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가 놀러왔다. 대한민국 지도 끝과 끝에 떨어져서 사는 우리는 퀴어문화축제를 계기로 친구가 됐다. 부산에서 꼬박 5시간. S는 눈을 보고 싶어 했다. 부산에서는 쌓인 눈을 보기 어렵다나. 마침 S가 오기 전날 이곳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아빠에게 친구가 부산에서 놀러오는데 눈이 와서 다행이라며 재잘거렸다. 아빠는 “눈 구경 제대로 하겠네” 하시더니 대뜸 네가 부산에 무슨 친구가 있냐고 물어왔다. 인간관계의 폭이 워낙 좁기에 아빠는 내 친구들을 어느 정도 다 꿰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봉사활동하면서 친해졌어요.” 갑자기 무슨 봉사활동이냐고 다시 물어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빠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조재님 친구 분이라구요? 어떻게 부산에 친구가 있으세요?”
같은 질문을 받았다. 내가 S에게 소개해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질문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한 것과 같은 대답을 했고, 괜히 더 긴장됐다. 사장님은 내가 성소수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괜한 말을 해서 S를 아웃팅시키는 게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다른 대답으로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순발력이 영 부족한 사람이다. 거짓말도 잘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에는 참 아쉬운 조건이다. 둘러대는 거짓말에 재능이 없다니. 어쨌거나 다행히 우려할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아버지: 지수하곤 어떻게…. 학교 친군가?
영화 <연애담>(이현주 감독, 이상희 류선영 주연, 2016)에는 지수와 윤주, 그리고 지수 아버지가 어색하게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지수 아버지는 침묵을 깨려는 듯 둘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거리가 먼데 어쩌다 왔는지. 지수와 윤주는 연인 사이지만 아버지 앞에서 둘은 그저 친한 언니 동생 사이일 뿐이다.
S와 나는 지역적으로 봤을 때 교류할 일이 적다는 이유로 질문을 받는다. 서로 어떻게 아는 사이냐는 것이다. 그나마 친구는 친구라고 소개할 수 있지만, 연인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애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친구 또는 아는 사람이 된다. <연애담>에서 지수가 윤주를 ‘친한 언니’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성소수자일수록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로 인해 타 지역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은 질문을 받을 일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사자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사람들이 굳이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럴 리 없으니 역시 거짓말로 둘러대는 순발력을 기르는 편이 나은 걸까, 하고 헛헛한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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