도 몰라서 병원에 갔을 때의 비용 말이다. 임산부가 임신증명서 없이도 모자수첩을 받을 수 있는 지자체도 있지만, 대부분 임신증명서를 받기 위한 검진에 1만엔(약 10만원) 가까이 드니, 병원에 갈 수 없는 여성도 생긴다.
또한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해주는 병원 리스트(모체보호법에서 허가한 곳. 한국의 모자보건법에 해당)를 공표하는 기관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지금은 여성들이 직접 수소문해서 찾아다니는 상태다.
아이를 낳아도 기르지 못한다, 혹은 기르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여성에게는 입양기관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경우 임신 중 생활보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시책을 펴고 협력해나갈 수 있는 지자체들이 점차 늘어나야만 한다.
나카지마 가오리 씨는 ‘임신SOS도쿄’의 역할을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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