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잇을님은 세상에 대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퀴어-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 완전변태에 속해있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지난 7월 온라인 매체 ‘닷페이스’는 한 초등학교 교사를 인터뷰했다. 인터뷰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과, 여자아이들이 땀 흘리며 뛰노는 것은 상대적으로 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지거나 권유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었다. 나아가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하지 않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철학이 제시되었다.
인터뷰는 큰 공감대를 얻었지만 이내 신상 털기와 항의 민원이 ‘페미니스트 교사’에게 쏟아졌다. 해당 교사가 수업에서 퀴어문화축제 영상을 보여준 것도 ‘동성애 옹호’라며 매도되었다. 성소수자의 다양한 이슈를 드러내는 대중문화행사인 퀴어문화축제는 내가 함부로 비하해도 된다고 여겼던 대상이 나와 동등하며, 존중해야 할 타인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적절한 교육 수단이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퀴어문화축제는 약 10만 명이 퍼레이드 행사에 참여할 만큼, 이미 명실상부 국내 최대의 축제다.
초등성평등연구회는 해당 교사를 응원하는 ‘8·26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많은 이들이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손피켓을 들고 동참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내게도 그랬다. 학교는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모든 교사가 날 ‘여성스럽게’ 만들려 들진 않았지만, 내 말투와 걸음걸이부터 깎아내고 또 깎아낸 건 결국 학교였다. 우리는 인생에 당연히 결혼과 출산이 있는 ‘가임기 자궁’이어서, 여자 친구들은 막연하게 결혼을 상상했다. 그리고 결혼 전의 임신에는 두려움이 심어졌지만, 당장 피임은커녕 내 성적 지향을 인식하고 내 욕망을 협상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나는 여자성기 ‘내부’를 그린 그림 하나만 해마다 보고 또 보면서 자랐다.
만약 내가 세상에 이성애만 있지 않다는 걸 더 일찍 배웠다면, ‘이성교제’의 중요성은 과대평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의 역량과 노력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학교 전반의 변화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
지난 달 30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폐기하고 성평등 기반의 성소수자 인권친화적 교육을 요구하는 1만6천398명의 서명을 제출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책임 있는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성교육 표준안에서 “성폭력 대처 방법”으로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여행가지 않는다.” 등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이 매우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그러자 교육부는 자료를 홈페이지에서 내리고 일부 수정하는 선에서 그쳤다. 표준안은 성을 편협하고 차별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데서부터 그 문제가 시작되기에, 절대로 한두 대목만 삭제한다고 해서 개선될 수 없음에도 교육부는 아직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서 성은 “남녀의 관계”, “성은 남성(아빠)와 여성(엄마)의 혼인과 관련한 일”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이 ‘관계’는, 표준안이 ‘남자’와 ‘여자’를 규정하는 바에 따르면 동등할 수 없다. “뇌구조를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보기”, “남녀에게 맞는 안전하고 편안한 옷차림” 등의 교육내용은 성차를 강조하고 있다. 여성은 “임신 전부터 자궁 관리가 중요”하고, 남성은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나므로, 여성이 “성과 관련한 거절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지 않았을 때 성폭력, 임신, 성병 등 성 문제가 발생”한다며 불평등한 책임을 부여한다.
또 성과 관련한 사회적 불평등의 현실은 모두 삭제한 채 “청첩장 만들기”, “미래의 나의 결혼을 계획해보기”, “성별에 따른 가족구성원 역할의 중요성 알아보기”처럼 획일적이고 성차별적인 삶의 모습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성폭력은 다름 아닌 이러한 왜곡된 관점과 성적 불평등의 결과로 일어난다.
이제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하고, 친구와 여행 하면 안 되고, 금욕하고, 결혼하고, 상시 태교를 하는 자세로 살다가, 자녀를 낳아서 양육을 전담해야 한다는 수준은 벗어나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여성다운 취미와 남성다운 취미가 따로 있지 않고, 성별에 따라 적합한 직업이 있지 않고, 여성에게 더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당연히 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동성을 사랑하거나, 내가 여성이거나 남성인지 고민하거나, 성별 정정을 원하거나, 나를 여성 또는 남성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도 삶의 다채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여권에 여/남이 아닌 젠더를 기재하는 변화가 머잖아 올 것이다. 성별 정정의 조건으로 외부성기 수술을 요구하는 게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게 될 것이며, 우리사회 전 영역에서 성소수자 차별에는 어떠한 핑계도, ‘군대라는 특수성’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권의 실현이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야말로 ‘성편향’
내가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어떤 관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성소수자의 이권을 위한 표준안이 아니’라는 말을. 그런데 묻고 싶다. 성소수자가 우리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성소수자의 이권을 위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된다고 말하기 이전에, 그렇다면 이 표준안에 누구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밝혀야 하는 않는가?
연구진은 공청회 이후 보수단체들의 목소리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사회적 갈등 문제없이 중립적인 관점”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전문가 검토회의 역시 거쳤다고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영역에서 성교육, 젠더교육을 하고 있는 청소년성문화센터, 여성인권단체들, 일선의 보건교사들조차 이 과정 속에 없었다. 교육부야말로 이권이 아닌 인권을 위해 표준안을 만든 것이 맞는가?
유치원부터 초, 중, 고 전 과정을 아우르는 방대한 교육안 속에서 두세 단어를 삭제한다고 해서 표준안에 담긴 성차별과 소수자 혐오를 개선할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 ‘차별하지 말라’는 구호가 공허한 이유는 한부모가족, 비혼모, 트랜스젠더,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 등을 학교 교육에서 차별적으로 다루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누가 왜 차별당하고 있는가?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거나, 나보다 하등한 사람이라고 가르치면서 같은 입으로 ‘타인을 평등하게 대하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성평등 기반의 성소수자 인권친화적 교육이 보편적으로 시행될 수 있기를 촉구하며, 현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폐기될 때까지 분노와 요구를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젠더 프리즘 관련기사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