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몸인가?’
정규 교육과정만 착실히 밟아왔어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내 이력이 문제였다. 면접관은 나에게만 단순반복 업무가 가능할지 두 번이나 물었다. 이력서상의 내 모습은 너무나 활동적이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내가 얼마나 지루함을 잘 견딜 수 있는지 어필해야하는 이상한 광경이 연출됐다.
“쉬는 날 집에 박혀 있는 걸 가장 좋아하고, 리드하기보다 서포터 역할이 더 편하고….”
주절주절 떠들어댔지만 결국 면접에서 시원하게 떨어졌다. 아쉬움은 없었다. 사실 단순반복 업무가 잘 맞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나마 일하는데 있어서 노동법에 위배되지 않게 조건을 다 맞춰주기 때문에 나를 비롯해 다들 그곳에 지원했을 뿐일 게다.
그만큼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노동자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특히 내가 사는 지역의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는 건 특이한 케이스였다. 심지어 대학 내 카페테리아에서도 주휴수당을 챙겨주는 일은 없었다. 주휴수당에 대해 말을 꺼내면 밉보이기 일쑤였고, 뒷말이 나왔다. 법이 보장하고 있는 당연한 권리인데, 그럼에도 현실은 ‘여긴 원래 다 그래’ 라는 말로 퉁 쳐졌다. 주휴수당의 ‘주’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가 이미 깔려 있었다.
혹시나 처우가 조금 나을까 싶어 수도권으로 일자리를 알아본 것이었다. 분명 내가 살던 지역보다는 나았지만, 꼭 그렇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직장생활 2년차 비정규직 A는 야근을 안 하는 날이 없었지만 야근수당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그나마 교통비를 챙겨준다는 것과 이쪽 일이 자기 경력을 쌓아준다는 위안으로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일했다. 주변 친구들은 ‘너 그거 착취야’ 하며 말렸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계약 연장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그래도 일단 참아야 한다고, A는 말했다.
서울시가 지하철을 24시간 운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기사를 보고 참혹한 심정이었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일터로 나가겠지? 또 누군가는 덕분에 열심히 야근을 해야 될 것이 분명했다. 이런 부당함을 B에게 토로했다. 하지만 B는 오히려 지하철 24시간 운행에 찬성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미 회사에서는 노동자의 퇴근길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택시비 몇 푼 쥐어주는 것으로 퉁 치며 야근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그러니까 지하철이 24시간 운행되든 안 되든 노동자는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차라리 더 안전하고 저렴하게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직접 경험해 본 입장이 아니었고, B와 그 주변 사람들은 이미 몸소 부당한 야근을 익숙하게 경험해 본 입장이었다.
이런 현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달라질까. 일자리를 찾아서, 살던 지역을 떠나 발딛은 이곳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니까.
몇 시간 후면 첫 출근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정상적인’ 곳에 운 좋게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벌써 퇴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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